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찐 감자엔 당연히 이거지!
누가 뭐라고 해도 농사는 고된 일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어 온 진우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때의 진우는 각성하지 못했기에 능력치도 없는 일반인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루하고 땀만 흐르는 일을 좋아할 아이가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아빠. 전부 다 쓰담 쓰담했어요!”
“그래. 아주 잘했어, 유진아.”
“헤헤헤.”
진우의 칭찬에 헤헤 잘도 웃어 보이는 유진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성장 중이긴 하나 아직은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인 탓일까?
유진이를 보고 있자면 과거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나랑은 비교도 안 되게 성실하다니까.’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가서 놀 생각에 머리를 굴리던 자신과는 상반되게 농사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었다고 했던가?
진우는 새삼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자신이 농땡이를 치지 않고 열심히 일에 열중했다면 아버지의 지병이 조금은 호전되지 않았을까?
한평생 자신을 위해서 땡볕에서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으신 아버지.
그러나 후회를 한들 이미 죽은 사람이 돌아올 일은 없다.
“고맙다, 유진아.”
“응? 뭐가요?”
“아냐, 얼른 가자. 약속해준 딸기 주스 해 줄게.”
“우와앙!”
지금은 그저 지금의 삶에 열중하는 것이 맞을 터.
수확 가능한 어둠초는 전부 수확하고, 재배도 끝냈다.
그렇게 성실한 유진이에게 여러모로 감사의 인사를 하며 바깥으로 나섰을 때였다.
“너가 왜 여기에 있냐?”
“키시시시!(생명의 은인을 위해 나는 내 목숨을 걸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함께 튀어나온 고뇌의 고슴도치.
……이거 몬스터가 그냥 막 개인 의지로 튀어나오는 게 가능한 일인가?
“헤헷, 도치도치~”
“키시시시!”
뭐, 유진이가 저리 좋아하는데 상관은 없을…… 리가 있겠는가!
작은 나비로서 몸을 숨길 수 있는 시오라던가, 겉모습은 사슴인 뮤린과 달리 2m에 달하는 고슴도치다.
이것은 그야말로 빼도박도 못하게 몬스터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빨리 안 돌아가? 그 덩치로 어떻게 숨으려고?”
“키시시시.(그거라면 다 방법이 있다.)”
그 말과 함께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는 녀석.
2m였던 놈의 모습은 이어서 빠르게 수축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야생의 고슴도치 크기에서 조금 큰 정도로 줄어든다.
“꺄아아! 귀여워!”
“키시시시(이러면 문제 없는 거겠죠?)”
“흐음, 이 정도라면야 뭐.”
몬스터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문제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내 허락받지 않고 아무거나 주워 먹거나 사람을 습격하면 두 번째 기회는 없어. 잘 알고 있겠지?”
“키, 키시시시.”
이장님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허튼짓하려는 기색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순간에는 봐줄 수 없다.
물론 진우는 상당히 바쁜 몸.
그런 상황 속에서 도치를 일일이 관리 감독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감시 역할이라면 따로 준비할 수 있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음? 그런데 옆에 있는 그 생명체는?”
“아, 때마침 잘 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허수진이 다가왔다.
허수아비에서 탄생한 만큼 감시 역할로는 그야말로 제격이다.
“이 녀석 허튼짓 못 하게 잘 지켜봐. 만약에라도 사람을 습격하는 낌새가 보이면 그 자리에서 처리해도 돼.”
“알겠습니다.”
“키, 키이익!(무섭다!)”
이걸로 도치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해결.
그러니 이제는 다음으로 넘어갈 차례다.
“응, 따로 문제라던가. 손님은 없었지?”
“손님이라면 유리씨가 현재 팜오리들과 놀아 주고 있습니다.”
“아, 유리 씨. 아직도 계시는구나.”
고뇌의 시험을 보는 탓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미국의 대통령과 함께 찾아왔던 유리 자이스.
그녀가 아직도 농장에 있을 줄이야.
“혹시 내가 숲으로 간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33시간 5분 정도 지났습니다.”
“허어…….”
하루하고도 반나절.
심지어 고뇌의 시험을 최단 시간으로 클리어했음에도 그 정도나 흘렀다.
라타토스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더 시간을 사용했을지 원.
손님을 받아 놓고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를 해 두다니.
이장님이 혀를 차고도 남을 일이었다.
“유리 씨. 죄송해요. 일이 너무 오래 걸렸죠?”
“아뇨, 제가 남아 있던 건데요 뭘. 그리고 오리들이랑 노는 것도 재밌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니까요?”
빠르게 찾아가서 사과부터 건넸으나, 유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실제로도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오리들에게 물을 뿌려 주며 놀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오리들과 유리 자이스 간의 사이는 상당히 좋아진 모양이다.
꾸왁, 꾸와아악!
삐삐! 삐삐삐삐!
“간지러워, 얘들아.”
……사이가 좋아지긴 했어도 쉴 새 없이 물을 요구하는 모양이긴 했지만.
꾸와아아아악!(물을 주세요!)
삐삐! 삐삐삐(물! 무우우울!)
“…….”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정수아 때도 그렇고 완전히 상대방을 ‘물’로 보고 있는 모습.
“이 녀석들. 유리 씨 그만 괴롭히고 이거 먹고 있어.”
결국 보다 못해 나선 진우는 특식을 꺼내 들었다.
꼬물꼬물~
파닥, 파다다닥!
꼬물거리는 특제 밀웜!
물론 정령의 연못 속 물고기 맛에 익숙해진 녀석들은 이제 쳐다보지도 않는 밀웜이지만, 이건 좀 다르다.
꾸와아아아앙!
환장의 헤드뱅잉과 함께 망설이지 않고 팜오리의 입에 꽂히는 밀웜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 밀웜은 평범한 밀웜이 아니다.
진우와 유진이가 직접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와 ‘태초의 기적’을 적용시켜 길러 낸 놈들이다.
당연히 영양가와 고소함도 시중의 것과 비교할 수야 없다.
그 맛을 직접 먹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냐고? 그야…….
“어머, 얘들 벌써 다 먹은 것 같은데요?”
플라스틱 통에 한가득 가져온 밀웜들이 사라지는 것에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팜오리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밀웜의 ‘밀’ 자가 적힌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꾸와아아앙!(더 먹고 싶다!)
삐삐! 삐삐삐!!!(내놩! 내놔와아아앙!)
그러면서도 먹성 좋은 녀석들답게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더 줘’를 연발한다.
“녀석들. 다음에 챙겨 줄 테니까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렴.”
그 귀여운 모습에 더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과식은 건강 악화에 직결되기 마련.
그래도 똑똑한 팜오리들답게 진우가 딱 끊자 더 이상은 집착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다.
어차피 한 번 맛본 이상 또 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터.
꾸와아아악!
어떻게 하면 더 받는지 아주 잘 아는 녀석들답게 팜오리들은 곧장 소화를 위해 농장으로 진군해 나갔다.
자, 이렇게 오리들도 해결되었겠다.
이 다음은 사람이 먹어야 정석이겠지?
때마침 진우도 고뇌의 시험을 겪으면서 쫄쫄 굶은 상태.
각성자라고는 해도 일반인보다 좀 더 오래 버틸 뿐, 먹지 못하면 굶어 죽는 건 피차일반이다.
물론 이곳은 던전도 아니고 굶어 죽을 일은 없겠지만.
“유리 씨.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네? 아직 안 하긴 했는데. 괜찮아요. 톰 아저씨가 알아서 준비해 주실 거예요.”
“아아……. 이것 참 아쉽게 되었네요. 유진이가 같이 먹고 싶어 했는데.”
손님을 내팽개쳐 두고 시험을 보러 간 마당에 식사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유진이에게 힐끗 시선을 주자 어린 게 눈치도 좋게 달라붙는다.
“언니! 같이 먹어요.”
“으음. 그럼 그럴까?”
암, 강탈의 공주님께서 같이 먹자고 하시는데 그 누가 거절하겠어?
그럼 승낙도 떨어졌겠다.
“어엇, 저도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유진이랑 잠시 놀고 있어 주시겠어요?”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도와드릴 수 있죠!”
짐꾼 생활로 단련된 요리 실력.
거기에 덧붙여 풍요롭게 결실을 맺은 농작물이라는 요리 재료까지.
이젠 가감 없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물들을 요리할 때다.
* * *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먹은 양 보시면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배 터지는 줄 알았어요.”
“하하, 그럼 성공이네요.”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했으나, 요리는 재료를 따질 수밖에 없는 법.
그런 의미로 진우의 요리는 실패를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요리를 짐꾼 생활이나 자취 생활로만 해 온 초짜라고 한들 사용하는 재료들은 하나같이 아이템화가 적용된, 심지어 갓 수확한 탓에 신선함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별다른 특별한 조리 방법이 없더라도 웬만한 레스토랑은 씹어 먹을 수 있는 맛과 건강까지 일석이조로 챙길 수 있을뿐더러,
“그런데 어쩌죠?”
“예?”
“아직 후식이 남아 있는데 말이죠.”
“와아, 저야 완전 좋죠.”
단순히 찜기에서 찌기만 해도 맛이 좋은 찐 감자까지.
호불호가 적은 음식인 감자.
감자의 나라인 영국 못지않게 감자를 많이 즐기는 나라 중에는 미국도 빼놓을 수 없다.
“소금과 설탕 중 더 좋아하는 것에 찍어서 먹으면 맛있어요.”
과거 정수아에게 대접했던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 진우는 먼저 조미료를 뿌리지 않고 취향껏 찍어 먹을 수 있게끔 따로 접시에 담아 준비해 왔다.
과연 유리는 소금파일지, 설탕파일지 궁금했던 것도 잠시.
감자를 집어 든 유리는 소금과 설탕.
두 조미료에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 뜻밖의 선택을 했다.
“혹시 케첩은 없나요?”
“케첩이요? 있습니다만 설마 찐 감자에 찍어 드시려는 건……?”
“네! 당연히 감자엔 케첩이 최고죠!”
“설탕이나 소금이 아니라요?”
“에이, 누가 감자튀김에 설탕이나 소금을 찍어 먹어요. 당연히 케첩이죠.”
“이건 감자튀김이 아니라 찐 감자인데요.”
“그게 그거죠.”
“아뇨! 그게 그거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옛날 어느 한 현자가 그랬던가?
인간은 아무리 준비성이 철저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라고.
이번에도 여지없이 튀어나온 소금 설탕 논쟁…… 이 아닌 케첩이 추가된 논쟁.
하지만 이번의 논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으니,
푹- 푹- 푹-
“음! 아빠! 이게 제일 맛있어!”
“어머, 역시 유진이가 맛을 잘 아는구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찐 감자를 쥔 채 소금과 설탕, 이어서 케첩까지 전부 섭렵하며 찍어 먹고는 케첩 원츄를 부르짖는 유진 공주님.
어린아이의 입맛에는 자극적인 소금과 설탕보다는 달달한 케첩이 입맛에 딱 맞았다.
* * *
설탕파 한 명과 케첩파 두 명으로 완전히 패배해 버린 진우.
하지만 진우의 입가에는 실망보다는 웃음이 맺혀 있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조미료는 다른 법이니까.’
찐 감자에 익숙한 한국 문화와 달리 미국은 아무래도 수많은 패스트푸드점으로 인해 감자튀김이 더욱 익숙할 터.
그나마 소금파가 아니라는 것이 어디인가?
‘유진이가 아직 어려서 그래. 크면 분명히 설탕을 좋아하게 될 거야.’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설탕파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면 입맛이 바뀌는 것도 금방일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둘 다 사이가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진 건가요?”
“호호호, 유진이가 친화력이 장난이 아니라서 그런걸요, 뭘.”
“유리 언니 예뻐!”
“어머, 말도 기특하게 잘하네. 유진이가 더 예뻐.”
같은 케첩파의 유대의 영향일까?
옹기종기 앉은 채 찐 감자에 케첩을 푹푹 찍어 먹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둘의 모습이다.
그 모습에 혼자 초라하게 설탕을 찍어 먹던 진우는 더 이상 참지 않고 용혈 가방을 뒤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