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63
1063회. 살고 싶으면 중대장님을 믿어요
파비안의 아우성에 엘리오는 체인 메일을 대충 걸치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계속해서 주의를 준 게 효과가 있었던가 보다.
어느새 루퍼스 중대가 공터에 중무장을 한 채로 도열해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파비안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엘리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
균열 감시 부대의 비상 종소리를 들은 지 5분도 채 안 됐는데 벌써 마물과 마수가 왕국군 주둔지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막상 눈으로 보니 알 것도 같았다.
마물과 마수의 숫자가 터무니없이 많았다.
그게 끝이 아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마물과 마수의 뒤로 사람보다 세 배쯤 키가 큰 거인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었다.
거검을 휘두르며 뭐라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마치 몰이라도 하는 분위기다.
엘리오가 거인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파비안! 저 거인들은 뭐냐? 사람치고는 너무 큰데?”
“아나킨이라고 불리는 하위 마족입니다. 흑마법사들이 가끔 소환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저렇게 많은 건 처음 봅니다.”
“저건 싸이클롭스의 사촌이냐?”
“전혀 종이 다릅니다. 기간타스와 서큐버스의 혼혈이라고 배웠습니다.”
엘리오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마족의 종류에 대해서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파비안!”
“예!”
“앞으로 전진한다. 선두는 내가 설 테니까, 내가 놓치는 것들을 처리해!”
“알겠습니다!”
루퍼스 중대가 삼각형 모양으로 군진을 갖추자 엘리오는 지체 없이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루퍼스 중대가 따랐다.
엘리오 중대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만들어 낸 루퍼스 중대의 군진은 아비규환의 와중에도 꽤나 질서 정연해 보였다.
히르헤라 주둔지 병사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왕국군은 압도적인 숫자로 소수의 마물을 밀어내는 전투를 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마족들이 인간의 토벌에 나선 것처럼 마물과 마수를 동원해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건 마족과 인간의 전쟁이지 균열 수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충돌이 아니다.
역전된 분위기를 감지한 병사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비켜!”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고!”
“마족이 쳐들어왔다!”
뒤늦게 백부장과 기사들이 병사들을 통제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누구도 이미 거대한 흐름이 되어 버린 탈출 분위기를 막지 못했다.
“멈춰라!”
“자리를 지켜!”
“돌아가! 명령이다!”
기사들은 목이 쉬도록 소리쳤지만 누구도 그들의 명을 듣지 않았다.
결국 자포자기한 백부장들이 후퇴하는 대열에 동참했다.
자리를 지키다가 마물에 찢겨 죽느니 욕먹더라도 살길을 택한 것이다.
말이 후퇴지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장에서 이탈하는 것에 불과했다.
달아나는 인간들을 마물과 마수 들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마물과 마수의 속도를 당해 낼 수 없다.
마물과 마수 들은 병사들의 뒤를 덮쳐 물어뜯었다.
에스카토스와 베일럼 왕국군 병사들은 마물과 마수라는 파도에 휩쓸려 속절없이 죽어 갔다.
물론 모두가 다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에스카토스 왕국군의 경우 에스카토스 공작과 코드란테스 백작이 지휘하는 부대들은 방어진을 짜고 버텼다.
시간이 지나자 미처 달아나지 못한 주둔지 병사들은 두 명의 소드마스터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건 베일럼 왕국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베일럼 왕국군도 소드마스터인 허버트 리베라토 공작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버티는 에스카토스 왕국군과 달리 베일럼 왕국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위태했다.
소드마스터가 하나뿐이라서가 아니라 노련한 병사들이 에스카토스 왕국군에 비해 적은 탓이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오와 루퍼스 중대의 돌진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마물과 마수 들이 엘리오와 루퍼스 중대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파도처럼 몰려오는 마물과 마수를 보고도 엘리오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구주의 종문이나 마족과 싸울 때에 비하면 저 정도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엘리오가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천둔검을 그었다.
슈아아악―!
검 끝에서 일어난 진검강이 마물과 마수 들을 마중하듯 쏘아져 나갔다.
“꺄악!”
“케에에에―!”
선두에 섰던 수십 마리 마수가 일검에 양단됐다.
그래도 마수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엘리오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경험하지 못한 까닭이다.
엘리오는 신경 쓰지 않고 사방으로 진검강을 뿌려 댔다.
백여 마리의 마수가 양단되자 마수들도 위기를 느끼는지 머뭇거렸다.
선두의 마수가 멈춰서자 후방의 마물들은 독려하듯 괴성을 질러 댔다.
“크아아아!”
“크허헝―!”
마물들의 협박에 마지못해 달려 나간 마수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단 났다.
그 지경이 되자 마수들은 엘리오와 루퍼스 중대를 피하기 시작했다.
엘리오와 루퍼스 중대의 좌우편으로 마수들이 치달렸다.
엘리오는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마수를 쫓지 않았다.
달아나는 마수가 아니더라도 아직 처리할 마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엘리오는 전방에 보이는 마물 무리를 향해 움직였다.
루퍼스 중대는 무리에서 떨어진 마수들을 척살하며 엘리오의 뒤를 차분하게 따라갔다.
엘리오와 루퍼스 중대의 활약으로 마물과 마수 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덕분에 에스카토스 왕국군은 한결 편안하게 마물과 마수를 상대할 수 있었다.
전방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부장군 콜린 스트롱 백작이 에스카토스 왕국군 원수인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말했다.
“공작님. 베르나르도 후작군의 일부가 마수를 돌파해 균열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곧 후열의 마물들과 조우할 것 같습니다.”
“알파 중대인가? 루퍼스 중대인가?”
“깃발은 루퍼스 중대입니다.”
“그렇다면 선두는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겠군.”
“그런 것 같습니다.”
“마수들의 기세도 꺾였으니 이제 슬슬 반격을 가할 시간인가. 준비하게.”
“하지만 아직 마물이 많습니다. 조금 더 지켜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엘리오 라고아 남작과 루퍼스 중대의 돌격을 왕실군이 지켜만 보자는 건가?”
“마수보다 마물이 상위종 아닙니까. 엘리오 라고아 남작도 후퇴할 수 있습니다.”
꽤나 합리적인 발언이지만 에스카토스 공작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승산 없는 일에 뛰어들 사람으로 보이나?”
“그건 아닙니다만, 저 정도 숫자의 마물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게도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마수와 달리 마물에게는 항마력이 있지 않습니까. 오라 블레이드로 일격에 벨 수 있는 상대가…….”
콜린 스트롱 백작은 말하다 말고 입을 쩍 벌렸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앞에 있던 마물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격에 베어지는군. 광포화된 아이스 오우거도 일검에 양단한 사람이라고. 그래도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반격의 시간이다! 나를 따르라!”
말과 함께 에스카토스 공작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그의 검 끝에서 마나 블레이드가 쏟아져 나갔다.
“와아아!”
“공작님을 따라라!”
“복수다!”
잔뜩 움츠리고 있던 에스카토스 왕국군이 함성을 내지르며 전진했다.
에스카토스 왕국군이 반격에 나서자 그렇지 않아도 위축됐던 마물과 마수 들은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싸움은 결국 기세에 달려 있다.
전세가 역전되자 미쳐 날뛰던 마물과 마수 들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에스카토스 왕국군 진영에서 일어난 변화는 곧 베일럼 왕국군 진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물과 마수 들의 공세가 약해지자 허버트 리베라토 공작도 반격에 동참했다.
후방에서 에스카토스와 베일럼 왕국군이 태세를 전환할 때 엘리오와 루퍼스 중대는 최전방에서 마물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던 루퍼스 중대의 기수 레이 모건이 파비안에게 말했다.
“헉! 헉! 참모! 최전방에 우리 중대만 있는데, 이래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중대장님 뒤만 따라붙으면 됩니다!”
“마물이 너무 많다고.”
레이 모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중대장의 뒤만 보고 달렸다.
마수를 베어 넘기고 전진할 때는 좋았지만 마물들 속에 갇히자 겁이 덜컥 났다.
마족과 마물 들은 마수와 달리 항마력, 즉 마력에 저항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소드 비기너나 소드 익스퍼트들이 마물을 홀로 상대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 마물들에 둘러싸이니 아무리 중대장이 잘 싸워도 찜찜했다.
중대장이 지치면 그때부터 상황은 다시 역전될 게 뻔한데, 주위에 바글바글한 게 항마력을 지닌 마물이라고 생각해 보라.
“상관없어요. 우리는 중대장님 옆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 중대장님이 계속 마물들 속으로 전진만 하시니 그러는 거지. 주변에 아군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참모가 좀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중대장님이 왜 전진하시는지 압니다. 히르헤라를 빼앗기면 북부는 망해요. 북부뿐인 줄 아십니까? 대륙이 금방 마물들로 뒤덮일 겁니다. 후퇴는 없어요! 히르헤라는 무조건 지켜야 된다고요!”
“나도 알아! 하지만 중대장님만 돌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레이 모건이 언성을 높였다.
아무런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루퍼스 중대만 치고 나가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기수의 반박에 파비안은 잠시 멈칫했다.
자신은 엘리오 남작을 철석같이 믿지만 아직 중대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건 말로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때 중대장의 공격에 치명상 입은 마물 하나가 두 사람 근처로 도망쳐 왔다.
파비안과 레이 모건은 논쟁을 멈추고 마물에게 달라붙었다.
두 사람 모두 마나 유저임에도 불구하고 마물은 맥없이 쓰러졌다.
워낙 엘리오에게 입은 부상이 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비안이 검에 묻은 마물의 피를 털며 말했다.
“모건 경, 살고 싶으면 중대장님을 믿어요. 주변에 아군이 있다고 안전한 게 아니라, 중대장님 옆이 안전한 겁니다. 우리 중대가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지만 피해는 가장 적게 입었을 겁니다.”
“나도 알지만……. 중대장님이 지칠까 봐 그런다. 소드마스터가 신은 아니지 않나? 중대장님 혼자서 너무 오래 싸우게 하면 안 된다고.”
그 말에는 파비안도 뭐라 말하지 못했다.
엘리오 중대장이 누구보다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인 까닭이다.
그런 파비안과 레이의 걱정과 달리 엘리오는 너무도 멀쩡했다.
레이 모건이 걱정할 정도로 오라 블레이드를 쉴 새 없이 뿌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에게 그 정도 오라 블레이드는 호수에서 바가지로 물을 떠내는 정도였다.
사실 지금 엘리오는 오히려 루퍼스 중대원들의 피해를 신경 쓰고 있었다.
‘벌써 셋이나 죽었다. 에스카토스 공작과 코드란테스 백작군이 올 때가 됐는데.’
생각보다 그들의 합류가 늦다.
그들 역시 히르헤라의 중요성을 알 텐데 왜 이렇게 굼뜬지 모르겠다.
그때 문득 그의 눈에 마물의 뒤에서 구경하듯 쳐다보는 아나킨들이 보였다.
잔뜩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을 보니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니 저것들은 왜 화가 났지? 누가 오라고 했나? 자기들이 꾸역꾸역 인간의 영역에 쳐들어와서는 도리어 뺨 맞은 표정이네?’
하여간 어느 세계나 마족이라는 것들은 양심이 없다.
문득 짜증이 난 엘리오는 멀리 떨어진 아나킨들에게 한차례 검을 휘둘렀다.
구천구검 사 식 현녀강우가 만들어 낸 진검강이 아나킨들의 머리 위로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
순간 느긋하게 구경하던 아나킨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때마침 왕국군을 이끌고 온 에스카토스 공작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저건 뭐지? 마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