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90
590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연적하는 부산한 인기척에 눈을 떴다.
병휴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연 형, 조금 전 우물가에서 황 사형을 만났는데 지금 식당 앞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벌써요?”
“아침 식사가 거의 끝나 간답니다. 식사 시간에만 음식을 준다니 서두르죠?”
병휴의 채근에 연적하는 씻지도 못하고 부스스한 몰골로 나갔다.
하루 만에 적응이 됐는지 소격각의 냄새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살 만하겠는데?’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병휴에게 슬쩍 물었다.
“병 형, 냄새 좀 어때요? 아직도 심해요? 난 좀 괜찮아졌는데.”
“비위도 강하네요. 난 지금도 골이 지끈거립니다. 빨리 적응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하기야 내가 적응을 좀 잘하긴 해요.”
병휴가 갑자기 연적하의 몸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하아! 하루 만에 연 형 몸에서 구린내가 진동을 합니다. 내 몸에서도 이런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치겠네요. 다른 동문들과 말을 섞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병휴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인맥을 쌓아 소격각에서 나가는 게 목표인데 냄새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아서다.
황인보는 어젯밤의 식당 앞 공터에 서 있었다.
공터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황인보만 혼자였다.
연적하의 얼굴을 본 황인보가 한마디 했다.
“연 사제, 좀 씻고 다니자. 깨끗하게 씻어도 더럽다고 욕먹는 마당에.”
“아, 예. 냄새 때문에 뒤척이다가 늦잠을 자서 그래요.”
“그래, 소격각에서 냄새가 조금 나긴 하지. 가자.”
황인보가 앞서 걷자 연적하와 병휴는 병아리처럼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세 사람은 식당 뒷문에서 식판을 받아 나온 뒤 대충 자리를 잡고 먹었다.
공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사람 들은 익숙한 듯 쳐다보지도 않았다.
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연적하가 물었다.
“황 사형, 다른 분들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 돼요?”
“다른 분 누구?”
“저기 있는 분들요.”
연적하가 공터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띠를 맨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띠가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아,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구나?”
“예.”
“기본적으로 다른 전각의 사람들과는 대화할 일이 거의 없다. 우리가 소격각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종문이 원래 그렇다. 다른 전각의 일에는 관심이 없어. 오히려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될까 봐 피하는 편이지. 뭐, 그래도 말할 일이 있을 테니까 가르쳐 주마. 소격각의 사람들에게는 사형이라 부르고, 다른 ‘연단’의 제자들에게는 눈치껏 사형이나 선배라 해라. 그 윗분들을 만나면 노사, 진인으로 불러야 한다. 더 위로 노조, 제군, 존자가 계시지만 평생 만날 일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눈치껏 부르라 이거죠?”
“스승을 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야 다 선배지.”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모신 스승이 없으니 사숙이나 사백도 없는 게 당연하다.
결국 사형 아니면 선배라는 소리다.
문득 이런 단출한 인간관계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맥으로 소격각을 벗어나고 싶은 병휴는 지랄 같겠지만 말이다.
식사가 끝나자 황인보는 연적하와 병휴를 소격각 각주에게 데리고 갔다.
***
소격각.
칠각은 소요종의 실무를 담당한 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각주들의 경지도 상당해서 대부분 노조(老祖, 독요의 경지)가 맡았다. 하지만 잡일을 하는 ‘구요각’과 뒷간 청소를 담당한 ‘소격각’은 예외였다.
잡일과 뒷간 청소에는 잡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조가 책임자로 있으면 그 아래 사람들이 불만을 표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구요각’과 ‘소격각’만큼은 만만한 진인(眞人, 원영의 경지)을 각주로 세웠다.
오늘날 소격각 각주는 ‘원영 삼 성’의 백무영 진인이었다.
백무영 진인은 소격각의 명부(名簿)에 연적하와 병휴의 이름을 기록했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반복되는 일이라 별 감흥은 없었다.
소격각에 보내진 자들은 재능도 뒷배도 없는지라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 아니다.
이름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딘지 익숙했다.
‘연적하? 헉!’
이놈은 태을존자에게 ‘소요종의 미녀가 누구냐?’고 물었던 관심 종자였다.
‘오냐, 너 잘 만났다.’
입문제자 주제에 존자 앞에서 그따위 망발을 하다니!
그야말로 똥보다도 못한 놈이다.
그가 연적하를 괴롭힐 생각에 골몰할 때, 문밖에서 황인보의 음성이 들려왔다.
“각주님, 새로 소요각에 들어온 신입 제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라 해라.”
잠시 후 황인보와 연적하, 병휴가 들어왔다.
백무영 진인은 신입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병휴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연적하는 보통 키에 평범한 인상이다.
“험! 나는 소격각의 각주인 백무영 진인이다. 너희는 나를 각주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예!”
연적하와 병휴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낯선 곳에 와서 그런지 바짝 긴장한 모습들이다.
연적하에 대한 반감과는 별개로, 백무영 진인은 두 사람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소격각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들었겠지?”
“예.”
“하루 한차례 ‘천애불문비(天涯不文碑)’ 앞에서 명상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너희 마음대로 해도 좋다. 청소 시간은 너희가 자율적으로 정해서 해라. 단, 너희가 담당한 뒷간에 문제가 생기면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해했느냐?”
“예!”
“병휴는 차승언을 도와 용화봉을, 연적하는 벽초를 도와 천주봉을 청소해라. 나머지는 선배들이 잘 가르쳐 줄 게다. 질문 있느냐?”
연적하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백무영 진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미리 말해 두는데 소격각에는 미녀가 없다. 뭐가 알고 싶으냐?”
“‘천애불문비’가 뭔가요?”
“불우산 중턱에 천애곡이라는 절벽이 있다. 그 절벽에 소요종을 창시한 시조(始祖)의 글이 새겨져 있다. 그것을 천애불문비라고 한다. 방사(方士, 연단의 경지)들은 하루 한 시진(2시간)씩 그 앞에서 명상을 하게 되어 있다.”
“아! 방사들만 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다. 천애불문비의 뜻이 오묘해서 존자와 제군들까지도 종종 방문하니까.”
“평생 들여다봐야 한다는 소리네요?”
“고작 십 년에 그 깊은 이치를 터득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수천 년이 지나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른 질문이 없으면 그만 물러가거라.”
병휴가 꾸벅 인사를 한 뒤 돌아섰다.
그를 따라 신형을 돌리려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저어 각주님.”
“뭐냐?”
“‘연단’의 제자들은 오색의 띠를 매고 다니잖아요?”
“그런데?”
“그 경지를 어떻게 알고 색깔을 바꿔 주시는 건지 궁금해서요.”
“예전에는 각주들이 ‘연단’의 경지를 판별해서 띠를 바꿔 주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즘은 어떻게 하는데요?”
“이 년마다 색깔을 한 단계씩 올려 준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흑색의 띠를 벗기 전에 원영을 확인한다. 원영을 만들었으면 노사(老師)로 인정받아 띠를 풀지만, 그게 아니라면 계속 흑색의 띠를 매고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헉! 무조건 십 년을 채워야 한다는 건가요?”
“쯧쯧! 무조건 십 년을 채워야 하냐고? 천고의 기재들도 칠팔 년씩 걸리는 일이다. 너 같은 놈은 십 년이 지나도 흑색 띠를 풀지 못할 게다.”
연적하의 투정에 백무영은 버럭 화를 냈다.
원영을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원영은 제대로 된 호흡만 꾸준히 해도 만들어지는 내단(內丹)과 다르다.
내단을 혼심(魂心)으로 갈고닦으면, 마침내 육체와 혼이 분리된다.
분리된 혼이 사람의 형체를 갖춘 것을 ‘원영’이라 한다.
종문이니까 십 년이라는 기한을 말하지, 일반인은 백 년쯤 걸릴 일이었다.
‘너 같은 놈’이라는 말에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백무영 진인을 보았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욕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명상을 좀 오래하고 있으면 두정(頭頂)이 열리며, 의식이 빠져나가려고 한다.
유체이탈(幽體離脫)의 느낌이 싫어서 매번 그걸 잡아 두고 있는데 무슨 십 년씩이나.
“각주님, 그 원영이라는 거요. 육체와 혼이 분리되는 거라면서요?”
“분리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분리된 혼이 ‘자신의 형상’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원영을 키워 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분리된 상태는 귀신과 다를 바가 없다. 목적 없이 그런 짓을 반복하면 결국 주화입마에 빠지고 만다.”
“아! 자신의 형상.”
새로 배웠다.
지금까지 ‘좌탈입망’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십 년이 길어 보이느냐?”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잘 모르겠네요.”
“더 궁금한 게 없으면 그만 나가 보거라. 다시 말하지만 맡겨진 뒷간을 잘 관리해라. 문제가 생기면 말로 넘어가지 않을 터이니.”
연적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섰다.
왜 자꾸 관리를 잘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굴러왔으면 앞으로도 그럴 텐데 말이다.
***
각주의 집무실에서 나가자 황인보가 연적하와 병휴에게 손짓했다.
“따라와라. 차 사제와 벽 사형에게 데려다주마. 이후로는 그들을 따라 다니면 된다. 차 사제는 성실하고 성품이 순후하니 잘 가르쳐 줄 게다.”
“예.”
황인보가 차승언의 인물됨을 칭찬하자 병휴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기다려도 벽초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자 연적하가 물었다.
“황 사형, 벽 사형은 어떤 분인가요?”
“벽 사형은……. 음, 만나 보면 안다.”
황인보는 뭔가 말하려다 말고 휘적휘적 앞장서 걸어갔다.
노란 띠를 맨 차승언은 한눈에 봐도 호남아(好男兒)였다.
저런 사람이 왜 소격각에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두 눈에는 정기가 가득했다.
인맥 타령을 하던 병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싱글벙글한 병휴를 남겨 두고 황인보는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둘만 남게 되자 황인보가 나직이 말했다.
“연 사제,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라. 연 사제가 열심히 해야 할 게다.”
“뭘 알아야 열심히 하죠.”
“벽 사형은 이십오 년째 흑 띠다. 소격각에서 가장 오래된 분이니까 잘 모셔라.”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뒷간 청소만 이십오 년이라는 소리다.
“너도 곧 알겠지만 ‘내단’을 수련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십오 년은 심한 거 아닌가요?”
“기록상으로 소격각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벽 사형도 ‘비승과해’를 통과할 정도로 비범한 사람이었다.”
황인보는 과거형으로 말했다.
이십오 년째 소격각에 있는 사람을 비범하다고 하려니 어색해서다.
가장 안쪽의 방 앞에 멈춰 선 황인보가 문을 두드렸다.
“벽 사형, 황인봅니다. 벽 사형과 함께 일할 신입을 데리고 왔습니다.”
대답은 없었지만 황인보는 문을 열고 연적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문을 닫고 달아나듯 자리를 떠났다.
‘흡!’
농밀한 구린내에 연적하는 숨을 멈추었다.
처음 황인보를 만났을 때 맡아지던 냄새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방은 크고 화려했다.
진하게 스며 있는 냄새만 아니라면 객점 특실보다 더 좋았다.
탁자에 앉아 책을 읽던 중년인이 슬쩍 고개를 틀었다.
“이름이 뭐냐?”
“연적합니다.”
“나는 벽초다. 본래 향기로운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지.”
“괘, 괜찮은데요 왜…….”
“숨이나 쉬면서 그런 소리를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