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5
35화
달이 창연하게 떠오른 자시.
천하를 밝히던 태양이 모습을 감추자, 대신 떠오른 달의 푸른 월광이 천하를 은은하게 물들여 갔다.
그렇게 월광에 취한 것처럼 물들어 가고 있는 곳들 중에는 비풍상단의 한 별채도 포함되어 있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월광은 침대 위 가부좌를 튼 천휘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르륵―
천휘의 감겨 있던 눈이 뜨였다.
급하게 눈을 떠서일까.
아직 제대로 갈무리 되지 않은 내공이 담긴 그의 두 눈동자는 내리쬐는 월광보다 더욱 영롱하게 빛났다.
이어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조용히 숨죽인다 싶더니…….”
가부좌를 풀며, 몸을 일으켰다.
그 후 눈을 반개한 뒤 고개를 꺾으며, 야산을 바라봤다.
어둠에 잠긴 야산은 고요했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는 고요함 속에 감춰져 있는 기척이 선명히 보였다.
음흉하고, 더러운 기척이.
침대에 살짝 걸쳐 둔 검을 챙겼다.
“알아서 모였네.”
숨길 생각이 없는지, 천휘는 이곳을 향한 시선과 살기를 응시하며 움직였다.
가볍게 발을 구른 순간.
탁.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사방을 가로막았었던 방의 벽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고, 대신 수풀과 나무가 가득한 야산이 들어왔다.
뺨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면서 주변을 훑어보며 나아가길 잠시.
“……오늘 밤 비풍상단은 천하에서 지워질 것이다.”
“존명!”
우렁찬 외침에 발길을 서둘렀다.
어둠 속 빼곡하게 모인 이들이 보였다. 어둠에 몸을 감추기 위함인지, 새까만 야행복을 입고 있는 이들은 대충 세어도 오십을 거뜬히 넘었다.
‘오십? 육십? 그 정도네.’
간단히 수를 세어 본 뒤.
휙―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뭐 해?”
“……!”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와 말에 은수참살과 살혼대는 반사적으로 서로 간 거리를 벌린 뒤, 천휘를 포위했다.
‘꽤 훈련이 잘됐는데?’
천휘는 포위하고 있는 이들을 훑다가 그들 중에서 은밀하게 기세를 감추는 은수참살에서 시선을 멈췄다.
복면을 유일하게 안 쓴 자.
그는 숨긴다고 숨겼지만 몸에서 절로 배어나고 있는 분위기와 기세는 자신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황상 그가 우두머리라고 바로 파악하자마자,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하냐니까?”
“…….”
“말하기 곤란한가 봐?”
그들을 보며 이죽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도발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인지 웃지도, 발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런 놈들이야말로 마음에 여유가 없고, 평정심이 빨리 깨진다는 것을.
문득 한 놈을 쳐다봤다.
포위하고 있는 자들 중 가장 가까이 있는 그의 눈동자는 긴장과 경계로 가득한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검지를 들어 그를 가리켰다.
갑작스러운 손가락질에 그는 당황했는지, 살짝 눈동자가 흔들리던 찰나.
푹, 하는 소리가 터졌다.
찰나의 순간 이마에 매화 문양이 새겨진 구멍이 뚫린 사내는 당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쿵.
뒤로 고꾸라졌다.
일순간 적막이 흘렀다.
방금 전과는 다른 적막이었다.
경계심으로 가득했던 주변 공기는 어느새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네놈이었군.”
우두머리로 추정된 자가 나섰다.
천휘는 복면 사이로 보이는 두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뭐야? 그냥 입 닥치고 있었던 거야? 난 또 벙어리인 줄 알았어.”
비아냥 아닌 비아냥.
하지만 우두머리, 은수참살은 방금 전 일수에 놀라긴 했어도 아직 이 정도에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네가 내 수하들을 죽였나?”
“수하들이라면 저놈들 아니야?”
일부러 고개를 갸웃하던 천휘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말을 덧붙였다.
“아! 비풍상단에 숨어들었던 벌레들도 네 수하들이었어? 그 벌레들이라면 내가 모두 죽이긴 했는데.”
은수참살의 눈썹이 치켜올라 갔다.
살혼대는 백귀성의 사방주(四方主) 중 서방주(西方主) 자리를 꿰차게 해 준 그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벌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의 눈빛이 사나워져 갔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전 얼핏 보였던 지풍. 그 지풍은 결코 평범한 무공이 아니었다.
‘이놈은 누구지?’
그가 입은 도복을 보자 은수참살의 안광이 번뜩였다.
‘매화? 화산파! 그렇다면 비풍상단에 머문다는 매화검수? 아니, 매화검수들 중 이런 놈은 없었어. 그렇다면 별채에 머무는 어린 도사?’
순식간에 천휘의 정체를 파악한 그는 떠보듯이 입을 열었다.
“화산파의 고수였군.”
하지만 그건 뼈저린 실수였다.
천휘는 계속 머리를 굴리던 은수참살이 간신히 내뱉은 말을 받아쳤다.
“그러는 너는 백귀성이고.”
“……!”
훅 들어온 말에 두 눈을 부릅떴다.
“맞네. 그럴 것 같긴 했어.”
“……떠본 건가?”
“거의 확신이긴 했어.”
천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원래부터 확신에 찬 질문이었다. 이미 살수들이 몰래 숨어들었을 때부터 파악하고 있던 것이니.
‘거기다 지금 비풍상단을 노릴 만한 놈은 패왕문주가 자신들 배후에 있다고 했었던 백귀성밖에 없지.’
하지만 그러한 천휘의 생각을 모르는 은수참살은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어떻게 우리가 백귀성에서 온 걸 알았지?’
문득 하나의 가정이 떠올랐다.
‘설마 화산파에서 백귀성이 끼어든 것을 진즉에 알아챘었나!’
은수참살의 눈이 깊어졌다.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모든 의문이 차례대로 풀렸다.
곧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미 본 성이 비풍상단을 칠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패왕문이 처음 계획이 실패한 순간, 우리들이 다시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함정까지 파 놓았었군.”
“함정?”
단단히 오해를 하는 은수참살에 천휘는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깟 놈들이 뭐라고 함정을 파.”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하는 건가?”
은수참살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지금 비풍상단에도 습격을 대비해서 철저히 준비해 두었겠군.”
천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이 안 통하네.’
그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착각을 진실이라고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좋을 대로 생각해.”
천휘가 툭 말을 던졌다.
더 이상 상대하기도 귀찮았다.
하지만 은수참살은 그 말을 긍정으로 생각했는지, 눈을 흘기며 날카로운 살기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 네놈과 화산파는 실수를 저질렀다.”
저 혼자 할 말을 다 하던 은수참살이 날개처럼 양손을 활짝 벌렸다.
그것이 무언의 신호라도 되는지 살혼대의 기세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무거워지는 공기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며 점점 잠식해 가는 그들의 살기.
살혼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살기를 품은 그는 말을 더했다.
“도망쳤더라면 몸이라도 건사했겠지만, 직접 호랑이굴에 찾아오다니.”
그러나 천휘는 심드렁했다.
이런 살기는 간에 기별도 안 갔다.
대신 궁금증에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 상당히 말 많다?”
이렇게 말이 많으면서 어떻게 아까 전에는 계속 참고 있었는지 천휘가 신기하게 쳐다볼 때.
스르륵―
때마침 월광이 은수참살을 비췄다.
그의 얼굴은 평범하지 않았다.
왼쪽 볼이 화상 자국으로 가득했고, 머리카락이 없었다.
하나 그 모습은 어느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낯선 외모를 압도하는 귀기로 가득 찬 눈동자와 일그러진 표정.
특히나 귀기는 푸른 월광에 섞여 한기를 불러와 공기에 섞여 갔다.
잠시 후 그의 입술이 열렸다.
“살(殺)에 혼(魂)을 숨겨라.”
그 말이 끝난 순간.
화아악!
지독한 살기가 야산을 삼키고 살혼대원들의 몸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정확히는 야산을 가득 채운 그들의 거대한 살기에 기척은 묻혔다.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 천휘와 은수참살, 둘만이 남고.
씨익―
은수참살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그의 인기척이 흐릿해지더니 그의 신형이 어둠에 스몄다.
“두 눈 크게 뜨고 똑똑히 보아라. 진정한 살혼대의 모습을…….”
그의 목소리마저도 점점 작아져 가며 이내 흩어지고.
“…….”
적막이 흘렀다.
천휘는 주변을 바라봤다.
주위를 감싸던 육십 명의 살혼대원은 사라졌고, 곧 마지막으로 남은 은수참살마저 모습을 감췄다.
마치 방금 전 그들이 자신을 포위하던 것이 한날의 꿈이던 것처럼.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았을 때뿐.
그의 시야에는 훤히 보였다.
숨을 죽이고, 기척을 죽이고, 모든 것을 죽였음에도 뛰고 있는 심장이.
‘시시하네.’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을 만끽하던 천휘는 방금 전 은수참살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그래서 이게 진정한 살혼대의 모습이라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 말이었다.
‘진정한 모습’ 혹은 ‘진정한 실력’이라는 말을 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에게 대들거나, 암습한 놈들도.
직접 멸문시켰던 가문도.
호시탐탐 자리를 위협하고 차지하기 위해 암계를 꾸민 놈들까지도.
모두 하찮고, 별 볼 일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걸 다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포위한 채, 오감을 완벽히 속였다고 확신하고 있는 이놈들마저도 똑같았다.
‘입만 살았어.’
“육십 명 정도의 살수들이라…….”
주변을 훑어보던 천휘는 마침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거 펼쳐 볼까?”
천휘의 손이 강호출도 이후 단 한 번도 뽑지 않았던 검을 파지했고.
스르릉―
새하얀 검신을 천하에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