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49)
049 땅 밑에 동굴이 있었다
“꺄아!”
“렐라!”
거의 동시에 나와 타티아나 입에서 소리가 터졌다.
두 사람 모두 흙먼지가 올라오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가까이 있는 건 타티아나였지만, 바람을 이용하는 내가 더 빨랐다.
자욱한 먼지가 조금 가라앉으면서 주저앉은 땅이 드러났다.
“이건 뭐야.”
작은 구멍이 아니다.
푹 꺼진 땅 밑은 텅 비어 동굴처럼 되어 있었다.
문득 발 밑이 흐느적거리는 걸 느끼고, 나는 막 도착한 타티아나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허리를 안고 훌쩍 뒤로 물러서는 순간 발밑이 부서져 내린다.
“우, 우앗.”
타티아나가 이상한 비명을 질렀다.
비명과 거의 동시에 다시 발밑이 무너진다.
한 번, 다시 한번, 나는 훌쩍 몸을 날렸다.
내가 약간 떨어진 곳에 내려섰을 때는, 마치 땅속을 거대한 뱀이 기어간 것처럼 지면이 연이어 꺼져 있었다.
“… 맙소사… 렐, 렐라는….”
타티아나의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괜찮아. 아까 멀쩡히 서 있는 걸 봤으니까.”
먼지투성이가 되어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땅에 떨어진 게 자존심이 상했던 건지, 아니, 그건 아닌가.
오히려 땅속으로 들어간 게 즐거웠던 건지도 모른다.
녀석은 날개를 팟팟 털면서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
얼핏 봤을 때는 화가 난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냥 즐거웠던 건지도 모른다.
놀이동산에 간 기분이었을지도.
“다행이다.”
타티아나의 몸이 축 늘어진다.
긴장이 풀린 것 같다.
“아.”
작은 소리와 함께 타티아나의 몸이 살짝 굳었다.
나도 아, 싶었다.
내 팔이 아직도 그녀의 허리에 둘러져 있다.
당연히 타티아나의 발은 허공에 둥둥 뜬다.
키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니까.
“미안. 혹시 너무 꽉 잡아서 배가 아픈가? 어디 부러지기라도 한 건.”
타티아나의 얼굴이 붉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그녀를 놓았다.
내가 힘 조절을 잘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조금 끔찍해졌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전혀. 그러니까, 나 지금 무슨 말 하는 거래.”
타티아나가 횡설수설이다.
이런 반응을 전생에 봤다면, 나는 아마 그녀가 남자와 접촉하는 바람에 당황하고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후후.
하지만 지금 얼굴의 나는 절대로 그런 착각은 하지 않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거라고 안다.
타티아나는 마녀이고 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접촉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아무리 위험했기 때문이어도 갑자기 덩치 큰 야만인한테 허리를 꽉 껴안아져서 무섭지 않을 여자는 없다.
나라도 무서워.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서 한발 물러섰다.
“다급했다고는 해도 갑자기 당겨서 미안했다.”
“아니, 저기, 정말 고마워요. 잘못했으면 저 구덩이에 떨어져서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저거 상당히 깊잖아요. 어쩌면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몰라요. 진짜 고마워요. 아, 내 행동이 조금 이상한 건, 그게, 그냥 조금 놀라서, 스승님 외에 다른 사람이랑 이렇게 가까운 건 처음이라서….”
얼굴이 빨갛게 되어 눈동자는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해도 전혀 설득력은 없지만, 생각해 보면 그녀는 스무 살까지 숲에서 살아 대인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다.
나처럼 무섭게 생긴 남자가 갑자기 옆구리에 껴안으면 놀라는 걸 넘어 기절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겠지.
그걸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그녀는 정말 착한 걸 거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봐도 착하고.
고맙다는 말도 틀림없이 진심이겠지.
그녀가 너무 곤란하지 않도록 나는 빙그레 웃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다행이야. 나는 힘이 너무 좋은 편이라.”
“하나도, 하나도 안 아팠어요.”
타티아나가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웃어 보인 뒤 거대한 땅속 동굴에 시선을 주었다.
어느새 렐라는, 녀석에게는 너무 큰 이 동굴을 놀이공간으로 삼은 모양이다.
온몸에 흙을 묻힌 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꼭 흙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진정됐는지 타티아나도 렐라를 보고 중얼거렸다.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불사조는 정말 튼튼하군요. 그렇게 크게 땅이 무너졌는데 전혀 다친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확실히.”
건강 그 자체다.
날지 못하니 어차피 혼자서는 나오지 못한다고 알아서인지, 렐라는 나나 타티아나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동굴 탐험에 신이 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노는 건 아기새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저만큼 낙천적이니 어미를 잃고도 그 깊은 숲에서 잘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머니의 업보가 크다.
아니 나 때문이니까 내 업보인가.
어쨌든 다친 곳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또 모르니 확인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니 이제 슬슬 렐라를 데려와야겠다.
게다가 저렇게 돌아다니다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 버릴까 걱정도 된다.
나는 뛰어내리기 전에 타티아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금 떨어져 있어. 혹시 또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자, 타티아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반보.
그런 거리는 떨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서 있는 쪽은 단단한 땅인 것 같으니 괜찮을 거다.
나는 훌쩍 밑으로 뛰어내렸다.
밑에 내려와서 본 동굴은 생각보다 넓었다.
모든 동굴이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높이도 내 키 정도로, 상당히 높다.
‘꽤 깊네.’
밖에서는 거대한 뱀이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쪽에서 보면 동굴은 단순히 하나의 길이 아니라 이쪽저쪽으로 뻗어 있었다.
땅속에 이런 동굴이 있는 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내가 살던 숲에도 이런 뱀굴이 있었다.
원래 뱀은 굴을 만들지 못한다는데, 마수로 분류되는 뱀 중에 이런 통로를 만드는 놈이 있다.
숲에 있던 뱀은 어머니랑 둘이 잡아 포로 만들어 먹었다.
‘쥐포 같아서 맛있었는데.’
아니,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 이 동굴이다.
만일 그런 뱀이 이곳에 살고 있다면 그냥 놔둘 수 없다.
잡아야 한다.
뱀은 숲에 살면서 주로 마수를 잡아먹지만 인간도 먹이로 삼으니까.
이 정도로 도시에 가까이 있다면 먹이를 찾아 도시 주변으로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게다가 번식이라도 해서 이 근처에 알을 낳으면 곤란해질 거다.
‘우선은 길드에 보고하면 되려나.’
아니면 영주관을 찾아가야 할지.
렐라가 삐비 우는소리를 들으며 나는 주의 깊게 땅을 살피며 걸었다.
‘좀 이상한데.’
어머니와 함께 봤던 뱀굴과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느낌이 좀 다르다.
뱀굴은 단순한 흙 굴이지만, 이건 왠지 인간이 파놓은 건축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직감이 이건 나쁘다고 속삭인다.
처음 이 숲에 들어올 때 타티아나가 중얼거리던 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숲은 기분 나쁘다고 했었지.
나는 빠르게 걸어 렐라에게 다가갔다.
한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던 렐라가 막 옆에 있는 구멍을 향해 돌진하려는 참이었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었다.
일단 이 녀석을 밖에 내놓은 뒤 동굴을 살펴보자.
렐라는 동물한테 인기 대폭발이라 작은 벌레조차도 먹으려고 덤벼드는 형국이니 여기에 두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띄우려는데, 렐라가 불만스러운 듯 삐빗 소리를 냈다.
살짝 오므린 손안에서 렐라가 날개를 퍼덕퍼덕 움직였다.
“이 녀석, 여긴 위험할지 모르니까 얌전히 있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렐라의 머리를 건드렸을 때였다.
렐라가 들어가려고 했던 동굴에서 뭔가가 반짝 빛났다.
나는 괴력을 가지고는 있어도 보통 사람이라 눈은 평범하다.
빛이라고는 한 가닥도 들어가지 않는 어두운 굴속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건.
내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아주 조금 동굴 일부분에 닿은 빛이 어둠 속에 있는 형체 일부분을 어스름이 밝히고 있었다.
내 눈이 제대로 형체를 잡은 게 맞는다면 저건 아무래도 사람의 형체인 것 같다.
나는 렐라가 벗어나지 않도록 손을 오므린 뒤 어두운 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거기에는 내 생각대로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다리와 팔을 보면 남자다.
반짝인 건 허리춤에 있는 작은 칼이었다.
“….”
한 사람이 아니었다.
동굴 안쪽으로 최소 다섯 구 이상의 시체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어두워서 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저 안쪽에 시체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뱀은 먹이를 통째로 삼킨다.
이렇게 시체를 남기지 않아.
이건 확실히 뱀굴은 아닐 것이다.
‘하아.’
나는 작게 숨을 쉬었다.
굴에 갇혀있던 냄새가 코에 닿았다.
약한 시체 냄새에 비릿한 뭔가가 섞여 있었다.
좋지 않아, 이건 정말 좋지 않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 닿는 범위의 시체는 미라처럼 피부가 비쩍 말라 있었다.
하지만 몸은 통통하다.
손가락도, 어렴풋이 보이는 몸통도,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단순히 부패되어 가스가 찬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인형 속에 솜을 채운 것처럼, 가스 같은 게 아닌 단단한 실체를 가진 뭔가가 이 시체 안에 있다.
단순히 죽은 게 아니다.
아마 더 끔찍한 걸 거다.
“왜 그래요? 라파 씨, 거기에 뭔가 있나요?”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타티아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불길하게 조용한 숲으로 퍼졌다.
이걸 만져봐야 하나.
아니면 그냥 길드에 보고만 할까.
갈등하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시체가 있어. 그냥 시체가 아니야.”
“….”
뒤쪽에서 흙이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타티아나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울린다.
으앗, 꺄앗, 그런 거다.
뒤돌아보니 타티아나가 엉거주춤 흙과 나무뿌리를 껴안듯이 하며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내려오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뛰어내릴 용기는 없어서 나무뿌리를 잡고 흙이 쌓인 곳으로 내려가다 미끄러졌다, 대강 그런 모습이었다.
“뭘 하는 거야.”
얼른 그녀한테 가서 허리를 잡고 내려주자 타티아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요.”
“위험해. 올라가자.”
“동굴에 시체, 나, 나 말이에요, 아무래도 이게 뭔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만일 내 생각과 같다면 굉장히 급한 거예요.”
타티아나의 얼굴이 울상이다.
제발 자기가 생각한 게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데리고 시체가 있는 곳으로 향하자, 타티아나는 내 옷을 꼭 잡고 시체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시체의 모습을 잠시 살피더니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줍는다.
그걸 시체 쪽으로 조금 뻗었지만,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으… 이, 이거, 입 좀 벌려볼 수 있을까요? 나는 도저히 용기가 안 나서.”
그녀가 바라는 대로 나뭇가지로 시체의 입을 조금 열자, 밥알과 비슷하게 생긴 게 여러 개 들어 있었다.
다만 크기가 굉장히 크다.
내 새끼손가락 정도 되려나.
타티아나의 몸이 본격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와, 와, 저, 저거, 아마, 아니, 분명히, 저건….”
“저게 뭔데?”
물어보지 않아도 왠지 답을 알 것 같다.
크기는 다르지만, 나는 지구에 있을 때 저것과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타티아나가 와들와들 떨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그득하다.
“저, 저거, 아무래도, 식인… 개미알… 인 것 같아요….”
그래, 크기만 다를 뿐이지 개미알이랑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