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애옹.
고희연은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나무 아래 드리운 그림자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고희연은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넌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이서준이 챙겨 온 건 아닐 것이다.
설마 혼자 성북에서 여기까지 온 걸까.
고양이는 꼬리를 세운 채 고희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고희연은 소복이 쌓인 눈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봤다.
‘앗. 귀엽다.’
고희연은 길고양이에게 으레 그러듯이 손을 살짝 내밀었다.
고양이는 그 손을 빤히 보더니, 고개를 들어 고희연을 올려다봤다.
먼저 다가온 것도 그렇고, 손을 내밀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다지 경계하는 것 같진 않아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봤다.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았다.
“손 치워 줄래?”
“꺅!”
고희연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갑자기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고양이를 보던 고희연은 그제야 눈치챘다.
그 고양이가 이서준이 키우던 고양이와 똑같다는 것을.
눈동자의 색깔이 달라서 다른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에르제베트 언니?”
“그래. 이서준은?”
“아니. 언니, 고양이셨어요?”
“무슨 소리야.”
캐시는 사뭇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희연을 쳐다봤다.
고양이에게 선명한 표정이 드러나자, 괜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잠깐 몸을 빌린 거야. 연락책으로 쓰려고.”
“마법이구나.”
“그렇지.”
고희연은 신기하다는 듯 캐시를 살폈다.
눈동자의 색깔이 바뀐 것으로 구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서준은?”
“아. 지금 방에서 골골대고 계실 텐데.”
“뭐 했는데?”
“훈련을 좀.”
* * *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돌아갈 생각이야.”
캐시의 몸을 빌린 에르제베트는 침대에 누운 이서준을 올려다봤다.
이서준은 정확히 고희연의 표현 그대로 골골대고 있었다.
자그마한 찰과상도 보였고, 피곤한 듯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훈련을 했다던데, 조금 무리하게 몰아붙인 모양이었다.
“그 몸으로? 오다가 괴물 만나서 죽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거든.”
이서준은 나름 오래 훈련해 온 만큼, 자신의 컨디션을 관리할 줄 안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건 좋지만, 과도한 훈련은 독이 될 때가 많다.
피로가 누적되면 다음 훈련 때도 지장이 생길뿐더러, 몸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이서준이 무리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설아 때문에 그래?”
이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르제베트는 이서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과거로 돌아오면서까지 설아를 구해 낸 이서준이다.
그런데 미래의 설아는 그대로 불행한 상태라고 한다.
심지어 그 설아는 이서준을 죽이고자 현재, 이 시점으로 온 상태.
이서준이 얼마나 허무하고 처참한 마음이었을까.
“……그런 거 아니야.”
에르제베트는 이서준을 안쓰럽다는 듯 바라봤다.
캐시의 몸을 빌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서준은 화제를 돌렸다.
“수색은 어때?”
“별다른 소득은 없어.”
“그럼 근처에는 없다는 건가?”
이서준은 조금 마음을 놓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숨어 있을 확률이 있어.”
“숨었다고? 왜?”
“글쎄. 아마 미래의 설아 때문일지도.”
마구엘은 미래의 설아에게 제압당했다.
몇 달 동안 얼음 속에 갇힌 건 썩 좋은 경험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래의 설아에게 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숨었다.
여기까지가 에르제베트의 가설이었다.
“만약 숨었다면 지금 찾는 방식으로는 못 찾아.”
“설아 능력으로도 힘든 거야?”
“설아의 힘은 강해. 한 번에 넓은 지역을 수색할 수 있지. 하지만, 정교하진 않아.”
“마나를 숨기면, 못 찾는다는 건가.”
“아마 감지하겠지. 하지만 서울에 마나 반응이 몇 개나 있다고 생각해?”
마나를 지닌 사람은 꽤 많다.
사냥꾼들, 비전투 직업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괴물들까지 포함하면, 수백 수천만에 달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하나의 마나 반응만 추려 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 이제 수색은 소용없게 된 거야?”
“그건 아니야. 숨었다는 건 가설일 뿐이고. 마법을 사용하면 더 정교한 수색이 가능하니까.”
“설아한테 마법을 가르치겠다?”
“저번에 말했던 공격 마법을 포함해서. 일단 색적 마법을 알아 두면 유용하거든.”
이서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성북에는 무슨 일 없지?”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가야 할 것 같아서.”
“과보호야. 애초에 성북 외부에서 뭔가 들어오려고 하면, 내가 알 수 있어.”
“색적 마법?”
“비슷한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데리러 올 테니까, 여기 있어도 돼.”
“애가 된 기분이구만. 일단 알았어.”
이서준이 강해지는 건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 있을 일을 대비해서라도, 이서준은 강해져야 했다.
“참.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만약 숨었다고 가정하면, 어디부터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서준은 회귀 전 한평생을 설아만 찾아다녔다.
실제로 이서준을 피해 숨은 마탑의 마법사도 속속히 찾아냈다.
찾는 것에 한해서는, 이서준의 조언이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이서준은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속담이 있어.”
“속담?”
“등잔 밑이 어둡다. 나라면, 일단 근처부터 찾아보겠지.”
아마 성북이 안전한지 재검토하겠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확실히 근처를 잘 찾아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는 법이다.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네.”
* * *
박수빈은 자신의 기억상실을 알고 있었다.
강대호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돌아올 거라고 했지만, 두려웠다.
박수빈이 잊어버린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그 시간은 인생의 대부분이나 다름없었다.
박수빈은 알버트 인형을 끌어안은 채, 기억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으우.”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노력해도, 명료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약품 냄새, 병원에서의 기억만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박수빈은 결국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어른, 강대호에게 얘기했다.
“병원에 가고 싶어요.”
“병원? 왜?”
“……안 돼요?”
박수빈은 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고 생각했다.
그 따뜻한 분위기에 어울리기는 힘들었지만 말이다.
일단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대호는 더 이유를 묻지 않고, 이를 승낙했다.
“좋아. 한번 가 보자. 그리 멀지도 않으니까.”
강대호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 박수빈이 신경 쓰였다.
눈치를 보는 건 어딜 봐도 보일 수밖에 없었고, 항상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대호는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은커녕, 맡아 본 경험조차 전무했다.
스펙터 내에서 하이람을 제치고 설아를 대하는 데에 가장 서툰 강대호다.
일단 박수빈의 보호자를 자처했지만, 어떻게 달래 주거나 도와줘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먼저 외출을 제안하니 잠깐 바람이나 쐴 겸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은혜야. 나 수빈이 데리고 밖에 좀 나갔다 올게.”
“어디 가세요?”
“산책!”
강대호는 간단하게 집주인에게 얘기해 두고, 박수빈을 껴입혔다.
다행히 박수빈은 그다지 또래에 비해서 크거나 무거운 편이 아니었다.
설아의 패딩도 어떻게든 입힐 수 있었다.
“가자.”
행여나 놓칠까, 강대호는 박수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수빈은 조심스레 강대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둘은 집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 * *
박수빈은 병원에 가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북의 병원은 저녁임에도 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전쟁에서 생긴 부상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나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이미 치료를 다 받은 상태.
지금 병원을 전전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치료받을 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상대적으로 크게 다치진 않은 사람들이었다.
“후. 하.”
한편, 강대호는 차가운 겨울의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고민하고 있었다.
어린아이와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이서준과 유은혜를 보면, 설아와 이것저것 꽤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심지어 분위기도 꽤 좋다.
하지만 강대호는 박수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아무 얘기나 할 수도 없고.’
원래였다면 그랬겠지만, 상대는 심적으로 불안한 어린아이.
아무리 단순한 편인 강대호도 일단 어른이고, 배려라는 걸 할 줄 안다.
박수빈과 공통 화제를 찾기 위해서 고민하던 강대호는 문득 설아를 생각해 냈다.
“설아, 예쁘지?”
“딸꾹.”
박수빈은 화들짝 놀랐다.
사랑을 알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
하지만 그렇기에 순수하게 호의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이기도 했다.
박수빈은 이미 설아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한 전적이 있다.
확실히 거절당한 만큼, 지금은 흑역사였지만 말이다.
“……몰라요.”
“그러냐.”
보통 알아차렸을 것이다.
명백히 상기된 박수빈의 볼과 당황한 말투를.
그러나, 강대호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강대호는 연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흠! 뭐라 말할 게 없군! 여기선 깔끔하게 포기한다!’
강대호는 결국 대화를 포기했다.
뭐든 간에 급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박수빈은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병원을 살피고 있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 있던 병원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툭.
그때였다.
누군가 박수빈을 스쳐 지나갔다.
알버트 인형이 바닥에 떨어졌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힐끔 박수빈을 보곤, 가던 길을 갔다.
강대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보쇼! 사과라도 해야지!”
강대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못 들은 척 병원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강대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허, 참.”
하지만 뭐라 하는 대신, 알버트 인형을 주워 줬다.
박수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인형이 떨어진다.
-너는 원래 여기 오면 안 돼. 숨어 있어.
형은 분명 박수빈에게 숨어 있으라고 했다.
박수빈은 잘 보이지 않는 책상 아래로 숨었다.
평소에는 천막에서 지내지만, 원래 전쟁터에 오면 안 되는 몸.
박수찬은 수서의 광신도들을 들일 때 박수빈을 숨기곤 했다.
그리고, 누군가 형의 목에 칼을 찌르는 걸 봤다.
-올 줄 알았어요.
-너 뭐야. 왜 안 죽어?
-믿음 있는 신자는 죽지 않습니다.
박수빈은 그때의 일을 정확히 기억한다.
수서의 신도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박수찬과 싸우기 시작했다.
박수찬은 저주를 사용해 반격했지만, 남자는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주를 받아 내며 박수찬을 공격했다.
-어억!
처음에는 차분했던 남자가 점점 바뀌었다.
박수찬은 시종일관 열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남자는 강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난폭해졌다.
-도, 동생이 있어!
박수찬은 죽기 직전, 박수빈이 숨은 책상 쪽을 흘긋 보며 말했다.
남자는 박수찬을 몰아붙이고 되물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동생은 어떻게 살아?
-내 딸을 죽이려고 했던 놈이 할 말인가?
박수빈은 그제야 그 남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박수찬이 마녀사냥 하고자 했던 아이, 이설아의 아버지.
-신을, 신을 아직 만들지 못했는데.
-신 같은 건 없어.
박수빈은 이서준이 박수찬을 죽였다는 걸 기억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