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21)
227화. 낙검문주 이벽
타앙.
“…큭!”
목검과 목검이 충돌했다.
동시에 장석두가 신음했다.
두어 걸음 물러서다 이내 검을 쥔 손목을 부여잡고 땅 위에 주저앉았다.
“…….”
이벽은 장석두를 내려다보았다.
재능은 새삼스럽게도 놀라웠다.
사 년 전, 이벽은 장석두에게 본격적으로 청강검식과 청강유엽공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르침을 빠르게 흡수한 장석두는 어느덧 이류에서 일류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었다.
장석두는 무림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웬만한 중견세력의 무인이나 혹은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과 겨룬다 해도 결코 쉬이 밀리지 않을 수준이 되었다.
허나.
“장석두, 무슨 일이 있나?”
“…네?”
“오늘따라 검이 유난히 거칠군.”
흠칫, 장석두의 미간이 흔들렸다.
“이만하는 게 좋겠나?”
“…….”
크, 장석두가 침음성을 흘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뒤 다시금 목검을 세웠다.
“…아뇨,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
탕, 타앙.
그리고 이벽과 장석두의 목검이 다시 얽혀들었다. 청강검식과 청강검식이 서로의 빈틈을 찾아 얽혀들었다.
제갈소미가 떠난 이래.
다시 석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으며, 여름이 지나고 산골을 스치는 바람은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낙검문은 다시 문을 열었다.
허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제갈소미가 없어졌으므로, 그 역할은 낙검문의 정식 제자조차 아닌 왕수련이 대신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가벼운 검술 수련을 겸하여 아이들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던 혁대웅마저 마을의 일손이 바빠지자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낙검문을 꾸리는 것은.
사실상 이벽 혼자의 몫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장석두 역시 왕수련과 마찬가지로 이벽을 도와 마을의 다른 아이들에게 검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리고.
아이들의 지도가 끝난 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장석두는 이렇듯 문내에 남아 다시 이벽에게 청강검식의 지도를 받았다.
타앙.
“컥!”
이벽의 검이 파고들었다.
장석두의 검과 몸의 균형이 흔들리며 대번에 청강검식의 연계가 흐트러졌다.
풀썩.
결국에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기세는 좋지만… 발검식에서 회검식으로 연결되는 사이의 빈틈이 너무 크다.”
이벽이 말했다.
장석두는 발검식 직과 강의 묘리에 유독 재능을 보이는 반면, 그 외의 묘리에는 퍽 서툴렀다.
“손에 익은 한 두 개의 묘리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허나 흐름이 무너질 정도로 차이가 나선 곤란하지 않겠나?”
“…네, 형님.”
장석두가 조용히 답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뒤, 다시금 검을 내밀었다.
“…….”
이벽은 장석두를 살폈다.
언뜻 보아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여전히 물러설 기색은 없어 보였다.
이벽은 오늘따라 유달리 집념을 보이는 장석두에게서 묘한 낌새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가르침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어떠한 감정을 품고… ‘한 명의 무인’으로서 자신과 맞서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오늘은 이만하지.”
슥, 이벽은 검을 거두었다.
“아, 아뇨 형님! 저는 아직……!”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무의미하게 몸을 혹사시켜 봤자 내일이 힘들 뿐이다.”
“……!”
장석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한 장석두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이벽은 돌아섰다. 허나 그때였다.
“형님… 좀 너무하십니다.”
장석두가 속삭이듯 말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아서 반쯤은 혼잣말과 같았다. 허나.
“그게 무슨 뜻이지?”
못들은 척하기에도 애매했다.
이벽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흠칫, 눈이 마주치자 장석두의 표정이 흔들렸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할 말을 찾는 듯했다. 그리고.
“…수련이가요.”
이내 장석두가 말을 꺼냈다.
“…….”
이벽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허나 장석두의 말은 그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크, 구겨진 얼굴로 침음성을 삼킨 뒤 꾸벅,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님. 주제넘은 소리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훅, 몸을 일으켰다.
탓탓, 그리고 달리듯 빠른 걸음으로 문 내를 가로질렀다. 이내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수련이?’
이벽은 잠시 제자리에 서서 장석두가 남긴 말의 의미를 고민했다. 허나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왕수련이라면.
지금쯤 이미 집으로 돌아갔을—
“아, 저기… 오빠?”
흠칫, 이벽은 조금 놀랐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왕수련이 서 있었다.
“…아직도 안 가고 여기 있었나?”
“아… 네. 아하하…….”
왕수련이 머쓱하게 웃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제갈소미를 대신해 그녀에게서 글을 배우는 아이들은 진작에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무슨 일이 있나?”
“아… 저, 그게…….”
왕수련이 머뭇거렸다.
“슬슬 밥때이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오늘도 고생 많았—”
불끈, 왕수련이 주먹을 쥐었다.
“밥… 제가 해드릴까요?!”
“…뭐?”
이벽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허나 이내 작은 웃음을 지었다.
“…아니, 괜찮다. 마음은 고맙지만 스스로 차려 먹는 것에도 익숙해졌으니 네게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지.”
“…아, 네. 아하하.”
왕수련이 어설프게 웃었다.
“조심히 들어가라.”
“…네, 오빠.”
이내 왕수련이 돌아섰다.
탓탓,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낙검문을 떠났다. 이벽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왕수련과 장석두.
시간은 동생들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 허나 그 모든 것을 자신이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중요한 것이 변하지 않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것에 있었다.
쿵, 쿵.
“벽아, 늦어서 미안!”
그리고 이벽은 밥을 지었다.
얼추 상차림이 끝나갈 무렵, 이내 혁대웅이 허둥대는 기색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고생많았— 세상에. 밥까지 벌써 다 지어놨네……?”
“…신경 쓰지 마라.”
훗, 두 사람은 마주 웃었다.
그리고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허나 식사 자리에서는 이렇다 할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또한 늘 그렇듯, 스스로 지은 밥은 딱히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았다.
달그락.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벽아, 슬슬 추워질 것 같은데 밥 먹고 나무나 하러 갈까?”
“……!”
불현듯 혁대웅이 말했다.
이벽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 * *
저벅.
해가 저문 뒤.
혁대웅은 도끼를 들고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으로 향했다. 이벽 역시 잠자코 뒤를 따랐다.
‘나무를 하자’는 혁대웅의 제안은.
늘 무언가 달리 ‘할 말’이 있다는 의미였음을 이벽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혁대웅이 어떤 말을 할지는, 이벽은 내심 짐작이 갔다.
쿠웅, 퍼억!
그리고.
적당한 공터를 발견한 혁대웅은 한동안 나무를 했으며, 이벽은 그 등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쿠웅, 퍼억!
완력은 땅을 울리는 듯했다.
혁대웅이 도끼로 나무를 칠 때마다 주변의 나무들까지 함께 우수수 가지를 떨었다. 그리고.
스윽.
낙엽이 떨어져 내렸다.
“…….”
이벽은 문득.
검은빛으로 떨어져 내리던 이진천의 ‘낙엽’을 떠올렸다. 하늘을 찢어발기던 소리가 귀에 스쳤다.
추락은 멈출 수 없었고.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벽아.”
마침내 혁대웅이 말했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였다.
“나도… 마을을 떠나려 해.”
“…….”
이벽은 침묵했다.
그것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제갈소미가 마을을 떠난 순간, 혁대웅의 마음 역시 함께 이곳을 떠났음을 이벽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솔직히, 그동안에는 네가 걱정되어서 여기 남아있었어. 하지만… 너는 충분히 잘 해낼 것 같아. 그러니까 나도 이제는 ‘내 할 일’을 하러 갈까 해.”
“…그렇군.”
이벽이 답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안 막을 거니?”
“그래봤자 의미 없는 짓이겠지.”
애초에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며.
또한 이미 확고해져 버린 결심을 꺾는 것은 불가능함을 제갈소미로부터 겪어보았다.
“스승님의 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네 마음을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다시 이벽이 말했다.
“…미안해, 벽아.”
쩌저적, 쿠웅.
나뭇기둥 하나가 땅을 두드렸다.
“나는 사패련으로 갈 거야.”
“……!”
“과거 네가 대신해줬던 일들을 마무리 짓고, 아버지와도 담판을 지을 거야.”
패왕가의 후계가.
다시 사파무림으로 나아간다.
그 의미는 가볍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힘을 키워서, 필요하다면 천하를 온통 샅샅이 뒤져서라도… 사저를 다시 찾아낼 거야.”
“…….”
제갈소미는.
‘생각한 곳’이 있다고 말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갈세가가 아니라면 그 행방을 찾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물론, 사저를 찾아내건 찾아내지 못하건, 한 번 무림으로 발을 들이민다면… 아마도 돌아오긴 어렵겠지. 무림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또한 찾아낸다고 해도 순순히 물러설 사저가 아니니까… 결국은 ‘스승님의 원수’ 또한 사저보다 먼저 내 손으로 갚아야겠지.”
그리고 마침내 뒤를 돌아보았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문주님의 유지를 이어줘. 이 마을에는, 우리 낙검문에는 이제 너밖에 없어.”
“…….”
툭, 혁대웅의 커다란 손이 이벽의 어깨를 두드렸다.
“부탁해, 낙검문주 이벽.”
* * *
혁대웅마저 마을을 떠났다.
허나 어찌 되었건 이벽은 홀로 남아 낙검문을 계속해서 꾸려나갔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마을의 일손을 돕는 등의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가을은 빠르게 지나갔다.
탕, 타앙.
“하앗!”
바람이 차건, 혹은 날씨가 궂건.
장석두와의 비무는 거의 날마다 이어졌다. 이벽은 가르치는 데에 보람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심 장석두와의 비무를 기다리게 되었으며, 청강검식의 묘리와 요령을 아낌없이 가르쳤다.
허나.
정작 자기 자신의 검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게 되었으며, 수련조차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다만 이벽은.
‘낙검문주’로서 할 일에 충실했다.
매해 그래왔듯,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회택의 시내에 구경을 내려가기도 했다.
북적북적.
“거… 살기 힘든 세상이구먼~”
“누가 아니래? 원, 사파 무림이 잠잠해지나 했더니 이제는 정파가 또… 우리 같은 이들은 흉흉해서 먹고 살 수나 있겠나?”
객잔에 들어서 있으면.
좋든 싫든, 때때로 주변에 앉은 상인이나 표사들의 입을 타고 무림의 이야기들이 밀려들어 오곤 했다.
“…….”
소림과 개방, 아미를 필두로 한 구 무림맹 세력은… 정도맹과 의혈맹의 공격적인 세력 확장에 의해 날이 갈수록 그 세가 위축되고 있는 듯했다.
정파 내부의 세력다툼에서.
밀려나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벽은 생각했다.
과거, 남궁세가를 봉문시켰고.
그 여파를 잠재우고자 이벽은 취풍신개와 함께 황보세가의 영역으로 향했다. 허나.
그 자리에서.
취풍신개가 쓰러지고 말았다.
정도맹과 의혈맹, 구 무림맹.
솥발의 형세로 세력의 균형이 유지되던 와중에 축 하나가 부러진다면… 솥이 흔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즉, 구 무림맹의 몰락은.
과거의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
‘…걸개.’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저기, 오빠?”
“……!”
그때였다.
맞은편에 앉은 왕수련이 물었다.
“왜 그러지?”
“왜냐뇨… 뭐 먹을 거냐고 아까부터 계속 물었는데요?”
“나는 아무거나 괜찮다.”
“…아무거나라.”
아하하, 왕수련이 웃었다.
“오빠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취향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