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5
33화. 향상심
최악의 일주일이었다.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되고, 아이템을 노린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것이 불과 한 주 만에 일어났다.
“대체 뼈가 몇 대가 부러진 거야. 원상복구에 며칠이나 걸렸잖아!”
나는 씩씩거리며 빈 마력 증폭제 병을 분리수거했다.
갑작스러운 부상 때문에 한참 아팠던 것도 짜증 나는데, 오늘은 협회에 출석까지 해야 한다니.
‘아니, 일을 좀 한 번에 제대로 하라고! 내 사정 청취를 왜 또 하는 건데.’
약속했던 스킬 교정도 어제부로 대충 마무리 지어서 월요일은 좀 쉬나 했더니만.
“휴우.”
그래도 투덜거려봤자 바뀌는 건 없다.
나는 김기려의 옷장에서 적당한 여름옷을 골라 외출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반팔 티셔츠를 입으니 작은 문제가 생겼다. 액세서리를 숨길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 허접한 마도구도 지구에서는 엄청난 가치랬지?’
사건의 원흉이었던 팔찌가 책상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뒤늦게 알아본 결과 저 물건의 최근 경매가는 무려 억에 달하는 수준이었지만…….
‘용의 폐라는 걸 사기에는 한참 모자라.’
왠지 선뜻 팔아치울 결심이 들지 않았다.
대미지 2회 무효.
이것이 언젠가 생사를 좌우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크흡…….”
특히 나처럼 마법 불구가 된 무능력자는 약한 공격에도 몸이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갈 수가 있단 말이다.
그런데 방어 아이템을 어떻게 팔겠어?
‘이건 앞으로 눈에 띄지 않게 가지고 다니자.’
나는 팔찌를 호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길을 나섰다.
‘음, 공기가 축축하네.’
바깥 날씨는 외계인이 좋아하는 습도였지만 기분이 썩 들뜨지는 않았다.
아, 협회 가기 귀찮아.
단지 그렇게 생각하며 걸었을 뿐이다.
-빠아아아앙-! 빠아아아아앙-!
그런데 나오자마자 이건 또 뭐냐…….
-빠아아앙-!
김기려의 원룸 앞 골목.
비좁은 도로를 온통 차지한 SUV가 경적을 울리고 있다.
나는 웬 미친놈이 대낮부터 빵빵거리고 있나 싶어 호기심에 그쪽을 쳐다봤는데.
창문이 열린 운전석을 확인해보니 웬걸. 이거 진짜 미친 남자다.
“김기려!”
제길, 이놈이 여기에 차를 세워뒀을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반대쪽 출구로 나갔지.
“이런 시간에 어딜 가지?”
“…….”
“점심 식사? 아니면 다른 약속이라도?”
현관에서 바로 마주쳐서 이제 와서 피할 수도 없다.
나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대화를 진행했다.
“협회에 일이 있어서 가는 길입니다. 강창호 헌터.”
한국에 단 셋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S급 헌터가 이딴 골목에 덜컥 나타나다니. 어이가 없네.
“어이쿠! 샤워를 길게 해서 그런가? 벌써 시간이. 저는 바빠서 이만. 그럼 좋은 월요일 보내세…….”
역시 수틀리면 줄행랑만 한 것이 없다.
나는 속사포 변명을 늘어놓으며 은근슬쩍 걸음을 돌렸는데, 그런 내 뒤통수에 조용한 경고가 툭 던져졌다.
“타.”
강창호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빤히 주시한다.
“좋은 말로 할 때.”
지당하신 말씀이지.
나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외계인.
대화로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하니 강창호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절대 쫄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아, 네.”
탁. 조수석 문을 열고 자동차에 탑승한 나는 긴장감을 애써 숨기며 안전벨트를 찾았다.
가만 보자.
차라리 납치당했을 때 탔던 밴의 트렁크가 마음이 더 편했던 거 같은데.
‘왜 집 앞까지 찾아온 거지? 무슨 짓을 하려고? 혹시 나 또 이상한 곳에 끌려가나?’
나는 부모 앞에 앉혀진 아이의 심정으로 잘못한 일이 있는지 곰곰이 되짚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었다.
정하성과 관련한 비밀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잘 지켰고.
게다가 저번에 있던 납치 사건도, 이런 일이 있을까 봐 강창호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증언했단 말이다.
화날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납치범들이랑 이놈을 엮어서 보내버렸어야 했나.’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 강창호가 자동차 기어를 조작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주행이 시작됐다.
“소식은 들었어.”
여태 침묵을 지키던 강창호가 입을 연 것도 그와 동시였다.
“개구리들에게 당했었다며.”
“개구리?”
“같은 헌터를 사냥해서 먹고사는 놈들.”
그 강도들 말하는 건가.
“예. 뭐, 그랬죠.”
대체 어디에서 정보가 이렇게 술술 새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대답은 해줬다.
그러자 강창호가 말한다.
“흠. 부상이 있다고 들어서 확인차 온 건데 다행히 큰 지장은 없나 봐?”
그런데 잠깐,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뭘 확인하러 오셨다고요?”
“기려 헌터가 그 일로 크게 다쳤을까 봐 걱정했거든. 위험한 사고였잖아.”
강창호는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EX급 게이트에 말려들지를 않나, 납치를 당하질 않나. 가만 보면 참 잠잠한 날이 없어.”
“…….”
“이쯤 되면 본인이 리스크를 즐기는 거 아닌가 의심되는데.”
의외의 방문 목적이 밝혀지자 어안이 벙벙했다.
강창호는 그런 나를 흘긋 쳐다보다,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가져온 선물이 있어. 글로브 박스 열어봐.”
선물을 받는 건 언제나 기대되는 일이다.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문제는 내가 글로브 박스라는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무릎 쪽에 수납공간 있잖아. 거기, 그거 당겨서 열라고.”
나는 뒤늦게 조수석 앞에 수납공간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아챘다.
손잡이를 당겨 안을 확인하자, 그의 말대로 어떤 물건이 덜렁 굴러 나왔다.
크리스털 병에 담긴 액체라.
“회복약이야.”
“…!”
“지금은 딱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왕 준비한 거니 그냥 줄게. 가져가.”
이게 지구의 포션이라고?
그렇군. 내가 강도 사건으로 다쳤다는 소식을 들어서 이런 아이템을 고른 거구나.
고향에서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누군가가 사고로 촉수가 결손나면, 친구들이 회복약을 사다 주는 것 말이다.
마치 감기에 걸린 이에게 해열제를 선물하는 느낌이랄까.
‘오오.’
그만큼 회복 포션을 주고받는 건 흔한 일인데도 뜻 모를 감동이 일었다.
지구에서 이런 호의적인 대우를 받게 되다니.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이런 작은 선물은 거절하는 게 오히려 민폐다. 나는 순순히 포션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강창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정도로는 놀라지도 않나.”
아니, 충분히 놀라고 있어. 너 같은 놈이 갑자기 기특한 짓을 하니까.
‘혹시 안에 이상한 성분이 섞인 건 아니겠지? 어차피 연구용으로 쓸 거니까 상관은 없지만.’
나는 손에 쥔 약을 골똘히 살폈다.
그렇게 선물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자동차가 감속 중이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 왔어. 내려.”
“응?”
끼익.
나는 갑작스러운 내리라는 소리에 놀라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상아색 건물.
이곳은 헌터 협회 인근의 도로다.
“안 내려? 협회에 일 있다지 않았어?”
지금 이 지구인이 목적지에 데려다주기까지 한 건가.
일단 내리라니 내리긴 한다만. 여전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태워다 주실 줄은 몰랐네요. 분명 다른 볼일이 있으실 줄…….”
“아까부터 말했잖아. 오늘은 그냥 네 상태나 확인하러 온 거야.”
지이잉. 운전석 창문이 열린다.
강창호는 자신의 세로 동공으로 이쪽을 물끄러미 훑다가, 지구인 특유의 감정 표현을 해 보였다.
미소를 지은 것이다.
“그럼 몸 관리 잘하라고. 허튼짓하다 죽지 말고.”
죽지 말고 건강하라는 덕담까지 곁들여지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슬슬 이 질문을 꺼내야겠지. 나는 지금까지의 의문을 담아 한 마디를 전했다.
“예.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한데요. 저한테 이렇게 신경 써주시는 이유가 뭐죠?”
언제는 위증 안 하면 죽인다며…….
강창호는 그 질문을 듣자 다시 선글라스를 주섬주섬 꼈다. 그사이 할 말을 다 고른 모양이다.
“사실, 난 한국의 헌터들이 잘 자랐으면 좋겠어.”
이건 또 예상치 못한 답인데.
“인재 양성에 관심이 있거든. 넌 그중에서도 싹수가 보이는 편이고.”
강창호는 그렇게 말하고 운전석 창문을 반쯤 올렸다.
“그래서 나도 웬만해선 김기려 헌터를 해치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지?”
아마 정하성 건을 계속 비밀로 해달라는 소리 같은데,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죠.”
“좋아. 그럼 어서 가봐. 샤워를 오래 해서 늦으셨다며.”
강창호는 짧은 조롱을 남기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의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재라.”
한국의 헌터 양성에 흥미가 있어서 각성자들을 해치는 납치범 조직도 부수고.
재능 있어 보이는 놈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달려와서 약도 건네주고.
이거 완전 애국자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실 현실이란 게 녹록지 않다.
‘무슨 꿍꿍이지.’
왜냐하면, 동족도 필요에 따라선 서슴없이 죽이는 각성자가 그런 의로운 성품일 확률은 낮았으니까.
나는 회복약을 손에서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강창호가 왜 나 같은 F급에게 흥미를 보일까. 결국 논점은 그거였다.
그런데 이 난해한 문제에 대한 답은 어느 날 우연히 풀리게 됐다.
‘아, 매일 씻는 것도 귀찮아 죽겠네. 마력이 충분히 회복되면 노폐물 처리 과정도 좀 손봐야겠어.’
어느 수요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온 직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김기려의 몸을 세척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런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한 인터넷 사이트였다.
[각성 스킬 일람☜]개인적으로 좀 놀란 부분인데. 지구 사람들은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 종류를 한데 엮어 정리해두더라고.
‘정보화 사회라는 건 대단하네.’
나는 감탄하며 이 사이트를 둘러봤다.
[염화(念火)][보호의 방패][신속][incitement of hatred]생각보다 설명문이 간단해서 정보의 질이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구의 술사들이 어떤 마법을 쓰는지 구경하는 건 상당히 재미있었다.
‘원시적이고 단순한 마법만 쓸 줄 알았더니. 문명이 먼저 발전한 뒤에 마력이 개화해서 우리랑 역사가 이렇게 다른 건가?’
이렇게 외계 생명체가 웹서핑에 중독 될동말동할 무렵이었다.
“어?”
나는 스크롤을 내리다 어느 스킬을 발견하게 되었다.
[향상심]긍정적인 단어다.
하지만 스킬 설명을 읽은 뒤에는 더 이상 즐거워할 수 없었다.
[향상심] [설명 : 강자를 죽여 대상의 스킬을 빼앗는다.]“…….”
나는 조용히 손가락을 움직여 해당 스킬에 대한 부가 정보를 검색한다.
그러자 어떤 기사가 나왔다.
미국 텍사스주의 어느 [향상심] 보유자가 연쇄살인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음.”
이쯤에서 강창호의 행동을 되짚어보자.
첫 번째. 강창호는 헌터 활동 후원을 제안한 바 있음.
두 번째. 유망한 각성자가 해외로 유출되는 사태에 민감.
세 번째. 내게 죽지 말라는 조언을 했었음.
“…….”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강창호는 그냥 애국자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