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87
2.
목계백은 소리쳤다.
“흩어지는 놈들을 놓치지 마라!”
목책 위에서 신비궁을 겨누던 흑호단 이대는 달아나기 시작하는 산적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채주 형제 모태산과 모태경이 죽는 걸 본 산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를 택했다.
허일관이 지휘하는 흑호단 일대가 그들을 추격하고 공격했다. 그 사이로 날아간 화살들이 죽음을 만들었다.
원율도장과 광인대사의 앞에 모인 무당이십팔검을 힐긋 응시한 목계백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산 아래로 도주하는 산적들을 향해서다. 그들의 뒤를 그야말로 맹호처럼 쫓아가 장도를 휘둘렀다.
황호철위들과 황호장사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그 광경을 흑호단 일대가 감탄으로 바라봤다.
성난 맹호처럼 산비탈을 달려 내려간 목계백은 어느새 불항아리와 쇠그물의 공격을 받은 자리까지 내려왔다.
산적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언월도를 든 놈들을 집중 추격했다.
이들이 대력황호채의 가장 핵심전력임을 알아서다.
도주한 산적들은 녹림본산의 전력과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한 놈이라도 더 베어야만 한다.
하나가 살아 돌아가면 나중엔 열이 된다. 그게 전쟁이고 전투다.
그걸 알기에 이렇게 악착같고 악귀같이 칼을 휘두르는 거다.
하지만 이 추적에는 한계가 있다. 혼자서 수백 명의 산적들을 다 처리 할 순 없다.
이쯤에서 멈추고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불길이 번지고 있는 산비탈에서 멈춘 목계백은 도주하는 산적들의 자취를 눈으로 좇았다.
박도를 든 놈들 이백 명 중에 살아서 도망간 놈은 대략 절반인 일백정도다. 언월도를 든 놈들일 백중에는 역시 절반가량인 오십 정도가 도망갔다.
그 밖의 산적들은 삼백여 무리 중에 이백여명이 도주했다.
병력은 충분하지만 저들은 수령을 잃은 오합지졸이 된 것이다.
산위로 시선을 돌린 목계백은 광인대사와 원율도장을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허리가 분질러 진 것 같은데, 손목이 잘렸고……’
결코 간단치 않은 피해다.
원율도장은 검잡은 손목이 잘려나갔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결과다.
감히 대무당의 집법원주가 대력황호채 산적수괴와 싸우다 손목이 잘렸다니, 그 누가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겠는가?
물론 모태산은 고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율도장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왔다.
이것이 모태산의 죽음과 바꾼 것이라고 해도 엄청난 충격이다.
무당이라는 이름에 금이 갔다.
‘이런 것이 전장의 현실이야. 그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곳이 전장이지.’
원율도장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평정을 잃었다. 마음 한구석에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그것이 분노이든 무엇이든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속으로 모태산은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최후의 한수를 넣었다.
그것이 성공했다.
모태산은 진정한 싸움을 했다. 제 목숨을 희생해 적을 치는.
그것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원율도장의 손목이다.
어느새 산채 앞에 다다른 목계백은 흑호단과 마주쳤다. 허일관의 지휘아래 싸운 그들은 산채 앞의 시신들을 치우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목계백을 보는 그들의 눈에는 경외의 빛이 여실하게 넘쳐 나왔다. 그런데 그들 사이의 주요 인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산채로 들어간 것이다.
‘광인대사의 허리는 어떤지 모르겠군.’
원율도장이야 손목이 깨끗하게 잘려나갔으니 결과가 궁금할 것이 없다. 남은 삶 동안 도방에 틀어박혀 수양에만 정진하던지, 아니면 좌수검을 익혀야 할 것이다. 그에 비해 광인대사는 자리보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태경, 그야말로 엄청난 용력을 쏟아내고 갔구나.’
부채주 모태경의 죽음 역시 그 형님인 모태산과 다르지 않았다.
제 죽음으로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붙잡고 물어보면 뭐가 남는 장사인지 한 결 같이 말할 것이다.
대력황호채 부채주의 목숨으로 소림사 장경각주의 허리를 분지른다면 누가 이득이겠냐고?
너무나 뻔한 답이다. 소림사는 손해를 봤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을 터다.
‘원율도장과 마찬가지야. 모태산에게 손목이 잘렸으니까.’
광인대사는 오판했다. 그것이 오만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겠지만 마지막에 잘못 행동했다. 모태경의 상태를 죽음과 같은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손을 내미는 것도 방기했다. 회광반조 같은 것으로 봤으리라. 그 머리에 마지막 대력금강수로서 세존의 자비를 베풀고자 했다.
그런데 그것이 최악을 불렀다.
모태경은 상식으로 가늠하기 힘든 괴력을 마지막으로 분출했다.
그가 그즈음 죽음의 상태였는지 정신이 멀쩡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눈이 있어 본 자들이라면 다들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모태경은 광인대사의 허리를 안아 분질렀다.
‘남은 병력이 절반 이하인가?’
흑호단 일대의 병력수를 헤아린 목계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백 명의 숫자에서 지금은 팔십여 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흑호단 이대가 비교적 온전하게 병력을 유지했다곤 하지만, 불항아리 등의 공격을 받고 이동하며 삼십여 명이 희생됐다. 이젠 서둘러 부상자들을 돌봐야 한다.
“부상자들은 어떻게 됐나?”
목계백이 묻자 서로를 돌아보던 흑호단 일대의 무사들 중 한명이 대답했다.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목계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명령을 내리지 않은 거로군.’
분명 부상자들은 지나온 격전의 현장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허일관등은 원율도장과 광인대사의 곁에 붙어 산채 안으로 들어갔다.
보이지 않고 명령도 내리지 않은 이유다. 이따위로 할 줄은 몰랐다.
“부상자들을 먼저 돌봐라! 시체 치우는 건 나중이다!”
목계백이 외치자 흑호단 무사들은 머뭇거리다가 바로 움직였다. 무천당주인 허일관의 명령이 없었지만, 맹호의 말이 옳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맹호라는 인물에 대한 경외와 신뢰가 움직이게 만들었다.
횃불을 밝혀 들고 움직이는 흑호단 일대를 바라보다 목계백은 산채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비격이 다가와서 상황을 알렸다.
“채주 형제의 처소로 원율도장과 광인대사를 모셨다. 무천당주와 좌우부당주도 함께야.”
이미 밖에서 목계백이 흑호단 일대에게 명령 내리는 소리를 들은 터라 비격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신 역시도 허일관등의 행동이 불만스러운 탓이다. 그렇다고 위계질서를 완전 무시하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흑호단 이대는 반을 경계 세우고 반을 휴식토록 했다.”
고개를 끄덕인 목계백은 단호하게 말했다.
“상황을 정확히 맹에 알려. 싸움은 이제부터다.”
비격은 시린 눈빛을 보이고 돌아섰다. 항주로 전서구를 날리기 위해서다.
산적의 산채에 어울리지 않게 흑단목으로 만든 서안은 화려했다. 아니 화려하다기 보다는 고상했다. 그 위에 허일관은 남궁세가의 비급 두 권을 올려놨다.
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형이다.
각기 모태산와 모태경의 품속에 들었던 그것을 회수해 왔다. 흑단목 서안과 짝인 것처럼 어울렸다.
돌아선 허일관은 원율도장과 광인대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렇게 되다니.’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한사람은 무당파의 집법원주이고 한사람은 소림사의 장경각주다.
무림의 태산북두인 두 거대문파의 중추적 인물들이다.
그런 인사들이 대력황호채 모가 형제와 양패구상 했다.
물론 모가형제는 죽었지만, 저들도 죽음에 다름 아니다.
‘인물들의 비중이 다른 터에 부상과 죽음으로 손실을 나눌 수가 있겠나?’
분명히 그렇다. 더군다나 원율도장은 손목이 잘렸다. 다신 검을 잡을 수가 없다. 광인대사는 허리가 부러졌다. 이젠 똥오줌을 받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다치지 않은 것을 천행으로 여겨야 하겠구나.’
새삼스럽게 그 생각으로 허일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력황호채 산적들의 무서운 기습과 치밀한 대비를 생각하자 그런 마음이 더했다.
그야말로 치열했던 싸움이다. 무당이십팔검은 이제 열일곱 명밖에 남지 않았다. 원율도장과 광인대사는 저 꼴이 됐다. 그런데도 무사한 것이다.
‘맹호, 그자가 해낸 일이야. 그가 산채를 공격해 점령했기에 이런 결과가 가능했다. 물론 원율도장과 광인대사의 저 모습은 별개이지만.’
새삼스럽게 맹호 목계백의 존재를 되새기던 허일관은 원율도장의 침통한 목소리를 들었다.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소?”
잘린 손목을 지혈했지만 붉은 피가 배어 나온 면포가 바라보기에 처참했다. 그 손목과 얼굴을 바라본 허일관은 즉시 고개 숙여 예를 표시했다.
“알겠습니다. 편히 휴식을 취하시기를……”
뭐하고 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부적절한 말이 된다는 것을 알고 허일관은 입을 다물었다. 좌우부당주인 한규와 관창과 눈을 맞추고 돌아섰다.
허일관등이 밖으로 나가자 원율도장은 창백한 얼굴을 들어 물었다.
“맹호, 그자가 어찌된 것이더냐?”
남은 열일곱 명 중의 가장 큰 사형이 되는 자, 태원자가 대답했다.
“신호를 올린 지점에서 그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산적들의 초소나 분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지점이었습니다. 맹호 그자가 먼저 근접 정탐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태운사형이 그에 응하고……”
태원자는 당시 상황을 그대로 말했다. 목계백이 함정에 걸려 넘어 뛴 일, 그 후에 산적들의 공격이 시작된 일, 죽지 않았나 의심되던 그가 찾지 못한 일, 기호지세의 상황이라 산위로 진격해 올라갔던 이야기를 모두 했다.
“사라진 자가 느닷없이 다시 나타나 산채를 점령했다……”
미간을 가득 좁힌 채 원율도장은 목계백의 행보를 생각했다.
물론 그가 산채를 점령한 것은 혼자 한 것이 아니다.
흑호단 이대와 합류해서, 그야말로 신속하고 용맹하게 움직여 산채를 공격해 얻은 결과다. 그 결과로 인해 산적들을 앞뒤로 협공했고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심각하게 미간을 뒤틀던 원율도장은 결론을 내렸다.
“맹호 그자를 만나봐야겠다.”
태원자가 바로 사제 중 한명에게 눈짓했고 그는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불호가 실내를 울렸다. 침상에 누워 있는 광인대사의 기척이다.
원율도장은 침상 곁으로 바로 다가갔다.
“대사. 어떠하시오? 고통이 심하십니까?”
흰 수염을 부르르 떨며 눈을 감고 있던 광인대사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미타불…… 빈승이 세존의 노여움을 산 모양입니다……”
“허어, 어인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제 다 끝났습니다. 소림에도 기별을 넣을 것인즉, 그 안에 항주에서 용한 의원들이 먼저 당도할 것입니다.”
“의원이 온다 해도…… 허리가 부러진 것은 방법이 없습니다……”
원율도장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좋게 말해보았자 광인대사를 욕보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소림의 이고승은 남은 평생을 자리보전 하고 누워있어야 한다. 가혹한 운명이다.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시 이어지는 광인대사의 목소리에 원율도장은 귀를 기울였다.
“더 이상 사바세계의 홍진(紅塵)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말라는 부처님의 뜻이 아닌가 하고요……”
원율도장이 뭐라도 한마디 하려 입술을 움직이려는 데 광인대사의 중얼거림이 뒤이어 나왔다.
“모든 것이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거늘……”
원율도장은 입을 다물었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회한, 그것이 광인대사에게는 폭풍우처럼 들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잘한다? 무엇을?’
자문하던 원율도장은 안으로 들어선 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찾으셨다기에 왔습니다.”
창백한 원율도장의 얼굴과 침상에 누워 눈을 감은 광인대사의 얼굴, 그들 주변으로 벌려 서 있는 열일곱 무당이십팔검의 시린 눈동자를 마주 보며 목계백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대사님의 상세는 어떠하십니까? 도장 어르신의 손목은……”
그렇게 말하고 목계백은 송구하여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사지육신 온전한 제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대사님과 도장께서 채주 형제를 처단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기지 못했을 전투입니다. 많은 희생이 났음에도 이렇듯 승리한 것은 오로지 두 분의 힘입니다.”
그대가로 광인대사의 허리가 부러지고 원율오장의 손목이 잘려나가서 더욱 안타깝고 송구하다는 여운을 목계백은 풍겼다. 그것이 당연한 인지상정처럼 여겨져야 할 터인데, 원율의 귀에는 희롱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심중에 이는 회한의 가운데로 다시 분노가 솟구치는 걸 참으며 원율은 물었다.
“어찌된 일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무엇을……”
의문어린 표정으로 시선을 맞춘 목계백은 이내 알았다는 표정으로 바꾸며 대답했다.
“산적들의 분채 앞에서 함정에 빠졌었습니다. 철질려의 독에 중독됐던 상태라 균형을 잃고 다시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벽호공을 발휘해 함정의 벽에 손발을 박고 버텼습니다. 한 치 만 더 내려갔어도 창칼에 꼬치가 될 상황이었지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버텼습니다.”
한 치의 표정변화 없이 그야말로 진실 된 얼굴로 목계백은 말을 이어냈다.
“그 상태에서 겨우겨우 해독환을 복용하고 힘을 되찾는 동안 무당이십팔검들께선 산위로 올라가셨습니다. 밖으로 나와서야 그 상황을 알았습니다. 해서 합류키 위해 산을 올랐습니다만, 몇몇 초소를 거쳐서 도착한 곳이 본채 앞이었습니다. 정탐을 하다 발각돼 아래로 피했습니다. 그런데 접전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이에 합류한 것입니다.”
미간을 좁히고 듣던 원율은 다시 물음을 던졌다.
“합류하자마자 흑호단 이대를 이끌고 산채로 들이쳤다는 건가?”
“그게 그 상황에선 가장 좋은 반격의 수라고 판단했습니다. 흑호단 이대를 거리가 벌어져 있기도 했고, 제가 산채 앞에 이르는 길목을 매복과 함정을 파악한 터라, 그들을 이끌고 바로 진격해 올라간 것입니다.”
트집 잡을 데 없는 대답이다. 막힘없는 설명이다.
목계백이 그렇게 했기에 이 승리가 있다.
다른 사람들 누구라도 대단한 실력이라고 칭송할 테고, 그 상황에서의 냉철하고 대담한 판단과 전술력이라고 입을 모을 것이다.
소리 없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원율도장에게 목계백은 이어 말했다.
“녹림본산에서 필히 반격을 해올 것입니다. 채주 모태산이 비응전서를 날리는 것을 봤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시급히 해야 합니다. 무당과 소림의 본산에 지급으로 전서를 날려 이 사태를 다시 알리고 항주무림맹을 중심으로 병력을 규합해 다가올 녹림십팔채의 불의에 맞서야 합니다.”
단호한 눈으로 목계백은 남긴 말을 바로 이어냈다.
“우선은 산에 번지는 불을 진화하고 부상자들을 돌봐야 합니다.”
원율도장은 눈을 감으며 도호를 읊었다.
“원시천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