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신과의 거래(3)
신들과의 협상을 무사히 마친 이현은 다시 방안으로 돌아와 일행을 모두 불러모았다.
“너 진짜 간도 크다. 어떻게 신들을 상대로….”
이현에게 설명을 들은 나진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현을 보았다.
“너무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보스.”
“맞아요. 자칫 잘못하면 보스의 목숨이 위험했어요.”
리코스와 디르케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그들은 얼굴조차 마주하기 힘든 신들을 도발하면서 보상을 뜯어내다니.
칭찬을 받을 줄 알았던 이현은 일행들의 반응에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니, 기껏 보상을 받아왔는데 반응이 왜 이래?”
“난 아니야! 삼촌 최고!”
“어이구, 우리 민아밖에 없다.”
이현이 기특한 소리를 하는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었다.
“아니, 저희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알고 있어. 그냥 해본 소리야.”
보스의 삐진 모습에 리코스가 불안해하자 이현이 웃으면서 그를 달랬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나진의 물음에 이현이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멈추고 일행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아코스가 완벽하게 신화를 끝마치기 위해 헤르메스가 추정한 격의 수치는 약 2,000.
다시 생각해봐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오냐, 대신 아주 제대로 뽕을 뽑아 주마.’
이현은 격을 주는 대신 그만한 보상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뿐이랴?
‘규격 외의 격으로 확실히 돌려받아야지.’
이현은 어떻게든 던전 안에서 격을 양도해서 규격 외의 격으로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2천이나 되는 격을 주면 돌아오는 건 4천의 규격 외의 격.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2천이라니. 어마어마한 격이네.”
나진이 2천이나 되는 격을 어떻게 마련하냐는 걱정 때문에 표정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이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을 뿐이었다.
“저 혼자서 격을 충당하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모두에게 격을 조금씩 받겠습니다.”
이현 혼자서 격을 모으기 힘들다면, 일행의 격을 십시일반으로 모으면 된다.
‘정말 미안하지만, 필요한 일이야.’
하지만 격을 가져가겠다는 이현의 말에도 일행은 별다른 반항 없이 순순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가져가.”
“맞아! 삼촌은 다 가져가도 돼.”
아니, 다들 오히려 진즉에 이래야 했다는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정말 다들 내가 격을 갈취, 아니 양도받아도 괜찮아요?”
“너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을 몸인데 그 정도로 뭘.”
“맞습니다. 이미 제 모든 게 보스의 것인데 격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나진과 리코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디르케도 별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지금 급격히 늘어난 격도 보스 덕분에 얻은 격인걸요. 줄어든다면 모를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현은 일행의 의사에 괜히 코끝이 찡해져 옴을 느꼈다.
‘내가 보스 노릇을 막 한 건 아니구나.’
격을 준다는 것은 몹시 민감한 것이었다.
쌓기는 죽어라 힘든 것인데도 다시 돌려받을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당장 이현도 규격 외의 격으로 보답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함부로 격을 주는 일 따위 없었을 터였다.
“다들 고마워요.”
이현은 진심을 담아 일행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보스, 격의 양도는 오로지 던전 보스가 몬스터에게 할 수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리코스가 말한 대로 격의 양도는 단방향으로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현은 자신들에게서 어떻게 격을 받겠다는 소리지?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이현이 품에서 두 개의 아티팩트를 꺼냈다.
“이걸 쓸 거야.”
[봉인의 사슬 목걸이]와 [해방의 돌 반지].이현은 격을 봉인하고 해방할 수 있는 아티팩트 세트로 동료들의 격을 양도받을 생각이었다.
“그런 효과가 있는 아티팩트라니 대단합니다.”
디르케가 이현이 꺼내든 아티팩트의 설명을 듣고 감탄했다.
다른 일행들도 신기한 듯 아티팩트에 몰려 구경하고 있을 무렵 이현은 분석안으로 그들의 격을 확인했다.
‘충분하고도 남는다.’
분석안을 통해 확인한 이현이 일행에게 받을 수 있는 격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 : 윤나진
종족 : 현대 인류(인종)
격 : 720/100」
「이름 : 디르케 우다이오스
종족 : 사우레노르(용인종)
격 : 1060/550」
「이름 : 리코스
종족 : 좀비 로드(시귀종)
격 : 605/800」
「이름 : 장민아
종족 : 디바우러(흡혈종)
격 : 595/400」
모두 이현처럼 시련을 통과했고, 신들을 만나 격을 올렸다.
온천욕과 신들의 만찬으로 올린 격까지 포함하니 모두 괄목할 정도로 격이 올라 있었다.
‘모두 소멸을 피할 최소한의 격을 남기고 양도받는다고 하면…….’
대략 2,900의 격을 양도받을 수 있었다.
이현이 가진 격을 모두 합친다면 절로 입이 쩍 벌어지는 숫자의 격이었다.
‘어마어마하긴 하지만, 이걸 다 받을 수는 없지.’
리코스를 제외하곤 모두 승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격을 모은 상태였다.
‘승격시킬 격을 빼고 남은 걸 받아도 충분해.’
이현의 계산으로는 모두를 승격시키고 난 뒤에도 2,000의 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 모자라면 이현이 2성으로 격을 낮추거나 던전의 다른 몬스터들에게 격을 양도받아도 되는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이현이 씩 웃으며 아티팩트 세트를 들었다.
“수금할 시간입니다.”
* * *
“호오, 격이 꽤 상승한 모양인데?”
이현을 본 인간 모습의 헤르메스가 감탄을 터뜨렸다.
이현은 그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훑어보자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신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2천이나 되는 격을 어떻게 모을까 걱정도 했는데, 자신만만할 법도 했네.”
헤르메스가 역시 대단한 인간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두에게 격을 양도받은 결과 현재 이현의 격은
「이름 : 도이현
직업 : 던전 보스, F급
종족 : 현대 인류(인종)
격 : 2,000/800 (★★★)
규격 외의 격 : 20/????」
정확히 2천을 기록하고 있었다.
“좀 아슬아슬해 보이긴 하지만.”
헤르메스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격을 더 받아올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딱 2천에 맞춘 거였으니까.
‘그래야 격을 모두 상실하고 규격 외의 격으로 돌려받지.’
되돌아올 4천의 규격 외의 격에 이현이 속으로 히죽 웃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좀 더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그렇게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야. 격이 모두 사라지면 소멸한다고. 알고 있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현은 일행에게 격을 양도받을 때 썼던 아티팩트 세트를 보여주었다.
“이곳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격을 남겨놨습니다.”
“그러면 괜찮겠네.”
헤르메스가 그제야 얼굴을 풀었다.
‘사실은 거짓말이지만.’
나머지 일행의 격은 승격을 위해 쓰기도 빠듯했다.
하지만 규격 외의 격을 얻는 법을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라도 위장책을 마련해놔야 했다.
“그나저나 물이 필요하다고 했지?”
“네. 이아코스에게 격을 양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 해결하려는 건지 기대되는데?”
헤르메스는 이현의 요청대로 신전 안에서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장소로 그를 안내했다.
“여기야. 판가이온의 신성한 샘이지.”
신전의 구석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깨끗하고 정결한 분수대가 하나 있었다.
위대한 다섯 신의 조각이 한가운데 장식되어 있었고 쉴 새 없이 깨끗하고 격이 느껴지는 성수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격이 느껴지지? 넥타르를 만드는 물은 모두 여기서 길어오는 거야.”
“좋은 물이네요.”
이현은 신성한 샘물이 가지는 격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뭐 [워터게이트]를 여는 데 수질은 상관없지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현은 가지고 왔던 통로의 뿔을 꺼내 들었다.
“그거 네레우스가 가진 ‘통로의 뿔’이잖아?”
이현이 들고 있는 아티팩트를 확인한 헤르메스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거, 그 양반이 엄청 아끼던 아티팩트인데. 용케 이런 걸 내줬네.”
“적어도 그분은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으니까요. 그러니 보상을 제대로 주신 것 아닐까요?”
아직도 보상을 대충 넘기려고 했던 신들에게 화가 나 있는 이현이 뼈있는 말로 대답했다.
그러자 헤르메스가 난처한 듯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니까. 우리도 새 행성에 새살림 꾸리려다 보니까 사정이 변변치 않아서 그래.”
신이 필멸자에게 변명하는 상황 자체가 민망한 듯 헤르메스가 카두케우스로 머리를 긁적였다.
“보상은 제대로 해줄게. 그러니 용서해주라.”
“두고 볼 겁니다.”
“신으로서 면목이 없네, 이거 참.”
필멸자에게 용서를 갈구하는 신이라니.
예전 지구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모습이었지만, 잘못은 본인들에게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걸 어디에 쓸 건데?”
“잠시 제 던전과 연결을 할 겁니다.”
이현이 사념 에너지를 가득 채운 통로의 뿔 속 액체를 신성한 샘에 흘려보냈다.
액체는 은색 불투명한 막을 수면 위로 만들어 내며 이현의 던전과 통하는 게이트가 되었다.
“이게 던전이구나!”
“던전을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이 행성에도 몇 개나 있을 텐데요.”
던전을 보고 눈을 빛내는 헤르메스를 보고 이현이 의아해져서 물었다.
“새살림 차리느라 바빠서 예전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닐 여유가 없었거든. 거기다가 나는 몸이 약해지기도 했고. 콜록.”
헤르메스가 말을 마치자마자 파리한 안색으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하긴, 건강했을 때는 던전이 없었을 테니.’
지구에 던전이 생긴 건 그들이 떠나고 수 천 년이 지난 후였다.
“나도 들어갈 수 있을까?”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던전에 소속되지 않은 생명체는[워터게이트] 스킬로도 던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현은 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권해보았다.
“아, 안 되네. 이거 방랑자와 여행의 신으로서 굴욕인데.”
은막에 가로막힌 자신의 손을 보며 헤르메스가 쓰게 웃었다.
“억지로 힘을 써서 뚫어 버리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랬다간 네 아티팩트가 부서질 가능성이 크니깐 관두겠어.”
헤르메스는 손을 거두어들이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잘 해보라구.”
헤르메스가 미련이 남는 듯 연신 워터게이트를 돌아보며 떠나갔다.
이현은 그를 배웅한 뒤 일행들을 불러모았다.
“다들 승격할 준비 됐어요?”
“네!”
이현의 말에 민아가 힘차게 대답했다.
승격할 수 있는 인원 중 승격을 경험해본 건 민아뿐이었다.
나진과 디르케는 긴장한 듯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누나,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제가 겪어보니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그, 그래?”
이현의 말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 나진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사우레노르의 승격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디르케는 아는 게 있어?”
“저도 아는 건 많지 않아요. 다만 예전 육신을 허물 벗듯이 벗어던지고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다고 들었어요.”
디르케는 그녀의 몇 대전 조상이 오피디온으로 승격하면서 남겼던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간혹 승격에 실패하면 육신이 어긋나 흉측한 형상으로 승격한다고 해요.”
“으, 그건 싫은데.”
나진이 소름이 돋은 자신의 팔뚝을 문지르며 몸을 떨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에겐 던전수와 티타니아가 있으니까요.”
이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알과 짐을 맡길게.”
이현은 리코스에게 판가이온 신전에 남는 임무를 맡겼다.
신들에게 도망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일종의 볼모이기도 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스.”
하지만 개의치 않는 듯 리코스가 안심하라는 듯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자, 이제 갑시다.”
이제 승격하러 던전으로 떠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