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934
마탄의 사수 (934)
신나라는 잠시 움찔거렸으나 라르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파우스트의 옆을 보았다.
“끌끌, 파우스트. 공격할 필요 없다. 우리 편이야.”
푸른 수염이 라르크의 손을 들어 주었다.
파우스트는 잠시 레를 보다 다시금 라르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백작님. 라르크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로그― 없던 사이, 이놈이 백작님께 무슨 말씀을 했는지 모르지만 넘어가셔선 안 됩니다.”
“정말 나는 어디서든 미움 받는 역할이라니까. 아니, 파우스트 씨도 소식 들으셨을 거 아녜요? 지금까지 자다가 왔을 리는 없고. 안 그래요?”
라르크의 말에 파우스트의 톱니 같은 치아가 더욱 드러났다.
그의 말대로였다. 티아마트의 갑작스러운 소란은 파우스트조차 로그아웃인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소식을 접하고, 영상을 보자마자 황급히 로그인을 한 것이다.
“네가 컬러 드래곤들과 함께 있었다고 갑자기 백작님의 휘하로 들어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베르튜르 기사단과 세이크리드 기사단이라면 로페 대륙에서도 일급 수준의 유저인데. 랭커인 신나라는 더욱 말이 안 되지. 하물며…… 네놈들 모두 하이하와 관련이 있지 않나.”
파우스트는 슬쩍 레의 눈치를 보았다.
이하의 이름이 나오자 푸른 수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나라 또한 적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파우스트를 보았으나 라르크는 자연스럽게 두 발자국 걸으며 그녀와 파우스트의 시선 교환을 차단했다.
“첫 번째로 지적하자면, 우리는 훌륭하신 푸른 수염 님과 그의 종, 파우스트 씨의 ‘휘하’로 들어온 것은 아녜요.”
“뭐? 그럼 어째서 백작님이 네놈을 받아 준 것이지? 백작님이 네놈의 세치 혀에 놀아났을 리가―”
“시끄럽군, 리자디아. 레와 거래를 한 것은 나다.”
저벅…… 저벅……. 파우스트와 라르크의 기 싸움 도중, 누군가가 풀숲을 헤치며 나타났다.
매우 느린 발걸음 소리였으나 그는 마치 무빙 워크 위에라도 있는 듯, 발걸음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파우스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이 인간의 혀에 놀아났다고 할 셈인가.”
“당신은 누구―”
흑발을 풀어 헤친 노인이 흉흉한 눈빛을 번뜩거렸다.
그가 지팡이를 들어 파우스트를 가리키려는 순간, 그들의 사이로 모자 하나가 휘리릭, 날아왔다.
마치 부메랑처럼 모두의 시선을 잡아 끈 모자는 곧 레의 머리 위로 돌아갔다.
“그쯤 해 두게, 오닉스. 저래 봬도 나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강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니까……. 그리고 듣다 보니 나도 우리 파우스트의 말에 제법 흥미가 생겼거든.”
푸른 수염과 파우스트.
그리고 오닉스와 라르크가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 * *
“나도 바보가 아닐세, 라르크 군. 〈신의 지팡이〉 쪽에서는 신세가 많았지? 그쪽의 여자 기사도 그렇고.”
“우리의 협조를 거부할 것인가, 레.”
레가 자세를 고치며 앉자 오닉스가 그를 노려보았다. 노회한 블랙 드래곤의 눈빛을 받으면서도 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 오닉스 자네한테 말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하이하라는 인간과 관련이 있는 녀석들에게 조금 흥미가 있을 뿐이지. 무엇보다 티아마트를 가장 완벽하게 사용하려면 자네들이 필요한데 뭐 하러 협조를 거부하겠나.”
“사용?”
“아! 끌끌, 사용이라는 말은 듣기 거북하겠군. ‘온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이라는 뜻일세.”
오닉스가 눈을 부라리자 푸른 수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파우스트는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컬러 드래곤들이 애당초 푸른 수염에게 온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티아마트……. 영상 속 ‘그것’인가.’
파우스트가 로그아웃 직전 본 것은 티아마트의 인간형 모습이었다.
눈의 초점이 없는 게 특이했으나 그저 작은 소녀일 뿐이었던 티아마트가 ‘그렇게’ 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블랙 드래곤. 오닉스. 들어 본 적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이 티아마트를 온전하게―”
[버릇없는 도마뱀 같으니! 감히 여왕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느냐!]“―끄읏!? 〈본 쉴드〉!”
파우스트가 티아마트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오닉스는 드래곤 폼으로 돌아갔다.
흑발의 노인일 때도 기세가 평범치 않았던 블랙 드래곤이 제 모습을 드러내자 파우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스킬을 사용해야만 했다.
[감히 아인종 주제에 여왕님을 아랫것으로 취급하다니! 네놈들은 여왕님은 물론, 하찮은 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거늘!]오닉스는 파우스트를 향해 일갈하고 있었으나 그 외침은 단순히 한 사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오닉스의 노림은 푸른 수염에 있었다.
푸른 수염은 모자를 벗으며 고개를 들었다.
공중에 뜬 오닉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나름대로 예의를 갖췄다.
“화내서 뭘 하겠나, 오닉스. 이 녀석이야 아직 어려 예의를 모르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따지면 네 쪽에 붙은 라르크 군이 나에게 한 실수가 더 클 텐데.”
“그건 아직 입장 차이가 있을 때였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푸른 수염 님. 상식적으로 제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랬겠냐는 말씀이죠.”
라르크는 손짓까지 하며 빠르게 말했다.
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팡이를 거꾸로 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공격 자세를 취한 것도 아니었으나 그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라르크는 물러서야만 했다.
“그 당시 치요에게 들었어. 넌 분명 치요와 손을 잡으려 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를 공격했었지. 그리고 이제 와서는…… 컬러 드래곤들을 우르르 데리고 왔다? 티아마트, 컬러 드래곤의 여왕을 모시기 위해? 내가 그걸 믿어야 하나? 내가 뭘 믿고―”
“그는 나와 같은 일족인 블랙 드래곤마저 죽인 인간이다, 레여.”
“음?”
오닉스는 어느새 인간 모습으로 돌아와 라르크의 곁에 섰다.
푸른 수염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닉스는 덧붙였다.
“이 녀석은 우리 컬러 드래곤 열 기를 죽였다. 사상 최악의 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놈과 함께 있다고?”
“그렇다.”
드래곤들의 종족 보호 본능은 매우 강하다.
유저뿐 아니라 모든 NPC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녀석을 내가 받아들인 이유를 모르겠나.”
파우스트는 놀란 눈으로 라르크와 신나라를 번갈아 보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친밀도가 한 번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회복이 불가능에 가까운데.’
어덜트 블랙 드래곤을 죽이며 라르크와 오닉스간 친밀도는 -100%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오닉스를 만나고 또 설득해서 그가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고?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파우스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이상…… 그가 우리 컬러 드래곤의 부흥에 한 손을 거들기로 한 이상, 우리 일족의 그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즉, 우리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바로 라르크의 힘 덕분이기도 하지. 그런데도 그를 믿지 않을 것인가.”
오닉스는 라르크를 대변하고 있었다.
라르크는 그니까요, 그니까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전히 불편한 얼굴로 있는 건 신나라뿐이었다.
“그렇다면 믿어야지. 어찌 안 믿겠나. 그런데…… 어떻게 도울 셈이지? 오닉스 자네들이 오고 나서 티아마트가 안정된 상태를 보이곤 있지만― 자네도 봤다시피 본체일 때는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는데.”
“우리도 여왕님을 이제 막 뵈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여왕님의 고통을 줄일 방도가 있다.”
“그런가.”
“여왕님이 고통스러워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가 분담하면 될 테니까.”
오닉스는 자신 있게 말했다. 레는 호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의 분담이라. 역시 같은 종족끼리는 가능한가 보지?”
아직 티아마트가 불완전한 원인조차 몰랐던 라르크, 파우스트, 신나라도 마침내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고통!
도대체 어떤 고통이기에 티아마트가 불완전한 것일까.
‘분담이 된다? 뱀파이어끼리 피를 나누는 것과 유사한 행위인가.’
파우스트는 혀를 날름거리며 오닉스의 말을 되새겼다.
마나를 주고받고, 피를 주고받는 행위도 가능한 미들 어스다.
드래곤 정도의 수준 높은 종족이라면, 그것도 티아마트라는 특수한 개체가 존재한다면 힘을 몰아주거나, 부정적인 기운을 나눠 받으며 숭배하는 행위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파우스트는 이해했다.
오닉스가 굳이 답하지 않아도 푸른 수염은 그것을 동의로 이해하곤 말했다.
“그렇다면 바하무트를 죽이는 것도 가능하겠군.”
“그렇다. 인간 측의 정보를 여기 있는 라르크가 가져다줄 것이고, 우리는 가장 확실한 때를 보아…….”
그제야 오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잠시 멈춘 그는 라르크를 보았다. 라르크는 빙긋 웃는 얼굴로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오닉스의 입가도 올라갔다.
“완전해진 여왕님을 모시고 바하무트를 죽인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웃음기 없는 미소를 띤 채, 오닉스는 선언했다. 푸른 수염은 더 이상 라르크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좋아, 좋아.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도 거기까지니까.”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바위에 걸터앉았다.
분위기는 완전히 정리되었다.
파우스트는 여전히 라르크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컬러 드래곤이 저토록 말하는 이상 의견을 피력할 순 없었다.
‘티아마트에 대한 통제권을 컬러 드래곤들에게 주고― 컬러 드래곤들은 티아마트를 받은 후 그것을 활용해 바하무트를 죽이는 계약인가.’
무엇보다 자신의 ‘상사’인 푸른 수염이 저들을 수용하지 않았는가?
바하무트와 메탈 드래곤들의 몰락은 파우스트로도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이제 혼자만의 힘으로는 드래곤의 사체를 구하기 힘들어졌으니까.
파우스트는 그것을 떠올리자 다시금 기분이 나빠졌다.
“저기, 파우스트 씨.”
“다가오지 마라, 라르크.”
그러던 파우스트에게 라르크가 슬며시 다가왔다.
파우스트는 그에게서 한 걸음 멀어지며 말했다. 라르크가 그런다고 물러날 리가 없었다.
그는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는 다시 파우스트에게 붙었다.
“허허, 같은 미니스 식구끼리 그러지 맙시다. 우리가 서로 싸워 봤자 뭐 하겠어? 둘 다 유전데.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같은 식구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하이하는 무슨 속셈이지?”
“그건 나도 모르지. 하이하랑은 연락 안 한 지 오래됐습니다. 신나라 씨가 여기 있다고 자꾸 의심하나 본데, 나 혼자 컬러 드래곤을 잡았겠어요? 신나라 씨랑 나랑 같이 조졌으니까, 응? 오닉스도 이렇게 우릴 받아 준 거지.”
라르크는 아직 멀찍이 떨어져 있는 신나라를 가리켰다.
파우스트의 눈이 잠시 그녀를 훑었다. 라르크보다 훨씬 먼저 신나라―하이하 콤비를 봐 왔던 파우스트로는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나라가 하이하를 배신했다고? 말이 되는 건가.”
파우스트가 말을 마치기도 전, 라르크의 눈은 이미 빛나고 있었다.
“배신이고 뭐고, 언제는 뭐 부부였나? 원래 미들 어스가 그런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아니, 파우스트 씨야말로 치요는? 맨날 붙어 다니드만 이고르랑 파이로랑. 전부 없잖아? 다 어디 갔는데?”
의심을 가질수록, 의문을 품을수록 자신의 화법으로 빠뜨려 버리는 게 바로 라르크의 주특기다.
신나라와 하이하의 관계를 치요와 파우스트의 관계로 동치시키며, 지금 치요와 떨어져 있는 파우스트를 빗대어 말하는 라르크의 화술은 가히 교묘의 극치였다.
“……말할 수 없다.”
“그니까요. 말하지 않아도 보면 알지. 피부 하얘진 거 보니까 치요가 뭔 짓 했구만. 그리고 푸른 수염 님한테 물어봐도 그녀는 신경 쓰지 말라는 거 보면…… 뭐 아예 떨어져 나갔거나 그런 것 같은데. 맞지?”
파우스트가 입을 다물고 자신을 노려보자 라르크는 멍청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 보자는 겁니다. 이제 믿을 사람이 우리밖에 없잖아요. 아니, 푸른 수염 님도 말했지. 믿는다기보다…….”
그러곤 손을 내밀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잘해 봅시다.”
파우스트도 멍청한 유저가 아니다.
라르크와 신나라가 갑작스레 이럴 리가 없다는 건 100%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에 바로 이런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믿어 달라, 확실하다, 따위의 모호한 주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만 손을 잡자는 제안.
미니스의 국왕과 재무장관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최고위급 NPC까지 홀려 버린 말재간을 파우스트가 버틸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