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69
368화. 용서할 수 없어
“조장하실 분……?”
싸늘하다. 조원 중 누군가가 내뱉은 한마디에 급격한 적막이 내려앉는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림인들의 기감은 평범한 사람의 몇 배에서 수십 배에 이른다. 서로를 힐긋거리는 시선이 살수의 비수처럼 은밀하다.
‘조장이라…….’
‘이 녀석들이 내 말을 들을까?’
‘조장에겐 가산점이 있다고 했는데.’
무려 열 명이나 되는 조원을 통솔해야 하는 자리.
몇 명은 감투에 관심 없다는 듯 몸을 슬쩍 뒤로 뺀다.
머리 회전이 빠른 학생들은 조장이 되었을 경우의 득과 실을 계산하며 눈을 굴린다.
반면 단순히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조장이 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각각의 생각과 판단을 마친 학생들이 침묵을 깨고 한 명씩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럼 제가 할까요?”
“선배님이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이도 가장 많으시고 실력도 좋으실 것 같은데.”
“아, 미안한데 나는 취업 준비 중이라…….”
“제가 나이가 어려서 조장은 어렵겠지만, 부조장이라도 시켜 주시면 열심히 할게요!”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치열한 암투와 신경전.
청룡학관 대연무장에 흩어진 열 개 조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조별 과제라니……. 옛날 생각나네요.”
강사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과 작년에 천무학관을 졸업한 제갈소영은 학생 시절이 생각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옆에 있던 악연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천무학관도 저렇다고?”
“어디든 똑같죠. 저희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서로 조장하겠다고 난리였지만요. 조장 결정하려다가 피 본 적도 많아요.”
“……역시 천무학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청룡학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월하게 조장을 결정한 조가 있는 반면, 여러 명이 동시에 감투에 욕심을 내는 조도 있었다.
그리고 대화로는 좀처럼 결정이 안 나는 경우, 해결 방법은 대부분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채앵!
“나와라! 무림인의 방식으로 결정하지!”
“제 검에는 눈이 없으니 조심하시길.”
연무장 한편에서 기합성이 터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조장 자리를 걸고 비무가 벌어진 것이다.
“흐아압!”
“차하앗!”
그러나 강사들은 학생들이 비무 중에 다치지 않도록 지켜보기만 할 뿐, 끼어들지는 않았다.
백수룡이 학생들에게 알아서 조장을 정하라고 말한 후, 결정이 다 끝날 때까지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명일오가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백수룡에게 말했다.
“형님. 이대로 둬도 괜찮겠습니까? 몇 개 조는 벌써부터 불만이 쌓인 분위기인데…….”
“내버려 둬.”
팔짱을 낀 채 학생들을 지켜보는 백수룡의 입가에 조금은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나중에 전장에서 겪는 것보단 차라리 지금 겪는 게 나을 테니까.”
괜히 조별 수업을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백수룡은 이번 수업에서 학생 개개인의 능력은 물론이고, 협동 능력, 단체 임무 수행 능력의 향상을 목표로 잡았다.
‘훗날 전장에 나섰을 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청룡학관 안에서는 아무리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어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전장에서는 사소한 실수 하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기적인 지휘관.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부하.
칼 든 적보다 더 위험한 게으른 동료.
소통의 부재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위기 상황들.
이 수업은 그런 것들을 미리 연습하게 해 주려고 만든 것이기도 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백수룡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금은 얼마든지 싸우고 부딪치라고 해. 그래서 훗날 생길 갈등에 대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겠지.”
“…….”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강사들이 말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혈교의 위협이 나날이 커져 가고 있으며, 언젠가 저 아이들도 전장에 나서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잠시 후, 대연무장에 몰아치던 분진이 모두 가라앉았다. 우여곡절 끝에 열 개 조의 조장이 모두 결정된 것이다.
조장들의 면면을 살핀 백수룡이 중얼거렸다.
“거의 예상대로네.”
청룡오망은 대부분 각 조의 조장이 되었다.
백수룡의 제자라는 명성과 개개인의 뛰어난 무공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유일하게 여민만 조장이 아니군.’
하지만 그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민이 속한 팔(八)조에는 누구보다 조장에 어울리는 녀석이 있었으니까.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면, 몇 개 조는 재편성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격차가 너무 많이 나면 다른 학생들이 의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사조와 십조가 가장 문제 같은데…….”
다른 강사들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백수룡은 일단은 그대로 가 보기로 했다.
의외의 조합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승효과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
“조장들은 앞으로 나오도록.”
잠시 후, 조장들이 백수룡 앞에 모였다.
그들 대부분은 청룡학관 학생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강자들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개개인의 무공과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곧 너희가 가장 뼈저리게 느끼게 되겠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백수룡이 앞에 모인 조장들에게 말했다.
“이 수업은 이름 그대로 혈교와 전쟁을 대비한 모의전으로 진행될 거다. 최대한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너희도 혈교와의 전쟁에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진지한 이야기에 조장들의 표정도 덩달아 굳었다. 뒤편에 모여 있는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일(一)조부터 십(十)조. 앞으로 이렇게 열 명씩 묶인 한 조가 수업의 기본 단위다. 수업 내용에 따라서 여러 개 조가 합쳐질 수도 있고, 조원 간 이동이 생길 수도 있다.”
백수룡은 간략하게 수업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설명했다.
“일 학기 때 내 수업을 들어 본 녀석들은 알겠지만……. 내 수업은 꽤 힘들다. 각오하고 덤벼야 할 거야.”
백수룡이 씨익 웃자 조장들 중 절반 이상이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직접 겪어 본 입장에서는 절대로 ‘꽤’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히 청룡오망은 ‘어떻게 그런 사기를 칠 수 있냐’는 듯한 원망 어린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백수룡이 민망한 듯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크흠. 하지만 끝까지 따라오면 분명 얻는 게 많을 거다.”
“둘 중 하나지. 죽거나 강해지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될 때쯤에 보면, 강해져 있더라고요.”
“선생님. 조원들이 힘들다고 도망쳐서 결원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투덜거리는 야수혁과 옆 사람에게 속삭이는 위지천, 그리고 진지하게 묻는 거상웅의 머리 위로 흑룡편이 따다닥 내리꽂혔다.
어쩐 일인지 헌원강은 팔짱을 낀 채 근엄하게 서 있었다.
‘웬일이래?’
그 모습을 힐긋 본 백수룡은 모든 조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튼 다들 조원들 잘 챙겨라.”
““예!””
조장들의 힘찬 대답에 백수룡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첫 수업이니 두 개 조씩 나와서 모의 전투를 할 거다. 첫날이니, 조원들끼리 합을 맞춰 봐야지.”
첫 모의전.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할 첫 번째 시험 무대였다.
“처음으로 나설 조 있나?”
망설이지 않고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드는 두 명의 조장.
의욕이 넘치는 둘의 표정을 본 백수룡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빛났다.
“흐음. 이거 재미있겠군.”
그들은 사(四)조장 헌원강과 오(五)조장 당소소였다.
* * *
각 조별로 대진이 결정된 후, 일 각의 작전 회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한테 맡겨.”
헌원강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가 속한 조의 전략은 간단했다.
헌원강이 상대 조의 조장이자 최고수인 당소소를 최대한 빨리 쓰러뜨리는 것.
그동안 다른 조원들의 역할은 상대를 견제하며 버티는 것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버티기만 해. 당소소만 쓰러뜨리면 나머지는 별것 아니니까. 바로 쓸어버릴 수 있다고.”
단순한 계획이었지만, 헌원강이라는 강력한 패를 보유한 입장에서는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작전이었다.
“……그렇게 하지.”
“알겠어요.”
조원들도 모두 조장의 계획에 찬성했다. 몇 명은 표정이 조금 시큰둥해 보였지만, 헌원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친분이 없던 사이끼리 갑자기 한 조가 되었으니 서먹한 것이 당연했다. 수업 끝나고 다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이름도 벌써 절반이나 외웠다.
‘함께 싸우다 보면 친해지겠지.’
헌원강은 조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름대로 이 수업에 자신감도 있었다.
평소 백룡장에서도 선후배들과 함께 백수룡에게 덤빌 때, 중심 역할을 하는 것도 항상 자신이었으니까.
다섯 명에서 열 명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다들 방학 특훈의 성과를 보여 주자고!”
“……우린 특훈 같은 거 안 했는데?”
“예에?”
헌원강의 눈동자가 열정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듯했다. 같은 조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때마침 일 각이 지났고, 백수룡이 그들을 불렀다.
“사조하고 오조. 나와서 준비해라.”
잠시 후, 대연무장 가운데에 사조와 오조 학생들이 마주 섰다.
꿀꺽…….
총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이 마주 서자 그것만으로도 긴장감이 흘렀다.
다른 학생들은 처음으로 싸울 두 개의 조가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전력을 분석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스르릉.
도를 뽑아 든 헌원강이 당소소를 겨누며 말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그냥 최대한 빨리 끝낼 거다.”
당소소는 넓은 소매를 자연스럽게 아래로 늘어뜨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방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사천당가의 혈족이었다. 저 소매 안에서 어떤 독과 암기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저는 개인적인 감정이 좀 있어요. 원강 선배님뿐만 아니라 청룡오망이라 불리는 다섯 명 모두에게.”
“우리한테?”
당소소에게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청룡오망을 한 명씩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본인들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죠. 백수룡 선생님과 한집에서 자고, 같이 밥을 먹고, 무공을 배우고……. 그걸 일상으로 누리다니. 역시 너희는 용서할 수 없어.”
“……뭘?”
뒤로 갈수록 말이 빨라지더니, 당소소의 눈에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 안에 깃든 광기를 느낀 헌원강이 슬쩍 한 걸음 물러날 정도였다.
콰콰콰!
발밑에서 솟구친 공력의 여파가 그녀의 무복을 마구 펄럭이게 만들었다. 모두가 질린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이 수업에서 청룡오망을 모두 쓰러뜨려 해체시키겠어요. 그리고 그 자리를 저! 청룡독수 당소소가 대신하겠어요!”
“……미친 애랑 싸워야 한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헌원강이 백수룡을 바라보며 묻자,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혈교에도 미친 애들 많아.”
팔뚝에 돋은 닭살을 벅벅 긁은 헌원강이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기수식을 취하며 당소소를 노려봤다.
“이십 초식 안에 끝내 주마.”
그 도발에 당소소가 피식 웃으며 맞받아쳤다.
“아무래도 원강 선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좀 부족한 것 같군요.”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어느새 소매 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낸 당소소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맺혔다.
“주제 파악 좀 하시라고요.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선배는 집단전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날 못 이겨요.”
“뭐?”
헌원강의 눈썹이 크게 꿈틀댔다. 독고준도 아니고 당소소한테 저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너 까불다가 후회한다.”
“어머. 무서워라.”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사납게 부딪쳤다. 중간에서 불티가 튀는 듯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공력을 잔뜩 끌어올린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죽여!”
“없애 버렷!”
헌원강과 당소소를 시작으로 스무 명의 학생들이 충돌했다.
그 모습을 본 백수룡은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직 싸우라는 말 안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