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23)
123 위기일발 마그리트
귀족들의 저택은 왕궁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작위가 높고 역사가 깊을수록 중심부에 가까운 형태였다.
저택의 위치만 봐도 그 가문의 격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공작가는 당연히 왕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그리고 거대하다.
귀족의 저택이라는 게 당연히 건물과 거기에 딸린 부지를 뜻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쳐도 이건 너무 넓은 게 아닐까.
왕도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한정된 공간이다.
한데 한 가문에서 이렇게 거대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이의 공간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왕도에 저택을 가진 귀족들은 모두 나름의 공간을 차지할 테고, 그러다 보면 다른 곳에 사용될 땅덩어리는 너무 작아지지 않을까.
왕도로 들어올 때 거리의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것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주먹 하나 들어갈 공간도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
마차는 공작가 저택의 정문을 통과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 겨우 멈췄다.
공작령에서 초기에 나와 타티아나를 돌봐주었던 집사장이 저택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 사용인들이 백 명 정도 더 있다.
제법 나이가 있는 사람뿐인 걸 보면 사용인 중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자들인 모양이다.
매번 이런 식으로 마중하는 건 아닐 테고, 아마 저택 사용인들에게 나를 선보인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너희들이 모실 사람이다, 뭐, 그런 뜻으로.
한데 사용인들의 모습이 상당히 절도 있다.
공작령에서는 편한 분위기였는데 이곳은 바짝 긴장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격식 꽤나 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옆에 앉아 밖을 보던 타티아나가 숨을 들이마셨다.
긴장한 모양이다.
“괜찮아, 공작령에서와 똑같이 하면 돼.”
내가 손등을 톡톡 두드리자 타티아나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타티아나, 그런 행동이 아웃인 거야. 숙녀치고는 힘이 너무 넘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어깨의 힘은 조금 빠진 것 같다.
타티아나가 몸 전체로 여러 번 숨을 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됐어요.”
뭐든 오라 이거야, 깨부숴준다, 하는 식으로 타티아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른 거 말고 그런 행동만 멈추면 돼, 타티아나.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중세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의복의 사용인이 타티아나의 손을 잡아준다.
공작령에서는 대부분 내가 타티아나의 손을 잡아 내렸지만, 원래 부인을 돕는 건 사용인의 일이다.
놀랍게도 이 세계에서는 사용인의 일이 엄청나게 세세히 구분되어 있었다.
주인의 모자 받아주는 사람과 겉옷, 지팡이 등의 소품 받는 이가 모두 각각 있고, 마차 문을 열어주는 사람과 나무 계단을 놓는 사람, 여성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모두 다르다.
한 걸음 걷지도 않은 상태에서 필요한 사용인만 열 명 가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그런 게 귀찮다 혹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사용인 수를 줄이거나 한 사람이 몇 가지 일을 겸임하게 한다면?
그 귀족은 돈이 없거나 품위가 없거나 어쨌든 뭔가가 없는 취급이 된다.
대외적인 체면만 문제 되는 게 아니라, 사용인들의 신뢰도 떨어진다고 들었다.
가문의 사용인에게 직무에 관한 능력과 충성이 요구된다면, 귀족에게도 그들이 모든 걸 바쳐 모실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보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그들의 주인에 걸맞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가문의 역사가 길고 대를 이어 봉사하는 사용인이 많을수록 그 경향이 크고, 그것은 신흥 가문이 가질 수 없는 강점이라고 한다.
가문의 숨은 힘이 된다.
만에 하나 당주가 죽어 어린 자녀만 남게 되더라도, 오래된 사용인들이 있으면 그들이 주인을 올바른 귀족으로 키우고 지킨다.
당주와 그 일족 모두가 죽어 어린 후계자 혼자 남아도 역사 깊고 사용인과의 관계가 올바르다면 가문이 무너질 일은 여간해선 없다.
전통은 끊김 없이 이어지고 어린 당주는 전 당주를 많이 닮은 모습으로 성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하면, 지금 이 자리는 사용인들에게 나와 타티아나를 먼 훗날의 후계자로 선보이는 자리인 것 같고, 그게 왠지 신경 쓰인다는 거다.
공작가는 왕가 못지않게 대대로 이어지는 사용인과 봉신가문이 많은 가문이다.
저택의 사용인들에게 인정받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없지만, 그들이 나를 부끄럽게 여기는 건 또 왠지 싫어.
공작령에서는 그런 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이 바뀐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정말 이상하네.’
접촉 없을 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상관없다 싶은데, 조금이라도 관계를 가지면 애착이 생긴다.
지금 할아버지나 집사장 혹은 그레고르가 위험에 처하면 나는 전처럼 무심하지 못할 거다.
마차에서 내린 타티아나가 내 곁으로 오자, 집사장이 머리를 내렸다.
“도련님, 먼 길 수고하셨습니다.”
집사장과 동시에 뒤쪽의 사용인들이 허리를 숙인다.
잠깐 사이에 확인한 그들의 눈빛은 그리운 사람을 보는 듯 뭉클한 느낌이었다.
아버지를 생각했던 걸까.
내 외모를 보고 놀라거나 혐오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납치한 장소는 이 저택이라고 들었다.
그날 혈육을 잃은 자도 있을 것이고, 어머니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
그 핏줄인 나 역시.
적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그런 사람은 이 자리에서 제외된 건지도 모르겠다.
집사장이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은근히 미소 지었다.
“도련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집사장의 안내를 받아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팔을 벌린다.
“오, 라파, 어서 오너라.”
할아버지가 나를 반기는 건 언제나와 같지만 다른 때보다 유난한 느낌이었다.
‘이거 연출이구나.’
내가 마차에서 내릴 때부터 걸어오는 시간까지 모두 계산해 움직인 것 같다.
공작 부부가 일부러 서서 손자를 기다리는 건 이상하다.
그러니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일부러 만들어 낸 거다.
이것도 사용인들에게 할아버지가 나를 후계로 인정하고 있다는 걸 보이려는 거겠지.
“할아버님.”
내가 가까이 다가가 몸을 조금 구부리자, 할아버지가 내 등을 탁탁 치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내가 알아차린 걸 할아버지도 눈치채신 모양이다.
“타티아나는 그 짧은 사이에 더 예뻐졌구나.”
할아버지 말에 타티아나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숲에서 살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쁘다는 말이 여전히 낯선 것 같다.
잠시 선 채로 대화를 나누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참, 아이들이 피곤할 텐데 여기에서 이러고 서 있으면 어떻게 해요.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한테 마차 여행은 엄청난 고난이라구요.”
사용인한테 보여주는 건 이만하면 된 모양이다.
할머니가 타티아나의 손을 잡았다.
“자, 타티아나. 힘이 남아도는 남자들끼리 뭘 하든 상관 말고 우리는 갑시다.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요. 연회에 갈 때 지닐 장식도 선택해야 하고, 아, 우선 차부터 한잔할까.”
할머니와 타티아나의 사이가 좋은 걸 어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
하지만 나와 할아버지가 남의 이목을 신경 써 행동하는 것과 달리 타티아나는 진심으로 할머니를 좋아한다.
화사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보는 모습에 몇몇 사용인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물이 맺힌 사람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가 사라진 이 저택에서 할머니의 웃음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
숲으로 찾아가 아버지에게 물어봐야 할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곳에 와보는 게 어떨지.
물론 집을 찾아갈 수 있다면 이야기지만.
‘진짜 어떻게든 올해 안으로 가봐야 할 텐데.’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소금만은 집에 갖다 줘야 한다.
하아.
마의숲은 왜 그리 큰 거야.
짜증 나 죽겠다.
타티아나가 할머니에게 초대받아 가버린 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조금 작은 방으로 향했다.
작다고 해도 웬만한 중형 아파트보다 넓다.
커다란 책상과 푹신한 털가죽을 씌운 의자가 몇 개 있고, 한쪽 벽에는 중후한 책장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책장마다 두꺼운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한쪽 벽에는 부부방의 중간문과 비슷한 형태의 문이 있었다.
“이 방은 역대 당주들의 일기를 모아놓은 곳이다. 초대 당주부터 내가 처음 당주가 되었을 때의 일기도 있지.”
할아버지가 중간문을 가리켰다.
“저 너머에는 비밀로 해야 할 일이나 다른 가문에 대한 기록이 놓여 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은 당주와 그의 개인집사뿐이야. 당주와 후계자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지.”
“….”
그건 마치 내가 후계자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을까.
내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가 손을 잡았다.
“얘야, 나는 이미 늙었다. 언제 죽을지 몰라.”
할아버지 눈에 눈물이 맺힌다.
“네 아비 생사를 걱정하며 이제나저제나 기다린 게 벌써 삼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건 정말 죄송합니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노심초사 기다리는데 어머니, 아버지는 의외로 행복하고 느긋하게 잘 살고 계신다.
초원 위에 집을 짓고 룰루랄라, 라는 느낌이랄까.
숲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리자 죄책감이 장난 아니게 덮쳐왔다.
“지금 당장 너에게 뭔가를 결정하라거나 강요하고 싶은 게 아니야. 다만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클라우스가 혹시 돌아오더라도,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다음 공작이 될 사람은 너뿐이다. 클라우스에게 자식이라곤 너 하나뿐이니까.”
“….”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할아버지, 당주와 후계자만 들어올 수 있는 방에 데리고 온 것부터 이미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 사항 아닌가요.
내 생각을 눈치챈 건지, 아니면 대답이 없어서 짐작한 건지,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나이가 드니 조급함이 앞서서… 내가 주책이구나.”
할아버지 눈에서 결국 굵은 눈물이 주름을 타고 흘러 떨어졌다.
아, 정말 죄책감 장난 아니네.
어느 정도는 노리고 이 방에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눈물이나 조급함은 사실일 거다.
만일 이게 연기라면 전설의 명배우지.
웬만하면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이 집안을 잇겠다 말해드리고 싶지만, 공작이 되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지만 분 단위 초 단위까지 아껴가면서 일하고 싶지 않아.
나는 조금 더 편하게 놀면서 먹고살고 싶다.
“하하. 정말 나이가 드니 눈물만 많아져서.”
할아버지가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돌렸다.
슬쩍 눈물을 닦은 뒤 다시 나를 쳐다본다.
“여행이 어땠는지 차분히 이야기나 들어보자. 요즘 길이 험하단 소문이 많아서 걱정했다. 이 방에 들어오면 아주 급한 일이 아닌 이상 방해하지 않지. 느긋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게야.”
나는 후계자 자리에 대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여행에서 갑옷 기사를 만났던 이야기와 볼크 백작에 대한 말을 꺼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할아버지의 눈이 조금 짓궂게 변했다.
“너는 마그리트 양의 일에 화가 난 게로구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돕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의 결정에는 많은 것들이 따라온다. 단순히 아이가 불쌍하다고 해서 힘을 쓸 수는 없어. 그 일에 끼어듦으로써 해는 없는지, 공작가에 이득은 있는지 잘 살펴봐야지.”
할아버지의 반응은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공작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 이해타산 없이 가문과 가문의 일에 끼어들 수는 없다.
심지어 후작가는 변경을 책임지고 있다.
후작령과 맞닿아 있는 나라와는 백 년 가까이 큰 다툼이 없다.
하지만 사이좋은 우방도 아니었다.
소소한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종종 외교 문제도 얽혀,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고 들었다.
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그 나라를 억제하고 있는 후작가는 홀대할 수 없다.
공작가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는 무난한 사이라고 한다.
똥이 묻지 않게 잘 피하고 있다는 게 아마 정확한 설명일 거다.
나는 히죽 웃었다.
“볼크 백작령에 적철석 결정이 나온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
이번에는 할아버지 말이 막혔다.
흠, 하고 턱을 만지더니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렇다면 개입할 여지가 있지. 하지만 정말로 적철석 결정이 있는지 조사가 우선이야. 투자는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과를 기다리다 보면 마그리트 양을 이용해서 후작가가 선수를 칠 수도 있겠죠. 여기에서는 우선 그 개입의 여지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할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저는….”
내 말을 듣자 할아버지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 확실히 그렇구나. 그 방법을 쓰면 나중에 일이 틀어져도 아무도 손해 보지 않겠지. 후작가만 옴짝달싹 못 하게 될 뿐.”
할아버지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단 한마디, 간단한 그 말로 후작가가 꼼짝 못 하게 되면 볼 만하겠구나. 하지만 얘야,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상대가 너무 황당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면 원한을 품게 되는 법이야.”
“….”
할아버지가 내 손등을 감싸 잡았다.
“네가 생각하는 방식은 클라우스와 비슷하구나. 남의 뒤통수를 친다고 해야 하나. 간단한 일로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지.”
조금 그리운 듯 말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 잔잔해서, 그게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잘 알 수 없었다.
*
아버지는 왕도 저택에 도착한 날부터 매우 바쁩니다.
호위 병사가 죽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만나고, 어디론가 연락하느라 마그리트와는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마그리트는 어머니와 함께 드레스를 다시 조정하거나 차 마시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커트시와 같은 예절도 복습하고 있습니다.
마그리트 생각에는 이제 완벽한 것 같은데, 어머니의 눈에는 아직도 모자란다고 합니다.
현실과 이론은 다르다고 마그리트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로 잘하면 완벽한 레이디가 아닐까요.
숙녀로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어머니가 슬퍼할 것 같아서 마그리트는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그리트한테 뭔가 가르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요.
어머니의 취미생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그리트가 그걸 알고 있어서 희생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마그리트 힘듭니다, 어머니.
오늘은 왕도에 도착한 지 3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그리트는 배가 물로 가득 찰 때까지 차를 마시고 커트시를 하고 있습니다.
“….”
어머니, 배가 출렁출렁합니다.
몸을 굽히다 배에서 물소리가 나고, 그 소리를 들으니 왠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동작을 멈추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문에는 시종이 있지만 너무 급해서 아버지가 직접 문을 연 것 같습니다.
아버지, 그런 행동은 귀족으로 있을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어머니한테 혼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서인가요.
어머니가 혼내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 불합리하군요.
어른이라도 혼날 일은 혼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얼굴이 파랗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
마그리트가 묻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물어보셨습니다.
“여보, 무슨 일이세요? 얼굴색이 안 좋습니다.”
“후, 후작에게서 연락이 왔소. 오늘 오후에 마그리트를 보고 싶다고.”
“그런… 그건 우리 가문을 너무 얕보는 일이 아닌가요. 내일도 아니고 오늘이라니. 게다가 다도회 초청이었을 겁니다. 후작이 아니라 후작부인이 저에게 연락해야지요.”
어머니가 화나셨습니다.
우는 것보다는 화를 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다음 말에 어머니 얼굴도 새파래졌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요. 아무래도 다도회에 참석하는 건 우리 마그리트뿐인 것 같아.”
“그, 그 말은….”
그 말은 무슨 뜻인지 기왕이면 끝까지 말해주세요,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이마에 손을 대더니 쓰러지셨습니다.
다행히 의자에 쓰러지는 걸 보면 가짜인 것 같습니다.
마그리트도 한 번 쓰러진 적이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진짜로 의식이 없어지면 바닥으로 떨어져요.
그리고 머리에 혹이 납니다.
아무튼 어머니와 아버지는 굉장히 당황한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온다고 했었는데 참석자가 마그리트 혼자가 됐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마그리트도 조금 실망했습니다.
다른 가문의 영식과 영양은 어떤지 보고 싶었는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마법사님이 미리 말해줬거든요.
어쩌면 후작가에 혼자 참석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요.
그리고 혹시 혼인하게 될 것 같으면 사용할 마법의 단어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모님한테는 비밀입니다.
그런 일이 진짜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고, 또 어른에게는 여러 가지 일의 절차가 있기 때문에 뭘 해도 시간이 느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법의 단어는 아이 입장에서 외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법사님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런 거겠지요.
어쨌든 마그리트한테 그 마법의 말이 있는 한은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울지 말고 갑시다.
다도회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고 말한 건 어머니가 아닌가요.
늦으면 실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