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69)
377화. 마지막 한 명 (1)
후우욱, 휘오오오.
만류일원진법의 안.
검존과 권왕의 고요한 접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검과 주먹 사이에서 같은 형태의 태극이 오고 갔다.
허나 전황은 퍽 바뀌었다.
기실 검존의 싸움은 더 이상 ‘권왕의 목을 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다만 ‘버티기 위한’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타앙, 후우욱.
권왕의 태극권은.
본래의 그가 지니고 있던 등천의 깨달음과 한 데 엮여 ‘새로운 무언가’가 되었고, 바람을 품었다.
그 결과.
휘오오오오, 퍼억.
“…크!”
검존의 몸이 흔들렸다.
노인이 신음을 삼켰다.
오고 가는 태극 속에서 ‘검존이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던’ 단계는 이미 지나버린 것이다.
아니, 심지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패색이 드러나는 것은 외려 검존 쪽이었다.
후우우욱.
연신 가볍게 뻗어지는 권왕의 주먹에서는 산들바람과 같은 권풍이 거리를 점하며 뻗어졌다.
우우웅.
물론, 검존 또한 막아섰다.
허나 예의 바람은 마치 태극의 흐름을 ‘읽어내기라도 하듯’ 집요하게 검존의 방어를 우회했다.
콰아아아앙.
재차 검존의 몸이 흔들렸다.
투둑, 툭.
“…허헛.”
검존의 입에서 피가 떨어졌다.
웃음 또한 함께 새어 나왔다. 허나 그것은 더 이상 여유가 아니라 모종의 각오가 깃든 웃음이었다.
그렇게.
‘태극만을 지닌’ 검존과 ‘태극을 겸한’ 권왕과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고 있었다.
“…하아.”
한편.
제갈소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보고도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어찌 되었건 우여곡절 끝에.
진법으로 권왕을 가두었다. 허나.
짧은 접전 속에서 권왕은 스스로 도가기공의 절대자로 거듭났고, 진법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의의를 잃어버렸다.
또한 사제 이벽은.
접전을 멈춘 채 침묵에 잠겼다.
무언가 고심에 잠긴 듯했으나, 하물며 진법 안에서 온전한 제힘을 낼 수도 없는 녀석에게 달리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아니, 설령 뭔가 있다 한들.
무모한 짓거리임에 틀림없다.
‘그 꼴을 눈 뜨고 지켜보느니… 차라리 이쯤 되면 그냥 내가 직접 칼 들고 싸우는 게 낫겠네.’
제갈소미는 쓰게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쩌면.
정말로 자신이 싸움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 말인즉슨, ‘진법의 유지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진법을 포기하는 순간.
일행은 결국, 본래의 힘에 더해 이제는 태극의 묘리까지 함께 다룰 수 있게 된 권왕을 상대해야 만한다.
그렇기에.
제갈소미는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다만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걱정 마.”
허나 그때였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 이제 곧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네? 그게 무슨?”
마치 제갈소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가 옆에서 속삭였다.
물론, 검존의 제자인 태극무봉 송영영이었다. 슥, 제갈소미가 시선을 돌렸다.
“송 소저, 지금 뭐라고―”
움찔.
허나 송영영을 일견한 순간.
제갈소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불과 조금 전, 자신과의 비무를 통해 한계 이상의 힘을 쏟아낸 송영영은 사실상 탈진 상태였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허나.
일전을 바라보는 흰 얼굴에는 더 이상 지친 기색 따윈 없었으며, 그 호흡과 몸짓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으스스.
다만 그 고요함 속에는.
알 수 없는 섬뜩함이 감돌았다.
‘…뭐야 대체?’
제갈소미는 오한을 느꼈다.
그것은 형언하기 어려운 이질감이었다. 다만 무인으로서, 그리고 진법가로서의 감이 속삭였다.
‘무언가’가 다르다.
언제나처럼 감정이 옅은 눈빛 안쪽으로 ‘터무니없는 무언가’가 비치는 듯했다.
“소저? 아니, 당신… 누구죠?”
송영영은 답하지 않았다.
저벅.
다음 순간, 걸음을 떼었다.
* * *
이벽은 검을 생각했다.
검존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곤 다시금 홀로 권왕과의 일전에 나섰다. 허나 시시각각 승산은 희박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날, 어둠이 내린 야산 속에서 스승 이진천은 ‘최후의 일검’으로 말미암아 혈마를 베어내었고.
이후 이벽이 독왕 당평세의 심독에 몸을 내맡긴 순간, 그날의 악몽은 눈앞에서 다시금 재현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이벽은 일검의 정체를 이해했다.
‘낙검(落劍).’
추락하는 검. 그것은.
청강유엽검식임과 동시에 이미 그 범주를 넘어선 다른 무언가이며, 창공비검의 기예임과 동시에 전혀 다른 검이기도 했다.
발검식, 직, 쾌, 강.
회검식, 곡, 변, 유.
청강유엽검식을 이루는 여섯 개의 묘리가 단 일 검으로 압축되는 기예를 창공비검이라 한다면.
예의 낙검은.
모든 것이 ‘거꾸로’였다.
여섯 개의 기예는 ‘역순’으로 조합되며, 그렇기에 스승의 신형은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외려 아래를 향해 추락했다.
허나 동시에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검’이었다.
최소한.
껍데기에 불과한 여섯 개의 묘리에 각자의 알맹이를 채워 넣음으로써 등천의 기예에 이를 정도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역순의 균형’을 이룰 수 없으며.
만일 하나라도 깨달음이 비어있는 상태로 그러한 검을 시도한다면, 균형이 무너진 채 온몸이 갈가리 찢겨나갈 터였다.
허나 백 년 남짓한 삶을 살아갈 뿐인 인간이 여섯 개나 되는 묘리를 모두 절대지경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럼에도 이벽은 해내었다.
또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낙검진천신공의 공능이었다.
오늘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기연과 깨달음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차례차례 이벽을 찾아와주었고.
여섯 개의 묘리는 마침내.
여섯 개의 기예로 거듭났다.
적파직검(赤派直劍).
취풍쾌검(醉風快劍).
패왕강검(覇王强劍).
만월무변곡검(滿月無變曲劍).
화영변검(花影變劍).
일엽유검(一葉柔劍).
이벽은 가진 검들을 헤아렸다.
직접 붙인 이름들을 되뇌자 그 순간 몸과 마음에 검의 감각들이 하나씩 스치고 지나갔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일 뿐, 이벽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자신이 스승의 일검을 온전히 재현해낼 수 있을지, 감히 자신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나?’
이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우웅.
“……!”
허나 그 순간.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사라락, 사락.
대기가 공명하듯 진동했다.
그리고 나뭇잎들이 여섯 가지의 색과 형태로 갈라지며 이벽의 주변을 흩날리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만류일원진이.
이벽에게 ‘답’을 주고 있었다.
사라라락.
‘…그런가.’
물은 아래로 흐른다. 고로.
낙검은 외도(外道)가 아니다.
우우웅.
외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진법이 이벽에게 말을 걸었다.
철컥.
이내 이벽은 검을 움켜쥐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도박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허나 많은 것을 헤아리고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 또한 아니었다.
불현듯.
검을 쥔 손에 낯설고도 새로운 감각이 깃들었다. 다시, 이벽은 그날의 스승을 생각했다.
사라락, 사락.
이벽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동시에 전에 없이 또렷해졌다.
심안이 깊어지며 나 자신과 세상의 경계가 흐릿해졌고, 어느새 이벽은 하늘 위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한 장 한 장 붙들었다.
사락, 사라락.
그리고 여섯 종류의 서로 다른 나뭇잎들을 한 장 한 장씩 겹쳐 올리기 시작했다.
바스락.
나뭇잎이 메마른 소리를 내었다.
“대주. 그 검은 안 돼.”
허나 그때였다.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 * *
움찔.
“……!”
이벽의 어깨가 흔들렸다.
높낮이가 뚜렷하지 않은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심안의 상태가 흔들렸다.
사라락.
애써 모은 나뭇잎이.
다시금 제각각으로 흩어졌다.
훅.
이벽은 당황했다.
허나 뒤를 확인할 새도 없이, 그 순간 목소리의 주인은 이미 이벽의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스윽.
소리 없이 쏘아진 송영영의 신형이 일전을 펼치고 있는 검존과 권왕의 지척까지 다가섰다.
훅.
그 즉시 검을 내뻗었다.
흠칫.
권왕의 미간이 작게 흔들렸다. 창졸지간에 자신을 향해 뻗어지는 또 한 자루의 검을 일견했다.
스윽.
다음 순간, 권왕의 왼손이 그녀를 향해 뻗어졌다. 태극 속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쏘아졌다.
허나 그 미풍은.
그녀의 스승인 검존조차 줄곧 막아내기에 급급했던 절대지경의 묘리를 담은 일격이기도 했다.
“…아, 안 된다, 제자야! 어서 물러서거라!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 주제넘은 짓거릴―”
그리고 그제서야.
송영영의 참전을 확인한 검존이 다급하게 외쳤다. 황급히 검을 뻗어 그녀를 지키려 했다. 허나.
“장문인. 됐어, 이제.”
훅.
권왕의 바람이 파고든 순간.
마주 뻗어진 송영영의 검이 가볍게 흔들렸다. 후욱, 그리고 권왕의 바람이 사방으로 갈라지며 흩어졌다.
“……!”
권왕의 일격이.
너무 쉽게 무로 돌아갔다.
터엉.
다음 순간, 송영영의 어깨가 검존의 가슴을 두드렸다. 노인의 작은 체구가 저만치로 밀려났다.
“장문인, 안녕. 그동안 맛있는 밥 먹여줘서 고마웠어.”
“…제, 제자야?”
검존을 일견한 송영영이 다시 권왕을 향했다. 훅, 차가운 얼굴이 망설임 없이 파고들었다.
후우욱.
그 순간.
권왕의 두 손이 태극을 그렸다. 또한 그 너머의 얼굴은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
진법이 막 발동된 이후 검존과 무존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을 때조차 보인 적이 없는 ‘다급한’ 표정이었다.
스윽.
허나 다시.
송영영의 검이 마주 뻗어졌다.
그 끝이 권왕의 태극에 맞닿은 순간, 태극의 결을 따라 물결무늬를 그리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서걱.
파아아아아아아아앙.
다음 순간.
권왕의 태극이 ‘폭발’했다. 송영영의 검이 태극을 이루는 음과 양의 결을 베어버린 것이다.
부르르.
검존의 눈이 흔들렸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기예’였다.
말인즉슨, 제자의 손끝에서 무당의 근간을 이루는 태극이 ‘파훼된’ 것이다.
휘오오오오오.
그 순간, 권왕은 황급히 몸을 띄웠다. 충격파를 몸으로 받아들이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어딜 가?”
허나 송영영은.
권왕의 ‘도망’을 용납지 않았다.
우우우웅.
다음 순간.
검존이 일으킨 태극혜검의 영역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것은 더 이상 검존의 것이 아니었다.
슥.
송영영이 검을 털었다.
끽, 끼기기긱, 끼기기기긱.
그러자 그 순간.
태극혜검을 이루는 무수한 태극이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음양’이 서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역태극(逆太極)의 묘리였다.
“……!”
휘오오오오오.
뒤집힌 태극이 압력을 일으켰다.
송영영의 의지에 따라 역천의 흐름을 일으켰으며, 그에 휘말린 권왕의 몸이 다시 송영영을 향해 쏘아졌다.
“큭……!”
권왕이 신음했다.
휘오오오오오.
송영영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한 순간, 그의 두 손에 맹렬한 바람이 서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권왕의 깨달음은.
진법의 내부에서조차 본래의 힘에 근접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다음 순간, 두 팔이 겹쳐지며 두 갈래의 바람은 하나의 거대한 용권풍으로 합쳐졌다.
휘오오오오오.
송영영을 향해 마주 쏘아졌다.
허나.
다시 송영영의 검이 뻗어졌다.
격풍 속에서조차 한 치 흔들림도 없는 검신이 용권풍의 정중앙을 관통하며 일 자로 나아갔다.
휘오오오, 콰아아아아아앙!
이내 용권풍마저도.
사방으로 갈기갈기 흩어져버렸다.
푸우우욱, 서걱.
그리고.
바람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마침내 ‘싸움의 결말’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영영의 검끝이.
권왕의 가슴을 관통했다.
또한 그것은.
어떤 눈속임도, 잔상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