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98
198
기를 쏘아내는 탄기(彈氣)가 무척 뛰어나다.
수련해서 얻은 능력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다.
탄기로 상대의 기를 건드리다 보면 악기(惡氣)도 보이고, 선기(善氣)도 보인다. 선기는 가까이 하고, 악기를 띤 자는 독술로 제거했다.
당화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아! 미안, 미안. 자꾸 버릇이 되어서.”
“내상이 꽤 깊었을 텐데…….”
“하하하! 내가 누구요. 사천제일룡 아니오. 이까짓 내상쯤이야 환단 하나면 거뜬하지.”
두 사람은 친우처럼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합시다. 철사문주가 당문에 도움을 요청했고, 당문은 당연히 받아들였소. 그건 내가 여기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을 테고.”
마야는 조용히 들었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 이쯤에서 끝냅시다.”
당화가 많이 물러선 것이다.
그는 성질이 괴팍한 성격이다. 누가 말리면 기를 쓰고 해낸다. 어려운 일일수록 활기차게 덤벼든다. 그런 사람이 중도에서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철사문주가 당문에 도움을 요청할 때는 마야를 막아달라는 게 아니라 몰살시켜 달라는 뜻이었을 게다.
자기 체면까지 들먹이며 이쯤에서 끝내자고 한 것은 정도인으로서는 하기 힘든 말이다.
“말은 고마우나…….”
당화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난 철사문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몸이오.”
“혈귀대주 건은 들었는데, 정확히 따지려면 궁왕에게 따져야지. 궁왕이 화살을 박았으니까.”
“따질 것이오.”
당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우리 이야기는 끝났네. 이후부터 우린 철천지원수가 될 것 같은데, 감수하시겠다?”
“한 시진 후, 공격하겠소.”
마야는 포권지례를 취했다.
당화는 팔짱을 낀 채 노려보기만 했다.
마야는 한 시진을 기다려 주었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알지 못한다. 마야가 믿는 것은 자신의 능력뿐이고, 당화에게는 철사문의 기마군단과 독술, 암기술이 있다.
양쪽 모두 큰 피해를 입을 건 불문가지다.
“이건 단문협 싸움의 연장이야.”
마야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천멸도주가 받아쳤다.
“쓸데없는 소리 마.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도 안 들어.”
“너흰 혈귀대주 얼굴도 모르잖아.”
“그래서?”
“나와 금 소저. 이렇게 둘만 간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단문협 어쩌고저쩌고 할 때부터 기분 더럽더라니. 뭐? 뭐가 어째? 그럼 우린? 우린 네가 뒈져도 괜찮다는 거야? 지금 생과부 떼로 만들 일 있어!”
“도주, 억지 부리지 마.”
“네 말이 억지야! 그럼 여기까진 뭐 하러 데려왔는데? 항상 이런 식으로 할 거야? 괜찮다 싶으면 모두 들러리로 내세우고, 아니다 싶으면 혼자 나서고!”
“잊었구나.”
“뭘!”
천멸도주는 냅다 고함질렀다.
“내가 만독불침이라는 것.”
“……!”
“나는 걱정없어. 금 소저가 염려스럽지. 하지만 놈의 복수를 하겠다고 부모까지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안 갈 수 없잖아. 이해들하고, 길이나 막아.”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마야는 만독불침이다. 녹광성초의 효험에다가 저주의 자오법신이 깨지면서 몸에 스며든 음양이기까지 더하면 그를 중독시킬 독은 없다.
독이 무용지물이라면 사천제일룡이 아니라 당문주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두려울 게 없다. 철사문도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모습은 이미 보았고.
그렇다. 마야는 혼자 보내도 거뜬하다.
“꼭 가야겠어?”
천멸도주의 염려는 금연화에게 돌려졌다.
“네. 걱정 마세요.”
금연화의 대답은 두 번 말을 붙일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단호했다.
드디어 약속한 한 시진이 흘렀다.
마야와 금연화는 철사문 정문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어쩔 수 없이 전면전이다.
원래 이렇게 진행되었어야 한다. 왕벌에게 복수를 미뤘다는 게 창피하지 않은가. 힘들더라도, 벅차더라도 복수라는 이름을 걸었으면 육신으로 맞섰어야 한다.
“철사문의 기마병진은 진법에만 휘말리지 않으면 되니 항상 몸을 움직이도록 하고. 염려할 것은 당화의 독술인데…… 어떤 독을 펼칠지 모르니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마.”
마야도 금연화에게 해줄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아니. 궁왕이 남아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궁왕은 벅차더라고요. 한 명은 양보할게요. 맡아주시겠어요?”
“아니. 난 먼저 떠난 놈, 복수 따위는 안 해. 그러니 살아남아서 마저 끝내.”
마야는 길가에서 풀잎 하나를 뽑아 들었다.
“풀피리 잘 불어요?”
“약간.”
“풋! 그 사람은 못 불었어요. 풀피리뿐인가? 악기에는 얼마나 젬병인지 금방 가르쳐 줘도 잊어버리더라고요.”
“악기에 신경 쓰기에는 야망이 너무 컸지.”
“마야의 야망은요?”
“난 야망 같은 것 없어.”
“마도의 하늘을 만든다면서 야망이 없어요?”
“해야 할 것 같으니까 하는 것뿐이야. 야망이란 말뜻, 해석해 줘?”
“풋! 됐어요.”
두 사람은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었다. 철사문의 굳게 닫힌 철문까지는 무인지경(無人之境)이었다.
꽈앙!
철문이 활짝 열렸다. 그 순간,
쒜에엑! 쒜에에엑!
장원 안쪽에서 어른 손가락 굵기의 철시(鐵矢)가 무서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파앗! 파아앗!
금연화는 즉시 자하풍류신법을 펼쳐 앞으로 치달렸다.
날아오는 화살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형국이다.
보기에만 그랬다. 허공을 빼곡히 채운 화살이건만 그래도 몸을 빼낼 구멍은 있었는지, 금연화는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철사문…… 대단하군. 철궁대의 철궁까지 가미시켰어. 이러다가는 제삼무신가의 은형시까지 노릴 판이지 않나.”
마야는 감탄을 터뜨리면서 손에 들고 있던 풀잎을 입에 물었다.
삘리…… 삘리삘리……!
풀피리를 불었다. 피리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갔다.
순간, 비 오듯 쏟아지던 철시가 뚝 그쳤다. 음파에 기혈이 진탕당해서 강궁을 쏘아낼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
낭랑한 교성과 함께 금연화의 쌍검이 힘차게 날개를 펼쳤다.
“크윽!”
금연화 같은 고수에게 눈만을 노리라는 주문은 아예 몸통을 노리라는 것과 진배없다.
비명 소리는 언제나 처참했다.
“적은 겨우 두 명이다! 힘을 내!”
누군가 발악하듯 고함쳤다.
그들은 금연화보다도 마야가 골칫거리였다. 풀피리 소리를 들으면 멀미가 치민다. 뭍에서만 살던 사람이 돛단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에 나간 것처럼 온몸이 뒤틀리는 멀미다.
강궁을 쏘아낼 정신이 없다. 검이 쳐오는 걸 보면서도 막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뭐 이런 소리가 다 있나!
저놈의 피리 소리 좀 멈추게 할 수 없나!
철사문 문도들은 당화를 쳐다보았다. 그가 나서주기를 고대했다.
“나서지 않을 참인가!”
칠순에 접어든 백발, 백염의 노인은 노한 눈길로 당화를 노려보았다.
“나서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되니 앉아 있을 수밖에요.”
“허!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죄송하오나 조부님의 지우(知友)이신지라 참고 있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뭐야! 어린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마야! 만독불침입니다.”
“뭐, 뭐라고!”
“독문 사람이 만독불침을 몰라보겠습니까? 그에게는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데…… 대부분 만독불침을 이룬 사람은 내공이 신화경(神化境)에 이르기 마련이죠. 마야는 달라요. 내공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내공으로 만독불침을 이룬 것 같기도 하고 몸뚱이로 이룬 것 같기도 하고.”
당화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건성건성 말했다.
“당문 제일독인이라는 제 앞에 저조차 판단할 수 없는 독성(毒聖)이 나타났으니 기분이 어떻겠어요. 묘해요, 아주 묘해.”
“암기는 어떤가?”
“저까지 죽이시렵니까?”
백발, 백염의 노인은 노한 눈으로 당화를 쳐다봤다.
지금 당화는 싸움을 거드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고 있다. 또 승산을 마야 쪽에 두고 있다. 만약 내기판이 벌어진다면 마야 쪽에 걸 게 분명하다.
“한심한 놈!”
노인은 당화를 질책하며 일어섰다.
“멈춰랏!”
넓은 장원을 쩌렁 울리는 일갈에 마야는 풀피리를 멈췄다. 금연화는 살검을 거뒀다.
땅에는 수많은 시신들로 가득했다.
철갑무장을 한 채 죽어 있어서 한 명, 한 명이 커다란 바윗덩이나 마찬가지였다.
쿵! 쿵! 쿵!
백발백염의 무장은 손에 언월도(偃月刀)를 들고 힘차게 걸어왔다.
“아버님!”
“조부님!”
철사문도들 중에서 다섯 명이 쭈욱 빠져나와 노인 앞에 섰다.
“물러서라! 못난 놈들!”
노인은 자식과 손자들을 밀쳐 내고 마야 앞에 섰다.
“내가 단문협에 갔다.”
노인의 음성은 한 치도 굽힘이 없었다.
마야는 고개만 끄덕였다.
“난 무인으로서 당당하다! 도리에 어긋나게 행동한 적도 없고! 남도문과 북검문은 철천지원수(徹天之怨얽)! 포위 공격하고 암습하고 이간질하는 것은 일상사다! 자! 무슨 복수를 하겠다는 것인가!”
“친구를 죽인 복수요.”
“뭐라! 말귀를 못 알아먹는 놈이군.”
“말은 알아들었소. 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그놈을 죽여서는 안 되는 거였소. 왜냐, 놈은 내 벗이니까. 간단한 일이오. 나를 죽이던가, 죽어주면 되는 거요.”
“하하하!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노인이 말을 뱉을 때마다 전각 지붕이 들썩거렸다.
불문(佛門)의 사자후(獅子吼)다.
일갈을 내지를 때마다 거센 기운이 밀려와 전신을 후려쳤다. 하나 마야는 조금도 충격받지 않았다.
노인이 내지르는 사자후는 인위적인 음성이다. 내공으로 억지로 쥐어짜낸 것으로 내력 소모만 극심할 뿐 심한 타격을 가할 수는 없다. 사자후가 제 위력을 발휘하려면 오직 사자후에만 몰입할 경우, 연공십년(練功十年)은 필요하다.
노인의 사자후는 철사문의 무공을 수련하는 중에 짬짬이 수련한 것으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리 없다.
반면에 마야의 기파(氣波)는 선천적이다.
당화가 사용하는 탄기 정도는 어렸을 적에 습득했고, 지금은 외기(外氣)와 동화되어 끊고 잇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모든 과정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마야는 노인의 무공 정도를 파악해 냈다.
강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받아낼 정도는 아니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놈에게는 또 다른 인연이 있소. 오늘 철사문을 멸문시키는 것으로 놈의 복수를 마무리한다고 합디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시오.”
마야가 물러난 자리에 금연화가 들어섰다.
노인의 언월도에는 파괴적인 힘이 담겼다. 그러면서도 정종(正宗) 무공 특유의 장구함이 새어 나왔다. 부드럽고, 강하고, 낭창낭창 휘어지다가 폭포처럼 내리꽂힌다.
금연화는 감히 막지 못하고 피하기에 급급했다.
병기의 무게 차이, 내공의 차이…… 힘이란 힘은 모두 노인이 우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금연화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날렵함뿐이다.
위험하지는 않다.
금연화는 자하쌍구검에 만공심안을 가미했다.
자하쌍구검은 백 가지 형을 가지고 있지만 폭넓은 눈인 만공심안이 가미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포함시킨다.
노인이 전개하는 도법은 처음 견식하는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형검법 중에 몇 가지를 변형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백형검법의 무서운 점이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다. 세상의 모든 초식이 백형검법 안에 녹아 있다. 낯선 초식이라도 두 번만 보면 익숙해진다.
마야의 일견후즉파와 비슷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다른 점은 일견후즉파는 본능적인 것이고, 금연화의 만법귀일은 백형검법을 수련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십여 초가 흘렀을 때, 금연화는 철사문의 절기를 모두 파악해 냈다.
쉬익!
언월도가 날아왔다.
후려치는 도법이지만 몸 가까이에 이르면 약간의 변화가 가미되어 수평으로 꺾인다. 손목의 굴절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초식으로 막아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금연화는 여유있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소혼검을 들어 올렸다.
노인의 턱!
그녀는 소혼검을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
쒜에엑!
재차 언월도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수직으로 내리찍는다. 변화는 없다. 강맹한 힘을 주어서 일도양단(一刀兩斷)을 목표로 한다.
언월도가 번개를 무색케 하며 내리찍혔다.
금연화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오른손의 굉멸검을 쳐올렸다.
굉멸검과 언월도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언월도는 땅을 내리찍었다. 굉멸검은 방향을 틀어 노인의 안면을 찍었다.
이마!
노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이제야 금연화의 뜻을 알아챈 것이다.
철사문의 절기로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그러니 알아서 물러가 달라는.
목을 쳐 죽이는 것보다 더한 치욕이지 않은가.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언월도를 내던졌다.
“졌다.”
금연화는 쌍검을 가슴 앞에 모아 포권했다.
‘됐어. 꼭 죽이는 게 능사가 아니잖아. 됐지? 이제 만족하지? 죽여야 되는 건 아니지?’
혈귀대주는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