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88)
188 어째서 여기에
“좋아, 당분간은 이곳에 머문다.”
족장, 남편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남자들이 수레를 세웠다.
몇 명은 물 있는 곳을 찾아 떠나고, 몇 명은 천막 세울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일부는 근처에 위험한 짐승은 없는지 확인하러 돌아다닌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행렬은 잠시 이 자리에 멈춰 있게 된다.
남자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둘러싸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낯선 장소에 정지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어린아이를 노리고 짐승이나 마수가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
이곳은 고향에 비해 나무와 바위 등 시야를 가리는 것이 더 많다.
당연히 남자들의 경계는 더욱 심해졌다.
여자들도 아이들 단속에 나선다.
아예 어리면 수레에 태운 채 내려주지 않지만, 네댓 살 정도 되면 행렬이 정지된 상태에서 가만있어 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엄마 손을 피해 수레에서 도망쳐 버린다.
적이나 짐승의 습격을 상정하고 가르치는 남자들의 훈련이 이럴 때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여자들도 어릴 때는 똑같은 훈련을 받았지만, 아이 때의 재빠른 동작은 어른이 되면서 사라져 당해내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전사 훈련이 시작된 예닐곱 살 남자아이들은 특히 요주의 대상이다.
자기가 강하다고 착각해 행렬 가장자리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겁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의 엄마는 이미 또 다른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 커 말썽꾸러기가 되기 시작한 아이들은 이미 자식이 다 큰 여자들이 챙겨야 한다.
란나는 그런 여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부류였다.
지나온 세월만큼 기른 자식도 많아 말썽꾸러기를 다룬 경험도 수없다.
지금은 의젓하게 무리를 지키는 호르지도 어릴 때는 망나니였다.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망나니.
하지 말라는 일은 뭐든지 하고 다녀 허구한 날 말썽이었다.
축제에 쓸 술독을 몰래 꺼내 친구들이랑 홀라당 먹어버린 게 열 살, 심지어 곰을 사냥하겠다고 몰래 숲으로 들어간 건 여섯 살이었다.
항상 말썽 피우던 친구들과 함께였다.
이마에 새겨진 주름의 반 이상은 호르지 때문일 거다.
그런 자식이 호르지 하나뿐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은 차기 족장인 큰아들도, 그 밑으로 줄줄이 낳은 아들들도 호르지보다는 덜해도 말썽이 끊이지 않았고, 막내딸인 헬가는 말없이 사고 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네 살 때부터 숲으로 들어가 작은 동물을 사냥했다고 알았을 때는 란나는 물론 부족 사람 전체가 경악했다.
‘조용히 잘 있어 신경을 덜 쓰긴 했지만, 설마 숲에 다녀오고 있었을 줄이야.’
그 얼굴 그 덩치로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고 돌아다니는 건 탁월한 능력이라고, 남편이 굉장히 감탄했다.
거기에서는 감탄이 아니라 혼을 내고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걸 허락하지 않을 만큼 헬가는 어릴 때부터 강했다.
‘하아.’
부족을 떠나던 딸의 뒷모습을 문득 떠올리고 란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그녀가 기른 아이 중 가장 불쌍한 것이 헬가다.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을, 어째서 고추를 뱃속에 떼어놓고 나온 걸까.
얼굴을 봐도 우락부락한 몸을 봐도 남자요, 능력을 보면 부족 최고의 전사인데, 마음은 여자다.
심지어 그 마음조차 상당 부분은 전사의 능력을 최적화하는 데 적합했다.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고, 동정은 해도 판단은 잘못하지 않는다.
한데도 마음 일부분에 소녀다운 꿈을 품고 있는 게 정말 불쌍했었다.
바느질을 좋아하지만 처참할 정도로 못하고, 사랑을 꿈꾸는 소녀인데 얼굴이 흉기.
거기에 더해 전사로서의 소질이 그야말로 하늘이 내렸다 할 정도로 뛰어나 남자의 두려움까지 받는다.
부부 싸움이 일어나면 그대로 죽을 거라고, 남자들은 헬가를 아내의 후보의 후보에조차 올려주지 않았다.
헬가는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런 헬가를 두고, 남편이 올돈의 청혼을 허락하며 다른 여자의 맨 뒤로 미뤄도 좋다고 했을 때는 분노가 너무 커 친정 부족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화나네.’
헬가가 비록 여자로서의 매력은 없다 해도 어째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남편이 백방으로 헬가의 혼처를 알아봤던 것은 알고 있다.
남편은 꼭 전사가 아니라도 좋다며 아는 부족마다 은밀하게 남편감을 물색했다.
하지만 아내로 받아들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죄를 짓거나 쓸모없는 남자를 강요해 남편감으로 삼아 부르려는 부족은 있었지만, 미쳤나.
그런 곳에 시집보낼 정도면 차라리 계속 우리 부족의 전사로 남게 하는 게 낫다.
남편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 청혼은 모두 거절했다.
란나는 문득 남편의 모습을 보고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저 사람도 어쩔 수 없었겠지.’
당시에는 펄펄 뛰며 화를 냈지만, 나중에는 그녀도 슬그머니 생각했었다.
늦게라도 올돈이 청혼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이런.’
란나가 눈을 빛내며 쳐다보는 데도 몇 아이가 가장자리로 달려가고 있다.
‘또 저 녀석들이군.’
부족의 말썽꾸러기 셋이다.
요즘 부족의 아이들이 뭔가 큰 문제를 일으키면 항상 저 셋이 중심이었다.
마치 호르지 어릴 때 같다.
란나는 막대기로 바닥을 두드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당장 돌아오지 못해, 이놈들! 지금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엉덩이 열 대씩이다!”
“우왁! 마귀할멈이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리다 호르지에게 두 명이 목덜미를 잡혔다.
다른 한 명은 제 아버지가 잡았다.
“이 녀석들, 남의 어머니한테 뭐라는 거야.”
호르지가 험상궂은 얼굴로 말한다.
그러는 너도 어릴 때는 곧잘 네 엄마한테 마귀할망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란나는 기가 막혀 호르지를 보다 웃어버렸다.
‘하다못해 헬가가 저 호르지만큼의 외모만 됐어도 좋았을 텐데.’
어쩌다 헬가는 그런 얼굴로 태어난 걸까.
한숨 쉬던 란나의 눈썹이 문득 부드럽게 누웠다.
‘그런 헬가가….’
그 아이가 혼인했다고 들었을 때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약탈혼이 주류는 아니어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부족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혹은 마음에 들어온 여자를 보고, 에노르토스의 남자들은 강제로 여자를 잡아 혼인한다.
그 경우 가족을 되찾으려는 부족의 공격으로 나쁘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적대적인 부족이거나 유부녀가 아니라면, 그리고 약탈혼을 한 남자가 괜찮은 전사라면 축복받으며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교류가 없던 부족이 그 일을 계기로 왕래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하지만 약탈혼은 남자가 한다.
여자가 하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에노르토스의 역사에서도 없는 일이라고, 오래전 헬가의 약탈혼 소식을 들은 남편이 감탄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들까지 있었다고….’
위협하거나 미약을 이용해서 아이를 만든 것도 아닌 모양이다.
제대로 부부로서 아이를 길렀다고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런 게 될까.
돌아가신 어머니가, 인생이란 한 걸음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정말로 그렇다.
‘숲에 남자를 가둬놓고 불행하게 살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잘됐다.
마음의 가시였던 헬가가 불행하지 않다면 그걸로 족하다.
평범하게 살아준다면.
어린아이 몇 명이 높은 나무를 올려다보고 울기 시작했다.
낯선 땅에 겁먹은 모양이다.
우리가 살던 고향은 숲과 이웃하고 있어도 초원이 더 많았지만, 공국에 가까워질수록 나무가 빽빽하고 많다.
당연히 공기도 다르다.
‘내가 낯설 정도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그렇겠지.’
남편은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 낯선 땅이 가장 불안한 건 그일 것이다.
새로운 땅에서 제대로 잘 정착해 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지, 그가 가장 걱정이겠지.
남편의 표정에는 허세가 가득하지만 오래 함께 살아온 아내의 눈에는 걱정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란나는 아이들이 잡혀 다시 행렬 가운데로 돌아간 걸 보고 남편에게 향했다.
“라파에게 연락은 보냈어요?”
란나의 말에 남편이 흥,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만날 그 아, 소리는. 그게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무슨 소리야.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눈빛이 달라지면서.”
“반한 척하는 거예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걸 몰라요?”
“….”
남편이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뭐, 그녀도 잘못했다.
남편이 뭔가 할 때마다 계속 반한 척해 부추긴 건 란나 자신이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멋지니까 이제 어깨에 힘 좀 빼요.”
그녀가 하는 말이 또 거짓말일까 싶어 쳐다보다, 남편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뒤통수 맞고도 진짜로 믿고 넘어가는 것이 바보 같아 귀엽다.
‘남편이 귀여워 보이면 여자로서는 끝이라던데.’
그렇다면 그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자가 아니었을 거다.
남편이 귀엽게 보인 건 첫아들을 낳고 얼마 뒤였던가, 아니면 셋째를 낳았을 때였나, 아무튼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일이니까.
투닥투닥 몇 마디 나누는 동안 남편의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다.
다행이라고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란나는 멀리에 있는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막내딸의 남편이라는 남자도.
물론 얼굴은 모르지만, 대강 이 부족의 그럭저럭인 남자와 비슷하겠지.
호르지는 엄청난 미남이라며 호들갑이지만, 그 녀석의 눈은 믿을 수 없다.
‘언젠가 죽기 전에 만날 수 있을까.’
적어도 손자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공국으로 온다는 손자 생각에 가슴이 기대로 부푼다.
남편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먼 하늘을 보고 있었다.
‘라파….’
헬가를 많이 닮았다는 손자는 어떤 아이일까.
물과 적당히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이틀이 지났다.
라파에게 보낸 연락용 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할 거라고 남편과 호르지가 말하고 있었다.
일부 남자들이 사냥에 나서고, 조금 큰 아이들은 가축을 먹이러 근처를 돌아다닌다.
남자 몇 명이 순번을 정해 그런 아이들 뒤를 봐주고 있었다.
란나는 혹시 이탈하는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며 부족 가장자리를 돌아다녔다.
문득 한 여자가 곤란한 표정으로 천막 사이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말썽꾸러기 셋 중 한 아이의 엄마다.
“왜 그러나?”
란나가 가까이 가 묻자, 여자가 당황해서 말했다.
“아까부터 애가 보이지 않아요. 어젯밤에 그 아이가 친구들하고 사냥 이야기하는 걸 얼핏 들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그 아이들도 없구요.”
“알았네.”
란나는 곧바로 남편에게 그 일을 알렸다.
부족 전체를 다시 확인했지만 아이들은 없었다.
임시 천막을 세우고 가축을 돌보거나 이곳에서 머물 준비를 하는 동안 감시가 소홀해지자 무리를 떠난 모양이다.
이 근처에 아주 위험한 마수는 없다.
그건 제대로 확인이 끝났다.
하지만 어른한테 우스운 여우나 늑대조차도 아이들한테는 큰 위협이다.
서둘러 찾아야 한다.
남자들은 곧바로 개를 풀어 아이들 추적에 나섰다.
없어진 아이들 엄마 얼굴이 모두 새파랗게 되어 있었다.
“내 잘못이야. 내가 잘 봤어야 하는데.”
한 아이 엄마가 오들오들 떨며 중얼거렸다.
란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끌어안았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야. 자네 만의 잘못이 아닐세. 아이들은 부족이 힘을 합해 기르는 거니까.”
란나는 가만히 숲을 노려보았다.
*
내 속도에 따라오느라 무관이 죽겠는 모양이다.
말은 준비되어 있지만 나는 발로 뛰는 게 더 빠르다.
보편적인 것보다 훨씬 더.
내가 말 반 다리 반으로 달리다 보니 진행 속도가 몇 배는 더 빨라졌다.
좋았어.
나는 기쁘지만, 무관은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다.
미안해.
하지만 서둘러 공왕을 찾아 죽이고 싶다.
그 남자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마음에 돌덩이가 올라간 기분일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마음을 강하게 먹고 무관의 어려움을 무시하며 달리는데, 아주 작은 새가 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정령나비와 하얀벌이 훌쩍 날아 새를 감싸고 돈다.
하지만 새는 거기에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곧바로 나를 향했다.
‘아, 저거.’
이전에 봤던 새다.
다리에 표식을 메고 있는 에노르토스 부족의 연락용 새.
새는 내 품에 박치기하듯 날아와, 다리의 천조각을 풀자마자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부족으로 돌아갈 모양이다.
나는 당황해서 무관한테 소리쳤다.
“이봐, 나는 먼저 갈 테니 자네는 공국의 왕궁으로 찾아오게.”
“도, 도련님!”
무관이 나를 부르며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들을 시간이 없다.
이 연락용 새는 정말 빠른 거야.
나는 새가 빠르게 날갯짓하는 걸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을 모아 달리며 하늘을 보니 새는 제법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었다.
이러다 잘못하면 놓칠 것 같다.
속도로는 밀리지 않지만, 저 새는 허공으로 돌아다니고 나는 땅을 달리는 거다.
지형의 영향을 받는 내가 훨씬 불리했다.
“얘들아, 저 새 좀 쫓아가 봐라.”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정령들에게 부탁하자, 정령나비가 훌쩍 하늘로 날아올랐다.
새를 감싸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알아들은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새 한 마리보다 빛의 나비는 눈에 훨씬 잘 보인다.
때로 거리가 멀어져도 따라가기가 훨씬 쉬웠다.
옆으로 눈 한번 돌리지 않고 부지런히 따라 달릴 때였다.
어디에선가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리 가! 이 빌어먹을 늑대놈아!”
“죽인다!”
울음소리에 섞여 아이 목소리가 울렸다.
울면서 외치는 것 같은데,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저건 에노르토스 언어다.
아니, 기억이고 뭐고 확실한 에노르토스 말인데… 어째서?
왜 에노르토스 아이가 이런 곳에서 늑대랑 싸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