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87
387회. 어떤 술법으로 도움을 줄 생각입니까?
고성촌.
주루.
연적하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구천노도 심통이 문득 물었다.
“출출한데 먹을 것도 좀 시킬까요?”
“아니야. 난 양 부인에게 저녁 초대를 받았어. 안면도 틀 겸 저녁을 다 같이 먹자더라고.”
“흐흐. 드디어 가족 모임인가요?”
“가족 모임은 개뿔. 당분간 있어야 하니까 괜히 술 먹고 사고 치지 마.”
“염려 붙들어 매십쇼. 제가 사고나 치고 다닐 나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이번에는 믿어 볼게.”
“‘이번에는’이라뇨? 제가 언제 공자님을 실망시킨 적이 있습니까?”
“슬슬 치매가 오나 봐? 무서우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나 먼저 간다.”
연적하는 심통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
연가무관.
저녁 식사에는 연씨들과 양이화, 정가장 장주 산해검 정격천이 참석했다.
정격천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연적하를 보고는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
“남천 소협은 한잔하고 온 모양이오?”
“아, 예.”
“허허. 역시 무당파 제자답구려. 철혈방은 안중에도 없다는 그 배포가 부럽소.”
그러자 연설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리 무당파 속가제자라 해도 큰일을 앞두고 낮술은 아니지 않나.”
“그러게. 개방 제자라면 모를까? 무당파 제자가 그러는 건 처음 보네.”
연승백이 거들자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음식을 접시에 덜어 가던 연적하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가 막 대꾸하려는 순간 연무백이 나섰다.
“도움을 주러 오신 분에게 그 무슨 주제넘은 소리냐? 남천 소협이 연가무관의 제자도 아닌데 낮술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지. 그 나이 먹도록 아직도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느냐? 당장 남천 소협께 사과하거라.”
연무백이 버럭 화를 내자 연승백과 연설주는 찔끔 놀란 얼굴을 했다.
십 년 만에 만난 뒤로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연무백이라 더 그랬다.
결국 연승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험, 남천 소협,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저도요. 무슨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에요.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해요.”
연설주까지 사과를 하자 연무백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면목이 없습니다. 아직 강호 경험이 일천해서 동생들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연무백의 정중한 사과에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잘못을 저지른 두 사람보다 연무백이 더 사죄를 청하는 느낌이다.
“괜찮아요. 제가 무당파 도사님들과 다른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제 동생들이 잘못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가르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고맙고요. 저도 사람이라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나거든요.”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연무백은 내심 남천이라는 술사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술사는 대체로 무인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력에서 밀리니 화가 나더라도 참는 것이다.
그런데 남천은 무인들 앞에서 ‘짜증이 난다’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상대가 무당파 출신이라 해도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한편 큰 오라비가 비굴하리마치 자세를 낮추자 연설주는 속이 상했다.
물론 자신들이 말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새파랗게 어린 술사가 무림인들 앞에서 기인 행세를 하다니?
“남천 소협,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연설주는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식탁에 함께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연설주에게 모아졌다.
“뭔데요?”
연적하가 묻자 연설주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남천 소협은 우리 연가무관을 돕기 위해 남으셨잖아요. 철혈방은 강호의 문파인데, 소협이 어떤 방법으로 도우실 건지 궁금해서요.”
순간 연승백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연설주는 공손하지만 확실하게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솔직히 무림 방파들의 분쟁에 술사가 나설 일은 없다.
무당파 제자라는 신분이 아니었으면 그가 자원한다 해도 받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양이화가 끼어들었다.
“아가씨, 무당파 제자인 남천 소협이 빈객으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양이화의 시선이 연무백에게로 향했다.
“맞소. 낭인들을 모집할 때 가장 먼저 그것부터 알리라고 했소.”
계획이 틀어지자 연설주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때 뜬금없이 연적하가 물었다.
“여러분 중에 호천맹에서 왜 술사를 모집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요?”
“유명교 때문이지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연승백이 도발적으로 쏘아붙였다.
정의맹과 천지맹에서 활동했던 형제 앞에서 그런 뻔한 질문이라니!
그러자 연적하가 기름기가 쪽 빠진 닭 다리를 손으로 쭉 잡아 뜯으며 말했다.
“맞아요. 유명교 술법은 무림 방파들도 무서워할 정도죠. 우리 무당파의 술법은 유명교 못지않아요. 질문에 대답이 됐나요?”
“…….”
한순간 좌중이 침묵했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유명교 술법에 대항하기 위해서 술사들을 모집하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무당파 술법이 유명교만큼 무서운가?’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유명교 이전에 술사들은 푸대접을 받았다.
그 말은 술사들이 무림에 설 자리가 없었다는 뜻이다.
‘모산파’나 ‘천선부’는 물론 저 유명한 칠파일문의 술사들까지도 그랬다.
연적하의 말은 맞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허언에 가까웠다.
그걸 알면서도 누구 하나 반박하지 못했다.
무당파 제자 앞에서 ‘무당파가 유명교만 못하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어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연승백은 남천의 헛소리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개소리를.’
저 애송이는 자신의 팔을 앗아 간 십두마병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밀려오는 짜증에 연신 입술을 물어뜯던 연승백은 끝내 딴지를 걸었다.
“유명교의 술법은 강호에 유명합니다. 십두마병도 그렇고, 풍지산에 설치됐다는 팔문팔상진은 지옥의 입구로 소문이 났지요. 남천 소협은 어떤 술법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생각입니까?”
꽤나 구체적인 질문이라 이번에는 양이화도 대신 나서 주지 못했다.
때마침 연적하는 닭 다리를 뜯느라 금방 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대답이 늦어지자 연설주가 재빨리 입을 놀렸다.
“오라버니도 참, 남천 소협 입장 난처하게 뭘 그런 걸 묻고 그래요? 승리를 기원하는 부적이라도 써 주시겠죠. 소협, 말 나온 김에 호신부(護身符)라도 한 장씩 어때요?”
그녀가 남천을 얼치기 도사 취급하자 연무백이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러자 연설주는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남천 소협, 음식은 좀 어떠세요? 입맛에 맞나요?”
행여나 남천이 부적 얘기로 언짢아 할까 봐 양이화는 얼른 주제를 돌렸다.
“좋네요. 제 입맛에 딱입니다.”
“다행이다. 남천 소협은 고향이 어디세요?”
“낙양요.”
“어머? 낙양요?”
양이화가 놀란 눈으로 연적하와 연무백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남천이 같은 낙양 출신인 연무백과 잘 지냈으면 했다.
눈치 빠른 연무백이 막 동향(同鄕)임을 내세워 대화를 끌어 가려고 할 때다.
“참, 조금 전에 저쪽 분이 어떤 술법으로 도와줄 거냐고 물었었죠?”
연적하의 손가락이 연승백을 가리켰다.
양이화가 애써 만들어 낸 편안한 분위기는 급전직하로 가라앉았다.
“부적을 사용할 생각이에요. 이만하면 답이 됐나요?”
사람들의 시선이 연승백에게로 향했다.
연승백은 큰형과 형수의 따가운 눈초리에 더는 물고 늘어지지 못했다.
“쩝, 역시 부적이군요. 기대하겠습니다.”
순간 양이화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 사이가 아슬아슬하더니 그래도 어찌어찌 넘어갈 모양이다.
그 뒤로 무난한 대화가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자 연무백과 양이화는 연적하를 숙소까지 바래다준다며 따라나섰다.
“그냥 저 혼자 가도 되는데.”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바래다 준다니 은근 부담이 됐다.
양이화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후후, 남천 소협이 야반도주라도 할까 봐 바래다 드리는 건 아니에요. 배가 너무 불러서 소화도 시킬 겸 따라나선 거예요. 그렇죠?”
“맞소. 남천 소협. 본래 안사람과 나는 식사 후에 산책을 하곤 합니다.”
“아, 예.”
연적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숙소에 거의 다다를 무렵 양이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저희 연가무관의 가족들을 보신 소감이 어떠셨어요?”
“소감요?”
“네, 그런 거 있잖아요. ‘도와주겠다고 하길 잘했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괜히 도와주겠다고 한 것 같다’거나 하는 마음요.”
연적하가 힐끔 양이화의 얼굴을 보았다.
연승백과 연설주 때문에 자신이 떠나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걸까?
“마치 저의 집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네요.”
“푸훗!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워요. 시동생과 시누이가 좀 까탈스럽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양 부인께서도 시간이 지나서 친해졌나요?”
“음, 저도 일 년쯤 지나니까 사람 됨됨이를 좀 알겠더라고요. 원래 겁 많은 사람들이 남들 앞에서 강한 척하잖아요. 시동생과 시누이도 좀 그런 게 있어요.”
듣고 있던 연무백이 끼어들었다.
“그건 당신 말이 맞소. 어머니가 저 녀석들을 어릴 때부터 닦달하며 키운 것 같더이다. 그래서 좀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보였을 게요.”
“남천 소협, 들으셨죠? 소협이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정말 못된 사람들이라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연적하는 도리어 양이화와 연무백의 적극적인 변호가 불편했다.
어릴 때부터 닦달하며 키워서 날카롭고 공격적이라고?
겁 많은 사람이 강한 척하는 거라고?
그래서 뭐?
부모가 없어서 창고에 갇혀 사육당한 사람도 있는데.
개처럼 살아온 내가 왜 모든 걸 누린 그들을 이해해 줘야 하지?
“그건 가족들에게나 해당 될 말 같네요. 검진강호에서 그러면 팔다리를 잃게 되는 겁니다. 아, 벌써 잃었군요. 저도 이해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연적하의 무정한 대꾸에 양이화는 흠칫 놀랐다.
연무백도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에 남천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런! 낭패다.’
좀 더 친해지기 위해 가족들 식사에 초대했는데 역효과만 난 것 같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연무백 내외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그래도 약속은 지킵니다. 돕겠다고 했으니 누가 뭐래도 돕겠습니다.”
양이화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치 없는 시동생과 시누이 때문에 큰일이다 싶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런 꼴을 당하고도 돕겠다는 마음에 변화가 없다니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남천 소협은 왜 우리 연가무관을 돕겠다는 거지?’
딱히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가무관의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궁금해진 양이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남천 소협. 소협은 왜 우리 연가무관을 도와주시려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