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48)
048 렐라가 바닥으로 꺼졌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더니, 정말 그렇다.
멀쩡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쓰기 어려워지니 오른손이 평상시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알겠다.
단순히 오른손으로 뭔가 잡거나 건드리지 않도록 하는 것뿐인데 그게 너무 어렵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사용하게 되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을 무렵에는 문고리가 부서지고 탁자 일부분과 의자 등받이, 침대 반쪽과 선반이 무너졌다.
힘을 가하지 않아도, 무심코 손만 대면 바삭 콰직인 거야.
이게 물건이니 그나마 괜찮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졌다.
차라리 오른손을 묶어 버리면 어떨까 싶어 끈으로 허리에 묶어 봤지만, 어라, 하는 순간에 이미 끈이 뚜두둑 끊어져 있었다.
침대는 잠깐 잔다고 누워있다가 손을 댔더니 부서졌다.
하아.
이대로라면 평생 건물에서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내가 희생하겠다는 기특한 감정 따위는 없지만, 그래도 손가락 대는 것만으로 사람 머리가 부서진다고 알면서 돌아다닐 만큼 마음이 강하지도 않다.
‘이러면 결국 나도 어머니처럼 숲으로 도망쳐 행인가.’
심지어 이대로라면 약탈혼도 불가능하다.
신부를 데리고 가봤자 손가락 하나로 죽여버리면… 안 돼,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울고 싶다.
타티아나는 이게 저주의 종류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저주인 것 같아.
“하아.”
멀쩡한 의자에 앉아 길게 한숨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자, 타티아나가 옆에 와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미안해요… 분명 이건 좋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타티아나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나는 실수로라도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먹을 쥔 채 고개를 들였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타티아나는 노력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웃어넘겼던 그녀도, 내가 손만 대면 뭐든 부서지자 이건 심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곧바로 정령의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기도와 노래를 하고,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주술 같은 것도 수십 개 정도 내 팔을 향해 베풀었다.
그런 걸 할 때마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지 나중에는 기진맥진했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더 하려고 필사적이었다.
다 소용없었지만.
그녀의 노력에는 정말 감사한다.
처음 만났을 때 목을 졸랐던 일을 생각하면 조금 미안해졌다.
내가 너무 험악했지. 이렇게 연약한 여자한테.
애초에 이번 일은 타티아나 때문에 일어난 것도 아니다.
빌어먹을 한스의 저주받은 갑옷이 원인이고, 그게 깨지지 않았다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아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적어도 한스처럼 짝짝이 팔이 되는 건 확정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 덕분에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진짜 괜찮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빙긋 웃었다.
문득 바람의 힘을 억누르기 시작할 무렵이 떠올랐다.
그때도 힘들었다.
바람 마법은 습득한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이다.
팔다리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만,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처럼 주변을 휘둘렀다.
나한테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힘인데, 주변 사물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때와 지금은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내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막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너무 위험해서 안아주기는커녕 가까이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을 뿐인데 집안에 폭풍이는 것처럼 바람이 휘몰아치니, 어머니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라고 들었다.
그 힘이 침착해진 건 내가 주변을 인식하기 시작할 무렵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인식하고, 조금씩 주변 사물이 눈에 들어오면서 몸 안에 흡수되는 것처럼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래도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제작해 무거운 물건들이 들썩들썩하고 귀신 집처럼 밤에도 바람 소리가 들렸다고.
어라, 그런데 왜 나는 곰을 만날 때까지 몸에 약간의 바람만을 두르고 있었지?
이 힘을 어릴 때부터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곰한테도 지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나는 곰한테 죽을뻔하고, 그 뒤에야 겨우 몸에서 힘이 조금씩 흘러나와 어느 순간 급속히 밖으로 쏟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한데.’
어쩌면 아버지가 뭔가 했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곰과의 싸움 이후 힘이 쏟아져 나오면서 나는 한동안 그걸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우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야 하나.’
도시에서는 힘을 제어하는 훈련이 힘들다.
이 갑옷이 정확하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내 힘과는 어떻게 어울리는지, 혹은 반발하는지도 봐야 하고, 그러려면 다소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도끼도 수리해야 하지만, 뭐, 지금 상태를 보면 맨손으로도 뭐든 부술 수 있는 것 같으니 그 일은 조금 미뤄도 될 것이다.
나는 작게 한숨 쉬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잠시 근처 숲에 들어갔다가 돌아온다. 하루 이틀, 조금 길면 며칠 걸릴 거야.”
“어….”
타티아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냥 이 힘을 시험해 볼 공간이 필요한 거니까.”
“하지만 혼자서 괜찮을까요?”
“괜찮아. 숲에 혼자 있는 건 익숙한 일이니까.”
“아니, 그, 확실하게 저주는 아니지만 뭔가 벌어질지도 모르고. 혼자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타티아나가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렵게 말한다.
“….”
그런가.
타티아나도 저주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게 어쩌면 다른 뭔가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역시 이건 저주는 아니지만 저주만큼 곤란한 뭔가 일수도.
그렇게 생각하자 어깨가 다시 축 처졌다.
결국 만일을 위해 둘이 함께 가기로 했다.
타티아나가 재빨리 구석 선반에 있던 물건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는 다소 커 보이는 가방에 소꿉놀이 장난감 같은 작은 물건이 연이어 들어갔다.
작은 천 주머니 여러 개와 각시탈 비슷하게 생긴 손바닥만 한 나무 가면, 저주할 때 쓰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짚과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 몇 개.
아무래도 저주에 쓰이는 물건처럼 보이는데.
나는 무심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건 다 뭐야?”
“아, 이건 마녀들이 많이 사용하는 물건이에요. 다 필요한 거죠.”
“그… 혹시 저주 같은 거?”
“어떻게 아세요?”
아니, 보면 알겠지.
딱 봐도 저주에 쓸 법한 물건들이잖아.
타티아나는 선반에 있는 물건을 다 넣은 뒤 꼼꼼하게 가방 입구를 묶었다.
“너도 누군가한테 저주를 하나?”
문득 그렇게 묻자, 타티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주는 하지 않아요. 이건 저주를 막아주는 물건이죠. 사람 대신 인형에 저주를 받거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 같은 거예요. 때로는 위험을 인형이 대신 받아주기도 한다고 배웠거든요. 라파 씨가 혹시 위험해지면 이걸로 막으려고 준비했죠.”
“….”
아까 가방에 들어간 인형 중 하나에는 뭔가가 적혀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내 이름의 철자 앞부분이 적힌 것 같았는데, 설마 그거 내 이름이었나.
“고마워.”
내 말에 타티아나의 뺨이 붉어졌다.
“별말씀을요.”
“….”
어라, 부끄러워하는 타티아나의 모습이 왠지 좀 이상하다.
혹시 이거 그린라이트 아닌가.
나한테 굳이 붙어 가려고 한 것도 어쩌면 나한테 호감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다 나는 머리를 털었다.
내가 전생의 모습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을지 모른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전생은 평범한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생은, 하아, 생각해 봐, 나조차 어머니를 보고 어릴 때 무서워했던 외모다.
그런 얼굴한테, 잠깐 만나 파티를 꾸민 것 정도로 호감을 가진다고?
하하.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거야말로 판타지지.
나는 꿈꾸는 이팔청춘과는 거리가 멀다.
내 주제를 알아.
돈을 산처럼 많이 벌거나 권력이 있는 게 아니라면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건 불가능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순수하게 사랑하면 그게 가장 좋지만, 그렇게 깨끗하지 않아도 돈에 타협해서 나를 사랑해 줄 여자가 생기면 그걸로 족하다.
나는 방안을 돌아다니는 타티아나를 곁눈으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그렇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나를 좋아하게 될 리 없다.
이대로 같은 파티에서 좋은 관계를 쌓아, 외모를 이길 수 있는 만큼의 동료애를 만든 뒤, 돈을 잔뜩 벌어서 돈과 동료애의 힘으로 결혼에 골인하면 그게 최선이다.
‘그렇지.’
희망과 이상은 높게 가지되, 실현 불가능한 꿈은 꾸지 않는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숙소 주인에게 스튜와 빵을 따로 구입한 뒤 나와 타티아나는 도시를 나왔다.
이 세계는 풍성한 자연 속에 도시가 덩그러니 들어가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도시에서 한 발자국만 나오면 대부분 인적 없는 숲이나 잡풀투성이 들판이다.
엔데스 역시 성벽 근처에는 밭이 꽤 넓게 펼쳐져 있지만 조금만 방향을 달리하면 보이는 곳에 숲이 있었다.
나는 타티아나를 데리고 그 숲으로 들어갔다.
비록 같은 땅이라 해도 숲으로 들어가면 그 순간 주변 기온이 낮아진다.
타티아나는 제대로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있지만, 나와 달리 몸이 작고 피부도 얇다.
조금 추웠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괜찮아?”
배낭에는 양모로 짠 모포가 한 장 있다.
추우면 그거라도 덮으라고 줄까 싶어 묻자, 타티아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조금 생각하는 것처럼 숲을 둘러보았다.
“미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에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요. 이 숲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신의 영역 이전인 것 같은데, 그건.
단순히 지금 기분이 나쁜 거 아닌가?
타티아나가 숲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한다든가, 그런 느낌도 아니고, 그냥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뿐이니까요. 일단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내 질문에 대한 답인 것 같은데, 마녀의 머릿속은 잘 모르겠다.
대답이 이상해.
나는 그녀의 중얼거림은 대강 넘기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짐을 내렸다.
추워하는 것 같으니 모닥불부터 피운다.
큰 돌을 몇 개 찾아 스튜가 든 쇠냄비를 올린 뒤, 나는 약간 떨어진 장소로 향했다.
렐라는 한동안 내 팔에 뛰어들어 튕겨 날아가는 걸 즐겼지만, 이제는 힘이 드는 모양이다.
타티아나와 함께 모닥불 옆에 남았다.
문득 돌아보니, 오뚜기처럼 다리를 감추고 앉은 채 가만히 불빛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사조라 그런가, 불이 좋은 모양이다.
불꽃이 튀자 그 방향으로 렐라가 꿈쩍 움직였다.
방금 피곤한 것처럼 앉아있더니 금세 활기차진다.
불이 흔들리며 허공으로 치솟자 그걸 잡으려는 것처럼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쥐고 있던 주먹을 펴 허공에 가만히 손을 놓았다.
피부에 두른 바람은 여전히 팔을 지나 손가락으로 흐른다.
정령의 갑옷 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막히는 느낌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혹시 사라진 건가 싶어 손을 대자 여전히 그 자리에 뭔가가 있다.
하지만 내 바람만큼은 아무 저항 없이 그 갑옷을 뚫고 흘러갔다.
‘정말 이상하네.’
그러면 단순히 내 바람처럼 취급하면 될까.
그렇게 생각하고 의식을 집중했지만 내 손을 두르고 있는 갑옷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내가 갖고 있던 힘과는 다르다.
‘이건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한숨이 나올 것 같다.
근처에 있는 나무에 손을 대자, 역시 콰직 콰직 부서졌다.
몇 번 그걸 되풀이하면서, 나는 이 힘이 내 것과는 확실하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내 힘은 바람이지만, 이 갑옷은 아무래도 진짜 갑옷 같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뿐, 뭐든 부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진 게 내 손에 입혀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번에는 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다는 느낌으로 나무에 손을 대본다.
“아!”
나무는 다시 부스러져 옆으로 넘어갔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다.
조금 전에는 손을 대는 순간 완전히 부서졌지만, 방금은 뭔가에 살짝 부딪힌 느낌으로 나무가 부러졌다.
그 뭔가가 너무 강해서 살짝 닿은 걸로 금이 갔다, 뭐, 그런 느낌으로.
“그런가. 내 몸에 면도날로 만든 갑옷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나.”
엄청나게 단단하고 강한 면도날 같은 게 있어서 닿기만 하면 다이아몬드고 콘크리트고 모두 부서져 버리는 거지.
내 힘이 강해진 게 아니라, 단순히 굉장히 단단한 게 내 피부에 한 겹 더 입혀져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손으로 뭔가를 만지니 모조리 부서지는 거야.
“….”
대강 현상은 알겠는데,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네.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은 똑같다.
그렇게 생각하다 나는 무심코 내 팔을 내려다보았다.
“어.”
가만있어봐라.
내가 뭔가를 끼고 있는 거면 벗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나는 보이지 않는 갑옷을 왼손으로 잡고 살짝 당겼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안 되는 건가.’
역시나인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리 없겠지.
실망하다 무심코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갑옷 따위 원한 것도 아닌데. 벗고 싶다고.”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감각이 손에 스몄다.
아무것도 변한 건 없는데, 뭔가가 찰랑 찰랑 피부에서 튕기는 느낌이었다.
손을 만져보니 아무것도 없다.
단단하게 피부를 덮고 있던 건 어디론가 사라져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없어졌나.
시험 삼아 다시 나무를 만져봤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뭐야,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단순히 벗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거였어.
그렇게 생각한 뒤, 나는 타티아나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정령의 게약이 완성됐다고 했지.
‘내가 벗고 싶다고 말하니까 없어졌어.’
그렇다면 설마.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갑옷….”
을 끼고 싶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갑옷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뭔가가 내 오른손 피부에서 찰랑 했다.
말 그대로 찰랑이다.
공기가 튕기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수면이 찰랑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만져보니 조금 전 없어졌던 투명 갑옷이 다시 내 오른팔에 돌아와 있었다.
음성인식 시스템이었구나.
끼고 벗는 방법은 알아냈는데, 어쨌든 훈련은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생계랸을 깨지 않고 손에 쥐는 법이라든가, 그런 거.
그 뒤 잠시 동안은 나뭇가지를 쥐거나 돌을 부수지 않고 잡는 걸 연습했다.
동작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닿는 순간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냥 치고받고 싸우는 게 훨씬 쉬울 것 같다.
타티아나는 나한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인지 멀리에서 가끔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삐빗, 삐빗.
어느새 다시 기운이 넘친 렐라가 사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스튜가 끓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향긋한 냄새가 이곳까지 퍼진다.
슬슬 식사할까 생각하며 모닥불로 걸어가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렐라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삐빗?
벌레라도 발견했는지 제자리를 돌며 콕콕 바닥을 쫀다.
“렐라야, 이제 그만 이리 와서 밥이나.”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별안간 렐라가 서 있는 자리가 푹 꺼지면서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