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70
470화. 내버려 둘 것 같소?
푸스스스…….
수라혈천도의 유형화된 살기에 닿은 풀들이 조각조각 분해되고, 자갈은 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이미 절세고수들의 싸움으로 초토화된 일대를 삼사도의 살기가 헤집었다. 오악에서도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했던 형산은 이제 불모지로 변해 버렸다.
끔찍하도록 농밀한 살기.
수라혈천도를 완성한 삼사도가 걸어오고 있었다. 고수라고 불리는 무인들 중에서도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자들은 많지 않을 터였다.
‘삼호…….’
백수룡은 이를 악물고 또 다른 옛 제자를 바라봤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전신을 저미는 것 같았지만, 정말로 아픈 것은 육신이 아니었다.
“감히…….”
삼사도가 씹어 내뱉듯 말했다. 백수룡을 노려보는 서슬 퍼런 눈빛에서, 상대를 수십 조각으로 찢어발기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곧바로 출수를 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사사도 때문이었다.
으어어어어……!
그 어떤 상처를 입어도 신음 한 번 내지 않던 사사도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삼사도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천하에 넷뿐이었다.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같은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들.
서로에게 유일한 이해자이자, 협력자이며, 운명을 함께하는……. 이를 테면 친우였다.
삼사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나?”
으아아아아!
아무리 많은 적에게 합공 당한다 해도, 사사도가 쉽게 당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흑사련주를 서둘러 죽이고 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호가 이런 꼴이 되기 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뿌드득.
삼사도는 자신의 안일함에 이를 갈았다. 그의 시선이 사사도의 가슴에 난 깊은 상처를 발견했다. 심장 어림이었다.
그가 백수룡을 홱 돌아보며 노려보았다.
“죽여 버리겠다. 너의 가족과 친구, 너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모든 자들을 찾아내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아주 고통스럽게, 너라는 존재를 저주하면서 죽어 가게 만들겠다.”
삼사도의 눈이 점점 더 짙은 살기로 물들었다. 맹렬한 살기와 분노의 감정이 함께 소용돌이쳤다. 사방을 할퀴는 기파가 더욱 거세졌다.
“네가…….”
백수룡은 수라혈천도의 살기에 잠식당한 삼사도를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검이 몸을 관통했고,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중한 상처가 너무 많았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지만, 그렇다고 피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싸우기 전에 꼭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헌원세가에서 혈사를 일으켰느냐?”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삼사도의 얼굴 위로 헌원강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같은 무공을 익힌 제자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엇갈린 운명이 되었을까.
삼사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헌원세가를 몰살시켰다.”
“…….”
삼사도가 백수룡을 향해 성큼 걸어오고,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진 백수룡이 검을 들어 올릴 때였다.
“멈춰라!”
녹의수사였다. 의식을 잃어 추혼궁귀가 산 아래로 데려갔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 뒤를 따르는 장걸과 구길의 모습도 보였다.
“너희들이 여긴 어떻게?”
놀란 백수룡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녹의수사는 뼈가 부러진 오른팔을 부목과 천으로 어깨에 단단히 고정한 모습이었다.
그가 백수룡의 옆에 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사형께서 힘들게 싸우고 계신데, 사제 된 도리로 어떻게 잠이나 자고 있겠습니까.”
장걸과 구길도 있었다. 사사도와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피신한 줄 알았는데, 멀리 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형님! 저희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이 새끼야! 형님들과 싸우고 싶으면 우릴 먼저 죽여야 할 거다!”
둘은 두려움에 다리를 벌벌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숨 막힐 듯한 살기에 저항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한 손 거들지.”
벽안귀가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돌아왔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부상이 심각해 보였지만, 이를 꽉 악문 표정에서는 계속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크르르…….
은호도 있었다.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백수룡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달려온 것이다. 몸을 바짝 낮춘 은호는 언제든지 삼사도의 목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벌레 같은 것들이…….”
갑자기 늘어난 적들을 노려보던 삼사도가 살기를 폭발시켰다.
화아아아악!
하늘이 붉게 물들고, 혈천의 수라가 삼사도의 뒤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포효했다. 수라혈천도의 심상이 형상화된 모습이었다.
“전부 죽여 주마.”
혼자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백수룡이 앞으로 나서며 모두에게 도움을 청했다.
“……너희는 되도록 나서지 말고, 견제만 해.”
흑사련주가 어찌 되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은 잠시 접어 두어야 할 때였다.
백수룡이 창룡신검의 검파를 꽉 쥐며 물었다.
‘한 번 더 가능해? 심장에 걸려 있는 술법 해제하는 거.’
[……어차피 무리라고 해도 안 들을 테지.]그녀의 나지막한 한숨에 백수룡이 쓰게 웃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몸에 구멍은 안 나도록 노력해 볼게.’
조금이지만 유리한 점도 있었다.
삼사도는 백수룡의 정체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흑사련주와 싸우느라 이쪽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백수룡과 직접 무공을 맞대 보지도 않았으니까.
심지어 역천신공의 존재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삼호도 많이 지쳤어. 그 부분을 잘 노린다면…….’
백수룡은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여러 가지의 수를 계산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의 눈빛은 서늘하기만 했다.
누가 먼저 공격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
콰앙-!
갑작스러운 진동에 모두의 시선이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쓰러져서 괴로워하던 사사도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핏발 선 눈.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을 정리하는 모습은 여전히 괴로워 보였지만, 그의 무시무시한 신위를 기억하는 이들은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꿀꺽…….
하나도 버거운데, 사도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고?
모두의 머릿속에 절망적인 미래가 그려질 때였다.
-퇴각한다.
사사도가 손으로 수어(手語)를 사용해 삼사도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삼사도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더 이상 싸우면, 우리도 위험하다.
“헛소리. 나 혼자서도 충분히 다 쓸어 버릴 수 있다.”
삼사도의 반박에, 사사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만약 이곳에서 우리 둘 중 하나라도 죽는다면? 본교에 막심한 손해다. 삼호. 대의를 생각해라.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수어를 알아보는 사람은 삼사도뿐이었다.
-흑사련주는 죽였나?
삼사도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모습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이미 시체나 마찬가지였기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뤘다. 그 외의 일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 퇴각한다.
평소에는 의견을 거의 내지 않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꺾지 못하는 것이 사사도였다.
“……알겠다.”
결국 삼사도는 수라혈천도를 거둬들였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자신을 둘러싼 무인들을 노려보던 삼사도의 마지막 시선은 백수룡을 향했다. 그가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너, 다시 만나길 바라지.”
백수룡은 잠시 검파를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그래. 다음을 기약하지.”
사도들이 몸을 돌렸다. 자리에 남은 자들은 감히 그들을 막아서지 못했다. 사도들이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콰앙!
백수룡은 삽시간에 점으로 변해 멀어지는 옛 제자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망설이고 있었어.”
그는 사도들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사사도의 눈빛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 전과는 명백히 달라진 느낌이었다.
‘날 죽이고 싶지 않아서?’
지금으로선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다.
단지 전략적인 후퇴일 수도 있었다. 헛된 기대일 가능성이 컸다.
백수룡은 그저……. 혈마가 새겨 넣은 술법이 사라졌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싸움이 끝났다.
털썩. 털썩.
다리가 풀린 장걸과 구길이 바닥에 주저앉고, 녹의수사가 긴 한숨을 쉬었다. 벽안귀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캬앙!
은호가 달려와서 백수룡의 상처를 핥았다. 커다란 눈망울에 염려가 가득했다. 백수룡은 녀석의 머리를 쓸어 주며 말했다.
“……괜찮아.”
한눈에 봐도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가장 상처가 심한 사람이 바로 백수룡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찾았다.
“흑사련주는?”
* * *
“생각보다 빨리 왔군.”
흑사련주는 편안해 보였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여유롭게 햇살을 받고 있었다.
한낮에 시작된 싸움은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 흑사련주는 산등성이가 천천히 석양으로 물드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련주.”
백수룡이 다가가며 말을 걸자, 흑사련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석양 가리지 마라.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인데, 벌거벗은 사내놈이 망치는 것은 싫다.”
“……벗긴 누가 벗었다는 거요. 싸우다 보니 찢어진 거지.”
“그놈도 어지간했나 보군. 용케 살아남았어.”
“스스로 물러났소. 운이 좋았다고 해야지.”
“운도 실력이다.”
“…….”
백수룡은 구멍이 뚫린 흑사련주의 단전을 바라봤다.
평생을 쌓아 온 내공이 전부 흩어졌으리라.
백수룡은 그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섣부른 위로는 하지 않았다.
“다른 상처는?”
“응급 처치는 했어. 지혈도 했고……. 문제는 몸 안이야.”
흑사련주의 한 손을 꼭 잡고 있던 추혼궁귀가 힘없이 말했다. 백수룡은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마른 자국을 발견했다.
오히려 태연한 쪽은 흑사련주였다.
“음.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지.”
흑사련주는 무릎에 올려져 있던 적월을 한번 쓸어내리더니, 백수룡에게 밀었다.
“……이걸 왜?”
“전에 약속했지. 언젠가 흑사련에 오면, 좋은 칼을 선물하겠다고. 내가 가진 것 중에 이보다 좋은 칼은 없다.”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받을 물건이 아니오.”
“처음에는 제자들 중의 하나에게 남겨줄까 했는데, 마땅한 녀석이 없었다. 보물을 감당하기엔 다들 부족해.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움이나 일으킬 테지.”
“…….”
“그러니 네가 받아라. 자격이 없는 놈이 휘두르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으니, 네가 가지고 있다가……. 마땅한 도객을 만나면 물려주어도 좋겠지.”
우우웅-!
적월이 울었다. 주인을 떠나기 싫다고 슬퍼하는 듯했다. 흑사련주는 녀석을 부드럽게 쓸어 준 후, 백수룡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백수룡은 적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소?”
적월을 옆에 내려놓은 백수룡은 흑사련주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흑사련주가 피식 웃었다.
이미 추혼궁귀가 그를 살리겠다고 온갖 노력을 해 본 후였다.
“소용없다.”
지금도 그의 몸 내부를 헤집고 있는 수라혈천도의 기운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찌나 지독한지, 함부로 건드리면 오히려 더 날뛰어서 몸을 헤집었다.
하지만 흑사련주가 잊은 것이 있었다.
백수룡은 삼사도와 같은 수라혈천도를 익혔으며, 무공의 이해도에 한해서라면 오히려 더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망가진 단전은 고칠 수 없지만, 목숨은 살릴 수 있소.”
“……쓸데없는 짓을.”
“쓸데없는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추혼궁귀. 나 좀 도와주겠소?”
“정말 살릴 수 있어?”
체념했던 추혼궁귀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백수룡은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추혼궁귀가 흑사련주를 돌려 앉혔다. 백수룡이 그의 등에 장심을 갖다 댔다.
“으음…….”
흑사련주가 얼굴을 찌푸렸다.
여전히 백수룡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궁귀에게 괜한 희망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가는 길에 좀 편하게 보내 줄 것이지…….”
“좀 참으시오. 제법 아플 테니까.”
백수룡은 흑사련주의 몸에서 수라혈천도의 기운을 뽑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