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74
274회. 총사를 조심하세요
아침 식사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검왕 남궁벽의 표정은 평소처럼 담담했다.
의외로 남궁세가의 피해는 적었다.
열두 명이 똘똘 뭉쳐 다닌 것도 있지만, 화용독심 남궁연이 잘 이끈 탓이다.
그가 천지맹으로 돌아가는 일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남궁연이 다가왔다.
“아버지.”
“응? 무슨 일이냐?”
비록 부녀지간이지만 남다른 딸을 둔 남궁벽은 자세를 바르게 했다.
사소한 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들과 달리 딸은 중대사가 있어야만 찾아오니, 저도 모르게 긴장한 것이다.
“아침에 적하에게 들었어요. 혼천혈귀를 맡기고 가셨었다고요.”
순간 남궁벽은 딸이 연적하에게 대살성을 떠넘긴 것에 대해 한마디 하려는 것으로 오해했다.
“아, 그건 혼천혈귀를 속이기 위해서 그랬던 게다. 내가 십두마병들에게 가면 싸움을 끝낼 것 같아서. 적하에게도 그렇게 잘 설명해 주었다만.”
“아니요. 저는 그것 때문에 여쭤 본 게 아니에요.”
“그, 그러냐? 그럼 왜?”
“아버지가 혼천혈귀에게 돌도 날리셨다고 들었어요. 아버지가 그런 여러 가지 수단을 써야 할 정도로 혼천혈귀의 무공이 대단했나요?”
그제야 남궁벽은 딸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았다.
“흠. 남궁세가에서 두 명의 백두마군들과 싸운 적이 있다. 혼천혈귀는 그들과 전혀 다른 정말 뛰어난 고수였다. 십두마병의 무위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백두마군도 그렇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혼천혈귀는 천하 십대고수의 반열에 든 자다. 내 평생에 누군가에게 위압감을 느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랬군요. 이제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행동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네가 화공을 사용한 것도 그래서가 아니었느냐?”
“아니요. 저는 호두산에 흉성이 떠 있어서 불을 지르자고 한 거였어요. 혼천혈귀의 무위는 아버지께 들어서 알게 된 거예요.”
“허! 그랬구나. 그게 천기(天氣)라는 것이겠지?”
“천기로는 큰 흐름만 짐작할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는 경험해 보기 전까지 모르죠.”
“너는 호두산보다 교구현의 위험이 더 크다고 했었지?”
“네.”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이냐?”
“우리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잖아요. 교구현은 흉(凶)이 아니라 살(殺)이었어요. 과거 천살성으로 불리던 혼천혈귀가 흉성으로 내려간 것은 교구현에 있는 누군가 때문일 거예요. 어쩌면 그가 진짜 천살성인지도 몰라요. 천하십대고수나 되어야 겨우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쯧! 하면 이번 일을 총사에게 따지지도 못하겠구나.”
그렇게 큰 위험 속으로 제갈가를 밀어 넣었다면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못하리라.
“그러니 나중에라도 총사를 비난하는 대열에 동참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알겠다.”
잠시 뭔가 생각하던 남궁벽이 지나가듯 물었다.
“총사에게 교구현의 위험을 알리지 않은 건,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냐?”
“아니요. 총사는 부정확한 정보로 우리를 사지에 밀어 넣었어요. 그가 관리하는 추밀각(樞密閣)의 능력이라면 십두마병의 숫자를 알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몇 명이 떨어져 나왔다고만 했지요. 지금의 그는 우리 남궁세가의 적이에요. 적에게 관대할 필요는 없잖아요.”
“강적을 앞에 두고 내부 분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와 대화로 잘 풀어 볼 수는 없겠느냐?”
“그러기에는 그가 너무 멀리 나갔어요. 그는 지금 정사지간의 길을 가는 중이에요.”
“정사지간이라고?”
“칠파이문과 오대세가는 강호행으로 마두들을 죽이고 있어요. 사람을 죽이고도 협객이라 칭송받는 것은 대의명분이 확실해서지요. 하지만 만약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인을 죽인다면, 그건 살인에 불과해요.”
“총사가 뒤로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천지맹으로 돌아가면 알게 되겠죠.”
“무엇을 알게 된다는 거냐?”
“그가 협객이라면 두 사람이 살아 있을 테고, 악인이라면 두 사람은 죽었을 거예요.”
“…….”
남궁벽은 두 사람이 누군지 묻지 않았다.
딸과 대화를 오래 끌면 머리가 뒤죽박죽되어 멍해지곤 한다.
지금도 그는 괜히 총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자책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남궁벽의 귓가에 남궁연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버지는 아직 적하의 무위를 받아들이지 못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 돌멩이를 날린다거나, 혼천혈귀를 속이는 행동을 하신 거겠죠?”
남궁연은 ‘치졸하게’라는 말을 꾹 눌러 삼켰다.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그 단어를 빼먹지 않고 달았을 것이다.
“너는 적하가 혼천혈귀를 당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남궁벽은 딸이 그 정도로 연적하를 높게 평가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혼천혈귀는 자신조차도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인 까닭이다.
“글쎄요. 하지만 혼천혈귀에게도 적하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혼천혈귀가 십두마병을 위해 물러났다고 생각하시죠?”
“그럼 십두마병을 더 이상 잃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철수한 게 아니란 말이냐?”
“만약 그에게 필승의 확신이 있었다면, 십두마병이 어찌 되건 신경 쓰지 않고 적하와 싸웠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미련 없이 떠났죠.”
“…….”
그제야 남궁벽은 자신이 연적하의 무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그를 와룡장의 막내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룡은 연기로 자욱한 하늘 위를 떠다녔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룡을, 아버지는 이기어검으로 잡을 수 있어요?”
“어렵겠지?”
“마룡의 머리에 검이 박혀 있었다고 하셨죠? 적하가 뒤따라 내려왔고요?”
“그랬다.”
“적하는 어떻게 마룡의 머리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요?”
“…….”
남궁벽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니 아버지도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만 그를 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녀는 ‘아버지도’라는 말에 힘을 실었다.
어쩌면 그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며 울먹이던 연적하를 떠올리지 말라고.
지금의 그는 학대받던 어린 시절의 그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남궁벽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딸의 말을 들으니 확실히 자신이 연적하를 어리게만 봤던 것 같다. 왜 자꾸 연적하가 녹림의 이인자라는 것을 망각하는지 모르겠다.
“인정하마. 내 생각을 좀 바꿔야겠구나. 그건 그렇고 너는 어떠냐? 요즘 너와 적하를 보면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던데.”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적하만 챙기지 말고, 네 주변 일도 좀 둘러보라는 말이다.”
“이 이상 어떻게 더 주변 일을 둘러보라고요?”
“나의 일을 도우라는 게 아니다. 선우세가의 소가주가 네 주변에서 맴도는 걸 보았다만. 너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더구나.”
“남녀 간의 감정은 인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아예 옆에 오지도 못하는데 어찌 감정의 변화가 있겠느냐?”
“아버지가 선우세가를 염두에 두고 계신지는 몰랐네요.”
“그보다는 누구라도 좀 네 옆에 두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해 본 말이다.”
“제가 혼자 다니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 봐야 적하나 네 오라비 아니냐. 네 인생에 도움이 될 사람들을 곁에 두라는 말이니라.”
“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지. 하지만 사람이 어찌 가족들과 한평생 살아갈 수 있단 말이냐. 뭐, 나야 네가 나의 곁에 있어도 좋지만.”
“평생 아버지 곁에 있을 생각은 없어요.”
순간 남궁벽의 눈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남궁연을 키우면서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가 더 캐묻기 전에 남궁연이 돌아섰다.
“아버지, 총사를 조심하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날고 뛰어 봤자 한주먹거리도 안 되니까.”
“여차하면 그를 베겠다는 마음을 지니고 계세요. 그는 머리가 뛰어나서 망설이다가는 도리어 당할 수도 있어요.”
“쯧! 그래도 천지맹의 총사다. 제갈가의 가주가 대놓고 나쁜 짓이야 벌이겠느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요. 느낌이 좋지 않으면 아무 때라도 먼저 베세요. 그가 죽어 마땅한 자임을 증명하는 건 저에게 맡기시고요.”
“오냐. 알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그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접도록 하겠다.”
남궁벽의 대답을 듣고서야 남궁연은 자리에서 멀어졌다.
남궁벽은 딸이 연적하와 심통의 곁으로 가는 걸 보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 저기에 뭐가 있다고 꼬박꼬박 찾아가는 거야. 무슨 꿀단지를 맡겨 놓은 것도 아닌데. 쯧!”
***
하남성.
정주.
칠리하촌.
호두산으로 떠났던 주작대와 인대는 보름 만에 천지맹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귀환한 뒤로 천지맹은 내홍을 앓았다.
무당파와 선우세가가 공식 석상에서 총사를 탄핵했기 때문이다.
신기수사 제갈승운도 그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추밀대의 보고를 기반으로 주작대와 인대가 호두산에 불 지른 일을 걸고 넘어졌다.
호두산의 불은 하루 만에 꺼졌지만 민간의 피해는 생각보다 컸다.
칠파이문과 오대세가 대표들은 모일 때마다 탄핵과 방화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양쪽 다 그럴 법한 합당한 이유를 댔기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단단히 벼르고 있던 무당파나 선우세가의 기대와 달리 여론은 총사 쪽으로 기울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은 정보의 부실은 인정하면서도, 백두마군 하나와 십두마병 일곱을 두 개 대(隊)가 상대한 것이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명교에 백두마군이 일곱이고, 십두마병은 대략 육칠십에 달한다.
천지맹은 천하십대고수 넷에 일곱 개의 대.
‘각각 전체 중에 몇이나 동원됐느냐?’를 생각하면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각에서는 호두산의 결과를 두고 ‘천지맹은 유명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두 개 대와 한 명의 천하십대고수가, 백두마군 하나와 일곱명의 십두마병에게 된통 당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보통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는 것과 별개로 강자 편에 서기 마련이다.
백두마군의 무위가 천하십대고수에 육박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민심은 다시 유명교로 기울어졌다.
천지맹과 거래를 하던 상방들이 하나 둘 유명교 쪽으로 옮겨 갔다.
유명교와 거리를 두던 방파들도 유명교 쪽으로 다시 붙었다.
이래저래 천지맹으로서는 악재인 셈이다.
그렇다고 천지맹에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호두산의 화공으로 남궁연의 천재성이 새롭게 조명받았다.
그녀의 별호는 화용독심에서 십전무후로 굳어졌다.
화용독심이 외모와 재능에 대한 작은 칭찬이라면, 십전무후는 천하인의 인정이다.
사람들은 십전무후가 화공으로 적의 기선을 제압하고, 천시(天時)를 이용해 불을 껐다고 칭송했다.
신기수사 제갈승운의 부진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십전무후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만담꾼들은 대놓고 ‘신기수사는 십전무후의 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조롱했다.
의천각.
이 남 일 녀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남궁천, 남궁연 남매와 연적하다.
“걱정했던 것처럼 남린과 무영신투 백교가 죽었어요. 이제 누가 여래신주를 사 갔는지 영영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네요. 백교가 알아듣게 더 확실한 경고를 해 줬어야 하는데, 저의 실수예요.”
남궁천이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어째서 너의 실수냐. 그들이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거였다. 특히 백교는 남린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도 너를 내치지 않았느냐? 그는 불나방 같은 자다. 죽을지 모르고 불에 뛰어든 제 잘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