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30
129화. 갱생문(更生門)백수룡과 철두, 두 사람은 객잔에서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새 창밖으로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철두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맞다! 애들한테 아침까지 내가 안 돌아가면 해체하라고 했는데…….”
지난밤 아삼에게 창고 열쇠를 주면서,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그 안에 든 재물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주라고 말한 철두였다.
그런데 해가 떴는데도 그가 돌아가지 않았으니, 어쩌면 지금쯤 철두파의 본거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이야기에 백수룡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돌대가리 새끼. 그런 걸 까먹고 있으면 어떡해?”
“다 엿들었다면서? 그럼 당신이라도 기억하고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이게 어디서 책임 전가를…….”
“썩을 놈들아! 싸울 시간이 있으면 얼른 뛰어가!”
노파의 걸걸한 고함에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객잔을 나와 철두파의 낡은 장원으로 달려갔다.
백수룡은 점점 가까워지는 장원의 모습에 혀를 찼다.
“이건 무슨…….”
아까 밤에 볼 때는 좀 덜했는데, 낮에 보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폐가나 마찬가지였다.
“이러다 귀신 나오겠네. 상납금 받아서 대체 어디다 썼냐?”
“술 사 먹고, 밥 먹고, 애들 다치면 약값으로 쓰고…….”
뒤따라 달려오던 철두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백수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살이들이 다 그렇지. 다행히 안에 기척은 있는 것 같다.”
역천신공에 의해 확장된 기감에, 철두파의 장원 안에 인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속도를 줄인 백수룡은 철두의 옆에 나란히 서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네 친구들이 무식하긴 해도 의리는 있는 모양이다.”
“…….”
철두의 입가에 조용하지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때였다.
갑자기 장원 안에서 요란스러운 소음이 들려오더니, 울분에 가득 찬 외침이 장원 안에서 터져 나왔다.
“얘들아!”
“아삼?”
장원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주인은 아삼이었다.
철두파의 총관이자, 죽은 장삼과 함께 철두의 불알친구 중 한 명.
아삼이 장원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철두 이 새끼가 아직도 안 온 걸 보면 뒈졌거나 적호방에 잡힌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이제 창고에 있는 재물은 전부 우리 거다!”
“……아니 저 새끼가?”
장원을 향해 다가가는 철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삼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런데 씨발. 저런 푼돈으로 여길 떠 봤자 우리가 갈 데나 있겠냐?”
“없지!”
“밑바닥 인생이 가 봤자 거기서 거기지.”
“으하하하!”
장원 안에서 다른 놈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새끼들이 손님 데려가는데 쪽팔리게…….”
철두는 백수룡의 눈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콩가루 같은 철두파의 모습을 보고, 그가 행여나 마음을 달리 먹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였다.
그런데 정작 백수룡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철두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뭐가?”
철두가 멍청한 표정으로 묻자, 백수룡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해체할 거면 그냥 재물이나 나눠 주고 각자 갈 길 가라고 하면 될 텐데. 아삼이란 네 친구는 왜 애들을 모아서 저런 말을 할까?”
“그거야…….”
그제야 철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삼은 왜 저런 말을 하는 거며, 대답하는 목소리들은 왜 저렇게 힘차고 유쾌한 걸까?
‘어제까지 다 죽어가던 놈들이 말이야.’
곧 그 이유가 밝혀졌다.
“흐흐. 우리가 누구냐? 서로 불알을 보며 살아온 놈들 아니냐.”
아삼의 말에 호응하듯 ‘옳소!’, ‘그렇지!’, ‘냄새나!’ 따위의 맞장구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병장기를 부딪치는 쨍그랑, 하는 소리도 들렸다.
다들 흥분해 있었다.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의 병사들처럼.
“혼자 죽겠다고? 철두 이 새끼가 우리를 아주 등신으로 봤어. 안 그러냐!”
아삼의 외침에 뒤이어 장원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기를 부딪쳐 쇳소리를 내고, 자기들끼리 괴성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니 저 새끼들이 왜…….”
철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다시 아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진지했다.
“철두 그 꼴통 새끼를 구하러 가자. 아니, 같이 뒈지러 가자. 나랑 같이 적호방 문 앞에 똥오줌을 갈기러 갈 놈은 따라와!”
“우오오오오!”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폐가나 다름없는 장원의 대문이 쓰러질 듯 흔들렸다.
“얘들아 연장 챙겨라! 전쟁이다!”
“전쟁이다!”
잠시 후, 안 그래도 경첩이 덜렁거리던 철두파의 대문이 박살 났다.
콰아앙!
문을 부수고 부서진 문 안쪽에서 약 스무 명의 사내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뛰어나왔다.
그 선두에는 살기등등한 모습의 아삼이 있었다.
아삼이 하나뿐인 손에 든 낫을 번쩍 들어 올리며 힘껏 외쳤다.
“가자! 우리의 꼴통 대장을 구하러…… 철두야?”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는 아삼에게, 철두는 냉큼 달려가 반가움 가득한 인사를 건넸다.
“반갑다 이 새끼야!”
빠악!
“컥!”
철두의 박치기에 나가떨어진 아삼이 그대로 기절했다.
“새끼가 쪽팔리게 진짜.”
기절한 친구 앞에서 손바닥을 툭툭 턴 철두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철두파의 사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 돌아왔다. 그러니까 꼴값 떨지 말고 들어가 새끼들아.”
“…….”
그대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서 안으로 들어가는 녀석들에게, 철두가 한 번 더 고함을 질렀다.
“문 부순 건 고쳐 놓고!”
뻥 뚫린 장원의 대문으로 찬바람이 휑하게 들이닥쳤다.
* * *
“끄응. 살아 있었으면 빨리 돌아올 것이지…….”
아삼은 여전히 골이 울리는지 이마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평소보다 인상이 더 사나운 철두와, 생전 처음 보는 잘생긴 사내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 옆엔 누군데?”
백수룡은 말없이 빙긋 웃었고, 철두가 대신 그를 소개했다.
“철두파의 새로운 대장이다.”
“뭐?”
“뭐어?”
“아니, 문주님이라고 해야 하나…….”
철두의 폭탄선언에 아삼은 물론이고 모두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새로운 대장? 문주?
적호방주에게 고개 숙이기 싫어서 죽이러 가겠다고 한 놈이, 아침에 돌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새로운 대장을 데려왔단다.
철두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보다 훨씬 고수다. 앞으로 우리 조직 이름도 바꿀 거고, 우리한테 무공도 가르쳐 줄 거다. 문……주님. 한마디 하시죠.”
아직은 부르기 어색한 호칭에 철두가 머리를 긁적이곤 옆으로 물러났다.
“반갑다.”
그리고 앞으로 나선 백수룡이 자신을 소개하려 할 때.
“대체 뭔 개소리야?”
아삼이었다.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그가 백수룡과 철두를 번갈아 노려봤다.
“철두 너. 박치기를 하도 해서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닭 한 마리도 못 잡게 생긴 샌님한테 문주님이라고?”
아삼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바뀐 두목에 불만을 가진 사내들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씩 했다.
“이런 기생오라비가 우리 대장이라고?”
“너 이 새끼 뭐야? 철두한테 엉덩이라도 대줬냐?”
“반반하게 생긴 게 딱 그런 쪽인데?”
몇몇은 건들거리면서 백수룡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 모습을 본 철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잠자는 호랑이의 수염을 잡아당겨도 정도가 있지!
“이, 이 미친놈들아. 죽기 싫으면 그만해!”
“놔둬. 내가 직접 믿게 해 줄 테니까.”
백수룡이 소매를 걷으며 앞으로 나섰다.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막장 인생의 시정잡배들이 모인 곳이 아닌가.
말보다 주먹으로 설득하는 게 더 빠르고 확실했다.
백수룡이 씩 웃었다.
“대신 그 과정이 좀 아플 거야.”
백수룡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빠악! 빠바바박!
그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데는 일각이면 충분했다.
일각 후.
“큰형님! 인사드리겠습니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아삼이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처세 하나는 빠른 녀석이었다.
그 뒤로 철두파의 다른 녀석들도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큰형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지나치게 사파, 아니 시정잡배다운 저렴한 인사와 호칭에 백수룡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것들을 데리고 문파답게 만들려면 고생 좀 하겠군.’
그렇게 철두파의 새로운 서열 정리가 끝난 후, 백수룡은 철두, 아삼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이 바닥을 접수하시겠다고요?”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큰형님. 그럼 저희는 뭘 할까요? 애들한테 연장 챙기라고 할까요?”
아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백수룡은 그가 살면서 본 최고의 고수였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지는 경공 하며, 손짓 한 번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던 동료들.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무림고수가 철두파의 새로운 두목이 된 것이다.
“명령만 내리십쇼! 지금 당장이라도 적호방을 피바다로…….”
따악!
백수룡은 의욕이 과하게 앞선 아삼의 머리통을 후려친 다음 말했다.
“너희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 싸울 생각도 하지 마라.”
“……예?”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도 마. 괜히 휘말리기 싫으면.”
적호방, 대웅방과 싸울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일부터 빈민가 순찰을 하게 될 청룡학관 학생들의 몫이었다.
청룡학관 학생들이 두 문파와 싸우며 실전경험을 치르는 동안, 철두파는 백수룡에 의해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일단 이 폐가 같은 장원부터 어떻게 하자. 수리는 어림도 없고, 무너뜨리고 다시 지어야겠어.”
“예? 무슨 돈으로…….”
“아침에 연락해 놨으니까 곧 견적 뽑으러 사람 하나 올 거야.”
“대체 무슨 말을…….”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백수룡에게 반가운 얼굴이 그곳을 찾아왔다.
“백 선생님!”
과거에 비해 신수가 훤해진, 동시에 날이 갈수록 뱃살이 늘어가는 백룡상단의 총관.
복만춘이 사람 좋게 웃으며 들어왔다.
“복 총관님. 신수가 더 훤해지셨네요.”
“어이쿠! 선생님이야말로 점점 잘생겨지시는 것 같습니다. 제 딸이 조금만 더 나이가 찼어도 혼사를 추진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딸이 올해 다섯 살 아닙니까?”
“열 살만 되었어도 시도해 볼 만하지 않았겠습니까? 하하하!”
복만춘은 오자마자 농을 던지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백수룡이 허천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대신 허천이 서찰을 보내어 죽마고우인 백수룡을 소개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헌데 백 선생님. 요즘 저희 공자님과는 얼굴을 좀 보십니까? 요즘 통 뵙질 못해서…….”
“그 녀석 꽤나 바쁜가 보더라고요.”
“허허. 신출귀몰한 분이라니까요. 언제 한번 두 분을 함께 모시고 뱃놀이라도 가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날이 있겠죠.”
잠시 사담을 나눈 후, 복만춘은 다 쓰러져 가는 장원을 둘러봤다.
“허. 아예 허물고 다시 짓는 게 낫겠군요.”
복만춘의 하나뿐인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철두파의 사내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이곳에 문파를 세울 계획이시라고요. 빈민가 정화 계획…….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룡상단의 상권 개척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예. 저희 공자님께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복만춘은 사람 좋은 중년이지만, 그 속은 이십 년 이상 낭인으로 활동한 능구렁이였다.
“그런데 저 새끼들 사람 만들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요?”
“생각보다 오래 안 걸릴 겁니다.”
“예. 그건 백 선생님 전문 분야이시니 믿겠습니다.”
복만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곳에 문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 인력, 그 외 모든 지원을 백룡상단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그 말에 철두와 아삼, 철두파의 사내들이 눈을 부릅떴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부자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돈을 대주겠다니!
놀라지 않은 사람은 백수룡뿐이었다.
‘결국 다 내 돈으로 하는 건데 뭐.’
복만춘이 생색내 봤자, 결국 그게 다 백수룡의 돈이었다.
“그런데, 문파의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문파 이름은…….”
복만춘의 질문에 백수룡은 주변을 슥 둘러봤다.
가난하고 못 배운 빈민가의 청년들.
잘 풀려봤자 표국의 쟁자수, 나쁘면 마적이나 되었을 놈들이 불안한 얼굴로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가 지금까지 지은 죄는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더 이상의 죄는 짓지 않고 살게 해 주마.’
그 순간, 그런 뜻에 어울리는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갱생문(更生門)이라고 지었습니다.”
백수룡이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