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46
46화 : [제15장] 청천벽력 3
“사초, 후회하지 않겠어?”
“무슨 후회 말이야?”
“소소 말이야. 만능공자가 오늘 온다고 하고 어쩌면 혼인까지 할 수도 있다고 총관님이 말씀하셨잖아? 네 아버님 일은 나도 무척 애석하지만, 소소를 저대로 두고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려. 사초 네가 소소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야.”
“어쩔 수 없지. 모든 것을 인연에 맡겨야지. 소소와 인연이 안 될 거라면 내가 이곳에 남아있어도 되지 않을 거야. 아직 소소와 나 둘 다 어리기도 하고. 그리고 혼인 이야기는 그저 총관님의 바람일 뿐이야. 지금 본파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림없는 일이지.”
“하기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다만 만능공자가 오게 되면 소소와 친해질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소소도 우리 같은 연습제자는 이전보다 관심이 더 줄어들겠지. 나야 상관이 없지만, 사초 너에게는 타격이 어느 정도 있을 거야. 하기야 소소가 사초 너에게 관심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나도 그 부분은 잘 몰라. 아무튼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래. 미안하다. 안 그래도 네 아버님 일로 마음이 심란할 텐데······ 아! 맞다. 아까 잠시 화영이에게 내가 악양에 간다고 이야기하러 갔다가 설화를 만났는데 너보고 전하라는 말이 있었어.”
“그게 뭔데?”
“네 아버님 말이야. 아직 시신을 못 찾았다고 하니까 그럼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했어. 사초 너도 시신을 찾을 때까지 돌아가셨다고 단정 짓지 마.”
“······.”
백리사초가 눈을 빛내며 뭔가 생각에 잠겼다.
‘설이는 성녀의 후예로 남다른 예지력이 있다.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닐 것이다. 악양에 도착하면 당시 전투 상황을 자세히 조사해봐야겠구나.’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갖게 되었기 때문일까.
어두웠던 백리사초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
‘그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리가 없다. 분명 어디엔가 살아계실 거야. 어쩌면 수적 놈들에게 붙잡혀 가셨을 수도 있고.’
백리사초가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실 그의 희망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수적에게 당해 죽었다고 했던 사람이 수적들의 본거지인 수채에 갇혀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경우도 제법 흔했다.
하지만 노역의 강도가 너무 심해 그들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놈들의 본거지를 공격해서 초토화한다면 그곳에 붙잡혀 있는 분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천운이 따라 아버님께서 그곳에 계신다면 좋으련만······.’
백리사초가 악양이 있는 남쪽을 쳐다봤다.
초웅 역시 남쪽을 바라봤다.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화산객잔이었다.
무곡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부터 산 위로 올라가는 수많은 무림인과 달리 두 사람은 육포와 건량을 사기 위해 이곳에 들른 것이었다.
얼마 후 두 사람과 친분이 있는 점소이 왕팔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육포와 건량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최대한 많이 넣었어. 돈을 받긴 했지만 거의 이문이 남지 않는 장사라고나 할까. 사초는 힘을 내고.”
“고맙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수고해라.”
“그래. 잘 갔다 와.”
백리사초와 초웅이 왕팔의 배웅을 받으며 화산객잔을 떠났다.
두 필의 말을 타고 갔다.
초웅은 원래 마구간에서 일한 적이 있어 말을 잘 탔다.
문제는 백리사초였는데 처음 타는 것치고는 능숙해 보였다.
이는 화산선생의 말대로 백리사초의 무공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말을 타려면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무공의 요체이기도 했다.
“이럇!”
“이럇!”
백리사초와 초웅이 탄 말들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의 피로도를 생각해 빠르게 달렸다가 중간에 속도를 잠시 늦추기도 했다.
두 사람 간의 대화는 그때 집중되었다.
“무곡대회가 예정대로 개최되는 것 같아. 정말 많은 사람이 무저곡 쪽으로 가고 있군. 최소 삼천 명은 넘는 것 같다.”
초웅의 말에 백리사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우리가 못 본 사람들도 있으니 모두 합치면 오천 명이 넘을 수도 있겠군. 무사하게 대회를 마쳐야 할 텐데. 솔직히 뭔가 좀 불안해.”
“뭐가 말이냐?”
“지금 보면 흑도 무사들이 절반을 넘는 것 같은데, 저기 끼어 있을 흑천방과 금전방, 마교 놈들이 작당해서 무슨 음모를 꾸밀 확률이 높아.”
“너무 걱정하지마. 총관님 말씀대로 만능공자를 비롯해 무림맹 고수들이 온다고 하니까 별 탈은 없을 거야.”
“그러길 바라야지.”
“그래, 우리는 최대한 빨리 악양에 도착하는 데만 신경 쓰자. 어떤 경로로 갈지 생각해뒀어?”
“산에서 내려오면서 잠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호북성 권역으로 들어가면 무당산을 거쳐 무한에 도착한 후 육로 대신 뱃길로 악양에 가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아.”
“뱃삯이 만만치 않을 텐데? 총관님께서 전낭을 두 개씩이나 주셨지만, 생각보다 액수가 적었어. 이 돈으로 배를 타고 갈 수 있을까?”
“말을 팔아야지. 총관님도 이해하실 거야.”
“그런 수가 있었군. 하기야 사초 너의 공이 매우 컸는데 말을 팔아서 경비에 사용해도 뭐라 하지 않으실 거야.”
“말을 팔려는 것은 우리가 거의 쉬지 않고 달릴 계획이라 말들이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야.”
“그것도 그렇군. 각 도시에 있는 무림맹 지부에 가면 말을 바꿔줄 수도 있다던데, 우리는 안 되겠지?”
“물론이지. 그건 정식무사들에게만 적용되는 혜택이야. 그것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장로급이나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어림도 없지.”
“그래도 사초 너는 명성이 있잖아? 백골문 놈들 백여 명을 일장에 제거한 절세고수가 바로 너인데 신분과 이름을 밝히면 도움을 주지 않을까?”
“내게 무슨 명성이 있다고 그래? 아직 화산 일대에만 알려졌고, 그마저 나를 깎아내리는 말도 섞여 있어 소문을 들어도 반신반의할 거야. 우리 화산파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일개 연습제자까지 영웅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도 그렇겠다. 하기야 그러한 물타기의 근원지가 바로 우리 내부이니까 할 말도 없군. 정식무사들이 왜 그렇게 너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려서겠지. 일단 속도를 좀 내자. 이곳 섬서성을 벗어나 호북성에 들어갈 때까지 쉼 없이 달려가자.”
“그래.”
두두두두.
백리사초와 초웅 두 사람이 탄 말들이 다시 빠르게 달려갔다.
자욱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두 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 * *
얼마나 달렸을까.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백리사초와 초웅은 어느 숲속에서 말을 세웠다.
한참을 달렸지만, 아직 호북성 접경 지역은 고사하고 화산 남쪽에 있는 도시인 상주(商州)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이는 두 사람이 지리에 어둡기 때문으로, 관도만 따라가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길을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야산 같은데 막혀 둘러가기도 하는 바람에 겨우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참고로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상주 인근에 있는 이름 모를 야산이었다.
말들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초웅 역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리사초는 워낙 내공이 깊어 여전히 평온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초웅이 배가 고프다며 왕팔이 싸준 육포와 건량을 모두 먹어치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식수도 동난 상태였다.
“미안하다. 사초. 애초에 많이 준비했어야 했는데, 왕팔이 많이 넣었다는 말에 확인을 미처 못했다.”
“사흘 치 식량을 단 하루 만에 먹어 치우다니 할 말이 없다. 말도 지쳐 쉬긴 해야 하는데, 식수도 없으니 난감하군. 물까지 다 마신 것이냐?”
“목이 말라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더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네.”
“일단 조금 쉬었다가 근처에 민가가 있는지 알아보고 식수나 채우러 가자.”
“마을 우물 같은 데서 물을 퍼오게?”
“그래. 식수를 물통에 채우고 건량 같은 것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지. 그리고 나 때문에 너무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러다가 말이 쓰러지거나 하면 더 늦어지니까. 총관님도 말씀하셨듯이 닷새 안에만 도착하면 충분할 것 같아.”
“그래. 일단 화전민이라도 있는지 찾아보자. 아까 저쪽에 연기 같은 게 보이던데?”
초웅이 동쪽을 가리켰다.
백리사초가 그쪽을 보니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밥 짓는 연기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타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메케한 냄새까지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불에 탄 냄새 같군. 잠깐만.”
백리사초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줬다.
초웅이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백리사초가 천리지청술을 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결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부녀자들의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막 고함을 지르는 것보다 신음이 연이어 들린다고나 할까.
“부녀자들이 어디론가 잡혀가는 것 같다. 저쪽으로 가보자.”
“그래.”
얼마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어느 산길이었다.
야산 동쪽에 있는 그곳에는 험상궂게 생긴 대한 스무 명 정도가 병장기를 찬 채 부녀자 십여 명을 끌고 가고 있었다.
부녀자들은 밧줄에 묶인 채 이곳까지 끌려오느라 지쳤는지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나이대는 십여 세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어린아이부터 사십 대로 보이는 여자까지 다양했다.
아무리 해가 지는 시각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잡아간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웬 놈들이냐?”
대한 중 한 명이 백리사초와 초웅을 보고 소리쳤다.
“우리는 화산파 소속 연습제자들이다. 대낮에 부녀자를 납치해가다니 산적들이냐?”
“후후후! 이제 대낮은 아니지. 이년들은 우리가 마을을 턴 후 잡아가고 있는 전리품이다. 우리를 본 이상 네놈들은 죽어야 한다. 이쪽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데 재수가 없는 놈들이군.”
“마적들이군. 종남산 일대에서 출몰하던 종남마적이 아니냐?”
“후후후! 용케 우리를 알아봤군. 그렇다. 우리는 종남마적이다. 종남산 일대가 우리 본거지였지. 하지만 종남파 그놈들 때문에 이렇게 섬서성 일대를 돌아다니며 마을을 털고 있다. 네놈도 우리 명성을 들어 알겠지만, 우리는 일반 산적들이 아니고 무공을 익힌 마적들이다. 지금 본채로 복귀 중이니 이만 죽여주마.”
“네놈들 말고 또 패거리가 있느냐?”
“그렇다. 조그만 놈이 말이 많군. 검을 찬 것을 보니 연습제자란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우리 종남마적을 단 두 명이서 상대하려 하다니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는 것은 바로 나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다고 하나 산이나 강이나 도적놈들이 이토록 들끓어댄단 말이냐?”
백리사초가 말을 탄 채 무명검을 천천히 뽑았다.
그의 눈에는 앞에 있는 마적들이 마치 동정수로채 수적들로 보이는 것 같았다.
마적단의 조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저 애송이 놈들을 어서 죽여라. 말은 다치게 하지 말고. 안 그래도 말이 필요했는데 잘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