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괴물의 해일을 가까스로 막아 낸 후.
우리는 선로를 따라 쭉 걸었다.
이따금 지하철 내부의 괴물들과 전투를 피할 수는 없었으나.
하지만 지하에 있는 괴물들은, 지상의 괴물들에게 밀려난 약한 개체가 대부분.
지상에서 압도적인 수에 고전했던 것과 달리, 지하에 상주하는 괴물의 수는 한정적이었다.
“나 이제 오더 안 할 거야. 네가 해.”
“네.”
하이람은 그사이 오더 권한을 넘겼다.
오더가 체질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질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혜 언니, 괜찮아요?”
“응.”
에르제베트와 가까워질수록, 은혜는 힘들어했다.
어떤 마법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저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혜는 자주 답답함을 호소했고, 호흡이 잘 안 되는 듯 멈춰 서서 심호흡하기도 했다.
설아는 그런 은혜가 걱정스러운 듯, 품에서 내려와 제 발로 걷고 있었다.
‘이런 거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설아는 자신의 불행에서 멀어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었다.
하지만 아자누스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운명이란 쉽게 피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무거울 텐데.”
“아닙니다. 쉬세요.”
백재현은 내게 업혀 있었다.
오승훈도 사냥꾼인 만큼 성인 남자 하나 업고 있는 게 힘들진 않겠지만.
장시간 이동하다 보니, 아무래도 쉴 시간 정도는 필요했다.
지금은 검성이 선두를 맡고, 내가 바디 역할을 하며 백재현을 업고 있었다.
“몸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백재현은 괜찮다고 했지만,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사냥꾼이라서 버티고 있는 거지, 일반인이라면 쇼크로 기절했을 수준의 상처였다.
그 증거로 백재현은 혈색이 희미했고,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고희연이 기웃거리다가 질문했다.
“저희 어디쯤 온 거예요?”
“거의 다 왔어. 이제 1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그렇구나. 힘내죠! 에르제베트, 그분도 구출하고, 보스도 확인하고!”
상황은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부상자에 어린아이가 있고, 길게 버틸 물자도 없는 상황.
고희연이 특유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 준 덕에, 그래도 분위기가 조금 나아졌다.
“서준 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만.”
“네. 무엇입니까?”
“만약 보스 때문에 그 마법사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검성은 고희연과 달리 냉혹할 정도로 현실을 보고 있었다.
항상 고려해야 하는 건 최악의 상황.
검성이 보스의 위치를 잘못 파악했다거나, 보스가 이동했다면 좋겠지만.
최악의 경우 보스가 에르제베트에게 가는 길목을 막고 서 있을 수도 있다.
“어쩔 셈인가?”
보스의 공략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보스의 강함은 거의 그 크기에 비례한다.
소형 던전의 보스는 약하고, 대형 던전의 보스는 대체로 강하다.
그런데 나라를 던전으로 두고 있는 보스라니.
적어도 아자누스, 그 이상일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검성에, 설아까지 있다지만.’
검성은 내가 알던 검성과 차이가 있었다.
부산에서 검성이 사용하는 참(斬)을 보고 확실히 느꼈다.
회귀 전 검성과 지금의 검성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웬만한 사냥꾼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강한 게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이는 설아도 마찬가지였다.
‘설아도 자기 힘을 완전히 사용하진 못해.’
에르제베트가 마법을 가르쳤다지만.
출력을 낮추는 방법과 몸을 지키는 마법 위주로 배웠다.
아자누스 때처럼 단순히 마나를 지원하는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 마나를 다루려면, 왕의 반지에 있는 영혼을 대부분 소모해야겠지만 말이다.
아자누스 때는 방법이 없었다지만, 리스크가 너무 큰 건 사실.
“생각이 있습니다.”
* * *
우리는 끝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블러드 크로우에게 들켜서 주변 괴물들을 다 끌어모으는 대참사를 피해야 했다.
그래서, 설아에게 괴물의 위치를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검성이 잠깐 클리어를 위해 고희연과 역내로 갔을 때 말이다.
설아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대따 큰 괴물 말고 없는데.”
“대따 큰 괴물?”
“응. 하늘만큼 땅만큼 커요.”
설아는 괴물의 크기를 표현하듯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래 봤자 팔이 짧아 그다지 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아무튼 설아가 말한 ‘대따 큰 괴물’은 보스일 확률이 농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역에는 유독 괴물이 많았지?”
“아마 보스를 피해 도망친 것 같아.”
“괴물이 괴물을 피해서 도망치기도 해?”
“가끔 있어. 제 영역을 침범하면 일단 죽이고 보는 타입.”
은혜는 그렇구나,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여전히 이따금 답답함을 호소하긴 하지만.
어떻게 했는지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보스가 있는 건 확실해졌네.”
“아무래도 보스겠죠.”
하이람의 말마따나, 보스가 있는 건 이로써 확정됐다.
먼 지하에 있는 작은 괴물 한 마리까지 느낄 수 있는 설아가 한 말이다.
아마 헬기에 불덩이를 날렸던 예의 보스가 분명했다.
문제는.
‘그게 뭔지 모른다는 건데.’
나는 던전, 대한민국의 보스를 모른다.
물론 대한민국의 던전화는 회귀 이전에도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 보스 공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안전지대의 상황이 좋지도 않았기에, 한참 후에 공략이 시도됐다.
그런데 그 존재를 확인하기도 전에, 설아가 치워 버린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설아가 괴물 취급을 받는 계기가 됐지.’
이미 던전화 이전에 사냥꾼 협회와 마탑을 무너트린 설아는 지명수배 상태였다.
설아의 목적은 보스의 공략이 아니라, 공략대의 몰살이었다.
공략대 사이에 대한민국의 마탑주, 차유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냥꾼들은 차유현에 대한 공격에 휩쓸린 셈이었고, 심지어 보스 또한 그랬다.
결국 당시 편성됐던 공략대 중 살아 돌아온 인원은 검성을 포함한 소수가 전부였다.
‘그때가 기점이었고.’
그때 이후로, 고려검가는 설아와 완전히 척졌다.
공략대에 편성되어 희생된 인원 중, 검성의 자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희연은 당시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탓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어머니와 아버지는 포함되어 있었다.
고희연의 성격이 지금과 달랐던 것도 아마 그 사건이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 만약 맞닥뜨린다면.”
“괴물도 생명입니다.”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할 것 같네.”
조금 뜬금없는 소리에, 하이람이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괴물도 생물체라는 얘기입니다. 호흡하고, 식사하고, 배설하죠.”
“그야 그렇지. 인간을 우선순위로 둘뿐, 배고프면 서로 잡아먹기도 하는 놈들인데.”
“지금 부산에 있는 대한민국의 보스가, 생물체라면. 골렘이나 언데드 같은 예외가 아니라면.”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듯, 하이람이 고개를 들었다.
“잠을 자겠지.”
“맞습니다. 잘 때를 노려서 이동할 계획입니다.”
“그게 될까?”
“설아의 말에 의하면 괴물은 더럽게 큽니다. 상대적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큰 괴물은 인지능력이 떨어져?”
“코끼리가 날벌레를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하이람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덧붙였다.
“왜 하필 날벌레야?”
“예를 든 거죠.”
* * *
바깥은 부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건물이 무너져 있고, 도로가 완전히 박살 나 있긴 했지만.
적어도 지하철에 들어올 때처럼 괴물이 우글거리진 않았다.
‘너무 조용한데.’
아직 해 질 무렵이었는데, 늦은 새벽에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보스는 은혜와 검성이 교대로 감시하며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보스가 잠자리에 들자, 곧바로 나온 것이었다.
검성과 은혜가 눈빛을 주고받더니, 검성이 수신호를 보냈다.
‘각별한 주의 요망.’
보스 코앞을 지나가는 건 아니지만.
보스의 시계 안쪽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기척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특히 설아를 안고 있는 은혜와, 백재현을 업은 오승훈이 문제였다.
다행히 둘 다 기척을 곧잘 숨겼기에, 들킬 것 같진 않았다.
특히 은혜는 인상적이었는데, 뒤에 있는데도 자꾸 확인해야 할 만큼 기척이 옅었다.
‘저게.’
그리고, 건물 사이로 언뜻 보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설아에게 크기도 들었고, 은혜와 검성이 설명하긴 했지만.
멀리서나마 실제로 마주하니, 자연스레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보스.’
노을을 등진 채, 용이 잠들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보스로 추정되는 괴물, 드래곤이었다.
엎드려서 잠을 청하고 있었지만, 그 크기는 아자누스와 엇비슷했다.
단순히 크기를 무기로 휘두르며 건물을 부수고 다니던 아자누스다.
브레스를 사용하고, 지능도 높은 드래곤은 아자누스보다 몇 배는 더 강할 것이다.
“허어.”
백재현이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토했다.
곧바로 진정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긴장했다.
‘걸리면 죽는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들키면 끝장이라는 걸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그 불덩이만 날아와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설아가 있긴 했지만, 미숙한 대처로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전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포지션 변경.’
앞서가던 검성이 검지를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은혜는 제 입을 합 틀어막고 있는 설아를 하이람에게 넘기고, 앞으로 나왔다.
에르제베트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건 은혜다.
은혜는 선두에 서서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저거랑 가까워지는 건 피하고 싶은데.’
하필이면, 은혜는 드래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에르제베트가 있는 방향이 드래곤이 있는 곳 근처인 것 같았다.
드래곤 때문에 이동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방법은 없었다.
후퇴하기엔 물자가 부족한 상황.
어떻게든 에르제베트를 구출해야만 했다.
‘강행.’
이동을 강행했다.
사람들은 확연히 긴장한 듯했다.
드래곤이 잠든 게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검성이 있었던 덕분일까.
어떻게든 떨지 않고 드래곤 정면으로 이동했다.
가까이 갈수록 그 크기가 확연히 체감됐다.
‘더럽게 크네.’
주변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걸로 보아, 대충 쓸어버려 보금자리를 만든 것 같았다.
똬리를 튼 것처럼 웅크려 자고 있었는데, 머리에 난 뿔이 인상적이었다.
더운 숨결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은혜가 멈춰 섰다.
‘여기다.’
수신호를 보내온다.
우리는 은혜의 손가락을 따라, 아래쪽을 봤다.
그곳에는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
축구 경기장 크기를 아득히 웃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싱크홀.
무저갱이라고 부를 만한 장소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