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61
1061회. 자네는 이게 말이 된다고 보나?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파비안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했다.
“엘리오 남작과 단둘이 타메이온을 정찰하고 왔다는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엘리오 남작이 소드 익스퍼트로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그 보고서다. 알고 있나?”
“예?”
파비안은 모른 척 되물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작정한 듯 그를 구석으로 몰아갔다.
“몰랐다고는 하지 마라. 자네의 진술을 보면 그는 소드 익스퍼트가 분명하니까. 그게 잘못됐다고 자네를 탓할 마음은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타메이온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얼음 숲에서…….”
“또 사흘간 숨어 있었다고 말하면 경을 폰티악 중대로 돌려보낼 생각이다. 인솔자로는 신문관인 칼 데인 남작이 적당하겠군.”
파비안은 칼 데인 남작을 떠올렸다.
지난번에는 대화뿐이었지만 본래 신문관은 말보다 고문에 특화된 사람이다.
칼 데인 남작에게 인솔을 맡긴다는 것은 곧 고문의 예약과도 같았다.
망설이는 파비안에게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부드럽게 말했다.
“윗분들은 오늘 결투의 결과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고 싶어 하신다. 이미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검술 경지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설마 더 감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절대 아닙니다.”
“그럼 말해 봐라. 타메이온에서 뭘 봤는지를.”
“실은…… 몇 가지 사건이 더 있었습니다. 그때 전부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은 엘리오 남작님의 검술이 너무 기상천외해서……. 말씀드려 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감추려고 그랬던 것은 정말 아니었습니다.”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계속 말하라는 듯 턱짓을 했다.
“제가 타메이온에 들어간 것은 엘리오 남작님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엘리오 남작님이 광포화된 아이스 오우거를 오라 블레이드로 양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포화된 아이스 오우거가 확실한가?”
“예. 분명 광포화 상태였습니다.”
“그걸 오라 블레이드로 양단했다?”
“예.”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늘 결투장에서 목격한 엘리오 남작의 오라 블레이드라면 광포화된 아이스 오우거를 베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라 블레이드가 소드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를 힘으로 찍어 눌렀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분명히 엘리오 남작은 기술이 아니라 힘으로 코드란테스 백작을 눌렀다.
고차원의 검술이나 마법으로 이겼다면 고위 귀족들이 받는 충격도 덜했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오스카 아비드 자작의 귓가로 파비안의 음성이 들려왔다.
“얼음 숲에서 무수히 많은 마수와 마물이 덤벼들었습니다만 엘리오 남작의 일검에 양단됐습니다. 귀찮다면서 두 번 손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가축을 도살하는 것 같았죠.”
“마수와 마물에 대한 건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원하는 건 새로운 이야기다.”
“남작님은…….”
뭔가 말하려던 파비안은 말끝을 흐렸다.
아공간 아티팩트와 파이어 스톤보다 강한 야인족 마법이 떠올랐지만 그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문득 ‘기사의 명예를 걸고 평생 비밀로 하겠다’던 약속이 떠올랐다.
엘리오 남작 스스로가 공개한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역시 함구하는 게 나으리라.
“파비안, 칼 데인 남작과 만나고 싶지 않다면 머리 굴리지 마라.”
“아닙니다. 두서가 없는 것 같아서 생각을 정리하느라 그랬습니다. 남작님과 제가 흑마법사를 목격했다고 했지만……. 실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전부가 아니다?”
“흑마법사들이 이상한 의식을 치르자 남작님은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다고 직접 나서셨습니다.”
“흑마법사들과 싸웠다는 건가?”
“예, 흑마법사들이 스켈레톤 나이트들과 다크 스피어로 남작님을 공격했습니다만, 남작님은 눈 하나 까딱이지 않고 일격에 박살 냈습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흑마법사가 데스 워드까지 사용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데스 워드? 확실한가?”
데스 워드는 무려 7서클 마법으로 소드마스터조차 미리 아티팩트를 준비하지 않으면 죽을 정도로 무서운 마법이었다.
“흑마법사가 ‘죽어라!’라고 소리치자 남작님이 갑자기 석상처럼 굳어 버리셨습니다. 금방 깨어나서 반격하지 않았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게 데스 워드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암살자들 중 하나가 사용했다는 인페르노 마법 역시 7서클이었다.
“그리고?”
“공격이 실패하자 흑마법사들은 메가 텔레포트를 써서 달아나려 했습니다. 그때 남작님이 십여 개의 오라 블레이드를 날렸습니다. 결국 단 한 사람의 흑마법사만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텔레포트의 마력장 앞에서 양단되었고요.”
“십여 개의 오라 블레이드라고 했나?”
“예.”
“아무리 뛰어난 소드마스터라도 일격에 열 개의 마나 블레이드를 발출할 수는 없을 텐데?”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남작님의 오라 블레이드는 환영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흑마법사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계속해라.”
“그 뒤로는 전에 진술한 내용 그대롭니다. 흑마법사가 돌아오지 않아 알파 중대로 복귀한 게 전부입니다.”
“잘도 그런 이야기를 빼먹었군.”
“송구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말해 봐야 미쳤다는 소리만 들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본 게 사실인지 확신도 들지 않았고요.”
“왜 확신이 들지 않았지?”
“우리 중대장님이 영기 수련자이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제가 본 것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파비안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귀족들이 엘리오 남작의 경지에 충격을 받은 것도 그래서니까.
오스카 아비드 자작의 눈치를 살피던 파비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를 폰티악 중대로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너의 행동에 달려 있다.”
“저는 루퍼스 중대에 남고 싶습니다.”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히르헤라에 남고 싶다고? 하루에도 수십 명씩 사상자가 발생하는 이곳에?”
“제 검술은 수 년째 정체 상태입니다. 중대장님의 지도로 한계를 극복하고 싶습니다. 루퍼스 중대에 남게 해 주십시오.”
앞으로 기울어져 있던 오스카 아비드 자작의 상체가 뒤로 물러났다.
그는 편안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파비안을 보았다.
“지금처럼만 행동한다면 보직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예.”
“잔머리 굴리지 마라. 이미 알려진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너를 남겨 두는 건 아니니까. 무슨 뜻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예…….”
“타메이온에서의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 하지만 이후로도 그런 식으로 보고를 한다면…….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가 봐.”
“예.”
파비안은 오스카 아비드 자작에게 허리를 조아려 인사한 후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
히르헤라 에스카토스 왕국군 주둔지.
에스카토스 공작 막사.
왕국군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몇 장의 기록지를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내밀었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 관한 자료입니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참모장의 손에서 서류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에스카토스 공작이 메토 로베르트 자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리오 남작은 송곳과도 같네. 그건 베르나르도 후작가에 들어간 뒤로 벌인 일만 봐도 알 수 있지. 송곳은 주머니 속에 넣어 두어도 표시가 나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말이야. 푸토코아에서는 그러지 않았어. 부상을 입고 엔아르케에 실려 가기 전까지, 푸토코아에서는 엘리오 남작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자네는 이게 말이 된다고 보나?”
“선대 푸토코아 백작이 야인을 등용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등용이라.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게. 만약 그가 히르헤라에서 지금처럼 지냈다면 코드란테스 백작이 그의 이름을 못 들어 봤을 리 없어. 코드란테스 백작은 여전히 그에 대해 모르는 눈치더군.”
“지위 때문에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후작가에 들어갈 때 그는 단지 기사였다네. 하지만 그가 해낸 일은 상상을 초월하지. 그런데 푸토코아 백작군에 있을 때는 잠잠했어. 왜라고 생각하나?”
“모르겠습니다.”
“처음 엔아르케에서 그를 만나던 때가 생각나는군. 그의 영기는 인간의 경지라 보기 어려웠네. 모리츠 푸토코아 백작은 소드 익스퍼트였어. 그가 엘리오 남작의 영기를 몰라봤을까? 자신보다 뛰어난 검사를 일반병에 남겨 두었다고? 아무리 그가 보수적이라 해도 자신의 기사와 병사 들이 죽어 나가는 히르헤라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상하기는 합니다. 모리츠 푸토코아 백작은 왜 그랬을까요?”
“모르니까 그랬겠지. 모르니까.”
“하지만 모를 수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엘리오 남작이 모리츠 푸토코아 백작과 만난 적이 없다면 모를 수밖에 없지 않나.”
“예에?”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황당한 눈으로 공작을 보았다.
같은 숙영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어떻게든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엘리오 남작과 같은 경지의 검사가 모리츠 푸토코아 백작의 밑에서 차별 대우를 묵묵히 참아 냈을 것 같나? 귀족과 평민들 앞에서 토비아스 푸토코아를 개 잡듯 두드려 패는 사람이?”
“엘리오 남작이 후발대였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지는 않네. 엘리오 남작 정도의 경지라면 이미 대륙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어야 해. 거목은 말이야, 자기는 가만히 있고자 해도 바람이 자꾸 흔들거든. 그 과정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는 거고. 자네 푸토코아에 소드마스터급 야인이 출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바로 그거야. 푸토코아 영지에도, 히르헤라에도, 엘리오 남작은 갑작스럽단 말이지.”
“하지만 그가 야인 출신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미치겠다는 거지. 아귀는 하나도 안 맞는데 뿌리가 푸토코아의 야인을 가리키고 있으니……. 영기와 독특한 검술, 흑마법사에 대한 적의를 봐도 그는 야인이 분명해. 왕국 정보부에 알바 누베스 산맥의 야인 부족들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게.”
“조사라면?”
“알바 누베스 산맥의 야인들이 이십 대 소드마스터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알고 싶네.”
“모른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코드란테스 백작을 만나 보셨습니까?”
“우리 왕국군의 중요한 전력이 아닌가. 부상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가 봤네.”
“엘리오 남작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패배의 충격이 컸던지 시인처럼 말하더군. 몬타노사 산맥에 대고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나.”
몬타노사 산맥은 코드란테스 백작이 수련차 종종 토벌을 나갔던 북방의 험산이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결과에 승복한 모양입니다?”
“엘리오 남작이 최초의 그랜드 마스터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볼 수 있네. 푸토코아 백작과 달리 그런 쪽으로는 깔끔한 사람이니까.”
“혹시 푸토코아 백작과도 만나셨습니까?”
“어쨌든 나에게 중재를 요청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마무리 차원에서 찾아가 봤네.”
“깔끔하지 않았나 봅니다?”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는 하는데 눈에 원한이 가득하더군. 그래 봐야 자기 손해인데 어직 어려서 그런지 멈춰야 할 때를 모르는 것 같아.”
“그냥 내버려 두실 생각이십니까?”
“아슬아슬하지만 아직은 엘리오 남작도 선을 지키고 있으니까.”
“푸토코아 백작을 두고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토비아스 외에도 모리츠 푸토코아의 자식은 많네. 지금 히르헤라에 토비아스 푸토코아와 엘리오 라고아 중 누가 더 필요하다고 보나?”
“그야 엘리오 남작이지요.”
“귀족들에게 전하게.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일로 엘리오 남작을 흔들지 말라고. 그러다 괜히 결투장을 받게 되는 수가 있어. 중재를 서는 것은 푸토코아 백작 하나로 충분하다고.”
에스카토스 왕국군 원수인 에스카토스 공작이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