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gic doll is Gigant RAW novel - Chapter (24)
24. 세 번째 이계 난민.
“쿠오크! 내 칼은 금이 갔다. 무기를 다오!”
“쿠오크! 내 도끼는 자루가 부러졌다!”
“오오크! 더 강한 무기 필요하다!”
다른 오크들도 자신의 무기를 보이며 소리쳤다.
대부분 이가 나가고,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무기들.
내가 오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면, 거구의 오크 깡패들이 칼과 도끼를 들고 나약한 인간을 겁박하는 것으로 오인하기 좋은 장면이었다.
일단 이들의 사정을 알아봐야겠다.
“조용!”
“쿠옥?”
“쿠오오크?”
오크들이 일제히 놀란 표정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쿠훌린 용병대장은 손가락으로 자기 귀를 후볐다.
“쿠오크!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야! 제대로 들었어. 내가 한 말이다.”
“쿠옥? 어, 어떻게 인간이?”
“쿠오크! 인간이 오크 말을 한다!”
오크들은 경악했고, 타냐는 기간트 해치까지 열었다.
치이익! 철컹!
“뭐, 뭐야? 당신, 어떻게 저놈들 말을 하는 거지?”
“타냐 용병대장 일단 기다리시오. 오크들과 대화부터 하고.”
내가 앞으로 나서자, 쿠훌린이 도끼를 겨누며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쿠오크! 너는 누구인가? 어째서 오크 말을 아는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상태창으로 배웠다고 하면 믿을까?
아니면 다른 오크 무리에게 배웠다고 해?
그때였다.
무리 뒤쪽에서 한 오크가 앞으로 나섰다.
“오오크! 당황하지 마라! 오크여!”
그는 온몸에 주렁주렁 장신구를 매달고 있었고, 얼굴에 붉은 칠을 한 특이한 오크였다.
“쿠오크! 레드불 제사장, 무슨 가르침이 있는가?”
그는 오크들의 제사장이었다.
레드불 제사장이 들고 있던 메이스로 날 가리켰다.
그리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오오크! 저 인간의 몸에 선조의 영혼이 강림했다!”
뭐?
선조의 영혼? 무슨 말이야?
“쿠옥? 레드불이여! 그게 말이 되는가? 인간에게 오크 선조의 영혼이라니?”
쿠훌린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오오오크! 의심하지 마라! 쿠훌린 족장이여! 그럼 어떻게 인간이 오크 말을 저리 잘하는가? 게다가 그의 말투는 우리 사이얀족과 같지 않은가! ”
“맞다! 그의 말투는 우리와 같다.”
“인간의 몸에 사이얀 선조의 영혼이라니! 불가능하다!”
“아니다! 저건 선조의 영혼이다!”
이거 제사장이 날 도와주네!
오크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떠들기 시작했다.
슬쩍 살펴보니, 제사장의 말을 믿는 오크와 의심하는 오크가 반반 정도 섞여 있었다.
그럼 나머지 반도 완전히 믿게 해줘야지.
“들어라! 레드불 제사장의 말이 맞아! 내 몸엔 오크 선조의 영혼이 깃들었다! 그것도 아주 높은 신분의 오크다.”
“쿠오크? 설마, 대족장인가?”
오크들이 살짝 입을 벌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선조의 영혼을 잇는 자! 오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인간의 몸에 직접 강림했도다.”
“쿠오오오크!”
“쿠오오크!”
쿵! 쿵! 쿵!
오크들이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자신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눈치를 보니 이건 좋은 징조였다.
쿠훌린이 손을 들어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쿠오크! 선조의 영혼을 잇는 자여! 우리를 돕기 위해 이곳에 왔는가?”
“쿠훌린이여! 그렇다.”
이제 오크들이 내 말을 믿는 것 같았다.
하긴 내가 오크 입장이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너무 완벽한 오크어를 그것도 그들과 똑같은 사투리까지 완벽하게 쓰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오크어의 반은 침을 튀기면서 하는 말이었다. 인간이 흉내 낼 순 있어도 더러워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쿠훌린이여! 어찌하여 오크가 이곳에 왔는가?”
“쿠오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길에 휩싸였다. 숲은 사라지고, 산은 무너지고, 강은 메말랐다. 땅에서 솟아오른 용암이 대지를 뒤덮고, 불타는 거수가 온 세상을 파괴했다.”
‘아니! 오크가 여기 보물섬에 왜 왔는지 물은 건데?’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끊지도 못했다.
다시 물었다.
“쿠훌린이여! 여기엔 왜 왔는가?”
쿠훌린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케네스를 가리켰다.
“쿠오크! 한 달 전 우리가 저 인간에게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금화를 주었다. 그런데 아직 하나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왜 저자에게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가?”
“쿠오크! 오크 대장장이 모두 죽었다. 오크 대장간 없다. 오크 무기 필요했다. 그래서 요새 지키는 인간들에게 물었다. 골렘인형처럼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물었지?”
“쿠오크! 그림을 그렸다. 그랬더니, 이곳을 가르쳐줬다.”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그림이 제일 낫지.
그림도 하나의 언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제 대충 오크들의 말뜻은 알아들었다.
그럼 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할 차례.
고개를 돌렸다.
“케네스, 당신이 이들에게 금화를 받았는가?”
“뭐, 뭐요?”
나도 모르게 오크의 말투를 그대로 내뱉었다.
이래서 통역이 힘든 거구나!
“당신이 오크들에게 무기를 만들어 주기로 했고, 그래서 금화도 지급했다고 말하고 있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케네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저놈들에게 금화를 왜 받아? 그리고 무슨 무기를 만들어? 기간트 수리하기도 바쁜데!”
뭐지?
케네스가 너무 당당하게 말했다.
표정을 보니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럼 오크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때 타냐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오크 새끼들 말을 믿는 거야? 딱 보니 저것들이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케네스 영감에게 생떼를 쓰는 모양인데, 오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지!”
철컥!
기이잉! 쿵! 쿵!
타냐가 탄 기간트가 작업용 공구를 겨눴다.
“쿠오오오!”
쿠훌린이 타냐의 반응을 보곤 흥분하기 시작했다.
“사이얀족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가리에 도끼 박혀도 약속 지킨다! 하지만 인간들은 약속 지키지 않는다!”
“쿠오크! 쿠오크!”
갑자기 오크들이 성난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딱 봐도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대론 좋지 않다.
곧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일단 오크부터 제압하고 보자.’
사실관계를 떠나 케네스와 앨리슨은 내가 꼭 데려가야 할 사람들.
그러니 그들부터 지킨다.
“아닌데!”
“응?”
상자에서 앨리슨이 튀어나왔다.
“할아버지가 돼지들한테 돈 받았는데!”
“뭐?”
모두의 시선이 소녀를 향했다.
케네스가 앨리슨에게 말했다.
“앨리슨, 왜 거짓말을 하는 거니? 난 이 자들에게 받은 게 없단다.”
케네스가 소녀에게 타이르듯 조용히 말했다.
“아닌데! 돈 받아서 저기에 넣었는데!”
앨리슨이 작업장 구석에 있는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
케네스는 작업용 공구를 들고 상자 모서리를 힘껏 내려쳤다.
부웅! 콰앙!
촤르르르르!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반짝이는 금화가 바닥에 쏟아졌다.
“헛!”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오크들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판단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타냐가 기간트 해치를 열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금화가 정말 있잖아!”
그 순간 보았다.
케네스의 등이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내, 내가 받았구나······.”
뒤돌아 있었지만,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난 왜 그랬지? 내가 왜? 이젠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된 건가?”
케네스는 자책하고 있었다.
그때 앨리슨이 상자에서 나와 케네스를 뒤에서 꼭 안아줬다.
케네스도 한쪽 무릎을 꿇고는 앨리슨을 제대로 안아줬다.
“크흐흑! 앨리슨 미안하구나.”
“할배,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까먹으면 내가 알려줄게.”
아! 치매구나!
가끔 깜빡깜빡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케네스의 치매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
순간, 이 상황을 어떻게 오크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케네스가 눈물을 훔치더니, 일어나 오크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90도로 몸을 숙였다.
“미안하군!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쿠옥?”
케네스는 지금 오크들에게 사과를 하고 있음이다.
케네스의 진심이 전해졌을까?
오크들도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
고개를 든 케네스가 나를 쳐다봤다.
“미안하지만, 내 말을 전해 주겠소?”
“알겠습니다. 말해 주십시오.”
“금화는 모두 돌려주겠다. 그리고 지금부턴 다른 일은 모두 중지하고, 오크들의 무기를 만들어 주겠다. 그러니 날 용서해 달라고 전해 주시오.”
고개를 끄덕였다.
“쿠훌린이여! 여기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에 걸려서 그런 거다.”
“쿠오크! 나도 가끔 괴수에게 머리를 맞으면 기억을 잃어버린다. 인간도 머리를 맞았나 보군.”
“그리고 인간이 오크에게 받은 금화는 모두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오크들의 무기를 최선을 다해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쿠오크! 정말인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믿어도 좋다. 선조의 영혼을 잇는 내가 보증하겠다.”
내 말에 쿠훌린이 도끼를 든 손을 번쩍 들었다.
“쿠오크! 오크에게 새로운 무기가 생긴다!”
“쿠오크! 쿠오크!”
이건 기쁨의 함성이었다.
쿠훌린이 말했다.
“쿠오크! 선조의 영혼을 잇는 자여! 인간에게 말해달라! 오크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다. 금화는 받지 않겠다.”
“뭐?”
난 방금 오크가 한 말을 케네스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케네스는 오크들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좋다! 그럼 2배로 좋은 무기를 만들어 주지!”
그는 지금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타냐가 기간트에서 내렸다.
“쩝! 오크 놈들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의리가 있네.”
케네스 때문인지 그녀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응? 그런데 영감이 방금 일을 까먹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있는데! 내가 알려주면 되는데!”
케네스의 손을 잡은 앨리슨이 말했다.
“그래! 영감도 네 말이라면 믿을 거다.”
타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됐다.
잘못은 케네스 영감이 했지만, 치매라는 특수한 상황을 오크들이 이해하며 넘어갔다.
그리고 케네스는 곧바로 오크의 무기를 만들겠다며,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타냐가 옆에서 물었다.
“무기는 어떻게 만들려고?”
“여기서 룩급 기간트 동체가 가장 단단하니 잘라서 날카롭게 다듬으면 된다. 어차피 괴수와 싸우기 위한 무기니, 모양보단 살상력 위주로 만들어 줄 생각이야.”
그때 쿠훌린이 다가왔다.
“쿠오크! 선조의 영혼을 잇는 자여! 말해 다오! 오크 전사. 인간 대장장이 돕는다.”
거구의 오크 셋이 케네스 뒤에 기립했다.
“여기 오크들을 조수로 써달라고 합니다.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땐, 오크들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잘 됐군.”
“저기, 그런데 내 훈련기 마석 배터리는 내일까지 준비 가능합니까?”
“물론이오. 그보다 바쁘니까 그만 돌아가시오.”
케네스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열심히 일하는 케네스를 보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치매는 사형선고가 아니다.
치매에 걸리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이유가 있고, 또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고.
머리를 많이 쓰면 치매도 덜 진행되겠지.
왠지 오늘은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전진 기지에서 구할 것은 다 구했으니, 임무를 완료하고 다시 돌아와서 이 할아버지와 손녀를 어떻게 장벽 너머로 데려갈지 고민할 생각이었다.
“쿠오크! 선조의 영혼을 잇는 자여!”
쿠훌린이 날 불렀다.
“고맙다!”
“오오크! 인간에게 대족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제사장이 손을 번쩍 들더니, 가운데 있는 손가락을 내게 뻗었다.
순간 당황했다.
지금 엿 먹으라는 건가?
그러자 쿠훌린과 다른 오크들도 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무슨 뜻이야?”
“쿠오크! 잊었는가? 이건 오크 가운데 우뚝 솟은 자! 대족장을 추앙한다는 뜻이다!”
뜻은 알겠는데, 기분이 더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쿠훌린이 말했다.
“쿠오크! 대족장의 영혼이 깃든 자여!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르쳐다오!”
“뭐?”
***
내 호위대장인 글래디스는 연병장에서 엘프 하사관들과 한창 호위 방법이나 호위 시 서로의 위치나 동선을 맞추고 있었다.
통역은 필요 없었다.
에테나가 눈치껏 알아들을 테니까.
‘엘프 호위대라, 보기는 좋네.’
든든하기도 하고.
이 정도면 대수림에서 객사할 리는 없겠지?
“타일러 중위님!”
글래디스가 날 보자마자, 달려왔다.
“왜?”
“사령관님께서 아까부터 찾고 계십니다.”
“어디 계시지?”
“이번 원정대 장교분들과 회의실에 계실 겁니다.”
“알았네.”
회의실로 가려다 몸을 돌렸다.
“글래디스! 인원을 더 추가해야겠는데!”
“네? 누가 또 같이 갑니까?”
“오크 용병들.”
“오크요?”
글래디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사실 좀 황당하다.
“나중에 말해 줄게. 이야기하자면 사연이 길어.”
“몇 명이나 추가되는 겁니까?”
“한 30명 정도.”
“네? 30명이요?”
“그것도 많이 줄인 거야. 원래는 300명이 넘었어.”
“네에?”
난 쿠훌린의 간절한 초청으로 전진 기지 외곽에 있는 오크 용병대에 찾아갔다.
오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길래, 대수림에 정착하고 잘살려면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날 따라다니며 인간과 인간의 언어에 대해 배우고 싶다나?
내가 일 때문에 대수림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모두 따라가겠다고 난리였다.
물론 나야 병력이 늘면 좋다.
지금 가는 곳은 여태껏 가보지 못한 미지의 환경이고, 제국이 진출한 대수림 영역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니까.
하지만 300명은 너무 많다.
이들이 먹을 식량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 되고, 통제가 가능할지도 아직 모르겠다. 숫자가 많아지면 인간 병사들과 마찰도 생길 수도 있었기에 쿠훌린에게 정예병으로 딱 30명만 추려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오크들은 레드불 제사장의 지휘하에 무기를 만들고 있는 케네스를 도우라고 했다.
“아! 그러고 오크들이 도착하면 무기나 좀 챙겨줘. 사령관님께는 내가 말씀드리지.”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실로 향하는데, 에테나가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살짝 손을 들어줬다.
엘프들은 지금 마차 주변에서 열심히 경호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계약도 끝이니까.
드워프와 엘프, 그리고 이제 오크까지.
이거 이러다가 이계 난민들의 영주가 되는 거 아냐?
내가 한 농담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아! 드디어 내일이면 출발하는구나!’
난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