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55
1355회. 귀신 들린 놈보다 미친놈이 더 무섭더라
엘리오가 화가 난 얼굴로 파비안을 보았다.
미노스에 남아 있으면 죽는다고 내보냈는데 왜 갑자기 다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빠른 판단으로 그를 구했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백치가 될 뻔하지 않았나 말이다.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진심으로 화가 난 듯하자 얼른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남부 왕국군의 대반격이 성공한다면 분명히 그 신무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그 신무기의 개발자나, 그걸 남부 왕국에 공급하는 무기 거래상이 혼란의 주체일지 모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걸 라고아 경께 빨리 알려 드려야겠다 싶어서 왔다가…… 제국군에 체포됐던 겁니다.”
“남부 왕국군이 신무기를 앞세워 대반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남부 왕국군 중대장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라고아 경도 아시지 않습니까? 중대장쯤 되면 고급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전황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겠군.”
“맞습니다. 그 근원에 ‘혼란의 선봉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있습니다!”
파비안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거야말로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생각하던 엘리오가 물었다.
“다른 남부 왕국들은 어때? 그들도 대반격에 참전할까?”
“크라시온에서 만난 남부 왕국군 지휘관들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드니로프 왕국과 우름 왕국에 다른 남부 왕국의 군대가 집결했다고 들었고요. 그들은 신무기의 위력을 확인하면 바로 전쟁에 동참할 겁니다.”
“허어!”
엘리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는 대수림 인근의 몇몇 왕국들과 제국 간 전쟁이었다.
하지만 남부 왕국 전체가 움직이면 전쟁의 규모는 과거 제국 전쟁만큼이나 커지게 될 터였다.
“이런 때에 라고아 백작님의 측근인 저를 체포하고 심문하다니? 제국군 참모들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엑시티움을 믿고 나를 건드려 본 거야. 그랜드 마스터라고 나대지 말라 이거지.”
“그럼 저는 다시 크라시온으로 돌아가면 됩니까?”
“안 가도 될 것 같다.”
“남아 있으면 죽을 거라면서요?”
“우리를 노리던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 죽었어. 당분간 제국군은 잠잠할 거야.”
“아하! 그런데 스타우런 후작은 왜 죽이신 겁니까?”
엘리오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나를 건드리면 죽는다고 경고했는데……. 말을 안 듣더라고.”
“아이쿠! 그래서 제국군 참모들 눈이 돌아갔던 거군요?”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는 했겠지?”
“어느 정도가 아니라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요? 스타우런 후작은 황태자 최측근 아닙니까? 그런 사람을 죽였으니……. 라고아 경에게는 감히 뭐라 못 하고, 대신에 만만한 저에게 화풀이를 한 거잖습니까? 딱 구도가 그런데요?”
그에 대해 할 말이 없던 엘리오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참모에게 조사받았냐?”
“처음에는 조사관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랜드 게티 백작으로 바뀌더라고요?”
“그 사람이 뭐래?”
“왜 크라시온에 갔냐? 남부 왕국이 대반격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면 불어라. 그러더라고요?”
“그거네.”
“예? 뭐가요?”
“네가 남부 왕국에 제국군 정보를 넘겨줬는지, 또 남부 왕국의 대반격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그걸 조사하려고 너를 체포한 거잖아.”
“그거야 표면적인 이유고요. 실제로는 라고아 경이 후작을 죽여서 저를 잡아간 거라니까요!”
“봐 봐. 너 페로무로스 돌아다니다 크라시온에 갔지? 그럼 남부 왕국군 지휘관과 만났을 때 제국군 얘기가 오갔을 거 아냐? 제국군 입장에서는 그게 간첩질이잖아. 게다가 대반격도 제국군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정보라고. 너의 체포가 단지 나 하나 물먹이려고 한 짓은 아니라니까.”
“와아! 미치겠네. 사고를 친 라고아 경이 하실 말씀은 아니죠. 라고아 경이 후작을 죽인 것 때문에 제가 잡혀갔던 겁니다!”
“누가 아니래? 내가 조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했잖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 이 말이야. 다시 원정군 참모장에게 찾아가서 누구 말이 맞는지 물어볼까?”
“어이쿠! 됐습니다. 그냥 ‘나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인정하면 될 일을, 뭘 그렇게 변명하십니까? 누가 잡아가기라도 한답니까?”
파비안이 정색을 하자 엘리오도 더는 딴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 다 내 탓이다. 너는 눈곱만큼도 잘못한 일이 없다. 됐냐?”
“진즉에 그렇게 하셨어야죠. 처음부터 그랬다면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만! 그만해.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다.”
“라고아 경은 귀에서 피가 나오죠? 라고아 경이 모든 걸 제 탓으로 돌릴 때마다, 제 마음에서는 피가 나옵니다.”
“알았어. 잘못했으니까 그만하라고. 제발.”
“다시는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십쇼. 라고아 경은 숨만 쉬어도 문제가 일어나니까, 전부 내 탓이려니 생각하십쇼.”
“맞아. 모두 내 탓이니까 이제 그만 닥치자.”
“예. 그럼 저도 라고아 경을 따라 미노스로 가면 됩니까?”
“오래 있지는 않을 거야.”
“왜요?”
“제국군 쪽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남부 왕국으로 넘어갈 예정이니까.”
엘리오의 목적은 ‘혼란의 선봉장’을 찾아 없애는 것, 제국군에 의심 인물이 없으면 크라시온으로 넘어가는 게 당연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제국군 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냐.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적을 이롭게 한 죄’로 잡혀갔던 너를 제국군이 좋아할 리가 없잖아. 괜히 의심만 더 받게 될 거야.”
“그래서 그냥 샬레(남부의 산장)에 처박혀 있으라고요?”
“그게 돕는 거다. 너 나돌아다니다 또 제국군에 체포되면 일만 꼬인다.”
“에이, 원정군 총사령관인 황태자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빨빨거리며 들쑤시고 다니는 너 때문에 짜증 난 황태자가 미친 척하고 엑시티움을 확 풀면……. 너는 또 잡혀갈 수 있어. 그때는 아무리 나라도 이번처럼 쉽게 못 구해.”
“설마요. 엑시티움은 일반인(총병)에게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의 힘을 주는 무기인데……. 그걸 황태자가 풀겠습니까? 세상의 질서가 바뀔 텐데요?”
“‘사자의 심장’을 가진 양이, ‘양의 심장’을 가진 사자보다 강하다며? 총병은 그래 봐야 총병이야. 엑시티움으로 사자가 됐지만 ‘양의 심장’을 가졌다고. 그들은 권력자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기사와 마법사의 위치에 변함이 없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권력자가 그 자리를 뺏기지 않을 거라는 소리야. 모든 기사와 마법사 들이 권력자는 아니잖아.”
파비안이 기이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사자와 양의 비유가 조금 이상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 이럴 때 보면 라고아 경의 머리도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 머리가 나쁜 줄 알았어?”
“도통 머리를 안 쓰시니까요. 솔직히 지금까지 라고아 경이 머리를 쓰지는 않았잖습니까? 심지어 강한 사람은 생각하는 거 아니라면서요?”
“음, 이건 생각하는 머리가 아니라…… 뭐랄까……. 음, 그래, 맞다. 통찰력! 통찰력이야.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과 머리를 쓰는 건 다른 거라고. 통찰력은 그냥 되는 거야.”
“아, 예에.”
파비안은 건성으로 답하고 도시를 향해 앞장서 걸어갔다.
이미 늦은 밤이라 엘리오와 파비안은 숙소부터 구하기로 했다.
전쟁 중인 도시의 거리는 제국군만 가끔씩 오갈 뿐, 주민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직 불이 환한 건물을 찾아갔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중하듯 중년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시 숙박할 곳을 찾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녁 식사는 됩니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파비안의 물음에 중년 사내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원래는 안 됩니다만……. 손님 얼굴이 며칠 굶으신 것 같아서……. 국수도 괜찮으시다면 바로 요리해서 드릴 수 있습니다.”
“어이쿠! 국수라도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오늘 하루 꼬박 굶었거든요.”
그 말에 엘리오가 혀를 찼다.
“쯧쯧! 그놈들이 먹을 것도 안 줬냐?”
“안 먹기를 잘했죠. 먹었으면 다 토했을 겁니다. 정신 차리고 나서도 한참 동안 뱃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거든요.”
주인이 눈치껏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국수를 얼른 내오겠습니다.”
주인이 앞치마를 찾아 두르고 주방으로 사라지자, 두 사람은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내다보던 엘리오가 문득 물었다.
“몸은 좀 괜찮냐? 정신 마법 후유증이 그렇게 무섭다던데.”
“괜찮습니다. 무슨 소리가 자꾸 들리기는 하는데……. 참을 만합니다.”
“무슨 소리?”
“시장터에서 사람 떠드는 소리 있잖습니까? 그런 소리가 잊을 만하면 들립니다.”
“야아, 말만 들어도 무섭다. 귀신 같은 건가?”
“에이, 설마요. 그냥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린지 들으려고 집중하면 또 안 들립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귀신인가 보네.”
“귀신 아니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찜찜하던 파비안이 소리를 빽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엘리오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아니면 아니지 왜 소리를 질러? 이게 안 하던 짓을 하네? 미친 거야?”
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미친놈은 몽둥이가 약’이라고 할까 봐 파비안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안 미쳤습니다.”
“그런데 소리는 왜 질러? 인마.”
“저도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불안해 죽겠는데 귀신이라고 하시니…… 짜증이 나서요.”
“짜증 난다고 아무에게나 소리 지르면 안 돼.”
“예, 예. 주의하겠습니다.”
엘리오가 미심쩍은 눈으로 파비안을 쳐다보았다.
진짜 귀신이라도 들렸나 싶어서다.
하지만 그는 파비안에게서 ―귀접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사기가 느껴지지 않자 이내 의심의 시선을 거두었다.
“귀신 아니라고 했습니다.”
“알아.”
시큰둥한 엘리오의 말에 파비안이 반색을 했다.
“정말 아니죠?”
“아니라니까. 너도 아니라고 했잖아.”
“도둑놈이 도둑이라고 하는 것 보셨습니까? 귀신의 짓이 아닌 거 맞죠?”
“맞아. 정신 마법의 여파로 환청이 들리는 거야.”
“아아! 다행이다. 역시 환청이었어!”
“뭐야? 너는 그런 확신도 없이 아니라고 난리를 쳤던 거냐?”
“아니길 바란 거죠. 환청이라니 마음이 한결 가볍네요. 하하하!”
풀죽어 있던 파비안이 태도를 바꿔 이번에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지그시 보던 엘리오가 물었다.
“야, 너 마음에 비가 내렸다, 해가 나왔다 그러냐?”
“예? 왜요?”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하는 짓이 미친 사람 같아.”
“에이, 미치다니요? 살다 보면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할 수도 있는 거죠.”
“알았는데, 너무 오락가락하지 마. 나는 귀신 들린 놈보다 미친놈이 더 무섭더라.”
파비안이 막 반박하려는데, 때마침 주인이 국수를 들고 나왔다.
엘리오와 파비안이 국수를 절반쯤 먹었을 때다.
멀리서 갑자기 ‘쿵! 쿵! 쿵!’ 하고 마력포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페로무로스 주변에서 자주 듣던 소리라 그러려니 무시하고 젓가락질에 집중했다.
엘리오와 파비안이 입안에 국수를 가득 욱여넣었을 때다.
돌연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한쪽 벽이 날아갔다.
박살 난 건축물 파편이 안쪽으로 날아들었지만 다행히 엘리오의 호신강기에 막혀 후두득 떨어졌다.
한동안 황당한 얼굴로 눈만 끔뻑이던 엘리오가 고개를 돌렸다.
허물어진 벽으로 작은 도시의 전경이 보였다.
제국군이 점령한 도시 위로 유성우(流星雨)처럼 마력포탄이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