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이제야 좀 괜찮네.”
천휘는 땅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운 매화검수들을 내려다보며, 손에 든 검집을 어깨에 살짝 올렸다.
매화검수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얼굴은 여기저기 부어올라 있었고, 도복은 먼지로 더럽혀져 있었다. 지금 도복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는 몸 또한 엉망이란 걸 알 정도로.
“그래. 이제 좀 무인답네. 무인이라면 그런 눈이어야지.”
천휘는 그들의 몸 상태보다 눈빛이 변한 것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매타작을 반복한 덕분일까.
열흘하고도 이틀이 지난 지금 그들의 눈에는 독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맞는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는지, 피하는 것에 능숙해졌고 어떻게든 한 대라도 맞추면 비무를 끝내주었기에 신중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로 인한 효과는 굉장했다.
긴장해서 집중하지 못했었던 그들의 시야는 어느새 상대의 검과 무공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휘두르는 검은 전보다 더욱 날카롭고 효율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만.”
“제발.”
“살려 주…….”
매화검수들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것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무얼 하나.
흐릿하게 보였던 천휘의 검식은 이제야 겨우 검집의 잔상을 느낄 뿐이었다.
그에 반해서 자신이 검을 휘두르면 허공을 베어 내는 느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아득한 무위의 차이.
비무를 하면 할수록 그들은 천휘와의 격차를 실감할 뿐이었다.
그리고.
퍽! 퍽!
“그, 그만…….”
결국 마지막에 돌아오는 것은 구타를 빙자한 매타작과 고통뿐이었다.
매화검수들이 앓아누울 무렵.
“그러면 이제 눈은 뜨였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까?”
귀에 스며들어오는 천휘의 목소리에 수척했었던 매화검수들의 얼굴이 드디어 밝아졌다.
“드디어…….”
“……끝났네요.”
“저, 정말입니까!”
“그러면 이제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되는……!”
“아아! 무량수불! 원시천존이시여!”
가뭄 속 마른 단비를 만난 것처럼, 환호하던 그들은 눈물을 훔쳤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이 구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동안 해 왔던 것보다 더욱 지독한 고생길이 열렸다는 것을.
“그러면 일단 일어나.”
천휘는 그들을 불러 일으켰다.
“끄응―”
맞은 데가 아직도 아픈지 움직이는 순간,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던 매화검수들이 비틀대며 일어났다.
모두 일어나자, 천휘가 입을 뗐다.
“가장 중요한 눈은 뜨였고…….”
뜸을 들이는 천휘의 말에 매화검수들이 집중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서, 설마……!”
“……아, 아니죠?”
적검과 설란은 ‘다음 단계’란 말에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안색이 새하얘지더니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저희는 이미 하지 않았습니까?”
“사숙님, 저희는 이미 했는데.”
“배움은 끝이 없는 법이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천휘는 그들의 애원을 매몰차게 흘리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다음 단계는 자세야.”
“사숙님, 제발 그것만은…….”
“차라리 비무를 하면 안 될까요?”
천휘의 입에서 ‘자세’란 말이 나오자마자, 둘이 경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천휘는 여전히 둘을 싹 무시하며 당황하고 있는 나머지 세 명의 매화검수들을 향해서 물었다.
“거기 셋. 삼재검법은 알지?”
“아…….”
일순간 적검과 설란은 혼이 빠져 버린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나머지 매화검수들이 넋을 놓은 표정으로 바라볼 때, 천휘는 한층 낮아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몰라?”
재촉에 그들은 다급히 대답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압니다!”
“당연히 압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매일 삼재검법을 만 번씩 펼쳐.”
순간 매화검수들이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후비적 파다가, 뒤늦게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소리쳤다.
“마, 만 번이요?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하루에 만 번을……!”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기는, 무슨. 이미 이 둘은 이 년 전에 해냈는데.”
적검과 설란이 부르르 떨었다.
“제발 그만…….”
“파, 팔이 안 올라가요.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게 해 주시면…….”
둘은 그 당시를 떠올리는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멍하니 중얼댔다.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 할래?
천휘의 입꼬리가 비틀린 순간.
“저는 검을 휘두르겠습니다.”
“저, 저도요!”
적검과 설란이 검을 뽑았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천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매화검수들을 향해 물었다.
“저거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하려면 이쪽으로 와.”
오라는 손짓에 매화검수들이 쭈뼛쭈뼛 다가갈 때, 적검과 설란은 그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 매화검수들은 지금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급하게 입을 뗐다.
“저, 저도 검을 휘두르겠습니다.”
“사숙님, 저도 검을…….”
“저 또한…….”
그러나 그들의 말은 무의미했다.
이미 천휘는 그들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늦었어.”
강압적인 천휘의 말에 셋은 이도 저도 못하다가, 결국 털썩 앉았다.
“지금부터 내가 펼칠 것은 변체기공(變體氣功)이라는 유가기공이야.”
말과 함께 그가 손을 움직였다.
파바박!
한순간에 잔상이 허공에 수놓아지고, 이윽고 셋의 혈이 딱딱 짚였다.
“이렇게 혈을 짚어 굳어 있는 전신의 근육을 풀고, 유연하게 하는 것에 효과가 탁월한 유가기공(儒家氣功)으로, 무인의 몸으로 만드는 데 적격이지.”
끔찍할 거란 생각과는 다른 설명에 셋의 얼굴에 안도감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혈을 짚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변화도 없자 적운이 천휘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무공이 있었습니까?”
“왜? 없을 것 같아?”
“그러면 왜 아무도 그 무공을 익히지 않았습니까?”
“이게 문제가 있거든.”
천휘가 말을 끊었다.
‘문제’란 말에 적운을 비롯한 매화검수들이 눈썹을 찌푸렸다.
“어떤 문제입니까?”
“좀 아파.”
“아프다고요?”
“네? 그게 전부인가요?”
“얼마나 아프기에…….”
“아마 분근착골(分筋錯骨) 정도?”
“부, 분근착골?!”
셋이 동시에 기겁했다.
분근착골이 무엇인가.
고문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쓰일 정도로 사악하고, 잔인한 수법이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고통이라니.
“저, 저는 검을 휘두르겠습니다!”
“저도 검을!”
“저 또한 검을……”
셋이 벌떡 일어나려던 그때.
“아까 말했잖아. 이미 늦었어.”
뚜두둑―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셋은 불안한 표정으로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몸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하늘이 뚫릴 정도의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팔, 다리, 아니. 전신의 근육과 뼈가 마치 속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기괴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제대로 변체기공이 펼쳐지는 그들을 한 명씩 훑던 천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됐어.”
변체기공은 천마서고에서 발견했었던 포달랍궁의 유가기공으로써 내력보다는 전신의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독특한 무공이었다.
‘육체를 단련할 때 좋은 외공이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삼 년 전 적검과 설란에게 시험해봤을 때 아주 성공적인 기공이었다.
천휘는 바로 셋을 보며 웃었다.
“어때? 내 말 맞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그 분근착골 정도지?”
환한 미소와 상반되는 끔찍한 말에 셋의 눈이 해까닥 돌아갔다.
끄르륵―
뒤이어 고통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세 명을 응시하며, 눈을 찌푸렸다.
‘벌써 뻗어?’
고통에 정신을 잃었는지, 비명 소리마저 없어진 셋을 보다가 다시금 손가락을 뻗어서 목의 혈을 짚었다.
번쩍!
순간 셋의 눈이 떠졌다.
억지로 정신이 깨인 그들은 고통에 다시 파묻혀 뒹굴었다.
“뭘 정신을 잃어? 이제 변체기공에 대해 설명할 테니까 귀 열어 둬.”
일방적인 말을 내뱉은 뒤,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들의 전신 근육과 뼈를 유연하게 해서 검을 휘두를 때…….”
계속 이어지는 설명.
그러나 설명을 듣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고통이었을까.
천휘가 해 주는 설명은 그들의 머릿속에 전혀 박히지 않았다.
그렇게 일다경이 흘러가고.
풀썩―
이내 변체기공이 끝난 셋이 꿈틀거리다가 땅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에 맞춰 천휘가 설명을 끝냈다.
“……그리되면 검을 휘두르기 편해지지. 응? 뭐해? 정신 차려. 너희들이 수련하기 싫다 해서 이런 편법까지 해 줬는데, 쓰러져서야 되겠어?”
천휘가 이죽거렸지만, 이미 기절한 셋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천휘도 그걸 노렸다.
“어쩔 수 없네. 그러면 다음에 내가 한 설명을 못 외웠으면 두 배의 고통을 줄 테니, 잘 외워 둬.”
기절한 그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내뱉은 뒤, 몸을 돌렸다.
그러자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춘 채, 안타까운 얼굴로 셋을 쳐다보는 적검과 설란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호, 이것들 봐라?’
곧바로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여유가 있나 보다?”
“아, 아닙니다.”
순간 둘이 화들짝 놀라더니, 검을 휘두르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그래, 그래야지.”
부웅― 부웅―
지금까지와는 다른, 묵직한 소리를 듣고 있던 천휘는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있어?’
사흘 전 죽였던 자를 끝으로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감시만 하는 자들을 싸늘하게 노려봤다.
“오늘 싹 다 잡아 족쳐야겠어.”
* * *
한 무리의 그림자가 합양현으로 들어왔다.
휙― 휙―
무리의 선두에 있는 남자, 백귀성에 상황을 보고하고 돌아온 은수참살은 지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결국 내가 다 떠맡게 됐나.’
백귀성주와의 만남을 회상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하얀 모습의 그는 자신의 보고를 들은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세를 내뿜으며 싸늘하게 명령을 내뱉었었다.
‘패왕문의 역할을 대신해서 비풍상단을 천하에서 지워라.’
본래 그와 살혼대가 맡은 임무는 비풍상단의 복수를 위해 찾아온 매화검수들과 화산파의 중추들을 암습해서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계획이 엉클어졌다.
무조건 성공하리라 생각했던 패왕문의 기습은 실패한 것으로도 모자라 냉면도귀의 죽음으로 끝이 나 버렸고, 패왕문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흉수에 의해 멸문했다.
시작부터 꼬여버리니, 뒤이어진 임무를 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가 처음부터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임무를 실행하기 위해서 거의 이십 년 만에 살혼대를 이끌고 백귀성 밖으로 나왔다.
‘십삼 년 전의 은원이 깊군.’
은수참살이 실소를 머금었다.
패왕문을 키운 것과 섬서 내의 고수들을 긁어모은 이유는 단 하나.
화산파를 멸문시키기 위함이었다.
멸살대주와 멸살대의 원한을 끝내고, 명성이 실추되어 위세가 추락하던 백귀성이 비상할 절호의 기회.
그것이 바로 이번 계획.
화산멸계(華山滅計)였다.
‘그러면 일단은 감시하라고 남겨 둔 수하들과 만난 뒤, 오늘 밤에 비풍상단을 흔적도 없이 지워야만…….’
때마침 수하들을 발견한 그가 경신법을 거두자, 그 뒤를 따르고 있던 오십 명의 살혼대원들도 멈춰 섰다.
“대주님.”
은수참살은 임무를 맡겼을 당시의 인원에서 절반가량밖에 없는 살혼대원들을 바라보며, 눈을 치켜떴다.
“삼혼. 남은 인원은 어디 있지?”
은수참살의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찬 것을 넘어 싸늘한 시선을 마주한 삼혼은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여,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연락 두절?”
삼혼이 고개를 옅게 주억였다.
“비풍상단에 있는 매화검수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한 명씩 보냈습니다만, 모두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모두 풋내기라지 않았나?”
“매화검수들은 그렇습니다. 그들의 실력은 이제 갓 일류를 넘어선 실력으로 절정에 달하지 않았습니다.”
삼혼의 말에 은수참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추론하기 시작했다.
“장로급의 고수가 있나 보군.”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역시 있었나.”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던 양, 말하던 은수참살은 미간을 찡그렸다.
임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희생이 생겨 버렸다.
은수참살은 품속에서 복면을 꺼내서 뒤집어쓰며, 입을 달싹였다.
“성주님이 새로운 임무를 내렸다.”
삼혼을 비롯한 살혼대원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오늘 밤 비풍상단은 천하에서 지워질 것이다.”
“존명!”
살혼대원들의 눈이 반들거렸다.
방금 전 삼혼의 고수가 있단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수참살은 물론이고 살혼대원 전부, 무조건 성공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는 고작 화산파의 매화검수 다섯 명과 장로로 추정되는 자 한 명.
그에 반해 살혼대는 문파를 하룻밤에 말살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실패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오랜만에 전원이 움직이는군.’
은수참살이 스산하게 웃었다.
살혼대는 백귀성에 존재하는 세 개의 무력대대 중 가장 은밀한 집단으로 숨겨 둔 병기와 같은 대대였다.
그래서 따로따로 임무를 내리는 경우는 존재했지만, 이렇게 전원이 임무를 이행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십 년 전에 귀혈방(鬼血幫)을 말살시킨 이후 처음인가.’
한때 유림현을 지배하던 귀혈방을 무너트렸던 밤을 떠올렸다.
유혈이 낭자하고,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던 밤을.
‘오랜만에 피 좀 보겠어.’
흥분에 찬 그가 비틀린 미소를 머금으며, 혀로 입술을 훑는 그 순간.
스윽―
앞에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여기서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