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812
#811화
“동쪽. 동쪽이란 말이지.”
매직 존슨이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것은, 스켈레톤 킹에게 있어서 불행이었다.
그는 순간 얼굴 위로 드러난 경악을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러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째서?’
몬스터인 스켈레톤 킹에게 마계어(魔界語)는 모국어나 다름없다.
대형의 후미를 맡아 경계하고 있던 매직 존슨과 달리, 줄곧 전방에서 진태경의 곁을 지켰던 그는 앞서 오간 대화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놈은 분명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서쪽으로 갔다고 했다.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어.’
머릿속이 혼잡하게 뒤섞였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진태경의 모습에 순간 착각이라도 했나 싶었지만, 틀림없었다.
몇 번이나 되새겨 보아도 조금 전의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간악한 인간이……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면 진태경의 거짓말이, 지금의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스켈레톤 킹은 짧은 고민 끝에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냈다.
충분히 짐작하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있던 그 답을.
‘설마.’
마침내 믿기 힘든 현실을 마주한 스켈레톤 킹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 그때, 어둠에 잠긴 동쪽 어딘가를 향해 있던 매직 존슨의 시선이 그를 향해 움직였다.
“혹시 동쪽으로 네가 부리는 하수인들을…… 헤이. 지금 내 말 듣고 있나?”
“응? 아. 물론이다.”
“어딜 보고 있던 거야?”
자신도 모르게 진태경을 바라봤던 스켈레톤 킹이었지만, 곧이곧대로 대답할 수는 없다.
매직 존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철렁 내려앉았던 가슴을 애써 수습한 그는 죽은 앤트 라이온의 사체를 향해 턱짓했다.
“저놈. 언데드로 되살리면 기동력이 괜찮을 것 같아서.”
“흠, 나쁘지 않네. 그런데 모래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특성이 있어서 우리 같은 인간들은 못 탈 거야. 지상에서 움직이면 몸집 때문에 너무 눈에 띌 테고.”
“그렇다면 포기해야지. 다시 생각해 보니 저런 놈을 부리려면 마력 소모가 심할 것 같군.”
제대로 대답한 걸까. 혹여 자신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챈 것은 아닐까.
천천히 턱을 쓰다듬는 매직 존슨의 모습에, 스켈레톤 킹은 마음속 불안함을 억누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거지?”
“아, 그거. 네가 부리는 하수인들로 동쪽을 수색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려고 했지.”
“독수리와 그리핀들?”
“맞아. 이미 한 번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았나? 몬스터들이 동쪽으로 도망쳤다면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매직 존슨의 말은 사실이었다. 스켈레톤 킹은 이미 수하들을 동쪽으로 보냈다.
모두가 재정비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십여 마리의 독수리와 그리핀은 하늘을 가로질러 정신없이 도망치던 몬스터 군단을 쫓았다.
물론 금세 바닥을 드러낸 마력과 함께 언데드들의 추적도 아무런 소득 없이 멈췄지만, 최소한 동쪽으로 간 몬스터가 몇 없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그건…….”
스켈레톤 킹은 말꼬리를 흐렸다. 매직 존슨의 옆에 선 진태경이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모르겠다. 지금 하려는 선택이 맞는 것인지.
하지만 스켈레톤 킹은 언젠가 진태경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모두의 불안감을 잠재웠던 그 한 마디를.
‘스스로를 믿지 못하겠다면, 날 믿어.’
떠올린다. 동시에 되새긴다.
그렇게 찰나의 망설임이 끝났다. 스켈레톤 킹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금세 놓치긴 했지만, 대부분의 몬스터 군단이 동쪽으로 도망쳤을 확률이 높다.”
스켈레톤 킹은 진태경의, 아니 친구의 판단을 믿었다.
어쩌면 그 자신보다도 더.
* * *
앤트 라이온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던 갈등은 저 멀리 치워 버렸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이 의문의 실체를, 간신히 움켜쥔 이 실마리를 확인하기 위해 힘껏 잡아당기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곤란하지.’
치밀해야 한다. 틈을 줘서는 안 된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수뇌부라 할 수 있는 몇몇 인물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지금부터 병력을 나누어 이동합니다.”
불쑥 던진 첫 마디에 작은 동요가 사람들 사이로 번졌다. 가장 먼저 최 팀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모두 함께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동쪽으로 향했다.
그것이 스켈레톤 킹과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알려진 사실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최 팀장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단, 그들이 아는 정보가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최 팀장님.”
“예.”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
“……하지만.”
“저도 압니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평소와는 다른 건조한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나는 굳은 얼굴을 한 최 팀장을 응시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앤트 라이온에게서 얻은 정보를 믿고 움직일 수는 없어요. 너무 위험합니다.”
“의도된 함정……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네.”
새삼 느꼈다. 나는 거짓말에 제법 소질이 있다.
더군다나 무림과 현대를 살아오며 깨달은 세상의 진리도 알고 있다.
‘권위.’
권위를 가진 자의 거짓말은 막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지금처럼.
“전투에서 패배하여 도망쳤다고는 하지만, 놈들의 머릿수는 아직도 우리의 다섯 배가 넘습니다.”
5천.
일만을 아득히 뛰어넘던 대군세가 단 한 번의 전투로 세 토막 났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것은 아군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교환비로 승리했다고는 해도, 앞서 희생된 이백여 명은 전체 병력의 2할에 달했으니까.
몬스터 군단이 몇 번이나 잘라 먹어야 할 만큼 커다란 파이라면, 우리는 한입에 삼켜질 수도 있는 머핀이었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분산해서 추격해야 합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샤오 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진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정보로 움직였다간 함정에 빠지거나, 방향이 어긋나 몬스터들을 놓칠 수 있으니까요.”
“맞아. 차라리 병력을 나눠서 움직인다면 위험 확률을 줄일 수 있겠지.”
최 팀장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분산하려는 의도는 알겠습니다만…… 반대로 각개 격파당할 위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휘관이라면 충분히 우려해야 할 만한 부분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애초에 몬스터들이 도망친 방향은, 동쪽이 아닌 서쪽이니까.’
혀끝에서 맴도는 말을 삼킨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각 부대의 간격을 좁히고 이동할 겁니다. 그렇다면 높은 마력 분포도로 인해 통신이 불안정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안정적인 통신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음. 나는 진의 제안에 동의해. 지금 얼추 계산해 보니 부대 간 간격은 100km 남짓이면 충분할 거야.”
불쑥 입을 연 매직 존슨을 말없이 바라보던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맞아요. 추격 범위도 넓어지겠죠.”
룹 알 할리 사막.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하다고 알려진 사막 지대답게, 그 넓이는 실로 광활하다.
의문을 제기하던 최 팀장조차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았는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각 추격대에 백 명씩 배치한다면…… 동쪽뿐만 아니라 동남, 동북까지 커버할 수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죠.”
하지만 서두르려던 최 팀장은, 미처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돌아서야 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나를 빠트리셨네요.”
“진태경 씨, 그게 무슨…….”
“서쪽. 저는 서쪽으로도 추격대를 보낼 생각입니다.”
“네?”
“그곳은 정반대잖습니까.”
“맞아요.”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서쪽으로 몇 시간만 더 이동한다면, 석유 지대가 나오죠. 선지자가 제게 남긴 전언(傳言)이 가리키는 바로 그 장소.”
“……!”
“직접 들었으니 네 입으로 말해. 맞지?”
내가 마지막에 덧붙인 물음이 향한 곳은 야마모토 겐지였다.
병력을 분산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줄곧 울상을 짓고 있던 녀석은, 자신을 향해 쏠린 사람들의 시선에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검은 보석이 묻혀 있는 땅이라고 했으니까. 우선은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럼 됐어. 우리는 서쪽으로 간다.”
“잠깐. 우리요?”
“그래. 우리. 너, 나. 스켈레톤 킹. 그리고 매직 존슨까지.”
내 말을 들은 야마모토 겐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진 사마!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저는 빼 주십시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안 돼. 안 빼 줘. 빼 줄 생각 없어. 돌아가.”
단호하게 대답한 나는, 이 뜻하지 않은 상황에 눈만 깜빡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진정한 목적은 몬스터 군단이 아니라 선지자입니다. 적어도 놈이 남긴 말을 따라 그곳까지는 가 봐야 해요. 금방 돌아갈 테니, 그때까지는 충돌을 피하면서 남은 몬스터들을 추격하십시오.”
“안 됩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최 팀장이 버럭 외쳤다.
“상식적으로 애초에 서쪽에 선지자가 있었다면, 몬스터들이 굳이 정반대인 동쪽으로 도망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하지만 앤트 라이온이 그랬듯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선지자의 존재를 모른다면, 동쪽으로 도망칠 이유는 충분하죠.”
“진태경 씨. 선지자가 정말 그곳에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선지자가 없다고 해도 최 팀장님과 다른 사람들이 몬스터들을 추격하고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고, 놈이 서쪽에 있다면…… 이 전력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S급 헌터만 무려 셋.
아니, 스켈레톤 킹까지 포함한다면 넷이다. 더군다나 녀석이 지닌 능력이 있다면, 언데드 병사들과 함께 전투를 치를 수도 있다.
“그건…….”
최 팀장이 말꼬리를 흐린 그때.
나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는 그에게 결정타를 꽂았다.
“이건 명령입니다.”
“……!”
“서두르세요. 놈들이 더 멀리 도망치기 전에.”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돌아섰다.
그리고 아까부터 줄곧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지키던 누군가를 향해, 흘리듯 전음(傳音)을 쏘아보냈다.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어떤 대답도, 반응도 하지 말고 들어.
짧은 순간. 거세게 흔들리던 스켈레톤 킹의 눈빛이 이내 깊게 가라앉았다.
* * *
일방적인 논의가 끝난 직후, 나는 짧은 운기조식을 끝마친 뒤 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스켈레톤 킹과 매직 존슨, 그리고 야마모토 겐지까지.
비록 숫자는 넷뿐이었지만 전력은 강력했고, 이동하는 속도는 병력과 함께 움직이던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쾌속했다.
쐐애애액!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사이사이로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끈적한 핏물이 보인다.
굳이 자세히 확인하지 않아도 상당한 출혈과 범위.
고작 몇십 마리가 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앤트 라이온의 했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지만.’
내심 중얼거린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언덕이 굽이진 사막 지대를 넘고, 탁 트인 황야를 지나쳤다.
그렇게 삼십여 분쯤을 달렸을까?
두 개의 절벽이 서로를 향해 마주 선 협곡 앞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발걸음을 늦췄다.
“허억. 헉. 조,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됩니까?”
숨을 헐떡이는 야마모토 겐지의 모습에, 매직 존슨이 땀에 젖은 이마를 닦으며 내게 말했다.
“진.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는 건 어때? 몬스터도 딱히 안 보이는데.”
대답 대신 완전히 발걸음을 멈춘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이어진 절벽. 좁은 틈새. 좋은 지형이다.
주어진 공간도 좁고, 도주로도 좁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 사막지대를 비추는 흐릿한 달빛 위로 날갯짓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독수리.’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인 매직 존슨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날짐승이 있군. 마력 분포도 때문에 서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텐데.”
“불가능하진 않죠. 평범한 독수리가 아니라면.”
“뭐?”
매직 존슨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눈을 깜빡이던 그때, 나는 협곡의 입구를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