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506
〈 빌어먹을 환생 507화 〉 찬란한
너무나도 파격적인 발언. 정원에 모인 기자들도 아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멍청히 입술만 벌리고서 단상을 올려다보았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한참 늦은 것은 맞다.
늦은 시간만큼 땡볕 아래에 서 있었으니, 불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기자 중에서 대체 누가, 저 유진 라이언하트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할 수 있겠는가? 불만이 있어도 알아서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심지어 유진이 대놓고 불만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모인 기자 중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냥, 알아서 시선을 피했다. 이 순간에 기자들 대부분이 새삼 자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동화책의 내용을.
위대한 베르무트를 필두로 한 5명의 영웅들 중에서, 가장 성격이 더럽고 망나니처럼 굴던 남자가 누구였는지를.
300년의 시간을 넘어, ‘유진 라이언하트’라는 이름의 용사로 환생했을지언정- 저 남자의 본성이 어떠한지를.
“거, 불만들 있는 것 같은데, 속으로 엄한 생각 말고. 불만 있으면 까놓고 말합시다.”
단상 위에 올라온 유진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곧 유진은 기분이 언짢아져 눈썹을 왈칵 찡그렸다.
“아니, 사람 불러다 놓고 의자도 안 깔아두면 어떡해? 댁들은 의자에 앉아도 되고, 나는 그냥 서서 떠들라는 거야 뭐야? 이거는 너무 좀, 경우 없는 상황이지 않나?”
단상에 의자가 없었다. 사실 유진은 의자가 있건 없건 평소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까짓 몇 시간 일어서서 떠든들 다리가 아파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때에는 일일이 꼬투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대로’ 하기로 해서가 아니라,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기자란 족속들은 의자에 앉아 있고, 자신은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드잡이를 해놔야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어쩜 저렇게 속이 뻔히 보일 수가…….]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유진의 꼬라지를 보던 아니스가 탄식을 흘렸다.
‘저런 당당하신 모습이 용사에 지당하십니다.’
[크리스티나……! 그렇게나 억지로 하멜을 두둔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하멜의 꼬라지는 열 살배기 코흘리개도 하지 않을 유치하고 추한 짓입니다.]‘그 순수함조차도…….’
[제발, 크리스티나!]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크리스티나가 제법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진심은 아니스에게도 강하게 전달되었기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크리스티나의 광신에 저항했다.
“의자는…… 여기 있어.”
그 세냐조차도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유진의 뒤에 푹신한 의자가 나타났다.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네, 예의가 없어.”
유진은 투덜거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기자들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단상 위의 유진을 힐긋힐긋 쳐다보았다.
유진 라이언하트. 23살. 여기 모인 기자 중에서 유진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몸뚱이의 나이만 23살일 뿐, 영혼은 그 하멜 본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의 나이를 300살로 쳐야 하는가? 아니면 죽었을 당시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를 더해서 계산해야 하나?
“바쁜 사람 불러놓고서 왜 다들 아무 말도 안 하는 겁니까?”
유진은 널따란 의자에 몸을 기울이며 내뱉었다. 저 짜증 섞인 말에 기자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 기자회견 자체가 열렬한 구애로 얻어낸 것. 오늘이 아니면 다시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는 일.
“주간 키옐의 스프렌 브리드라고 합니다. 유진 라이언하트 님께 질문이…….”
“일일이 소속이랑 이름은 소개하지 맙시다. 어차피 나는 오늘 들은 당신들 이름을 기억할 생각도 없고, 가능하다면 다시 또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유진은 손사래를 치며 다리를 꼬았다.
“인당 질문은 한 번. 모른 척 한 번 더 질문을 하면, 회견은 거기서 끝입니다. 그리고 질문에 무조건 대답해 주지도 않을 겁니다. 대답하기 싫고 짜증이 나는 질문은 그냥 무시할 겁니다. 당연히 그 경우에 질문권은 소모한 거고.”
“…….”
“나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다시 침묵이 만들어졌다.
기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독점 기사도 아니고, 이런 공개적인 기자회견은 어차피 정보가 공유된다. 한 명당 한 개의 질문밖에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과 겹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기사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유진 라이언하트 님. 대체 어떻게 환생하신 겁니까?”
처음에 일어섰던 기자가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유진에게 질문했다.
“패스.”
“예?”
“패스라고요.”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하고 자시고, 유진은 환생에 관한 질문에는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베르무트가 환생시켜줬다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래서 유진은 손을 휘휘 저으며 질문을 넘겼다.
“…….”
질문이 묵살 당한 기자의 뺨이 씰룩거렸다.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기자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꿀꺽 침을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 정체를 밝히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마왕을 2명이나 죽였으니, 이제는 더 숨길 필요가 없다 생각했을 뿐입니다.”
유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저 말은 거짓말이다. 환생을 밝힌 것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이유 때문이다. 한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굳이 말하자면, 먼 위에서 보고 있던 가비드 린드먼을 약 올리기 위해 밝혔던 것이다.
차마 그 이유를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2명의 마왕을 죽여서……! 즉, 유진 님께서는 힘을 쌓으며 미래를 대비하고 계셨던 겁니까? ‘하멜’의 환생임을 누구나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혹은, 하멜의 ‘적’들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자가 냉큼 질문에 이어 물었다. 이번 질문에도 유진은 별 고민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예. 여태까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확신이 부족했는데, 마왕 2명을 죽여보니 힘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외에 정체를 숨겼던 것은…… 과거의 적들에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이언하트를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은 제법 진심이 섞여 있었다. 힘이 충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실제로 저런 생각을 하고서 정체를 숨겼었다.
“라이언하트……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감히 묻겠습니다. 과거, 라이언하트의 영지인 우클라스 산맥의 흑사자 성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혹, 그 사건도 유진 님의 정체에 관련되었던 겁니까?”
“당시 이오드 라이언하트는 300년 전에 죽은 살육의 마왕과 참혹의 마왕의 잔재에 홀렸었습니다. 여태까지 얌전하던 마왕의 잔재가 갑자기 날뛴 것은, 뭐, 원수의 존재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유진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이미 몇 년 전의 일. 하지만 이오드의 폭주는 앞으로의 라이언하트 역사에 다시 없을 수치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유진은 굳이 질문을 넘기지 않고, 애매한 태도로 대답해 주었다.
“아아……!”
“죽은 마왕들조차도 하멜 님의 존재감에 몸을 떤 것인가?”
“그렇다는 것은, 이오드 라이언하트의 폭주는 단순히 광기에 의함은 아니라는 것이군…….”
기자들이 수군거리며 노트에 바쁘게 글을 적었다. 유진은 오가는 이야기에 내심 흡족하여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와서 이오드의 명예를 챙겨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놈이 싸지른 똥을 수습하느라 잔뜩 늘어난 길레이드의 주름을 조금은 메워주고 싶었다.
“유진 님은 13살에 라이언하트의 전통인 혈계식을 치르셨고, 이후 라이언하트 역사상 최초로 본가의 입양아가 되어 백염식을 익히셨습니다. 본가의 양자가 되어 백염식을 익히는 것은 유진 님의 계획이셨습니까?”
“백염식이 욕심이 났던 것은 사실입니다. 베르무트 그 새끼의 백염식은 300년 전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유진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대답에 모든 기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유진을 쳐다보았다. 유진의 입에서 나온, ‘베르무트 그 새끼’라는 말 때문이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베르무트보고 새끼 거리는 것은 좀 그렇지 않아?”
“새끼가 새끼지 뭘. 난 아직도 가끔 그 새끼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아.”
“사실 나도 그렇기는 해.”
유진과 세냐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만약, 백염식을 익히지 못했다면? 그래도 지금만큼 강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정신을 차린 다른 기자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만큼 강해지지는 못할 겁니다.”
굳이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백염식을 익히지 않았다, 라는 전제부터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베르무트의 후손으로 라이언하트에 환생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백염식은 익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백염식을 익히지 않았다면? 그랬어도 언젠가는 지금만큼의 힘에는 도달했을 것이다. 백염식 대신에 제하드의 가문에 이어져 온 그저 그런 적염식을 익혔어도, 어떻게든 뜯어고쳐서 훨씬 낫게 만들었을 테니.
하지만 그랬을 경우, 지금만큼의 힘에 도달하는 것에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현재 유진의 나이는 고작 23살이다. 하멜로 죽었던 나이보다 어리다. 백염식에 입문하고서 이제 딱 10년밖에 안 된다.
전생의 기억. 아가로트의 신력. 그런 것들이 더해졌다고 해도, 10년 만에 대륙 제일에 서고 마왕을 단독으로 죽일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진이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이만한 힘을 얻은 것은, 라이언하트에 환생해서 백염식을 익혔기 때문이다. 베르무트의 안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언하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백염식을 익히지 않았다면?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 년은 더 필요했을 것이다.
“유진 님은 300년 전에 이미 많은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3명의 마왕을 죽였고, 수많은 마족을 죽이며 전장을 승리로 이끄셨죠. 그리고 최후에는 유폐의 마왕성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그냥 본론만 말합시다.”
“그…… 크흠, 예, 알겠습니다. 전생에 그만큼이나 세상을 위하셨는데, 환생한 삶에서는 조금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겠다,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은 없으십니까?”
기자가 헛기침을 섞으며 질문을 마무리했다. 유진은 이번에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지금도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유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하멜일 적부터 세상에서 마왕이란 놈들을 모조리 다 죽여 버리고 결심했고, 그렇게 살다가 내가 먼저 죽어버렸습니다. 어찌어찌 다시 태어났어도, 내 결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오……!”
딱히 여론을 의식해서 한 말은 아닌데, 기자들이 감탄성을 내지르며 유진을 우러렀다. 문틈 사이로 그 광경을 보던 크리스티나도 탄성과 함께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시스터, 들으셨습니까? 아아, 유진 님은 어찌 저리도 고결하신지요! 이 세상에 용사라는 단어는 오직 유진 님에게만 어울립니다.’
아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에 뭔가가 단단히 씌어버린 크리스티나에게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사실 아니스 본인도 저 말에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유일한 마족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진은 그 거구를 고깝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뭐라 핀잔은 주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어보쇼.”
“유진 님은 헬무드 제국과의 전쟁을 바라시는 겁니까?”
마족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 질문에 모든 기자들이 눈을 빛내며 유진을 쳐다보았다. 저것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이 가장 궁금하고 듣고 싶어 하는 답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유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생각할 필요가 있는 질문이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투로 대답해야 할지는 고민이었다.
“전쟁을 바라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닐 텐데?”
유진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몸을 기울여 마족을 노려보았다.
“나도 300년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자각은 하고 있어. 옛날에는 마족이라면 무조건 죽여야 할 적이었고, 흑마법사는 동족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마족의 앞잡이가 되어 인간을 팔아넘기는 개새끼들이었지.”
표정이 사나워진 만큼 말투도 사나워졌다. 유진은 굳이 살기를 숨기지 않았다.
“내가 뒈지고서 300년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마족은 그럭저럭 대화를 나눌 만한 상대가 되었지. 네가 지금, 내 앞에 멀쩡히 살아서 질문이란 것을 하고, 내가 무시하지 않고 대답해 주는 것 부터가 세상이 변했고, 내가 나름 적응하려 노력했다는 증거야.”
끔찍하고 거대한 살의가 마족에게 집중되었다. 정장을 입고 안경을 썼어도, 그는 헬무드 내에서 무투파인 마족이다. 100위 안에는 들지 못해도 제법 높은 서열에 올라 있기도 하다.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유진에게 있어 공작급을 제외한 마족은 모두가 평등하게 하찮았다. 최하위 서열의 마족이건 최상위 서열의 마족이건, 지금의 유진에게는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그러니 네 질문은 무시하지 않고 대답해 주지. 헬무드와의 전쟁을 바라느냐고? 아니. 내가 바라는 것은 헬무드가 아닌, 마왕과 마족과의 전쟁이다.”
“그…… 그건…….”
“나만 전쟁에 미친 살인광으로 생각하지 마. 평화가 어쩌고 떠들던 유폐의 마왕도 나와 똑같이 전쟁을 바라고 있지 않나? 그건 마족들도 마찬가지지. 당장 며칠 전 하우리아에서 내 앞에서 얼쩡거리다 죽은 마족이 몇 명인지는 아나?”
마족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유진은 여전히 살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애당초 내가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들어도. 유폐의 마왕이 그것을 바라지 않을 거다. 놈은 이미 평화의 끝을 예고했지. 요즘 마족들은 유폐의 마왕이 평화주의자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유진은 그렇게 이죽거리고 난 뒤에 살기를 거두었다.
그제야 마족은 숨을 헐떡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기는 걷혔지만 좌중의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유진은 침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더 물어볼 것도 없는 모양인데, 슬슬 여기서 그만…….”
“질문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그 목소리에 유진은 얼굴을 왈칵 구겨졌다.
“유진 님과 세냐 님은 정확히 어떤 사이인지,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십시오!”
어울리지 않는 안경을 쓴 멜키스가 땅에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