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왜 몰랐을까?
그건 혈육처럼 기른 제자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고, 무관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산에 올라오던 장천의 몸에는 분명 혈향이 배어 있었다.
‘어디에 다녀오는 길이냐?’
‘아, 사부님.’
제자의 눈동자는 취기와 또 다른 무언가로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랫마을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요새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술 한 잔 걸쳤지요.’
‘술이라. 그뿐이더냐?’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에는 좀. 하하하! 이런 모습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기녀들이 쓰는 독한 사향(麝香)이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것은 위장을 위해 덧씌운 장막에 불과했다.
적천강은 장막 아래 숨겨진 엷은 혈향을 맡았다. 정마대전 이후 잊고 있던 죽음의 냄새, 살인자의 냄새였다.
‘기루……에 갔었느냐?’
‘역시 사부님을 속일 수는 없군요. 예, 불초 제자가 마음이 심란하여 여색을 탐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제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뚝뚝하고 웃음이 없던 소년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살인을 숨기는 넉살 좋은 살인자로.
‘한데 어쩐 일로 이 야심한 밤에 나와 계십니까? 폐관 수련에는 진전이 있으셨는지요?’
‘……네 얼굴을 본 지 오래된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다.’
무고한 양민 수십 명을 끔찍하게 살해했다고 했다.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제자다. 당장이라도 근맥을 끊고 단전을 폐하는 것이 옳았다. 스승이라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렇군요. 저도 이렇게 사부님을 뵈니 참 좋습니다.’
빙긋 웃는 장천의 모습에 적천강은 말문이 막혔다. 분노도, 배신감도 들지 않았다. 그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 먹먹해졌다.
결국 그가 할 수 있었던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밤이 깊었구나. 이만 쉬어라.’
적천강의 말을 듣고 있던 진태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그걸로 끝입니까?”
“그 아이를 믿고 싶었다.”
“이미 다 알고 계셨잖아요. 조필, 아니 장천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
“그런데도 놈을 놔뒀단 말입니까?”
“그래, 그런데도.”
노쇠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혈육이 있느냐?”
“네.”
“노부는 없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봐도 나는 혼자였고, 녀석도 마찬가지였지.”
적천강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검버섯과 주름으로 가득한 손에는 세월이 켜켜이 묻어 있었다.
“내 사부님은 엄한 분이셨다. 그분의 수련은 혹독하고 괴로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마저 좋았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주고, 함께한다는 사실이 기뻤으니까. 사부님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승과의 시간은 짧았다. 그는 다시 홀로 남겨졌고 외로움은 세월 속에서 천천히 무뎌졌다.
저잣거리에서 만두 하나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던 한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아이가 의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천하가 손가락질하더라도 나만큼은 녀석을 믿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적천강에게 있어 장천은 제자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손자였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혈육 이상의 애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저지른 짓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만 멈추게 만들어야 했지. 어떤 식으로든.”
그전에 제자의 만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창천검왕이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이미 모든 심증과 물증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해서 은밀히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적천강은 제자의 뒤를 쫓았다. 아직 절정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장천의 이목을 피하는 것은 쉬웠다.
한 번, 두 번, 열 번…… 처음 느꼈던 절망은 미행이 거듭될수록 엷어졌다.
장천은 여느 한량처럼 기루에 들러 술을 마시고 여자를 안을 뿐이었다. 불콰하게 취해 움막으로 돌아오면 무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성실하게 수련에 임했다.
모든 것들이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남궁세가와 창천검왕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진태경이 기가 찬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 생각엔 적 대협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적천강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그랬지. 바보같이 애써 외면했던 거지.”
“그래서, 직접 확인하셨습니까?”
“…….”
적천강은 말없이 화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천장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술이 독해서가 아니라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 * *
푹, 푹, 푹.
짙은 어둠이 내리깔린 홍등가의 어느 뒷골목. 억눌린 신음과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
예리한 비수로 누군가의 사지를 찌르고 쑤셔 대던 복면인의 뒷모습은 누구보다 익숙했고, 그 어느 때보다 낯설었다.
‘……천아야.’
나지막한 부름에 비수를 쥔 손이 덜컥 굳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복면인과 적천강의 시선이 부딪쳤다.
오랜만에 사부를 만난 제자의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아, 사부님.’
‘지금, 지금 뭘 하는 게냐?’
‘뭘 하긴요. 보시는 대롭니다.’
장천이 히죽 웃으며 비수를 내리찍었다. 푹, 푹, 푹. 사지를 결박당한 중년인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당장 그만두어라!’
‘왜 그만둬야 합니까?’
‘……지, 지금 뭐라 했느냐?’
‘오랜만에 나와 보니 별의별 놈들이 설치고 다니더군요. 같잖은 삼류 무공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낭인, 살만 피둥피둥하게 오른 장사치들과 팔 수 있는 재산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계집들. 요지경도 이런 요지경이 없습니다.’
장천이 새하얗게 웃었다.
‘이놈도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놈 하나 죽여 봤자 뭐가 문제겠습니까? 살아도 별 의미 없는, 두 발 달린 짐승일 뿐인데.’
적천강은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지난 넉 달간 제자를 지켜보며 품었던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후였다.
‘왜…… 왜 이런 짓을?’
‘제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장천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자 지존.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무림은, 아니 천하는 그런 곳입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죽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무고한 이들을 죽였느냐?’
‘무고하다니요. 사부님께서 그걸 어찌 아신단 말입니까?’
‘하면 네게 죽은 이들은 어떤 큰 죄를 지었단 말이냐.’
차라리 죽을죄를 지은 자들이었기를 바랐다.
세상 물정 모르고 소처럼 살던 순박한 양민들이 아니라, 그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악덕 상인들과 살인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파락호였으면 했다.
하지만…….
‘그야 모르지요.’
‘……!’
‘뭐, 죄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은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마침 제 눈에 띈 이놈도 마찬가지고요.’
적천강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피붙이처럼 사랑하는 제자는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강 저편으로 넘어간 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피에 젖은 살귀(殺鬼)가 되어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천아야.’
‘예, 사부님.’
십수 년 전, 저잣거리에서 만난 비쩍 마른 어린아이의 얼굴과 피에 젖은 청년의 얼굴이 겹쳐졌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넌, 너는 이런 아이가 아니었다. 약자는 강자에게 죽는다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과거의 너를 잊었느냐?’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고요.’
‘아니다. 너는 착하고 성실한…….’
‘사부님.’
장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스승의 말을 잘라 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승의 말을 끊거나 반박한 적 없는 제자다. 그러나 지금 장천의 입매에는 노골적인 비웃음마저 서려 있었다.
‘사부님을 처음 만났던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며칠을 내리 굶고 저잣거리를 헤매던 중 흙투성이가 된 만두를 주웠지요. 저와 비슷한 처지였던 놈들에게 짓밟히면서도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었습니다.’
‘맞다, 살기 위해서였다. 너 또한 한때 약자였다는 사실을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
장천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왕팔, 홍소칠, 소우평.’
‘……?’
‘제게 만두를 뺏으려 했던 열다섯 명 중 셋입니다.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죽고 없더군요.’
제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 사람의 이름.
그 의미는 명백했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숨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놈들은 절 기억하지 못했지만 저는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십여 년 전 그날, 흙 묻은 만두를 씹으면서 깨달았으니까요. 이것이 세상이구나. 약자는 짓밟히고 강자는 짓밟는구나. 그러니 내가 강자가 되어야겠다. 강자의 권리를 누려야겠다.’
스산한 목소리로 그날의 다짐을 말하는 장천의 모습에 적천강은 깨달았다.
‘너, 너는.’
‘예. 저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사부님을 처음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둠 속에서 그의 흰 이빨이 드러났다. 장천은 낄낄 웃고 있었다.
‘짜릿했습니다. 처음에는 살려 달라고 애걸하더니 나중에는 죽여 달라고 울부짖더군요. 마침내 조용해지자 가슴 한구석이 허해지지 뭡니까. 기루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여인을 안아도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타고난 살성(殺星)이 아닐 수 없다.
그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은 오직 살인밖에 없다. 아마 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장천은 살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기가 좋았습니다. 때마침 사부님께서는 수련에 힘쓰시느라 저를 방관하셨고, 덕분에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었으니까요.’
적천강은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머릿속에 각인된 오늘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혈육의 정으로 키우던 제자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몸이 떨렸다.
그러나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었다.
‘물론 저라고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닙니다. 넉 달 전이었나?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니 사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지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고 들켰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만하거라.’
‘저를 철석같이 믿으시는 사부님께서 갑자기 제 뒤를 밟았을 리는 없으니 누가 언질을 해 준 것이 분명한데…… 아, 남궁세가가 분명하군요.’
‘닥치라 했다!’
강대한 기파가 휘몰아쳤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스승의 진노에 장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승님?’
‘놈! 어찌 그 입으로 나를 스승이라 부르느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이냐!’
‘왜 그러십니까? 설마 고작 이 정도 일로 하나뿐인 제자를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고작? 지금 고작이라 했느냐?’
‘스승님은 제게 있어 아버님이나 마찬가지십니다. 천하 만민이 제 허물을 욕하더라도 스승님께서는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제 아버지시니까요.’
아버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단어였건만.
적천강은 이를 악물었다.
‘틀렸다.’
‘틀렸다고요?’
장천이 희미하게 웃었다.
‘한데 왜 저를 당장 쳐 죽이지 않으십니까? 지금도, 지난 넉 달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건!’
‘제 말이 틀립니까?’
적천강은 말문이 막혔다. 장천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애써 진실을 외면했고, 정당화시키려 애썼다.
그렇게 해서라도 제자를 믿고 싶었으니까.
그가 입을 연 것은 한참 후였다.
‘네 근맥을 자를 것이다.’
‘근맥이라. 그리고요?’
‘단전을 폐하겠다. 앞으로 남은 일생 동안 네가 지은 죄를 참회하며 지내게 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면벽 수련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러나 말과는 달리 장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런데 불초 제자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본문의 문규(門規)가 바뀌기라도 했습니까? 이런 경우에는 볼 것도 없이 즉결 처분인 것으로 압니다만.’
‘……마지막 온정이다. 그러니 당장 그자를 내려놓고 물러서거라.’
장천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그의 품 안, 전신이 피에 흠뻑 젖은 중년 사내가 가쁜 숨을 이어 나가는 중이었다.
‘아, 이놈이 있었지요.’
서걱. 촤아아악.
적천강은 떨리는 눈빛으로 솟구치는 피분수를 바라봤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손속. 목젖을 베인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다 이내 숨이 끊겼다.
‘이것이 네 답이냐?’
‘이미 늦었습니다. 살려 봤자 병신으로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 텐데, 차라리 깔끔하게 죽여 주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로구나.’
‘저는 사부님께서 알던 그 아이가 맞습니다. 처음부터 잘못 알고 계셨던 것뿐이지요.’
‘그만 되었다. 네 악행도 오늘까지니.’
‘절 정말 폐인으로 만들어 평생 면벽 수련만 시킬 생각이십니까?’
은은한 두려움이 묻어 나오는 제자의 얼굴.
적천강은 피가 배어 나오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일 합, 단 일 합이면 장천을 이 세상에서 지울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임을 안다.
제자의 근맥을 끊고 무공을 폐하며 가두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후회하느냐?’
‘후회, 말입니까?’
‘그래. 후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녀석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장천의 얼굴 위에서 두려움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안심했습니다.’
‘뭐라?’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지난 넉 달 동안 저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사부님의 눈앞에서 이런 짓을 벌인 이유가 뭐겠습니까?’
넋 나간 적천강의 눈동자에 장천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죽이실 수 없습니다. 수십이 아니라 수백을 죽여도 마찬가집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걸 확인하고 싶었지요.’
‘떠나기 전이라니. 그게 무슨.’
‘자식의 허물을 탓하는 아비는 있어도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이는 아비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지요.’
‘……!’
‘감사합니다, 사부님. 저를 제자가 아니라 자식으로 키워 주셔서. 이런 자식을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해 주셔서. 덕분에 하나뿐인 생로(生路)가 열렸습니다.’
숨이 멎은 것처럼 굳어 버린 적천강에게 장천은 진심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입술에는 작고 흰 자기병 하나가 물려 있었다.
‘화골분(化骨粉)입니다.’
화골분, 살과 뼈를 녹여 버리는 맹독이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지만 입 안에서 깨진다면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다.
적천강은 노호성을 터트렸다.
‘장천! 네 이놈!’
‘방금 드린 절은…… 제 마지막 인사입니다. 저는 이 길로 떠나겠습니다. 멀리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보내줄 성싶으냐!’
‘그럼 죽이십시오.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그것이 제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 * *
적천강은 눈을 깜빡였다. 아까부터 천장이 뿌옇다 싶더니, 볼을 타고 뭔가가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객잔이 낡았군. 비가 새.”
원단을 하루 앞둔 겨울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