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44
243화. 돌아가면 우리가 겪은 만큼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짐은 다 챙겼나?”
남궁수의 무뚝뚝한 질문에, 남궁세가 정문 앞에 모인 청룡학관 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돌아갈 준비는 진즉에 끝났다.
신입 강사 연수는 남궁세가가 공격을 당한 날 이후로 의미가 없어졌기에, 며칠 전에 떠났어도 됐다.
하지만 청룡학관 신입 강사들은 일부러 남궁세가에 남아서 연수 기간을 꽉 채웠다.
굳이 남은 이유?
-연수 기간도 며칠 남았는데. 빨리 돌아가 봤자 일밖에 더하겠어?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백수룡이었다.
그리고 백수룡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다른 강사들도 강짜를 부리기 시작했다.
-옳소! 시간도 남았는데 먼저 갈 이유는 없습니다!
-이참에 자율 수련하죠, 자율 수련.
-흠흠. 이번에 싸우면서 깨달음이 있었는데 말이지…….
다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남궁세가에 남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강사들은 시체를 치우고, 부상자들을 돌봤으며, 인력이 부족한 남궁세가를 도와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궁수도 그들이 핑계를 댔다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고맙다.”
여전히 무뚝뚝한, 그러나 진심이 담긴 남궁수의 말에 신입 강사들이 씩 웃었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햇살이 그들의 얼굴을 따뜻하게 비췄다.
칠 일 동안의 신입 강사 연수.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 간에 깊은 유대가 생기기엔 충분한 기간이었다.
“몸은 좀 괜찮고?”
백수룡의 질문에, 남궁수가 전혀 괜찮지 않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령자에게 당한 독은 해독했지만, 여전히 후유증이 남은 상태.
제대로 쉬지도 않고 뒤처리를 하겠다며 바쁘게 일한 탓이었다.
다른 강사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본가에서 며칠 더 쉬다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끼리 먼저 갈 테니 요양 좀 하다가 오시죠.”
“관주님께는 잘 말씀드릴게요.”
“괜히 고집부리지 마시고…….”
모두가 요양하고 오라는 데도 불구하고, 남궁수는 함께 청룡학관으로 돌아가겠다며 부득불 고집을 부렸다.
“돌아가서 준비해야 할 수업이 많다.”
그 고집스러운 태도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특히 백수룡은 들으란 듯이 혀를 찼다. 이제는 대놓고 맞먹는 중이었다.
“놔둬라. 저 똥고집 누가 말려. 저러다 한번 쓰러져야 정신을 차리지.”
“……시끄럽다.”
본가의 은인만 아니었으면……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남궁수가 몸을 돌렸다.
“이만 가지.”
일부러 이른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아직 남궁세가가 후유증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괜히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서 소란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배웅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잠깐만!”
“잠깐 기다리세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음?”
바로 주작학관과 백호학관 강사들이었다.
그들 중 사마영과 당백호가 빠르게 이쪽으로 걸어왔다.
시선을 보아하니 백수룡에게 용무가 있는 듯했다.
“……떠나기 전에 인사 나누도록.”
그렇게 말한 남궁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편에서 남궁세가주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옆에는 남궁미도 함께 있었다.
“그냥 야반도주할 걸 그랬나…….”
작게 한숨을 내쉰 남궁수는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무척이나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그 사이, 사마영과 당백호는 백수룡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들려 있는 게 아닌가.
“이거 가져가시오.”
당백호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가 건넨 것은 황금으로 된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패였는데, 가운데 사천당문(四川唐門)이란 글씨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금패가 무엇인지 알아본 백수룡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설마 보은패냐?”
보은패(報恩牌).
그 말처럼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라는 의미가 담긴 징표로, 명문정파의 보은패일수록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천당문의 보은패라면, 그 가치는 천금의 보물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백수룡이 이 보은패를 돌려주며 무언가를 부탁하면, 당가는 반드시 그 부탁을 들어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명문정파의 이름은 그만큼 무겁다.
때문에, 구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함부로 보은패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사실, 많이 고민했소.”
당백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목숨 하나만 구해 줬다면 주지 않았을 거요. 미안하지만 내 목숨 하나에는 보은패와 바꿀 만한 가치가 없거든.”
“그런데 왜?”
“내 동기들이 모두 목숨을 빚졌으니까. 당신이 그때 오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그곳에서 죽었을 거요.”
“…….”
백수룡은 물끄러미 당백호를 바라봤다.
연수 기간 내내, 백호학관은 당백호를 중심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어 뭉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비록 이번 연수에서 큰 활약은 보여 주진 못했지만,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던 모습은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귀한 물건이니까 아무렇게나 쓰진 마시고.”
“꼭 필요한 데 써 주마.”
피식 웃은 백수룡이 사천당문의 보은패를 품 안에 잘 챙겨 넣었다. 언젠가 요긴하게 쓸 곳이 있을 터였다.
“이것도 받으세요.”
자기 차례를 기다린 사마영이 은은한 붉은빛이 도는 보은패를 내밀었다.
그녀의 보은패에는 일필휘지로 ‘염(炎)’이라는 한 글자만 새겨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언젠가 이걸 줄 사내가 생길 거라고 하셨는데……. 설마 이렇게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사마영이 묘한 표정으로 보은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평소와 어울리지 않는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방금 그녀의 입에서 나온 별호에 더 놀랐다.
“염왕(炎王)의 보은패라고?”
보은패의 주인은 사마영의 할아버지, 전대 십대고수이자 주작학관주인 염왕의 보은패였다.
어떤 의미로는 사천당문의 보은패보다 더 귀하고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
사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평생에 딱 하나 만드신 거예요. 언젠가 제 목숨을 구해 준 사람에게 주라면서…….”
백수룡의 뒤에서 보은패를 힐끔거리며 구경하던 강사들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천당문과 염왕의 보은패라니…….”
“둘 다 천금으로도 구할 수 없는 보물인데!”
“수룡 오라버니는 전생에 무림이라도 구한 걸까요?”
“그, 우리도 저 보은패에 지분이 조금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살며시 드는데…….”
차례대로 명일오, 악연호, 제갈소영, 곽두용의 말이었다.
백수룡도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사실 보상이라면 이미 남궁세가에서 차고 넘치게 받았다.
너무 많아서 들고 갈 수도 없는 돈을 전표로 받았고, 제자들에게 먹일 영약도 받았다.
남궁세가의 무공도 가주직계 무공을 제외하고는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물론 외부 반출은 금지였지만.
여기에 남궁세가주가 얼마 전 무림맹에서 온 조사단에게 ‘청룡신협이 남궁세가의 은인이다.’라고 선언했다.
청룡학관에서 출발할 때 원했던 것은 모두 얻은 셈이었다.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얻었지.’
백수룡은 손안에 들어온 두 개의 보은패를 보며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추가 보상이었다.
이 정도면 보상이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거절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백수룡은 염왕의 보은패도 품에 갈무리하며 씩 웃었다.
“고맙다.”
“……그리고.”
사마영은 무언가 더 할 말이 남은 듯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한 내기 말인데요.”
신입 강사 연수가 중지되면서 흐지부지된 내기.
-내기를 합시다. 우리 둘 중에 연수 성적이 더 낮은 쪽이, 상대 학관으로 이직을 하는 거요.
정작 백수룡은 거의 잊고 있었는데, 사마영은 계속 그 내기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사마영이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연수가 계속됐으면, 높은 확률로 내가 내기에서 졌을 거예요.”
“무조건 졌겠지.”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사마영이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무조건은 아니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레 패배를 인정하는 건 내 성미랑 안 맞거든요!”
발끈하는 사마영의 모습에, 백수룡은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인정 못 하겠으니까 무승부로 하자고?”
“아뇨. 내기를 이어 나가자고요.”
순간, 백수룡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어떻게?”
“천무제에서. 마찬가지로 성적이 더 낮은 쪽이 이직하는 건 어때요?”
“흐음…….”
일견 청룡학관 소속인 백수룡의 무척 불리해 보이는 내기였다.
주작학관은 지난 몇 년 동안 준우승을 해 왔고, 청룡학관은 매해 꼴찌만 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백수룡이 내기에서 불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묘한 일이었다.
오히려 내기를 제안한 사마영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물론 사마영을 제외하면 말이다.
“제가 이 내기에서 지면, 내년에 청룡학관에 입사시험을 보러 가겠어요.”
“흐음…….”
“모, 못 믿겠다면 각서라도 쓸게요!”
침을 꿀꺽 삼킨 사마영이 백수룡의 눈치를 봤다.
그녀는 여전히 백수룡이 탐났다.
백수룡만 주작학관으로 데려올 수 있다면 오 년, 아니 삼 년 이내에 천무제에서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천무제 성적으로 내기하는 건 주작학관에 너무 유리했다.
여기서 백수룡이 거절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라면…….’
이렇게 불리한 내기라도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을까?
사마영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백수룡을 바라볼 때였다.
“그 내기. 받아들이지.”
백수룡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영이 못 믿겠다는 듯 되물었다.
“……정말이죠?”
“못 믿겠으면 각서라도 쓸까?”
“아뇨. 믿을게요.”
각서를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차마 생명의 은인에게 각서를 쓰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백수룡은 그녀의 생각이 빤히 보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시험 준비 미리 해 놔. 내년부터는 경쟁률이 높아져서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와, 재수 없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던 사마영이 이내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내기는 천무제로 연장되었다.
“그건 그렇고, 다음에 합동 수업이라도 하는 건 어떻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잠시 물러나 있던 당백호가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고개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합동 수업 좋지.”
“저희도 좋아요.”
세 사람은 잠시 합동 수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을 나눴다.
처음에는 셋뿐이었는데, 어느새 다른 강사들도 하나둘 참여해서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청룡, 주작, 백호.
경쟁자로 만나 서로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헤어질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함께 생사를 넘나들며 서로의 등을 지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해보다 짧았지만,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신입 강사 연수.
이제 각자 학관으로 돌아간 강사들의 경험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강사들이 하나같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합동 수업 때는 다를 겁니다.”
“돌아가면 일단 제자 놈들부터 죽어라 굴려야겠어요.”
“흐흐. 벌써 몸이 근질근질하네요.”
“이 자식들. 지금쯤 농땡이나 피우고 있을 텐데…….”
경쟁자들이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은 그리 반길 만한 일은 아니건만, 이상하게 백수룡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좋아. 돌아가면 우리가 겪은 만큼 애들한테도 경험시켜 주자고.”
그러자 강사들이 작당 모의를 위해 모인 악당들처럼 음산하게 웃기 시작했다.
“후후후…….”
그렇게, 주작학관과 백호학관 학생들의 험난한 미래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