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05
104화 갈라치기 (1)
이슬람교와 힌두교.
인도와 파키스탄을 제외하면 딱히 갈등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 동남아시아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불교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번 일과는 상관없으니 불교 형은 잠깐 나가 있자.
주요 힌두교 국가라면 인도가 아니라 마자파힛 제국이다.
인도는 델리 술탄국이나 벵골 술탄국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교가 국교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힌두교의 중심축이었던 마자파힛 제국이 내전과 정화의 개입으로 인해 골골대고 있다.
힌두교가 탄생한 인도조차 지배층이 이슬람교, 피지배층이 힌두교.
당연히 힌두교도들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힌두교도들을 쉴드 치기도 어려운 게, 이들은 미얀마 남부 같은 데로 가서 원주민들을 불가촉천민처럼 쓰고 있으니까.
인간의 본능이 그런 것 같다.
나와 다르면, 혹은 내가 이해할 수 없으면 오랑캐고 야만인이지.
특히 믈라카 술탄국, 아니 믈라카 왕국은 국교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갈등이 더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연회가 끝난 다음 날.
곧바로 주석 광산으로 향했다.
광산이라고 해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건 아니다.
산에 있는 개천.
그곳의 모래를 화로에 넣고 주석만 녹여서 덩어리로 만든다.
그런데 이 산 좋고 물 좋은 평화로운 풍경에, 평화롭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희를 지켜주니까 지즈야를 내야 할 거 아니야!”
“언제 너희가 우리를 지켜줬냐? 오히려 우리의 권리를 빼앗고만 있으면서!”
흰색 터번을 쓴 중년인.
주황색 터번을 쓴 중년인.
둘이 서로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흰색 터번이 이슬람교도.
주황색 터번이 힌두교도 같다.
“아잇 시바알! 우리가 돈을 벌어야 너희를 제대로 지켜줄 거 아니냐. 군소리 말고 지즈야를 내!”
“저번에도 받아 갔잖아. 그런데 오히려 채취권만 더 빼앗아 갔고!”
“아이 시바알! 지하드 맛 좀 볼래?”
지즈야는 이슬람교가 다른 종교에 물리는 세금을 말한다.
개종하면 면제다.
한마디로 신앙 자유 이용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왜 이렇게 시바알 소리가 네이티브 스피커 뺨치게 발음이 좋냐.
“어이.”
“화인(華人) 어서 오고. 못 보던 얼굴인데 여긴 무슨 일인가?”
화교는 대우가 좋네.
600년 뒤의 괴리를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살 게 없나 둘러보러 왔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아침부터 왜 이리 죽상인가?”
“힌두교 거렁뱅이가 꼴 받게 하잖아. 시바알 새퀴가.”
“시바알이 뭔데?”
“이걸 모르나? 항해와 무역의 선지자 용왕의 주문일세. 이걸 외치면 해적이 벌벌 떨고, 장사는 대박이 난다고 하지.”
“근데 회회교가 다른 선지자를 모셔도 되나?”
“유일하고 절대적인 선지자는 무함마드시지만, 그 아래에 서쪽의 예수나 동쪽의 용왕이 있는 거지.”
내가 언제 무함마드 밑으로 들어가고, 예수님과 동격이 된 거지?
“근데 용왕은 유학자가 아닌가?”
“쿠란을 읽었으면 그 또한 무슬림이지.”
내가 쿠란 읽어봤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다니.
아랍어 공부할 겸 외교할 때 기름칠하려고 읽은 건데.
“용왕은 카르마의 법칙을 아는 힌두교도다! 애초에 시바알이잖아. 이는 용왕이 힌두교의 시바신을 섬긴다는 증거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진짜 지하드 맛 좀 볼래?”
이대로 가면 끝도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대충 사정은 알고 있으니 인제 그만 싸움을 멈추자.
“얘들아. 형이 말하고 있잖니.”
“화인이라고 대접해줬더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처걱!
내 호위병들이 등에 메고 있던 총검을 일제히 들어 그를 겨누었다.
아마도 총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총구 앞에 달린 칼날은 실질적인 위협이다.
“머리에 피가 마르지 않았다는 건 젊고 건강하다는 증거지요. 어디서든 그럴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난 화인이 아니라 조선인이고, 명나라 정식 관직이 있는 몸이다.”
“아이고. 그러셨습니까. 진작에 말씀하시지. 하하하…….”
이 시대 동남아시아에서 명나라의 위상은 현대의 미국과 같은 수준이다.
특히 지금 시기는 더욱 그렇다.
나름 강력한 왕국이었던 대월이 지금 개같이 털리고 있으니까.
아마 몇 달 지나지 않아 대월의 호 왕조는 멸망할 것 같다.
그 위세에 조선은 물론,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은 숨죽이며 공포에 떨고 있다.
다음에는 자기 차례가 될지도 모르니까.
심지어 마자파힛 제국도 골로 보내고 있으니.
“그래서 결국 왜 싸운 건데.”
“그것이…….”
믈라카 왕인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가 해준 말과 거의 비슷했다.
간단히 말해서 주석 채취권 문제다.
채굴권이 아니라 채취권인 이유는 모래를 퍼서 녹이는 방식으로 채취하기 때문이고.
광산은 보통 국가의 소유.
이곳 역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가가 직접 하자니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서 보통 외주를 준다.
원래는 파라메스와라 왕이 힌두교도인 만큼 힌두교 상인에게 주었다.
마자파힛의 위세 때문에 눈치를 본 것도 있겠지.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이제는 바야흐로 이슬람의 시대다.
서쪽에는 점차 이슬람교 국가가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동쪽에는 남해 최강의 군벌인 원정대, 그 수장인 정화가 무슬림이니까.
파라메스와라 왕은 이슬람교로 개종을 준비하면서 이름까지 ‘이스칸다르 샤흐’로 개명하려 할 정도로 개종에 진심인 편이다.
따라서 이권도 점차 무슬림에게로 이양하고 있다.
그래야 반대파의 힘을 누르고, 지지파의 세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
지금은 그 과도기다.
당연히 힌두교도는 반발할 수밖에 없고, 무슬림은 어떻게든 이권을 뺏어서 왕에게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
한마디로 파라메스와라 왕은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힌두교도 권리를 뺏어서 무슬림한테 줄 건데, 힌두교도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해줘. 소유권은 원래 나한테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손에 피를 묻히든, 욕을 바가지로 먹든 자기한테 피해가 오지 않게 해달라는 거지.
……양심 어디?
그냥 무력으로 믈라카 왕국을 점령해버릴까?
지금이라면 두들겨 팰 수 있을 것 같은데.
참자.
괜히 조공·책봉 질서가 흐트러지면 나만 엿 된다.
유럽이었다면 영지전이라도 걸었을 텐데.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일단 대화를 시도해보자.
“그러니까…….”
그러나 나는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죽여! 이 개자식들!”
“죽여! 이 시바알 놈들!”
주석 광산 한쪽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급하게 그리로 가보니 힌두교 광부와 무슬림 광부들이 패싸움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광업용 연장까지 들고.
“멈춰!”
당연하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의 공익광고는 쓸모가 없구나.
손에서 뭔가 나가야 멈출 것 같다.
탕!
하늘에 대고 총을 쐈다.
그 굉음에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유. 효과 좋네.
어쩌면 총은 평화(물리)의 상징이 아닐까.
“신의 품으로 가고 싶은 사람만 싸움을 지속해라.”
큰 소리가 들리자마자 막으러 갔는데도 벌써 피투성이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치료하게 하고 양쪽 노동자 대표를 각각 불렀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쪽은 누구요?”
“많이 높으신 분.”
“저는…….”
“그쪽이 누군지는 관심 없고. 무슨 일인지만 말해.”
그러자 무슬림 측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간악한 놈들이 감히 라마단 기간에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소!”
“어느 부위…… 흠흠. 지금이 라마단 기간인가?”
“그렇소.”
지금은 양력으로 치면 7월인가 8월인데.
라마단 기간이 원래 이때인가?
전생에 구경했을 때는 3월인가 4월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벚꽃이 피던 시기라는 건 확실히 기억한다.
“그쪽은 왜 그랬나?”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 앞에서 돼지고기는 좀.
용광로에 구워 먹는 3초 삼겹살은 못 참긴 하지만, 그래도 좀 참지.
“저놈들이 어제저녁에 우리 근처에서 소를 죽여서 먹었소.”
힌두교도 앞에서 소 도축이라.
멋지네.
“라마단 기간은 금식 기간 아니었어?”
“어떻게 한 달간 굶겠소. 낮에는 금식하되, 저녁에는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삶과 음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이오.”
되새기라는 게, 되새김질하는 소를 먹으라는 뜻은 아닐 텐데.
“그런데 굳이 소고기여야 했나?”
무슬림에게 물었다.
“광부 일은 고된데, 낮에는 금식하여 배는 고프니 고기를 먹어야 했소.”
“닭고기도 있잖아.”
“최근 누군가가 닭고기를 마구 사들여서, 닭값이 너무 많이 올랐소.”
이번엔 힌두교도를 보았다.
“그대들이 그랬나?”
“요즘엔 닭고기가 비싸서 못 먹소.”
다시 무슬림을 보았다.
“그럼 혹시 그쪽이?”
“닭을 구할 수 있었다면 소를 먹진 않았을 거요.”
“둘 다 아니라는 거지?”
““그렇소.””
맞아.
사실 나야.
창해 주식 상단에는 다양한 종교인이 모여있어서, 분란이 생기지 않도록 웬만하면 닭을 먹는다.
먼 타지에 와서 고생하는 게 안타까워서 믈라카에 기항하자마자 닭고기를 쫙 사들여서 먹였다.
사는 김에 말라리아로 고생하는 원정대에게도 먹였고.
사실대로 말하면 돌 맞을 것 같으니, 모르는 척 넘기자.
“그러니까 양쪽은 서로의 금기를 어겼다는 거잖아.”
“저쪽이 먼저 어겼소! 우린 갚아준 것뿐이오.”
힌두교도들이 열을 냈다.
“할랄 도축하였으니 소는 고통이 없었다! 하지만 그대들은 라마단 기간에 돼지가 울부짖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였으니 죄가 크다!”
무슬림들도 열을 냈다.
금방이라도 다시 싸울 것 같다.
탕!
다시 하늘에 대고 총을 쏘았다.
워낙 큰 소리인지라 귀를 틀어막는 이도 있었다.
“참고로 이건 총이라는 건데, 한 방에 너희들이 모시는 신의 품으로 보내주는 물건이지. 누구든 평등하게 말이야. 모시는 신께서 너희를 납탄으로부터 지켜줄 것 같으면 시험해봐도 되고.”
“…….”
혹시나 다 같이 달려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믈라카에도 대포는 많은 만큼, 총의 위력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하는 듯했다.
다들 얌전히 있는 걸 보면.
그나저나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한쪽 편들어서 반대쪽을 밀어버리면 간단하긴 한데.
그랬다간 이슬람이나 힌두교 세력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
인도와 동남아 일대의 지배층은 대개 무슬림이라고 해도, 피지배층 중에는 여전히 힌두교도가 많다.
또, 지배층 중에서도 힌두교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자 입장에서 한쪽을 버리는 행위는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
모두가 내 소중한 고객이다.
그러니 자본주의식으로 해결하자.
“그럼 이 광산에서 한쪽이 물러나면 편하겠네. 그렇지?”
내 말에 무슬림은 강하게, 힌두교도는 눈빛에 불안과 간절함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종교에 차별을 두고 싶지 않으니까, 시험을 통해서 결정할게. 괜찮지?”
“그대가 누군데 마음대로 한단 말이오?”
“많이 높으신 분.”
“그러니까 누구시오?”
“너희가 용왕이라고 부르는 사람.”
다들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눈이 커졌다.
호흡 잘 맞네.
“그러니까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이는 믈라카 왕국의 왕, 파라메스와라 왕이 위임한 사항이다.”
“용왕이 결정한다면 좋소!”
“용왕이라면 공명정대할 터. 우리 역시 받아들이겠소.”
다들 동의했지만, 판결이 나오면 진 쪽은 입 씻고 말 바꿀 거라는 데 은자 18냥 건다.
“나는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물론 경쟁도 중요하고. 그러니 협력과 경쟁을 시험하겠다.”
누구와 협력을 하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일이 끝나면 관련자들은 전부 내 숙소로 와라. 그곳에서 시험 내용을 말해주겠다.”
내가 전생에서 배운 갈라치기의 진수를 보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