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humanity is a little weird RAW novel - Chapter 6_4
테오도르는 살갗을 타고 기어오르는 그 끔찍함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는 울 듯이 흐느끼며 이브에게 애원했다.
“아니지, 이브?”
“…….”
“아니라고 말해 줘. 네 입으로 말해 줘.”
“…….”
“에른스트, 저 개 같은 놈이 헛소리를 지껄인 거라고 말해 줘.”
“…….”
“그 개 같은 새끼가 널 이보네와 헷갈리더니, 이제 정말 미쳐 버린 거라고. 그렇게 말해 줘.”
끝내 미쳐 버린 건 에른스트가 아니라 자신이란 걸 인지하지 못한 테오도르는, 그렇게 이브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끝없는 절망 속으로 침잠했다.
“왜, 대답이 없어?”
“…….”
“이브…….”
“…….”
“이브…… 이브…….”
* * *
황제가 미쳤다. 그런데 성격은 여전히 나쁘다. 그리고 그 나쁜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결국 대표로 나선 것은 아르민이었다.
“폐하, 이브 로웰린 경은 죽었습니다.”
아르민이 생명을 담보로 건넨 그 말에 테오도르가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나도 알아.”
“네?”
순순한 인정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아르민이었다.
“저, 폐하. 그럼…….”
“내가 살릴 거야.”
……황제는 정말로 미쳤다. 죽은 사람을 살리겠다니, 그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아르민은 그것을 지적하는 대신, 다른 용건을 꺼내었다.
“……좋습니다. 그럼 침실에 두고 계신 이브 경의 시신이라도 묻어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이 황제가 미쳤다고 숙덕거리는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가 하루 종일 껴안고 있는 그 시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말을 꺼내자마자 테오도르가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이브를 묻으라는 건가? 차갑고 캄캄한 땅속에 묻어 버리라고?”
“아니요, 폐하. 그게 아니라…….”
“이브를 혼자 외롭게 그곳에 묻을 순 없어.”
테오도르는 단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대신 묻히고 싶은 게 아니라면, 두 번 다시 그런 말은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죽은 이의 시신을 산 사람인 것처럼 구는 테오도르의 집착에 아르민은 뼛속까지 오싹한 한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브 로웰린의 시신이 전혀 썩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산 사람의 육신처럼…….
그렇지만 아르민은 죽은 이브 로웰린을 대신해서 땅에 묻히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두 번 다시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이러다 황제가 정말로 무슨 짓이라도 벌일 참인가, 싶어 걱정이 밀려오던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이브 로웰린의 시체가 사라졌다.
황제가 페르디난트를 방문한 날이었다.
* * *
벤야민은 테오도르가 가져간 이보네의 허수아비를 없애기 위해 테오도르를 황궁 밖으로 불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보네를 저택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황제는 쓸데없이 감이 좋은 사람이니까, 괜히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다가 그녀가 살아 있는 게 들키기라도 하면 굉장히 곤란해질 터였다.
‘게다가 그때 황제가 보인 건…… 틀림없는 집착이었어. 이브를 향한.’
분명한, 애정에서 기인한 집착이었다.
혹은 사랑이란 감정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황제는 반년의 기억을 잃은 채로도,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고 집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아둔한 집착도 끊어 줄 때가 되었지.’
벤야민은 남쪽에 있는 페르디난트 소유의 섬에 이보네를 맞이할 준비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여기서 조금만 쉬고 있어. 테오도르 황제가 널 잊을 때쯤 다시 데려올 테니까.”
바다 위에 있는 으리으리한 별장은, 어지간해서는 누구도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고마워, 벤야민.”
이보네가 자신을 위해 정돈된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친구 사이에, 이 정도야.”
벤야민은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곤 그녀의 손을 붙잡아 에스코트하며 섬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다행히도 이보네는 아이를 낳고 자랄 때까지 도와주겠다는 자신의 말을 수락했다.
그녀로서도 선택지가 없었겠지만, 퍽 잘된 일이었다.
힐끔, 쳐다본 그녀의 아랫배는 이제 자세히 관찰하면 아이를 뱄다는 게 조금 티가 날 정도였다.
‘테오도르 황제의 아이…….’
벤야민은 주먹을 꽈악 말아 쥐며 입 안의 여린 살을 짓씹었다.
10년이 넘게 이브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녀를 잠시 빼앗긴 여섯 달.
‘어떻게 그 여섯 달 사이에…….’
고작 그 여섯 달 사이에 그녀를 차지해 버린 그 남자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벤야민은 제가 느낀 비참함을 테오도르에게 돌려주고 싶었으나, 몇 마디 말로는 그 또라이를 낙심시키지 못한다는 것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벤야민은 오래전부터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남자였다.
“편하게 쉬고 있어. 분명 얼마 안 걸릴 거야.”
벤야민은 그렇게 이브를 섬에 남겨 두고 수도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테오도르 황제가 페르디난트에 방문하는 목적이, 비단 카타리나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 텐데.’
벤야민은 두 사람이 무언가 작당을 꾸미고 있음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멍청한 테오도르.
이브 로웰린이 이보네 체르니시아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제 목적을 위해 카타리나와 손을 잡았겠지.
그게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불신을 남기게 되었을지는 알지도 못하고.
벤야민은 테오도르를 향해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편지를 써 내리기 시작했다.
* * *
벤야민 페르디난트가 편지를 보내 왔다.
테오도르는 곧바로 페르디난트를 찾아갈 채비를 했다.
오늘에야말로 카타리나를 만나 그 빌어먹을 흑마법의 장소에 발을 디딜 것이다.
“다녀올게, 이브.”
테오도르는 다정하게 웃으며 이브를 돌아보았다.
“그런 얼굴 하지 마. 그 여자가 좋아서 가는 게 아니야.”
그러나 자신을 향한 싸늘한 낯빛에, 그녀를 설득하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힘이 빠져갔다.
“확인하러 가는 거야. 그리고…… 너를 살리러 가는 거야.”
저의 진실 어린 애틋한 호소에서 그녀는 차갑기만 했다.
“정말이야, 나를 믿어 줘.”
테오도르는 여전히 그때에서 전혀 자라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래, 그녀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보란 듯이 그녀의 앞에서 그 여자와 입 맞추는 시늉까지 하지 않았었나.
그러니 이건 모두 제가 심어 준 불신이었다.
[싫어, 가지 마.]분명 들릴 리 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왠지 가지 말라는 그녀의 소리가 질척하게 따라붙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다녀올게.”
테오도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몸을 돌렸다.
* * *
한편 카타리나는 테오도르의 방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분명히 이브 로웰린이 저택에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막상 감금에서 풀려나자 그녀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 찾을 수 없었다.
‘벤야민이 절대 좋은 의도로 날 풀어 주진 않았을 텐데…….’
카타리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생각했다.
[판을 다 깔아 줬더니 결국 황제의 마음을 얻어 내는 것조차 하지 못하다니.]그 낡은 방에서 저를 꺼내며, 경멸하듯 쳐다보던 벤야민의 눈길이 아직도 선연했다.
[오늘 테오도르 황제가 찾아올 것이다. 약혼식 당일에 있었던 참사로 놀라 병석에 드러누운 약혼녀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할 예정이지. 혹시 모르지 않아? 네가 황제의 마음을 잘 붙들면, 너를 데리고 이곳을 나가 줄지도.]아무튼 자신이 살 길은 테오도르를 붙잡는 것뿐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그 낡은 방에 감금될 터였다.
“폐하, 벤야민이 저를 가뒀어요. 폐하와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요.”
카타리나는 테오도르를 보자마자 다급히 벤야민의 만행을 일러바쳤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벤야민이 카타리나에게 무슨 짓을 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난번 네가 말한 그 신목은 어디에 있지?”
“말씀드렸잖아요. 거긴 가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지금 중요한 건 그 신목이 아니었다. 벤야민이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오도르가 신목 이야기만 꺼내자, 카타리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와의 약혼을 위장하기 위해 스스로 내세운 미끼임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이 무언가 엄청난 짓을 벌이려는 것 같아요.”
“벤야민 페르디난트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저도 몰라요.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어요.”
벤야민은 카타리나를 낡은 방에서 꺼낸 뒤 사라졌다.
그래서 카타리나는 벤야민도, 이브 로웰린도 흔적 하나 찾을 수 없었다.
“폐하를 이곳에 묶어두고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기약 없이 미뤄진 약혼식을 어서 빨리 재개해야 해요. 그래야 제가 벤야민을 견제할 수…….”
“아, 그래. 약혼.”
테오도르가 뒤늦게 생각이 났다는 듯 카타리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네가 내 약혼녀 행세를 하며 이브를 괴롭혔어. 그렇지?”
카타리나를 쳐다보는 황금빛 눈동자에 차가운 살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너 따위가, 감히 나의 이브를…….”
살갗을 꿰뚫을 듯한 그 오싹한 살기에 카타리나는 몸을 움츠렸다.
벤야민과 이브 로웰린이 꾸미고 있는 작당을 알리고자 하였으나, 그런 그의 반응에 차마 그 여자가 살아 있음을 알릴 수가 없었다.
“이, 이브 로웰린 그 여자가…… 이보네 체르니시아를 닮은 얼굴로 폐하를 현혹하려고 해서…….”
“현혹이라니!”
테오도르의 잇새로 마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브가, 날 현혹했다고?
정말이라면, 너무 귀엽지 않은가.
그렇게 어리숙한 현혹이라니.
“널 살리고 죽이는 건 이브가 돌아오면 결정할 거야.”
테오도르가 느른한 입매를 당기며 말했다.
‘무슨 소리지? 설마 그 여자가 살아 있다는 걸 아는 건가?’
카타리나는 도무지 테오도르의 속을 알 수가 없어서 불안해졌다.
“그 X같은 거짓 약혼은 파기야. 당장 그 신목 앞으로 나를 안내해.”
테오도르의 으름장에 카타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 안뜰로 그를 안내했다.
“저 안쪽이에요.”
카타리나가 저택 안뜰에서도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검은 껍질을 지닌 커다란 고목이 기괴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것을 본 테오도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런 기괴한 것에 축복을 빈다고?”
“네, 오래전부터 페르디난트에 축복을 내리는 신목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고목의 모양새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비는 게 더 알맞을 만치 흉흉했다.
‘설마, 저게…….’
문득 테오도르는 작은 확신이 심중에 움트는 것을 느꼈다.
페르디난트의 안뜰에 자리한 저 기괴한 것이 어쩌면 고대 어둠의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확신을 느낀 순간, 테오도르는 그쪽으로 한 발짝 걸음을 내디뎠다.
“조심하세요, 폐하!”
그러나 그 순간, 강한 금제에 의해 그의 몸이 튕겨 나갔다.
“젠장.”
테오도르는 나직한 욕설을 짓씹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빛무리가 검은 결계와 맞부딪쳤다.
“……!”
카타리나는 놀라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테오도르 황제가 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니.’
페르디난트의 선대로부터 내려온 결계를 버티는, 그만큼이나 강한 신성력이었다.
두 개의 힘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소용돌이쳤다.
“그, 그만하세요! 그러다가 벤야민이 알게 될 거예요!”
“상관없어.”
테오도르는 카타리나의 외침을 무시하며 성력을 쏟아부었다.
더 이상 그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평화로운 방법을 쓸 생각 또한 없었다.
원래도 그가 평화주의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성력은 이내 튕겨 나와 테오도르의 몸에 타격을 주었다.
“크윽…….”
테오도르는 입술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손등으로 무심하게 닦으며, 고목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그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러다 죽겠어요!”
카타리나의 외마디 외침이 들려왔다.
테오도르는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돌아보았다.
손끝이 갈라지고, 살갗이 헤져 있었다.
성력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이 결계를 깰 수가 없었다.
“결국 페르디난트의 가주를 만나 담판을 지어야만 하는가…….”
테오도르는 소득 없이 돌아서야 했다.
* * *
그리고 테오도르가 황궁으로 돌아왔을 때, 이브의 시체가 사라졌다.
“이브? 이브, 어디 갔지?”
황궁이 발칵 뒤집혔다.
테오도르는 사라진 이브를 찾아 눈 속을 뛰어다니며 온 황궁을 뒤집고 다녔다.
“이브, 대체 어디에…….”
그러나 어디에도 이브는 보이지 않았다.
“이브가 날 떠났어.”
털썩, 눈밭 위에 주저앉은 테오도르가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왜 떠난 거지?”
황궁을 나서기 직전, 서늘하던 그녀의 낯빛이 생각이 났다. 동시에…… 들릴 리 없던 그녀의 저를 붙잡는 소리도.
“내가 카타리나 페르디난트를 만나러 가서?”
테오도르는 그녀가 살아 있을 때도, 그녀를 두고 카타리나에게 향한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상처받은 눈으로 저의 뒷모습을 끈덕지게 쳐다보곤 했다.
테오도르는 언제나 그 시선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어쩌면 더 이상 저를 애틋한 눈으로 보아 주지 않는 그녀가, 이제는 저에게 영영 실망을 하여 떠나 버린 건지도 모른다.
“안 돼, 안 돼, 이브…….”
무너진 테오도르가 양 손바닥 위로 고개를 파묻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정말 아니야, 난 정말…… 널 두고 그 여자에게 가려고 했던 게…….”
그러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작은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넌…… 어디로 떠난 걸까?”
이브가 절 두고 떠났을 만한 곳은 몇 되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단박에 깨달았다.
“벤야민 페르디난트, 그 자식이로군.”
그날, 그녀에게서 풍기던 벤야민 페르디난트의 냄새가 스멀스멀 공기 중에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 불쾌한 감각에 테오도르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희번덕 치켜뜬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빛났다.
* * *
벤야민은 반쯤 맛이 간 눈으로 다시 찾아온 테오도르를 반겼다.
“다시 오셨군요, 폐하. 알브레히트의 주인을 뵙습니다. 알브레히트에 영광을.”
그 나른한 얼굴 위로 일견 즐거워 보이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네가, 이브를 데려갔지?”
테오도르가 한 음절씩 내뱉을 때마다 죽일 듯한 살기가 벤야민의 살갗을 찔렀다.
벤야민은 마침내 제가 느낀 상실의 아주 작은 조각이나마 그에게 되돌려주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만큼 기뻤다.
“카타리나의 병문안을 오셨던 분께서 페르디난트의 금제가 걸린 구역엔 왜 들어가려고 하셨나요?”
“이브를 내놔.”
“설마, 처음부터 카타리나가 아닌 그곳이 목적이었나요?”
어느덧 가면을 내던진 두 사람은 서로 본색을 감추지 않으며 으르렁거렸다.
“당연한 소릴. 카타리나 페르디난트 따위, 아프든 말든 내가 알 반가.”
“가엾은 카타리나. 오랫동안 당신의 황후가 되길 바랐는데…….”
벤야민은 자못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쓸모를 다했으니, 이제 그 여자도 폐기해야 하겠네요.”
그가 여상하게 웃으며 끔찍한 내용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카타리나가 어찌 되든, 테오도르에겐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브는, 어디 있지?”
주위를 휙휙 둘러보나, 어디에서도 그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궁금합니까?”
벤야민은 생긋 웃으며 저택 안쪽을 향해 힐끗 턱짓을 했다.
“따라오시지요. 당신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이브도, 카타리나와 거짓 약혼을 해 가면서까지 발을 들이고자 하였던 페르디난트의 안뜰도 모두 보여 드릴 테니.”
선뜻 안내하는 모양새가 수상쩍어, 테오도르는 불안한 마음을 삼켜야 했다.
차박, 차박.
자박, 자박.
유난히도 적막한 저택 안,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질척하게 울렸다.
그러다 오늘 오전 자신이 걸음 하려다 실패한 그 공간에 들어선 순간.
테오도르는 멈칫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저게…….”
가슴 위로 선득한 두려움이 차올랐다.
벤야민이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
“모두 태워 버렸답니다.”
그의 어깨 너머로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린 검은 연기가 마지막 기력을 다하며 쇠하고 있었다.
“뭐……?”
“태웠다고요. 이브의 시신도, 당신이 궁금해하던 안뜰의 고목도.”
“네가 뭔데!”
테오도르가 벤야민의 멱살을 움켜쥐며 외쳤다.
“네가 뭔데 이브를 태워?”
“죽었는데 죽지도 못하고 당신에게 붙잡혀 있는 게 마음이 아파 그랬습니다.”
벤야민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은 그녀가 살아 있었을 때도, 그녀를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까?”
움찔.
벤야민의 멱살을 움켜쥔 테오도르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것을 느낀 벤야민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이브는 죽기 직전까지도 당신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날 찾아와 말했죠. 당신 곁을 떠나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이브는, 그래서 어디 있어?”
그러나 테오도르는 그 말에 휘둘리는 대신 이브를 찾고자 했다.
“그녀는 당신과 함께 있기 싫어한다니까요? 찾아서 뭐 하게요?”
“개자식.”
테오도르의 주먹이 벤야민의 얼굴을 후려쳤다.
“뼛가루라도 내놔. 어딘가에 있을 거 아냐!”
벤야민은 불긋해진 뺨을 감싸 쥐며 웃음을 터뜨렸다.
“재가 되어 페르디난트의 안뜰에 내려앉았겠지요.”
테오도르는 벤야민을 치워 내고 시꺼먼 재만 남은 안뜰을 향해 뛰어들었다.
사그라진 불씨 주위로 쌓인 잿더미 위에 엎어져 네 발로 기며, 그녀의 흔적을 쫓았다.
옷이 마른 흙과 검은 재로 더럽혀졌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녀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브, 안 돼……. 이브…….”
테오도르는 흙과 재를 두 손 가득 퍼다 쥐며 흐느꼈다.
손가락 사이로 사르르 흩어지는 잿가루가 허망하였다.
벤야민은 그런 테오도르를 벌레 보듯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나 린든이 돌아왔다.
“수석 호위 기사, 린든. 폐하의 명을 수행하고 귀환하였습니다.”
곧바로 황제를 찾아간 그는 어두컴컴한 침실 안쪽, 빈 침대 끄트머리에 홀로 앉아 있는 테오도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폐하……?”
린든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러자 내내 말이 없던 테오도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삭막한 황금색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린든은 흠칫 몸을 떨었다.
아르민으로부터 황제가 이상해졌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건 단순히 이상해진 게 아니라…….’
꿀꺽.
차마 밖으로 터뜨리지 못한 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테오도르는 그저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린든은 질식할 것만 같은 그 시선 속에서 울고 싶어졌다.
‘더 무서워졌잖아. 이래서야 황제가 고대 어둠의 현신이라는 과거의 헛소문만 더 부추기겠어.’
그만큼이나 오싹하고 두려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근 두 달여 만에 다시 만난 황제는.
“저…… 체르니시아의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내내 잠잠히 다물려 있던 테오도르의 입술이 처음으로 열렸다.
“체르니시아의…… 생존자……?”
그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자의 것처럼 꺼칠꺼칠하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놀랍게도 그의 입매가 느슨하게 풀리었다.
“체르니시아의…… 생존자라……. 내가 그자를 찾아오라 네게 명한 건가?”
“네? 네, 폐하! 그…… 체르니시아의 복권을 위해 준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퍽 귀여운 짓거릴 하고 있었군.”
테오도르가 관심을 보이자, 린든이 용기를 내어 말을 붙였다.
“브리안 체르니시아가 살아 있었습니다.”
“아, 그래…….”
그러나 테오도르는 무덤덤하게 대꾸하며 다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브리안 체르니시아…….
이보네의 막내 오라비였지, 아마.
그러나 마땅히 반가워야 할 그 이름에도, 테오도르는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이브를 잃은 이후로는 모든 것이 이러했다.
체르니시아의 복권, 이보네의 종적…….
그것들이야말로 제 일생의 목표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러함에도…… 모든 것이 무감했다.
이때, 린든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