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18
“또 만났군.”
A랭크 용병,〈질풍〉의 갈론드가 수 염을 깔끔하게 민 턱을 매만지면서 씩 웃었다.
아무래도 쥐털처럼 탄 수염은 복구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상처는 다 나으셨나요?”
“싸움에는 별 지장이 없네. 환부가 좀 쓰라린 정도? 그래도 날 조종했던 마검의 원흉을 토벌한다니, 침상에서 가만히 쉴 수가 있어야지.”
금패를 담보로 해서 새 검도 장만했 다면서, 갈론드는 허리 오른쪽에 찬 검대를 두드려보였다.
신상품답게 매끄러운 검 자루가 눈 에 들어왔다.
“세 분께서는 이미 면식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때, 8조의 나머지 한 명이 무표정
한 얼굴로 다가왔다.
펑퍼짐하나 고급진 옷감으로 된 로 브, 소매 너머로 보이는 팔뚝이나 손 바닥은 굳은살 하나 없이 부드러웠 다.
육탄전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직종 이 분명했다.
“A랭크 모험가,〈마녀〉헤이즐이에 요. 잘 부탁드려요.”
고깔모자를 손으로 잡은 채, 그녀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세 사람에게 인사했다.
붉은 머리카락에 고동색의 눈동자.
이국적인 색채를 띤 미인이었다.
“A랭크 용병, 〈질풍〉갈론드일세. 나도 잘 부탁하네.”
“A랭크 모험가, 카렌. 이명은 없어. 개인적으로 활동하느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질 않았거든. 만나서 반가 워!”
마지막으로 레온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B랭크 모험가, 레온입니다. 잘 부 탁드립니다.”
“•••B랭크? 당신이?”
그의 소개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헤 이즐이 두 눈을 둥글게 뜬 채로 고개 를 갸웃거렸다.
의문으로 가득찬 눈동자였다.
하지만 왜 B랭크가 불려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니었다.
“이상하네요. 카렌 양은 몰라도 갈 론드 씨나 저보다는 당신 쪽이 더 강 한데, 왜 B랭크에 머무르고 계시죠?”
놀랍게도 헤이즐은 8조 인원의 힘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그 서열까지 구분해놓고 있었다.
전투력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강함이 다.
통찰력 (洞察方).
마녀로서 갖춘 힘인지, 다른 방식으
로 터득한 것인지.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자기보다 강한 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좋은 능력이었 다.
“아. 저는 모험가로 등록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괜히 얼버무려봤자 불신하게 될 분 이다.
레온은 그 의문에 사실대로 대답해 주었다. 실적이 부족해서 아직 B랭크 라는, 객관적인 진실을.
다행히 헤이즐은 그냥 납득한 기색 이었다.
“그랬군요? 시간의 문제였어요. 레
온 씨의 실력이라면 얼마 안 가 금패 를 받으실테니, 선후배를 떠나서 같 은 조원으로서 잘 부탁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후훗, 그렇게 말씀하실 것까지야.”
8조와 마찬가지로 광장의 분위기는 제법 원만했다.
초면에 다짜고짜 시비를 걸 정도로 멍청하면 A랭크는 될 수 없고, 무엇 보다 이 광장에 모여있는 사람은 누 구 하나 만만한 자가 없었다. 역량을 서로 잘 알다보니 즉석에서 신뢰관계 가 발생하는 것이다.
드워프워리어와 한 조가 된 인간전
사가 껄껄 웃으면서 맥주 약속을 잡 고, 성철쇄기사와 한 조가 된 사람들 이 공손히 손을 모아서 인사하고 있 었다.
‘우리와 함께 M13의 갱도로 들어가 는 조들은…?’
M13의 공략조로 지정된 조는 셋.
8조와 11조, 14조.
레온은〈안법〉으로 광장 내의 사람 들을 둘러보고, 목에 건 인식표로 각 조의 인원을 구분해냈다.
성철쇄기사와 정령사로 이루어진 11조.
소규모 용병단이 그대로 조가 된
14조.
어느 쪽이든지 제 역할에 모자람이 없어보였다. 진입경로는 다르지만, 그 끝이나 도중에 몇 번 만날 수 있어 서, 진행하는 속도를 어느 정도 조정 하는 게 유리했다.
‘서로에게 부족한 소비품이나 기술 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가능한 밸런스를 맞춘 조합이라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공격력이 부족한 조가 있고, 방어력 이 부족한 조가 있다.
색적능력이 뛰어난 대신에 회복능력 이 부족하고, 전투력이 뛰어난 대신
에 적응력이 부족한 조가 있었다.
그러니 상부상조하는 체제를 마련해 두는 게 좋았다.
“저기, 대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공략지점을 살펴보던 용병 하나가 조심스레 말을 걸자, 그 부름에 답한 이렉사나가 되물었다.
용병은 몇 번이나 지침서를 살펴보 고서 다시 물었다.
“이 내용대로라면 대장님은 A5의 가장 큰 갱도에 단독으로 진입하시는 걸로 되어있는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뭔가 문제라도?”
베테랑도 눈을 의심할 만한 편성이 었다.
광석계 마물은 제 서식지에 매장된 광물들의 힘에 비례해서 위험도가 오 른다. 철광산보다 현철광산이, 현철광 산보다 미스릴광산이 더 위험하고 강 력한 마물들이 출몰한다.
마나의 축적량과 전도율이 높은 오 리하르콘은 마법까지 쓸 줄 아는 놈 들이 나타나고, 탄성과 강도 모두 최 강의 금속으로 유명한 아다만티움은 그 움직임이 기민한 것도 모자라서 마법저항력까지 높았다.
추정 위험도는 S+랭크 이상. 다섯 조를 밀어넣어도 공략을 장담하기 어 려운 곳을, 혼자 들어가겠다는 소리 였다.
“추가적인 인원은 필요없습니다. 이 전에도 몇 번이나 혼자 드나들었던 곳이니까요.”
“아무래도 질문은 더 없는 모양이군 요. 그러면 슬슬 대광맥 내부로의 진 입을 시작하겠습니다. 각 조의 통솔 자 분들은 한 번 더 통신용 아티팩트 의 작동을 확인해주십시오.”
본의 아니게 만장일치로 조장이 된 남자, 레온은 손바닥에 놓인 아티팩 트를 귓바퀴에 끼웠다.
거리제한이 있기 때문에 타 광구와 는 통신할 수 없다.
8조의 경우에는 11조, 14조와 이야 기하는 게 한계겠지.
《어이, 잘 들리나? 14조의 베르게르 다! 게르라고 불러라.》
《8조의 레온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게르 씨.》
《11조, 제오프입니다. 두 분 모두 무운을 기원합니다.》
《가하하하! 성철쇄기사님이 빌어주 시는 건가! 그거라면 한 번 기대해볼 만하겠군!》
레온은 두 조장과의 통신으로 아티 팩트를 점검하고, M13을 향해서 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용사님.
백 미터 이상 멀어진 이렉사나로부 터 목소리가 도착했다.
—대답하실 것 없이 들어주십시오.
이 거리에서 오러로 정확히 말을 전 달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기술에 감탄하면서, 레온은 제 귀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새겨들었다.
이렉사나가 말했다.
—닷새 전부터 왕국 전역의 대장장 이들에게 지시하여 무구를 피로 검사 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만, 그중에 안 좋은 소식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마검이 더 나타났나. 해서 레온이 낯을 굳히려는데.
—저희보다 앞서서 병장기들에 피를 묻혀보고 구매한 자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즉시 추격대를 파견했으 나, 이 정보가 가리키는 진실은 하나
분입니다.
‘설마.’
—대광맥에 침투한 마물, 오염된 광 물, 마검의 확산까지. 그 일련의 사건 들을 계획적으로 주도한, 흑막이 존 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 고 저는 그 흑막을”.
이렉사나는 잠시 뒷말을 머뭇거리다 가, 곧 계속했다.
—〈혼돈(Chaos)〉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온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렉사나의 추측이 의심스러웠던 것도, 층격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단 순하게 그가〈혼돈〉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의문을 알아차린 엘시드가 말 했다.
[사악교단(邪惡敎團)을 구성하는 종
파 중 하나다. 쓰레기들 주제에 참 다채롭기도 하지. 종파까지 나누고 말이야.]
‘사악교단이라고?!’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안 레온 이 눈을 부릅떴다.
사악교.
이 세상을 팔아넘겨서 제 사욕을 채우려는 악도요, 세계의 반역자들. 교화할 수 있는 여지를 넘어서 필히 섬멸해야하는 용사의 주적이었다.
블레인에서〈도시 삼키기〉를 시도했 던 놈들도 그 일부인데, 설마 유겐트 왕국에까지 손을 내밀었을 줄이야?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렉 사나가 말을 끝맺었다.
—〈혼돈〉의 종자들이 계획적으로 원정대를 노리거나 함정을 파둘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부디 몸 조심하 십시오. M13에는 돌발상황에 용사 님을 보조할 수 있는 형제들을 보내 두었으니, 제오프 경에게 말씀하시면 힘이 되어드릴 겁니다.
그 조언을 마지막으로, 더 전해지는 말은 없었다.
레온이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보자,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제오프가 공손히 목례했다.
일개 모험가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 었다.
아무래도 이렉사나가 미리 언질을 해둔 모양이었다.
‘11조는 성철쇄기사 세 명에 정령 사 한 명이었던가.’
정령사 또한 교단에서 섭외할 자일 가능성이 크니, 여차할 때에 가용가 능한 전력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레온으로서는 조금도 나쁠 게 없었 다.
그것보다는〈혼돈〉에 대해서 더 많 은 정보가 필요했다.
엘시드가 말했다.
[사악교단의 말종들은 크게 세 종 파로 나누어진다. 〈파멸〉, 〈절망〉, 〈혼돈〉이 바로 그것이지.]사악교는 신을 숭상하지 않는다.
악마를 숭배하는 것 또한 외법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근본적으 로 따져보면 결국 이해관계에 불과 했다.
그렇기에 세 종파는 신앙심으로 분 류되지 않았다.
광기의 형태.
어떻게 미쳐있느냐, 하는 것이 세
종파의 사악을 구분한다.
[〈파멸〉은 가장 단순하다. 사악교, 하면 떠올리는 사건들이 대부분 그 놈들로부터 비롯되었으니까.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 그게〈파멸〉의 유일 무이한 목적이다.〈도시 삼키기〉도 아마 놈들이 획책했을 가능성이 9할 이상이겠지.]
■왜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건 데?’
[몰라.]
엘시드는 즉답했다.
[미치광이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하 지 마라.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용
인될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사정 따 위는 고려하지 말고 쳐부수는 게 올 바르니까.]
‘…자비가 허락되지 않기에 이단, 인가.’
[바로 그 말대로다.]신성교단의 주춧돌이 된 교리는 ‘자 비 (Mercy)’.
악행을 저질렀어도 그 행위가 도를 넘지 않았다면 재판받을 기회를, 참 회할 시간을, 저지른 짓을 보상할 만 한 일을 권하는 게 교단의 방침이었 다.
따라서 이단으로 지정되었다는 것
은, 어떠한 기회도 시간도 베풀어주 지 않겠다는 뜻과 동일했다.
[〈절망〉은〈파멸〉보다 더 잔혹한 놈 들이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살인보다 고문을 좋아한다고 생각하 면 된다.]‘아.’
[그놈들이 숭상하는 외신(外神)은 지성체들의 고통으로부터 쾌락을 느 낀다고들 하지. 그 때문인지〈절망〉 종파에 소속된 개자식들은 특히 사 디스트나 마조히스트가 많다.]〈파멸〉이 효율적으로 죽이고 파괴 하는 것을 바란다면,〈절망〉은 좀 비
효율적인 방식이라도 최대한 많은 고통을 쥐어짜내는 것을 선호한다.
심지어 자기자신을 고문해서 힘을 내려받는 놈들조차 있어,〈절망〉의 교도들은 그 외관부터가 정상인과 거리가 먼 쪽이 많았다. 일부러 전염 병에 걸린다거나, 상습적으로 자해를 하여 몸 곳곳이 만신창이가 됐다거 나.
‘어느 쪽이든 둘 다 제정신이 아니 군….’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신음하는 레온을 두고, 엘시드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혼돈〉을 입에 담았다.
[〈혼돈〉은 그냥 또라이들이다.]‘•••응? 그게 전부야?’
[그 이상으로 정확한 설명이 없다. 행동양식도, 목적도. 한 군데도 빠짐 없이 미쳐있는 게〈혼돈〉의 특징이 니까. 그놈들의 악행에는 기본적으로 ‘왜(Why)’가 빠져있다. 왜 그곳에서, 왜 그렇게, 왜 그랬는지가 전부 의미 불명이야.]규칙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에 〈혼돈〉이며, 이 세상을 더 혼란스럽 게 만드는 것만이 존재목적.
〈파멸〉도〈절망〉도 그 사고방식이 비틀렸을 뿐, 일관성은 지킨다는 것
과 비교하자면 큰 차이다. 두 종파에 비하면 힘도 잔혹함도 뒤떨어지나,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더 위험한 자 들.
이렉사나가 확신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11조, M13-1 로 진입합니다.》
《14조! M13-5로 간다. 나중에 또 보자고!》
그때. 두 조장의 목소리가 레온을 일깨웠다.
엘시드의 설명에 집중하느라 인식 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세 조는 저마 다 갈림길을 앞둔 상태였다.
갱도로 진입하는 길.
레온 또한 그들과 같이 갱도진입을 통보했다.
《8조도 M13-2로 진입합니다. 안쪽 에서 다시 만나죠.》
두 조장에게 한 번씩 목례하고, 레 온은 세 사람을 데리고서 갱도 안으 로 걸어들어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있는 램프 들.
B38-5와 달리 관리가 잘 되고 있 는지, 깨지거나 불이 꺼진 램프는 없 어보였다. 가시거리는 50미터쯤일까. 일직선으로 난 길이 아니라서 코너
를 돌 때마다 사각이 발생한다.
여기서부터가 곧 원정의 시작이라 고 해도 좋겠지.
“ 카렌.,,
“ O ”
흐
사전에 협의한대로 진형을 구축한 다.
선발대로 척후를 맡은 카렌, 그 뒤 로 전위를 담당하는 레온, 마법사 헤 이즐과 후방에서의 습격을 대비하는 갈론드.
그런 식으로 늘어선 네 사람이 전 진하기 시작했다.
M13-2.
미스릴광산의 특징은 광맥 전체에 마나가 축적되어, 은은한 빛을 낼 정 도로 풍부하다는 점이었다. 1급 이 상의 아티팩트가 괜히 미스릴을 필 수재료로 하는 게 아니다.
“이 공간에서는 오러와 마력 모두 회복이 빨라지고, 마법의 파괴력은 더 크게 나타날 거에요. 하나……
장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헤이즐이
말을 이었다.
“마나가 과포화 상태라서 탐지 마 법의 정밀도와 사정거리가 크게 줄 어들었어요. 제 색적능력은 크게 기
대하시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기억해두겠습니다.”
레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몇 걸음 나아가다가 갑작스레 발을 멈췄다.
“카렌, 정지.”
그와 동시에 카렌이 우뚝 멈춰섰다.
의문을 표하지도, 이의를 제기하지 도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이 상황은 수십 번이나 겪어봤던 것이었기에.
의아해하는 둘의 시선을 느끼며, 레 온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오른발을 들어올려서 한
번 굴렀다.
쿵.
그의 발바닥에서 흘러나온 오러가 한 차례 동심원의 형태로 퍼져나가,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가 다시 돌아 온다.
〈공법〉의 응용기술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