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72
272회. 흉성(凶星), 혼천혈귀
혼천혈귀 강상피는 본래 종남산에서 수도하던 도사였다.
하지만 여색을 지나치게 밝히다가 사문에서 쫓겨나 결국에는 낭인이 되고 말았다.
종남산 시절에 그는 한 이인(異人)에게 화룡복마검을 배웠는데, 강호에서 그의 일 초식을 받아 내는 자가 없었다.
그는 사소한 이유로 자신을 버린 사문에 대한 분노를 세상에 풀어 냈다.
그래서 한때는 ‘천살성의 화신’이라고까지 불렸다.
천하가 꺼려 하는 대살성 혼천혈귀를 받아들인 사람이 유명교 교주다.
그 뒤 혼천혈귀는 섬서성의 지존으로 군림했다.
섬서성에 화산파가 있었지만 그들도 혼천혈귀를 두려워해서 피해 다녔을 정도다.
십두마병 시절에 이미 화산파조차 내려다보던 혼천혈귀다.
그런 그가 백두마군이 되었으니 천지맹의 사람들이 우스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유명교가 폐쇄적인 집단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천하십대고수로 불렸을 것이다.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터라 천지맹 고수들은 바짝 긴장했다.
검왕 남궁벽은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자 인상을 찌푸렸다.
저 정도 고수라면 들어 봤음 직도 한데 도무지 연상되는 사람이 없었다.
화용독심 남궁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종남산에서 파문당한 혼천혈귀가 어디로 갔나 했더니 유명교에 숨어 있었군요. 당신이 화룡복마검으로 살겁을 저지르고 다닐 걸 알았다면, 종남산의 이인도 그걸 가르쳐 주지 않았을 거예요”
그제야 남궁벽은 저 늙은이가 과거 천살성으로 불리던 혼천혈귀라는 것을 알았다.
남궁벽의 얼굴이 긴장으로 가볍게 굳었다.
혼천혈귀는 천살성으로 불릴 정도로 잔악했지만 화산파에서조차 건드리지 못한 절대고수인 까닭이다.
강상피가 흥미로운 얼굴로 남궁연을 보았다.
섬서성도 아닌 하남성에서 아직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저렇듯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강상피가 음탕한 눈빛으로 남궁연을 훑어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이도 어린 계집이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하지만 남궁연은 웬 개가 짖느냐는 얼굴로 딴청을 부렸다.
기다려도 답이 없자 강상피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십두마병들에게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연놈들을 모두 죽이되, 저 아이만은 예외다. 털끝 하나 상하게 하지 말고 데리고 오너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냉혈마도 태경림이 무리를 대신해 답한 뒤 세 명의 십두마병을 이끌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칠십여 명의 유명교도들이 십두마병의 뒤에 질서 정연하게 늘어섰다.
천지맹에 남궁벽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지 보무도 당당했다.
구천노도 심통은 죽이려던 금청군을 뒤로하고 남궁벽에게로 다가갔다.
인대와 함께 있던 경혼사군도 앞으로 나섰다.
이윽고 검왕 남궁벽과 냉혈마도 태경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교차했다.
채챙-.
그것이 대혈전의 시작이었다.
뒤이어 구천노도 심통과 경혼사군도 앞에 있던 십두마병들과 어우러졌다.
상대를 찾지 못한 십두마병 진천일섬 정수인은 바람처럼 남궁연에게 달려갔다.
청운검 남궁천이 즉시 검을 뽑아 동생의 곁에 나란히 섰다.
그때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변고가 터졌다.
“한쪽 숫자가 넘치니 보기에 좋지 못하구나. 공평하게 해야겠지?”
말과 함께 혼천혈귀가 검을 뽑아 휙 내던졌다.
곧이어 그의 검은 좌에서 우로 천지맹 고수들을 쓸고 지나갔다.
콰드드드득-.
단 한 수에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절명했다.
우측 하늘 끝으로 떠오른 검은 다시 좌측으로 무자비하게 짓쳐 들어갔다.
콰드드드득-.
다시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저항도 못 하고 쓰러졌다.
마치 낫으로 풀을 베는 듯한 그 모습에 천지맹 고수들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천하십대고수라해도 저토록 손쉽게 천지맹 고수들을 참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제야 천지맹 사람들은 남궁연의 예측이 옳았음을 알았다.
혼천혈귀는 흉성(凶星)이라는 말로도 부족해 보였다.
공포가 번지자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인의(仁義)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인대(人家)의 도적들이 슬슬 뒷걸음질 쳤다.
어떤 이들은 대놓고 달아나기까지 했다.
인대의 생존자 팔십여 명이 전장을 이탈하자 주작대 팔십여 명만 남았다.
그중에 열두 명이 술사들이니 도검을 든 천지맹 무인은 육십여 명.
혼천혈귀의 개입으로 전세는 크게 기울어지고 말았다.
칠십여 명의 유명교 고수들이 남아 있던 육십여 명의 천지맹 고수들을 덮쳐 갔다.
인대 고수들은 혼천혈귀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경혼사군을 남겨 두고 달아나자니 후환이 두렵고, 그렇다고 싸움에 끼자니 혼천혈귀의 이기어검이 무서웠던 것이다.
만약 남궁벽이나 연적하가 혼천혈귀를 상대했다면 싸움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경림의 무위가 뛰어나 남궁벽은 일시에 그를 제압하지 못했고, 연적하는 부재중이었다.
결국 자기 목숨 귀한 줄만 아는 인대의 도적들은 갈팡질팡할 뿐 선뜻 싸움에 끼지 못했다.
혼천혈귀는 도적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킬킬거렸다.
시커먼 연기 속에서 벌어진 혼전이 한 폭의 지옥도를 보는 듯해서다.
팽팽하게 돌아가던 싸움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정수인은 남궁연을 잡으러 갔지만, 사실 남궁천과 남궁연의 상대는 아니었다.
남궁천 남궁연 남매는 처음부터 그를 맹렬하게 몰아세웠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진천일섬답게 쾌검을 구사하던 정수인이 멈춰 섰다.
그의 심장에는 남궁연의 검이 박혀 있었다.
혼천혈귀의 입에서 ‘아!’ 하고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인 지라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곧이어 연기 위로 마룡이 훨훨 날아올랐다.
언제 달아날까 눈치만 보고 있던 제마대 술사들은 재빨리 응전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연기가 자욱해서 하늘로 치솟은 마룡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허!”
혼천혈귀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두 눈으로 마신을 보기는 처음이다.
날개를 퍼덕여 연기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뒤이어 연기를 뚫고 불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 퍼엉-.
마룡에게는 피아의 구별이 없다.
불덩이는 천지맹은 물론 유명교도 위에도 공평하게 떨어졌다.
“크아악!”
“아악!”
수십 명이 불에 휩싸여 연기 속을 뛰어다녔다.
화염에 휩싸인 사람들과 계속해서 떨어지는 불덩어리를 보던 혼천혈귀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저 아비규환은 그의 마음에 꼭 들었다.
“크하하핫! 마신이여! 다 태워라! 이 개 같은 세상을 쓸어버리란 말이다!”
화답하듯 그의 근처로 불덩어리 하나가 뚝 떨어졌다.
퍼엉-.
마룡의 등장으로 남궁벽과 심통, 경혼사군의 싸움은 흐지부지 끝났다.
언제 화염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싸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처럼의 참상에 흠뻑 빠진 혼천혈귀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누가 쉬라고 했느냐? 가서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세 명의 십두마병은 혼천혈귀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섰다.
두 명의 십두마병이 그들 중에 최고수인 태경림을 바라보았다.
상황이 어지러우니 그의 지시에 따르려는 것이다.
태경림은 혼천혈귀가 원하는 게 살육임을 알고 씁쓰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괜히 천살성으로 불린 게 아니다.
그는 교도들이야 어찌 되건 적을 죽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명교도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미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
결국 이곳에서 당주의 명을 집행할 사람은 십두마병들밖에 없었다.
“눈에 띄는 적을 닥치는 대로 척살하시오!”
말과 함께 태경림이 신속하게 앞으로 내달렸다.
멈칫하던 두 명의 십두마병들도 다시 짙은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홀로 남아 연기를 응시하던 혼천혈귀가 돌연 검결지로 정면을 가리켰다.
휘우우우웅-.
손끝에서 일어난 광풍이 연기를 일직선으로 밀어냈다.
때마침 한쪽으로 달려가던 남궁벽은 갑자기 연기가 사라지자 멈춰 섰다.
그는 누군가 강력한 기운으로 연기를 밀어냈음을 알았다.
덕분에 시야는 밝아졌지만 한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의 마기가 느껴졌다.
남궁벽이 천천히 돌아섰다.
직선으로 뚫린 길 끝에 혼천혈귀가 오연하게 서 있었다.
남궁벽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백두마군이 처음은 아니다.
남궁세가가 무너지던 날 두 명의 백두마군과 싸운 적이 있다.
그들의 술법은 경천동지라 칭할 만했지만, 위압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혼천혈귀는 달랐다.
사람을 내려다보듯 한 표정과 살기등등한 눈빛 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느껴졌다.
문득 남궁벽은 자신이 상대를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허. 검왕인 내가 위축당했다는 건가?’
교주도 아닌 백두마군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수습한 뒤에 혼천혈귀를 향해 걸어갔다.
“너 남궁세가의 사람이더냐?”
“그렇다. 당대의 가주 검왕 남궁벽이 나다.”
혼천혈귀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남궁벽을 보았다.
천하십대고수니 뭐니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연기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남궁벽은 그제야 아직도 하늘에 마룡이 떠다니고 있음을 기억해 냈다.
설상가상이라고, 세 명의 십두마병들도 이 자리에 없었다.
‘저 비명은 천지맹 사람들의 것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비명이 들릴 때마다 피가 마르는 느낌에 남궁벽은 치를 떨었다.
남궁세가가 몰살당할 때 느꼈던 무기력함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상황은 그날과 놀라울 만치 닮아 있었다.
설마 그날의 비극이 재현되는 걸까?
빠드득 이를 갈던 남궁벽이 검을 앞에 세우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천하십대고수의 체면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그는 혼천혈귀와의 싸움을 빨리 끝내고 마물과 남은 십두마병들을 물리칠 생각밖에 없었다.
혼천혈귀가 들고 있던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화르르르륵-.
검 끝에서 일어난 시뻘건 불기둥이 천지를 양단하듯 뻗어 나갔다.
화룡복마검의 일 식 화룡겁멸(火龍法滅)이다.
불기둥의 끝에서 화룡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입을 쩍 벌려 남궁벽을 물어 갔다.
이른바 ‘검기로 뜻한 바를 형상화한다’는 의형검기(意形劍氣)의 수법이었다.
남궁벽은 작정한 듯 대연검법을 펼쳤다.
대연검법의 검의(劍意)는 ‘그릇이 넘칠 정도의 가득함’에 있다.
대자연처럼 압도적인 포용력이 그것이다.
화룡복마검에서 영감을 얻은 남궁벽은, 오랜 세월 갈고닦았던 검의를 살짝 비틀었다.
남궁벽의 검첨에서 넝쿨처럼 줄기줄기 뻗어 나간 검기가 화룡을 옭아맸다.
콰지지지직-.
하나를 끊어 내면 다른 두 개의 덩굴이 화룡을 감쌌다.
그야말로 넝쿨 밭에 떨어진 화룡과도 같았다.
남궁벽의 이미에 땀방울이 맺혔다.
압도적인 포용력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내력이 소모된다.
물론 혼천혈귀도 화룡복마검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남궁벽만큼은 아니었다.
그때 혼천혈귀가 들고 있던 검에서 손을 뗐다.
콰아아아-.
검이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남궁벽을 향해 날았다.
이 식 쌍룡출진(雙龍出陣)이었다.
의형화된 검기와는 별도로 이기어검을 사용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두 마리 용이 하나의 여의주를 물려고 날아가는 것과 같았다.
화룡을 제압하려고 힘쓰던 남궁벽에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다.
깜짝 놀란 남궁벽은 화룡으로 향했던 검을 거두어야 했다.
채앵-.
혼천혈귀의 검이 뒤로 튕겨 나는 순간, 화룡이 날아와 남궁벽을 집어삼키려 했다.
남궁벽은 급히 좌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천궁신장(天弓神掌)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유일한 장법을 펼친 것이다.
퍼엉-.
쏘아져 나간 장영(掌影)이 화룡의 입을 때렸다.
그러나 잠시 주춤하던 화룡은 오히려 전보다 빠른 속도로 남궁벽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