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47
947회.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늙을 수도 있어요?
호천맹과 남맹의 협상이 결렬됐다.
먼저 호천맹이 산동성과 하남성에 있는 호천맹 산하 무인들을 소집했다.
워낙 호천맹 우세의 형국이라 독려하지 않았음에도 삼백여 명의 무인들이 모였다.
호천맹주는 그들을 화천대(化天隊)라 칭하고 화산파 도산 진인에게 그 지휘를 맡겼다.
연이어 호천십걸 다섯과 호천십은 오십 명을 차출해 호천대(昊天隊)라 명명한 뒤 파견했다. 호천대의 지휘는 의천문의 삼무검 이도가 맡았다.
사실상 화천대와 호천대만 해도 남맹과 맞먹는 힘이었다.
칠파이문 중에서는 오직 무극문만 참여했음에도 그 정도니 호천맹과 남맹의 차이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칠월 중순.
남직례성 합비.
남맹.
천추각.
이른 아침임에도 대회의실은 무림세가 대표들로 꽉 차 있었다.
남맹의 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어제 화천대와 호천대가 회하(港河)를 건넜습니다. 늦어도 오늘 저녁에는 장봉현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들이 무극문에 합류하면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겁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장봉현은 합비 최북단에 있는 현이다.
그것은 오늘 호천맹의 지원군이 합비에 도착한다는 소리였다.
모용문이 뜨거운 눈으로 무림세가의 대표들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남맹과 호천맹은 직접적인 충돌을 피했다.
지난해 상방의 싸움도 간접적인 싸움이었다.
하지만 남경의 경우는 다르다.
호천맹에서 무극문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화천대와 호천대가 합비의 문턱에 도달했다.
남맹이 선우세가를 도와 이문사방을 장악하려면 무력으로 호천맹의 지원군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남맹과 호천맹의 진검승부를 의미한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에 무림세가 대표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언제고 일어날 일이었지만, 모두가 피하고 싶었던 일인 까닭이다.
선우세가의 원로인 선우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남경의 사태는 우리 선우세가의 이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우리 선우세가를 향해 이문사방을 포기하라면 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호천맹의 남경 진출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는 어떤 결정이든 따르겠습니다.”
문득 팽가 가주 벽력도 팽만호가 총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하나 물읍시다. 화천대와 호천대를 이끄는 자들이 누구요?”
“화천대는 화산파의 도산 진인, 호천대는 의천문의 삼무검 이도입니다.”
“무극상인과 의천검존이 빠진 것은 확실하오?”
“확실합니다. 무극상인은 호천맹에, 의천검존은 의천문에 남아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참전은 거론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상도제는 어떻소?”
“지금의 분위기로 보면 검왕께서 참전하지 않는 한 아마도 참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딱히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천하십대고수들을 배제할 거라는 말이오?”
“무림의 안위가 달린 싸움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이권다툼에 천하십대고수들이 동원되는 것도 모양새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 말은 맹주님께서 남경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맹주님이 관여하면 무상도제도 나설 겁니다. 그런 식으로 천하십대고수가 움직이면 남맹에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호천맹 소속의 천하십대고수가 여섯이나 됩니다. 그중 셋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요. 그에 비해 우리는 검왕 한 분뿐이니 천하십대고수가 움직이지 않는 분위기로 끌고 가야 합니다.”
“끙!”
팽만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장 강력한 무력을 봉인해야 한다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당가의 내각 장로인 귀혼산수 당기로가 말했다.
“총사의 말씀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무상도제는 무극문의 태상입니다. 검왕 맹주께서 나서지 않는다고 무상도제가 수수방관할지는 의문입니다. 검왕 맹주님과 달리 그는 자기 문파의 일이지 않습니까?”
모용문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무극문의 태상인 무상도제가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게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모용문이 머뭇거리자 맹주인 검왕 남궁벽이 나섰다.
“천하십대고수의 체면이 있으니 무상도제는 가급적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게요. 그가 전면에 나설 정도로 남맹의 무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무상도제의 문제는 내가 처리할 테니 너무들 신경 쓰지 마시오.”
맹주의 말에 당기로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천하십대고수의 상대는 천하십대고수뿐이니 맹주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남궁벽이 모용문에게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모용문이 다시 말했다.
“천하십대고수는 맹주님께서 맡아 주시기로 하셨으니 일단 화천대와 호천대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 주십시오. 선우단 대협의 말씀처럼 이것은 단지 선우세가의 일이 아닙니다. 남경을 호천맹에 내어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남경을 호천맹에 내어 줄까요? 아니면 저들을 장봉현에서 막아 낼까요?”
마지못한 얼굴로 무림세가 대표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막아야지요.”
“싸웁시다.”
“남경을 호천맹에 내어 줄 수는 없습니다.”
“천하십대고수들만 아니라면 해볼 만한 싸움입니다. 어차피 남경에서는 양측의 전력이 부딪칠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금군이 개입할 테니까요. 기껏해야 외곽에서의 싸움이 전부일 텐데, 그런 싸움이라면 남직례성에 자리 잡은 우리가 유리합니다.”
누군가의 설명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식의 싸움이라면 남맹에도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옳소. 호천맹을 회하 너머로 밀어냅시다.”
“맞습니다. 겨울까지만 막아 내면 호천맹은 스스로 물러갈 겁니다.”
의견이 모아지자 남맹 총사 모용문은 세 개 대 사백오십 명을 장봉현으로 급파했다.
***
임박한 남맹과 호천맹의 싸움으로 남직례성에 긴장이 맴돌았다.
특히나 남맹에 가입한 방파 사람들은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녔다.
남직례성에서 한가한 무가는 석경장 하나밖에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게 성격이 괴팍하지만 워낙 언행일치로 유명한 남천 연적하인지라 사람들은 석경장을 거론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검왕의 신변에 일이 생기기 전까지 남천은 움직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덕분에 석경장은 여강현에 자리 잡은 이래 처음으로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났다.
연적하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딸과 놀아 주다, 정오 무렵 나가서 사업장을 돌아보고, 저녁에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돌아온 연적하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요즘은 사업장에 나가도 온통 호천맹과 남맹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호천맹이 남경에 욕심을 내서 사달이 났다느니, 남맹이 안됐다느니…….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했다.
그토록 막으려고 한 싸움인데 결국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란한 마음에 터덜터덜 걷던 연적하가 우뚝 멈춰 섰다.
객청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심통과 청류신의 목소리였다.
최근 심통은 석경장에 처박혀 일체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틈만 나면 나가자고 조르던 걸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 변화다.
‘설마 청류신과 노닥거려고 그런 거는 아니겠지?’
연적하는 객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나타나자 청류신은 꾸벅 인사를 올리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를 본 심통이 너스레를 떨었다.
“어이쿠!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습니다?”
“어, 나가 봐야 매일 같은 소리만 들으니까 재미가 없더라고. 그런데 심 노인은 집에만 처박혀 있는 것 같아?”
“공자님도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나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는데 나가면 뭐 합니까?”
“언제는 뭐 새로운 게 있어서 나갔나? 술 마시러 매일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래? 혹시 집안에 술보다 더 좋은 게 있는 거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요즘 청류신과 자주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래서 안 나가는 거야?”
“자주 어울리긴요. 어쩌다 마주치면 잠깐 얘기하는 정도지요. 그건 그렇고 요즘 합비가 시끌시끌하다면서요?”
심통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연적하가 자신과 청류신을 엮는 게 불편해서다.
“남맹이 호천맹과 싸우기로 했다나 봐. 장봉현에서 일전을 벌일 거라나 뭐라나.”
“구경하러 안 가 보십니까?”
“구경해서 뭐하게.”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최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쯧쯧! 언제 철들래? 구경 갔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구경하면 되지 않습니까?”
“뭐 좋은 일이라고 구경을 해?”
“지인이 위기에 처하면 구해 주기도 하고 그러는 게 또 인생의 재미죠.”
“퍽도. 그랬다가는 욕만 먹는다고.”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은 누굴 도와도 욕먹을 상황이라 근처에 얼씬도 말아야 했다.
“그런데 말야. 내가 오랜만에 청류신을 봐서 그런가? 청류신이 좀 늙어 보이는 것 같던데. 심 노인은 그런 거 못 느꼈어?”
매일 청류신과 만나는 심통이 고개를 갸웃했다.
눈에 익어서 그런지 특별히 더 늙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다.
“저는 잘 모르겠던데요? 사람이 며칠 사이에 늙을 수도 있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며칠 전과 좀 다른 것 같아서.”
“다른긴요. 제가 매일 봐서 아는데 똑같습니다.”
“그래? 하기야 나보다는 심 노인이 더 잘 알겠지. 그런데 매일 만나고 있었어?”
“같은 석경장 식솔이니까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연적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거 왜 이래? 심 노인은 찬모들 하고 매일 만나?”
“찬모들을 제가 왜 매일 만납니까?”
“그런데 청류신은 왜 매일 만나는데? 청류신도 집안일을 돕는 사람일 뿐인데.”
“무슨 오해를 하시는 모양인데, 청류신과 만나는 건 ‘범천욕계왕재천’에 대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찬모들과는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말고. 뭘 그렇게 정색을 해?”
“자꾸 저와 청류신이 뭐라도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그런 겁니다. 제 나이가 여자와 그런 걸 할 나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게 뭔데?”
“아시면서 뭘 물어보십니까? 여하튼 저와 청류신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심통이 극구 부인하자 연적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심통의 나이에 그러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아니면 내일부터 나랑 같이 외출을 하자고. 혼자 돌아다니려니 너무 심심해.”
“싫습니다.”
“왜? 심 노인 술 좋아하잖아?”
“요즘은 나가 봐야 남맹과 호천맹 싸움 이야기뿐이잖습니까? 구경을 갈 것도 아니고,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 뭐하러 듣습니까?”
“사람이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면서 살 수는 없다고. 가자.”
“안 갑니다. 지겹고 재미없어서 그냥 집에 있으렵니다.”
“어디 나 모르는 데 꿀단지라도 숨겨 놨어? 왜 그렇게 집을 좋아해?”
“공자님은 뭐 볼 게 있다고 매일 나가십니까? 어차피 관여할 것도 아니면서.”
심통의 타박에 눈을 끔뻑거리던 연적하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날 밤.
안채.
지안을 재우고 탁자에서 차를 마시던 연적하가 지나가듯 말했다.
“누님, 청류신에게 일이 좀 많아요? 어때요?”
“왜?”
“오늘 봤는데 며칠 전보다 더 늙은 것 같아서요. 일이 좀 고된가 싶어서.”
“청류신이 석경장에 온 지 오늘로 스무 날이지?”
“벌써 그렇게 됐어요?”
“고되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일에서 많이 제외시키고 있으니까.”
“그럼 내가 잘못 본 건가?”
“그건 아니야. 청류신이 늙은 건 사실이니까. 청류신도 알고 있어.”
“에?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늙을 수도 있어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내외공으로 다져진 팔황신모의 육체가 며칠 사이에 그렇게 늙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