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73
273회. 그럼 중요한 건 뭔가요?
대경실색한 검왕 남궁벽은 뒤로 훌쩍 몸을 날려 위기를 벗어났다.
화룡은 허공을 거칠게 휘젓고 난 뒤 스르륵 사라졌다.
한차례 공방이 끝난 뒤 남궁벽의 안색은 더욱 가라앉았다.
전진하던 자신이 뒷걸음질 쳐야 할 정도로 상대의 무공은 놀라웠다.
혼천혈귀 강상피의 표정에서도 여유가 사라졌다.
화룡복마검을 이 식이나 연달아 펼쳤음에도 상처조차 입히지 못해서다.
화룡복마검을 대성한 이후로 이런 적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의 무위에 내심 놀라고 있을 때다.
돌연 연기를 가르며 거대한 물체가 지면으로 처박혔다.
콰아앙-.
자욱한 연기가 한차례 출렁거렸다.
하늘에 있어야 할 마룡이었다.
연기에 가려 보이지도 않던 마룡이 추락한 것이다.
그를 본 남궁벽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휴! 이 연기 봐. 왜 멀쩡한 산에 불을 싸질러 가지고. 어? 숙부님? 여기 계셨네요?”
“잘 왔다. 저 늙은이가 혼천혈귀라고 불리는 백두마군이다.”
남궁벽이 고자질이라도 하듯 혼천혈귀를 가리켜 보였다.
이럴 때 보면 남궁천은 부친을 닮은 듯도 하다.
강상피는 숙부님 소리에 금방 연적하의 정체를 알아챘다.
연적하와 남궁세가의 관계는 유명교에도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네놈이 연적하냐?”
강상피의 관심은 남궁벽에서 연적하로 옮겨 갔다.
오늘날 유명교 최고의 적은 연적하니 당연하다.
연적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들고 강상피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갔다.
백두마군이고 뭐고 전혀 안중에 없는 태도다.
“늙은이. 왜 멀쩡한 산에 불을 지른 거야! 그냥 조용히 달아나지 그랬어? 너 죽고 나 죽자는 심보로 불을 낸 거야?”
“미친놈. 누가 불을 냈다고……. 오라! 그러고 보니 네놈들이 불을 지른 것이었구나!”
강상피는 상대의 뻔뻔한 수작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연적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 만한 늙은이가 왜 그러실까? 세상 나쁜 건 원래 죽은 사람 몫이잖아.”
강상피가 기막힌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러니까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소리다.
감히 백두마군인 자신의 앞에서 그런 망발을 하는 미친놈이 있다니?
그러는 동안에도 연적하는 계속 걸어가 마침내 강상피의 두세 걸음 앞에 섰다.
도검이 직접 맞닿는, 고수들에게도 위험한 거리다.
검기니, 의형검기니 하는 것들은 모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펼치는 것이다.
진검과 약간의 거리가 있을 때는 몸을 움직일 여유가 있다.
조금 전 남궁벽이 화룡복마검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이처럼 가까이 붙으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거리 자체가 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날카로운 눈으로 서로를 쏘아보았다.
둘은 서로의 숨소리는 물론 눈썹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집중이 최고조에 도달하자 시간마저도 멈춘 듯했다.
더 이상은 연기도, 주변의 소란도 그들의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적하와 강상피는 거의 동시에 검을 뻗었다.
이런 거리에서 형식이 담긴 초식을 펼치는 것은 죽여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당연히 두 사람의 검법은 처음부터 형태를 벗어났다.
채채채챙-.
연적하는 상대의 공격을 막고, 눈에 보이는 빈 공간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건 강상피도 마찬가지였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진행됐다.
구천기가 담긴 연적하의 검이 백색 광망을 뿜어냈다면, 백두마군인 강상피의 검은 칠흑처럼 검었다.
흑백의 광채만 봐도 두 사람의 검공이 상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채앵-.
숨 가쁘게 검격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잠시 거리를 벌렸다.
전심전력을 기울였을 게 분명한데도 두 사람의 숨소리는 처음처럼 잠잠했다.
남궁벽은 연적하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강상피야 전대의 대살성이니 그렇다 쳐도 연적하의 성취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두 사람이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럴 때는 나뭇잎 하나가 날아드는 것만으로도 큰 위협이 된다.
남궁벽은 검 끝으로 밤톨만 한 돌맹이를 때렸다.
피잉-.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돌맹이가 강상피의 복숭아뼈를 때리려는 순간.
강상피는 황급히 발을 들어 올려 돌맹이를 피했다.
“이런 개 같은…….”
남궁벽에게 욕을 퍼붓던 강상피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한순간 연적하의 검에서 시선을 뗀 게 화근이었다.
언제 칼에 맞았는지 어깨가 화끈거렸다.
“감히, 감히…….”
강상피는 남궁벽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며 파르르 떨었다.
강호에 나온 이래 칼을 맞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천하십대고수라는 놈이 이렇게 치졸한 방법을 사용할 줄이야!
“아, 오해하지 마시오. 재가 날아오기에 돌멩이로 쳐 낸 것뿐이니까. 적하야, 그 늙은이는 잠시 너에게 맡기마. 십두마병들을 처리할 때까지만 잡고 있어 다오.”
“예!”
연적하가 씩씩하게 답하자 남궁벽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남궁벽이 사라지자마자 강상피는 ‘휘이익!’ 하고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기 속으로 몸을 날렸다.
강상피가 떠나간 직후, 사라졌던 남궁벽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십두마병을 잡으러 가지 않으셨어요?”
“그들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잡으러 간단 말이냐? 혼천혈귀를 속이려고 그런 것이다.”
“아! 저는 정말인 줄 알았는데.”
“내가 혼천혈귀와 같은 강적을 너에게 떠맡기고 자리를 피할 사람 같으냐?”
“그러셨구나.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거예요?”
연적하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연기만 자욱하지 어디에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불이 번지니 싸우면서 조금씩 하산을 한 것 같구나. 오늘 네가 불을 내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저어, 숙부님. 제가 불을 낸 게 아닌데?”
“괜찮다. 모두 내가 시켜서 한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불은 혼천혈귀가 낸 거라니까요?”
“그래, 그래. 속히 다른 사람들이나 찾아보자꾸나.”
남궁벽은 뻔한 거짓말을 한 귀로 흘리며 서둘러 앞장섰다.
천지맹의 고수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로 그 아래에 주작대와 인대의 고수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었다.
남궁벽을 본 환우검 선우담이 급히 달려갔다.
“역시 무사하셨구려. 휘파람 소리와 함께 적들이 물러가서 잘 해결된 줄 알았소이다.”
“생존자는 저들이 전부입니까?”
주위를 둘러보던 남궁벽이 얼굴을 찌푸렸다.
주작대 사십에 인대 육십, 그리고 술사 다섯이 전부였다.
천지맹을 함께 나온 이백이십 명 중에 절반 가까이 사망한 것이다.
그때 선우담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연 공자, 그쪽 방면으로도 적지 않은 숫자가 갔을 것 같은데. 어땠소?”
“십두마병 셋에 육십 명쯤 내려왔어요.”
“남궁 대주. 들으셨소? 이만한 피해로 끝난 것도 천운이외다. 호두산에는 백두마군 하나와 십두마병 일곱이 있었소. 남궁 소저가 화공을 앞세우지 않았다면 우리 중에 몇이나 살아남았겠소?”
“…….”
남궁벽은 반박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맹에 돌아가는 즉시 총사의 해임을 건의할 것이오. 이건 우리를 죽이기 위해 사지에 밀어 넣은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뒤늦게 대화에 합류한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빈도 역시 이번 일은 묵과하지 않을 생각이오.”
십두마병 중의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백두마군까지 있었다.
총사의 정보에 문제가 있던지, 고의적으로 감춘 것이 분명했다.
선우담과 영결상인은 후자라고 믿었다.
해가 지자 남궁연이 예측한 대로 비가 쏟아졌다.
천지맹 고수들은 급히 호두산 인근에 숙영지를 만들고 하룻밤 묵었다.
비는 다음 날 아침에야 멎었다.
잠에서 깬 연적하는 밖으로 나가서 비에 씻긴 호두산을 올려다보았다.
어제까지 연기로 가려져 있던 정상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비록 새까맣게 타 버리긴 했지만 웅장함은 여전했다.
감탄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연적하에게 술사 하나가 다가갔다.
이화선이었다.
“저는 연 공자님에게 유감없어요.”
“예?”
“아니요. 수고하셨다고요.”
이화선은 급히 말을 돌렸다.
‘연적하와 무영비마가 호두산에 불을 질렀다’는 보고서를 쓰려니 괜히 미안했다.
결과적으로 잘했다고는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두 사람은 그 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수고를 하기는 했죠. 연기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지금도 속이 영 그렇네요.”
“아! 산불 때문에…….”
“하여간 유명교 놈들 참 나빠요. 왜 산에 불을 싸질렀는지 모르겠어요.”
“불은…….”
“혼천혈귀가 냈다고 제 입으로 그러더라고요.”
“에?”
너무도 뜻밖의 말에 이화선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자기가 불 지른 걸 뻔히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어제 제가 혼천혈귀에게 들었어요. 자기가 낸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런 일이…….”
이화선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두커니 서 있는 이화선을 남겨두고 연적하가 한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누님!”
“일어났구나?”
남궁연이 반가운 얼굴로 연적하를 맞이했다.
“어제 제가 좋은 수를 생각해 봤는데요.”
“무엇에 관해서?”
남궁연은 웃으며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불쑥 찾아와 엉뚱한 소리를 해 대는 그가 익숙해졌는지 옆에 없으면 무료할 정도다.
“산에 불을 낸 거요.”
“그게 왜?”
“우리가 불을 낸 게 아니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럼 사람들도 헷갈려서 욕을 못 할 거 같아서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
“뭐가 부족해요?”
“누군가를 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욕을 해. 그러니 헷갈리게 만든다고 해서 욕먹을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아, 그런 거예요? 괜히 아니라고 하고 다녔네.”
“뭐, 그래도 영 나쁜 방법은 아니야. 다만.”
“다만?”
“만약에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언젠가는 네 주변 사람들도 너의 주장을 반신반의하게 될 테지?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지금도 그럴 거라고 말야.”
“그러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거네요?”
“그렇지.”
“음. 녹림은 거짓말을 못 하면 바보 되는데.”
“그럼 녹림에 있을 때만 거짓말을 해.”
“어? 그럼 되겠네?”
연적하가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자 남궁연이 물었다.
“넌 언제까지 녹림에 있을 생각이니?”
“…….”
연적하는 대답 대신 슬쩍 남궁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녹림에서 나가야 할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녹림을 인생의 종착지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녹림도는 돈을 모으면 산을 내려가 남들처럼 살고 싶어 한다.
풍연초, 탁고명, 이철산, 한채연, 하소백이 그랬다.
심지어 뼛속까지 녹림인 구천노도 심통의 꿈도 기루의 주인이었다.
“누님은 제가 녹림에 있는 게 싫으세요?”
“큰 도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고 하잖아. 녹림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럼 중요한 건 뭔가요?”
“한결같은 믿음. 미래에 대한 소망. 그리고…….”
남궁연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뭔데요?”
“나중에, 나중에 가르쳐 줄게.”
남궁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연적하는 홀린 듯한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검게 타 버린 산을 하얀 구름이 덮어 가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왠지 남궁연을 닮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