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875
마탄의 사수 (875)
“잠시― 뭘 알았다는―”
“키루룻, 키룻―!”
“오! 독침 쏴 대는 쪼꼬미~? 〈허리케인 블루〉.”
라르크는 신나라의 물음을 무시하며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독침의 속도는 빨랐으나 라르크가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물며 신나라는 그것을 보지도 않고 오직 소리만 듣고 피할 정도였다.
푸화아아아────────ㄱ!
라르크의 검 끝에 서렸던 새파란 마나 알갱이는 순식간에 힘을 발산했다.
바람이라곤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는 동굴 안에서 갑자기 불어닥친 유색黝色의 삭풍은 또 다른 가디언 몬스터의 사지를 완전히 찢어 버렸다.
라르크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캐물으려던 신나라조차 잠시 말을 잊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거…… 원래 이렇게 셌나요?”
신나라의 물음에 라르크는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찡한 감동을 받은 얼굴로, 아랫입술까지 살짝 깨물며 자신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역시야. 일반 테스트로는 몰랐는데…… 이제 확실해졌어요.”
“네?”
“강도는 물론이고, 캐스팅 시간도 단축됐어요. 소모 마나가 좀 늘긴 했지만 쿨타임도 줄었고!”
“어머, 어머머? 그 말은―”
“네. 적어도 방향만큼은 맞췄다는 의미입니다! 나라 씨! 맞췄다고요! 컬러 드래곤 사냥! 그것과 이 검의 관계! 블루가 검증되었으니 나머지도 전부, 전부 싹 다 죽이면 돼요!”
라르크는 경쾌한 손짓으로 검을 갈무리하곤, 신나라의 양손을 맞잡았다. 덩실덩실 움직이는 라르크에 맞춰 그녀의 몸도 들썩거렸다.
그녀는 굳이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라르크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소, 손…….”
“손? 아차, 아차차. 죄송합니다, 이거 매너 없게 레이디의 손을 함부로 잡았네요.”
전에 없이 들떴던 라르크는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곤 신나라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앞으로도 저의 여정에 함께해 주시길.”
그것은 마치 중세 귀부인에게 예를 갖추는 기사의 모습이었다.
귀부인이라기보다 기사 쪽에 더 가까운 신나라의 차림새였음에도 그녀는 역시 마음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왈가닥 같은 성격의 그녀를 이렇게까지 ‘여성’으로 인식해 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네놈의 여정은 이곳에서 끝이니까.]“엥?”
그에게 답한 것은 신나라가 아니었다.
“라, 라르크 씨!”
신나라는 두 번의 스텝만으로 라르크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숙이며 멋진 모습을 보이려던 라르크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장난 속에 섞은 진지함을 그녀가 알아채길 기다렸건만.
그로서도 2차 전직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는 기쁨에 겨우 등을 떠밀어 용기를 내어 본 것이었는데.
‘드래곤의 답변을 들을 줄이야. 하아아…… 김샌다, 김새.’
힘 빠진 얼굴로 들어 올린 검은 매가리 없이 휘청거렸다.
신나라는 그를 독려하기 위해 어깨를 짚으려다 다시금 검을 세웠다.
“라르크 씨.”
“네?”
“라르크 씨의 여정만 있는 게 아녜요. 그 여정이 끝나면…….”
신나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끼 식사 분량도 안 되는 ‘인간 두 마리’를 대하는 그린 드래곤의 태도는 어찌나 방만한가.
가디언 몇을 죽였다곤 하지만 자신에게 실질적 위해가 될 거라고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드래곤의 방심.
신나라의 움직임은 어덜트 드래곤 AI가 갖는 사고의 틈을 파고들었다.
“〈발레스트라Balestra〉, 〈꾸 드르와Coup droit〉!”
라르크는 그녀의 몸이 ‘늘어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팔을 쭉 뻗은 검 끝에서 부터 뒤따라오는 왼쪽 발끝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직선.
검과 인체가 하나 되는 그 동작의 끝에, 그린 드래곤의 발목이 가볍게 꿰뚫렸다.
[갸아아아아아악―!]그린 드래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하며 포효했다.
괴성이 동굴을 가득 메울 정도가 되었을 때야 신나라는 목청 놓아 소리 질렀다.
“제 여정도 같이 가야 하니까!”
반 이상이 파묻혀 버린 그녀의 외침을 라르크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이 완전히 살아 돌아온 것만은 확실했다.
꼿꼿하게 선 라르크의 무지갯빛 검에서 두 가지 빛이 동시에 뭉치기 시작했다.
“〈감싸 안는 그린〉, 〈허리케인 블루〉.”
드래곤이 다음 공격할 타깃이 신나라가 되리란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라르크는 브레스를 준비하는 드래곤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한 후, 신나라가 상처를 낸 드래곤의 오른발을 향해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블루 드래곤과 단 한 번 싸워 봤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나라와 라르크는 한 번이면 충분했다.
무슨 공격을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풀어 나갈지, 어떻게 싸워야 할지.
돌격하는 신나라와 멀어지는 라르크.
멀어지는 신나라와 돌격하는 라르크.
“〈레드―선〉.”
“〈빠스 아리에르Passe arrière〉.”
한 번 맞춰 본 합만으로도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최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 * *
“아이고야……. 지루하다, 지루―”
“지루하긴 뭐가 지루해.”
“어, 와아악!? 뭐, 뭐야, 대장? 어떻게? 응? 아니, 지금 시간이―”
기지개를 켜던 퐁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나라는 조금 피곤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웃었다. 라르크는 가방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꺼내어 그에게 휙 던졌다.
“가디언 조지는 데 22분, 길 찾느라 20분 걸렸어. 후, 뭔 놈의 함정 장치들이 그리 많은지. 드래곤이란 놈이 겁도 많아.”
“지금 대장 들어간 지 1시간 15분 지났는데?”
가디언들을 정리한 게 22분, 이동 시간 20분 도합 42분.
75분 만에 나온 그들이 42분 동안 다른 짓을 했다면 드래곤과 싸운 시간은 몇 분이란 말인가.
라르크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퐁을 향해 무언가를 툭 던졌다.
가벼운 무게감을 지닌, 짙은 초록색의 물건이었다.
“이건―”
“그린 드래곤 스킨Skin인데 독毒 저항 로브로 만들 수 있을 거야. 만들어서 전투 도중 잠깐잠깐씩 착용만 해. 아니면 무두질해서 방패 위에 덧씌우던가. 아! 본부에서 받아 온 훈련 명령서 유효기간 아직 20시간 남았지? 그 안에 다시 귓말 할 테니까 마을에서 쉬고 있어.”
“어? 어어? 어?”
퐁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라르크는 수정구를 발동시켰다.
연보랏빛과 함께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던 퐁은 황급히 신나라를 바라보았다.
“그럼 퐁 님, 빠르면 두어 번 정도 더 진행할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협조 부탁드릴게요.”
“그, 물론 신 여사님의 부탁이니 당연히― 양국 우호 발전을 위해―”
슈욱―!
신나라도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곤 그대로 사라졌다. 그녀라고 여유 만만하게 설명할 리는 없었다.
베르튜르 기사단의 이름으로 드래곤 레어 인근을 ‘통제’할 수 있는 제한은 고작 20시간.
라르크와 신나라는 그 시간 안에 적어도 두 마리 이상의 드래곤을 더 처리하려 했다.
“……드래곤 진짜 잡긴 한 거야? 어디 천 쪼가리 가져와서 드래곤 피부라고― 히익!”
퐁은 중얼거리며 그린 드래곤의 스킨을 확인했다.
라르크는 확실히 사람을 다룰 줄 알았다.
* * *
람화정은 날아오르며 손을 뻗었다. 드래곤을 상대하느라 미처 그녀를 확인하지 못했던 이고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트 스트림〉.”
“〈번 블러드〉, 〈스프레드 플레임〉!”
자이언트마저 속수무책으로 날릴 것 같은 제트 기류였으나, 바람은 제 역할을 전부 수행하지 못했다.
파이로가 자신의 피를 촉매로 불길을 타오르게 만든 후 그것을 고루 뿌려 댔기 때문이다.
냉기와 수분을 잔뜩 머금은 바람은 자연적인 소화제와 같은 역할이었으나, 단순한 불이 아니기에 쉽게 꺼지지 않았다.
“……불, 짜증 나.”
“내가 할 말이로군. 번 블러드Burn blood가 없었으면 다 꺼졌을 바람이잖아? 일반적인 눈꽃술사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파이로의 미간도 찌푸려질 대로 찌푸려져 있었다.
람화정은 자신의 상태를 슬쩍 떠보는 상대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이고르 또한 공중에서의 전투를 끝마치고 착지했다.
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파이로를 바라보았다.
“후우우, 나야 드래곤 둘과 치고받고 있다지만, 네놈은 저 핏덩어리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나?”
“내가 구해 주지 않았으면 넌 죽었어.”
“캬캬캿! 뭐? 이 빌어먹을 자식이―”
“해볼까?”
자이언트와 인간은 서로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그들의 앞에 있는 존재들을 열 받게 만들었다.
“……우리를 앞에 두고 아직도 그런 여유를 갖는가.”
“어처구니가 없네요.”
실버 드래곤 아르젠마트와 브론즈 드래곤 블라우그룬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샤즈라시안 최북단, 칼바람 산맥의 인근, 그것도 시티 페클로로 들어가는 입구의 근처였다.
뱀파이어 몇 마리와 대형종 몬스터들이 기습 공격을 감행했으나, 람화정을 포함한 그들은 침착하게 대응하는 중이었다.
“블라우그룬! 차라리 나랑 바꾸자. 지키는 것도 못해 먹겠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젤레자 님은 입구만 막아 주세요.”
시티 페클로의 입구는 눈과 얼음의 정령여왕으로 인해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으나 그것으로 적을 모두 막았다고 확신하진 못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개체 이상의 드래곤은 입구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게 블라우그룬의 주장이었고, 그 주장에 따라 현재 인간 형태로 있는 드래곤 한 기가 그 앞에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다.
“저 인간 자식, 저거! 저 검 보라고! 내 꼬리랑 비슷하게 생긴 게 기분 나빠! 없애고 싶어!”
언뜻 보기엔 아르젠마트와 비슷한 헤어 컬러.
그러나 은빛보다는 조금 더 톤이 짙은 색, 그것은 아직 원석 빛을 내는 쇠鐵의 색이었다.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머리와 활동적인 옷차림은 아르젠마트나 블라우그룬과 달리 그녀가 육체파 드래곤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스틸 드래곤Steel Dragon이 검을 보면서 기분 나빠 하시면 어떡합니까!”
“음. 블라우그룬의 말이 맞다.”
철로 된 모든 물품에 대해 관심을 갖는 드래곤.
날붙이로 된 무기를 모두 관장한다고 할 정도의 스틸 드래곤의 일종이었으나, 그녀의 입은 철보다 가볍게 설정되어 있었다.
“으으으! 그럼 잘 좀 하라고요! 블라우그룬 너는 예전부터 마무리가 항상 약해서 탈이라니까! 아르젠마트 님도 그 인간 꼬마랑 파트너됐다고 너무 안일해진 거 아닙니까? 거기, 꼬마! 나랑 바꿔!”
말총머리를 흔들며 과격하게 말을 뱉는 여성을 보며 람화정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인간 주제에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시끄러.”
“시, 시끄러? 너 지금 시끄럽다고 했어? 내가 인간 여자애라고 봐줄 것 같아!?”
“으…… 언니 같아.”
람화정은 고개를 저었다.
파이로와 이고르는 분명 보통이 아닌 상대지만, 아르젠마트와 블라우그룬 그리고 람화정도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 부분에서 이 팀의 실수가 있었다.
이곳에 이하가 있었다면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봤을 것이다.
드래곤 세 개체와 탑 랭커가 있는 이곳에 고작 이고르와 파이로만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이 둘이 서두르지 않는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따각, 따각, 따각.
“끌끌, 나도 소녀의 말에 동감이야. 아르젠마트와 비슷한 나이, 아마 곧 에인션트에 들어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영 시끄럽구만.”
푸른 수염이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르젠마트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레.”
람화정 또한 아르젠마트의 곁에서 그의 옷자락을 쥐었다.
만년설산에서의 복수를 하기에 이곳은 적합한 환경이다. 그러나 둘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레?! 레라고!? 진짜 레가 온 거야? 푸른 수염?”
“이거야 원, 내 이름이 질리기는 처음이구만. 그래, 내 이름은 레다. 젤레자.”
스틸 드래곤, 젤레자는 과잉 반응을 보이며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푸른 수염이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자 젤레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내가 젤레자로 보이나, 레?”
────────────……!!!!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이로와 이고르는 고개를 돌리며 푸른 수염의 욕지거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영감탱이로군.”
* * *
푸른 수염은 자신의 모자를 슬쩍 들어 올려 예를 갖췄다.
물론 그게 진심이 담기지 않은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 게 재미있나? 끌끌, 메탈 드래곤 일족도 노망난 왕을 모시느라 수고가 많겠어.”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나? 그냥 간단한 장난이지. 젊게 사는 게 좋은 거 아닌가?”
플래티넘 드래곤 바하무트는 레의 도발에도 분명한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푸른 수염은 가볍고 느린 동작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시티 페클로의 입구를 막고 있던 젤레자가 바하무트였을 줄이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레의 눈엔 조금 분노의 빛이 담겨 있었다.
바하무트가 그것을 보며 웃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