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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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이광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이광이 시행할 란나찰 10만번을 내게도 똑같이 같이 하자고?
‘내가 왜?’
내가 미쳤어?
이광 널 괴롭히려고 하는 건데 왜 하겠냐!
당연히 나는 대번에 이광의 말을 물리치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란나찰 10만번을 이광에게 시키는건 전생의 빚을 갚아주려는 것이므로 내가 굳이 같이 해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잠깐.’
그러나 그 때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기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입만 산 놈이라. 내 무공은 그동안 소을촌을 경영하면서 충분히 보여줬을텐데 지금 그런걸 주장하는 건 어이가 없군.”
“뭐라하든 좋소. 자기가 내린 수련치를 자기가 따라하지 못한다는 건 천하의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읍….”
그 순간 나는 폭소가 터져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내가 웃음을 억지로 참자 약간 볼이 부풀었고 이광은 내 표정을 알아챘는지 눈빛이 더욱 험상궂게 되었다. 그러나 이광은 불쾌함은 느꼈어도 내 웃음에 담긴 의미까지는 모르고 있으리라.
‘크크… 크크크크!! 완벽하구만.’
자기가 내린 수련치를 자기가 따라하지 못한다고?
그건 지금 내가 너한테 하고싶은 말이다, 이광.
이 시련은 바로 이광 네가 나한테 시켰던 거란 말이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의 현재진행형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런 건 그냥 이광을 패는 것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만족감이리라. 나는 한동안 웃음을 억제하려고 있는 힘껏 노력하다가 간신히 평정을 찾고는 헛기침을 했다.
“좋아. 그 말대로 해 주지. 단 내 입장에서 거절해도 되는 억지제안을 승낙하는 것이니 나 또한 네게 조건을 걸 수 있겠지?”
“어떤 조건 말이오?”
나는 이윽고 이광에게 가장 치명적일 제안을 했다.
“네가 란나찰에 성공하든 아니든 내가 10만번 시전에 성공한다면…. 이광 너는 진소청과의 사제관계를 파기해라!”
“……!!”
“본디 여기까진 말할 생각이 없었으나 나 또한 진심이 되었으니 네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자 이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옆에 있던 진소청은 아무런 표정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게 이광의 역린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없이 꺼내놓을 수 있는 제안이었다. 이광은 이를 으득 악물더니 말했다.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오? 왜 나와 소청이의 사제관계를 파기해야한단 말이오!”
“이유를 말해줄까? 나는 진소청이 네 제자라는 게 더할나위없는 시간낭비이자 발목잡기라고 생각한다. 진소청은 지금껏 더 성장할 수 있었지만 네가 진소청을 억제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뭐라고….”
나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관계가 없는 제 3자였다면 모르되, 이제 진소청에게 내 진신절학인 구궁파천뢰를 전수하고 그의 태사부가 된 이상 나 백웅은 그의 앞날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생겼다. 이건 태사부로서의 올곧은 마음이다!”
“이런 개같은 소리를….”
“넌 진소청의 발목만 잡을 존재다. 무모한 내기의 대가는 스승의 자리를 내놓으면 치를 수 있을 것이다.”
“큭.”
내 말에 이광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듯 했다. 평소의 냉정침착한 모습이 어디 갔냐는 듯 약간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저 모습을 보니 이광 스스로도 진소청과의 사제관계가 자기자신의 역린이었다는 걸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만큼이나 진소청이 자기의 제자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광…. 그건 당연하지 않다….’
이광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정을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그러하다.
만일 진소청이 무당파에 입문해서 칠대절학을 익혔다면?
만일 진소청이 소림사에 가서 소림사절기를 익혔다면?
만일 진소청이 백련교에 입교해서 화신류나 풍신류에 들어갔다면?
만일 진소청이 무영문에 가서 무영탈혼검법을 익혔다면?
만일 진소청이 십이율에 가서 십이율주의 제자가 되었다면?
그 어떤 경우든간에 이광의 밑에서 성장한 것보다 더 나았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꼭 그렇진 않겠지만 진소청의 재능이 어디서 어떻게 개화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진소청을 여태까지 절대고수로 키워내지 못했다는 건 이유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이광의 역량부족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30여번을 살아 온 전생자로서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광은 잠시 후 자신의 창을 꾹 잡으며 형형한 눈빛으로 외쳤다.
“좋소!! 하지만 내가 성공하면 그건 무효요!”
나는 이광이 쫄아서 제안을 물릴거라 생각했기에 도리어 흠칫했다.
“…좋다고? 정말?”
“뭐하시오? 창을 들고 준비하시오.”
“…….”
나는 이광의 근거모를 자신감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정말로 이광은 내가 란나찰 10만번을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어찌되었든 내게는 나쁠 게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창을 줘.”
파악
이광은 미리 준비한 듯 연무장에 있던 질좋은 강철창을 내게 던져주었고 나는 마치 찌르듯 날아오는 창대를 가볍게 받았다. 절대로 스승에게 창을 던지는 법이 아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씩 웃었다.
“횟수는 옆에서 진소청이 재는 건가?”
“가장 객관적일 것이오.”
부웅 부웅 부웅
나는 창을 몇 번 회전시켜 몸을 풀어보며 씩 웃었다.
“흐음.”
정말 오랜만에 창을 들어보는 것 같다. 검술의 길을 택한지 수십 년이 훨씬 넘지 않았는가? 검만 갖고 싸운지 오래되었고 그 동안 창술의 기법만 따로 뽑아썼기에 제대로 창을 쓰는 건 오랜만이라서 감회가 어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시작하겠소.”
두웅
나와 이광이 약 사 장의 거리를 두었다. 대결도 아니었음에도 서로를 마주보고 있으니 마치 대결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이광은 약간의 살기를 내게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살기가 도리어 재밌게 느껴졌다.
‘…이광과 마주보고 란나찰 10만회를 하게 되다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운명이란 건 정말 알 수가 없다.
이광을 처음 만나서 그의 제자로 들어갔을 때 이러는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어쩌다가 나와 이광 사이에는 풀리기 힘든 악연이 생긴 것일까? 하지만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풀려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한 번은 풀고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흠. 머릿속을 비우자….’
나는 잡념을 털어버리기로 했다. 아무리 내 내공이 막대하다 하더라도 십만 번은 간단한 시연이 아니었기에 지금부터는 집중해야 하리라. 그리고 잠시 후 진소청의 외침이 들려왔다.
“시작하십시오!”
슈슈슉!!
슈슉!
나와 이광은 거의 동시에 란나찰을 펼치기 시작했다.
첫 란나찰의 일전(一轉)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이광의 창속(槍速)을 살폈는데 이상할 정도로 나와 속도가 비슷했다. 나는 란나찰을 엄청난 고속으로 펼칠 수 있었으나 일부러 평범한 속도로 전개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광의 시전 또한 내 속도와 아예 똑같았다.
‘으음?’
우연인가?
나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윽고 머지않아 백여 회를 넘어가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나와 이광이 동문(同門)의 사제(師弟)였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나는 좋든 싫든 이광에게 십여 년 이상 수련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지옥훈련을 했고, 그 와중에 창의 수련속도 또한 내 몸에 배여있었다. 그리고 그 수련속도는 이광 또한 평소에 체화(體化)하여 몸에 굳은살처럼 배기게 만든 것이었으므로 자연히 호흡이 거의 똑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 의도하진 않았음에도 동시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잡생각 하지 말자.
퓨퓨퓽
나와 이광은 란나찰 오백여 회전을 넘기면서도 전혀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고 창의 속도 또한 거의 일정했다. 마치 기계처럼 반복되는 와중에도 등근육, 팔근육, 허리근육, 다리근육을 쓰는 게 서투르지 않았고 최적화된 효율으로 힘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초장기간 몸을 쓰면서 체력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퓨퓨퓽
가볍게 일천 회전을 넘겼다. 보통 인간에게 란나찰 일천 회 반복을 시킨다면 전신에 땀이 나고 바닥에 땀웅덩이가 고일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겠지만 나도 이광도 서로 그럴 기색은 없었다. 아직 나도 이광도 굳이 내공을 체력으로 변환시킬 필요가 없었고 이 정도는 평소의 지옥훈련으로 얻었던 기초체력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족간(足間)이 신경쓰이는군.’
나는 반복해서 펼치는 동안에 발의 간극이 계속 달라지는 게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아예 창을 쓰지 않다가 써서 그런지 창술 반복수련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서투름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리라. 절대지경의 감각으로 이 오류를 계속 수정하곤 있었지만 이건 불리한 점이라 할 수 있다.
후 – 우
나는 약 삼천 회를 넘기고 있을 때 내 호흡과 심장고동이 갈수록 느릿느릿해지는 걸 느꼈다.
감각의 혼란과 함께 찾아오는 붕 뜬 환희의 느낌.
별로 내공을 쓰고있지 않으니 순수체력이 순식간에 한계에 치달았고 일종의 정신적 각성상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각성상태에서 체력소모가 별로 안 느껴지고 한계를 쉽게 넘을 수 있단 걸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 상태가 끝나는 순간 체력과 기력이 급속히 빠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건 안 되지. 슬슬 내공을 변환시켜 볼까?’
치리링!
내공이 한 차례 터지듯이 전신에 뇌구와 함께 퍼져나갔고 동시에 각성상태가 빠르게 끝나면서 평범한 몸 상태로 되돌아왔다. 나는 각성상태가 끝나서 도야된 기분이 멎었지만 그 대신에 체력 또한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퓨퓨퓽
팔천 회를 넘겨서 구천 회로 넘어갈 때.
‘힘들어보이는군.’
나는 이광의 호흡이 조금 끊긴다는 걸 알아챘다. 아무리 그래도 구천 회는 일만 회에 가까웠으므로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고 이광이 여태껏 아무리 수련했어도 체력에 부담을 느낄만한 횟수였다. 절정고수라도 여기까지 한다면 체력이 다 빠져서 기식이 엄엄해질 정도이리라.
‘그래도 저번에는 3만5천 번에서 눈꼬리가 떨리며 부담스러워하던데 전보다 체력이 더 떨어진 건가?’
나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광이 란나찰에 도전했던 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고 이광은 그 동안 먹고 자고 란나찰 수련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실력과 체력이 좀 늘었어야 할 텐데 도리어 체력이 줄어들 수도 있는 건가?
퓨퓨퓽
하지만 나는 약 1만5천회에 도달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움직임이 더 안정적이다. 그리고 체력이 되려 회복된 기색….’
나는 이광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대체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보다 더 불안해 보이면서도 어느 순간 안정적으로 변하는 이유가 잘 감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의아해하는 동안 횟수는 순식간에 2만 번을 넘어서 2만5천에 이르렀고, 이광은 다시금 약세(弱勢)를 보이는 듯 했다.
우웅….
그 때였다. 나는 이광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광(奇光)이 일어나면서 그의 몸을 살짝 감싸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기광이 이광의 혈도와 이비인후에 흡수되는 찰나의 순간 그의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을 눈치 챘다.
“……!!”
서, 설마?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어서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이광이 다시 약세에서 체력이 회복되어서 란나찰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꽤 머리를 썼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잔머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는 대충 이광의 전략을 눈치챘지만 굳이 트집 잡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저건 완전한 공략법이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집 잡는다면 이광은 이광대로, 진소청은 진소청대로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리라.
어디 할 테면 해 봐라!
파파팟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어느덧 해가 져 있었고 새벽이 와 있었다. 새벽도 꽤 진행되어 아마 몇 시진만 지나면 해가 뜰 것이고 아침이 되리라.
3만 회를 넘어서 4만회로 넘어가는 구간에 나와 이광은 서로 경쟁하듯이 창의 속도가 좀 더 빨라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 구간은 빨리 전개해서 빨리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광의 체력과 기력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는 걸 예감하고는 생각했다.
‘이광. 종전의 기록인 6만 3천여 번은 가볍게 넘기겠군….’
꽤 하는데?
‘난 괜찮겠지.’
나는 내공을 계속 체력으로 변환시키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소모가 상당한 걸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창술의 숙련도가 둔해진 상태에서 체간을 쓰는 법이 서툴러서 소모되는 내공이 좀 더 많아진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아직은 전체내공의 2할도 쓰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끝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촤아 –
머지않아 태양이 떠올라서 산의 중턱에 매달리는 듯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었고 이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5만여 회를 넘기고 있었으며 이미 란나찰 10만 번 도전은 중반에 이르러 있었다.
뚜욱! 뚜욱!
나도 이광도 이미 발밑에 땀웅덩이가 생긴 지는 꽤 되었다. 아무리 내가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갖고 있어도 생리적으로 땀이 흐르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신이 땀으로 흥건한 가운데 땀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나도 이광도 전혀 속도를 늦출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이광의 눈과 마주치고는 흠칫 놀랐다.
독기!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있는 집요한 독기어린 그 눈빛은 내가 예전에 두려워하던 그 이광의 눈빛이 맞았다. 목숨을 걸고 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눈빛에 놀라면서도 그의 체력이 상당히 소모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호흡이 흐트러지는 간극이 점차 짧아지고 있군. 5만 5천을 넘겼으니 당연한 건가?’
내가 예상컨대 이광은 7만 회까지는 어떻게든 쉽게 가겠으나 8만에서 8만5천 구간에서 상당한 고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1만회 이상을 경주하여 10만 번에 성공할지는 절대적인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설마 성공하진 못하겠지.
나는 내심 약간의 짜증을 느끼면서 좀 더 창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내가 좀 더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이광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려는 것이었다.
파파파팟
지금껏 나와 이광의 횟수는 거의 동일했으나 지금 내 행동으로 인해 나는 순식간에 천여 번의 횟수를 앞서나가게 되었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이광이 내 행동에 위축되기를 원했지만 이광은 이를 악물면서 자기 흐름을 잃지 않으려 하는 기색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쒸이익!!
이광의 창이 전방으로 뛰쳐나온 듯 했다. 난데없이 날아온 이광의 창에 나는 놀랐으나 보아하니 이광의 손에 땀이 번질거리는 바람에 한 순간의 실수로 창대를 놓친 모양이었다. 나는 창대를 잡아채서 그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그 순간 이광은 내가 보기에도 믿을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타앗
의념(意念)으로 이기어창(以氣御槍)을 발현하여 자신의 손으로 창을 회수한 이광! 그의 전신은 피로와 열기 때문에 시뻘겋게 달아 있었고 이기어창 때문에 더더욱 힘이 소모된 게 느껴졌다.
“……!!”
짤막한 한 번의 동작이었지만 나는 크게 놀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시전을 멈추고는 말했다.
“미쳤나?!”
한 호흡 한 호흡의 체력조차 아껴야 할 상황에서 이기어창처럼 기력을 소비하는 기술을 사용하다니! 저 한 번의 기술로 적어도 오백 번 시전할 체력이 낭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만있었으면 내가 그냥 잡아서 돌려줬을 텐데 저게 대체 무슨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광은 잠시 후욱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가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부. 당신은 자식이 있소?”
“없다.”
“내겐 있소….”
이광이 버럭 소리를 쳤다.
“그리고 이 대결에 혈연(血緣)이 걸린 이상, 난 절대로 당신에게 빚을 지지 않겠소!”
퓨퓨퓽
다시 이를 악물고 란나찰의 시전에 돌입한 이광을 보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나는 그가 말한 자식이 누구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진소청….’
자식처럼 생각하는 진소청을 내게 뺏기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힘을 아껴야지 더욱 자존심을 곧추세우는 건 대체 뭐지?
이성적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이광의 행동에 나는 혼란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털고는 나 또한 란나찰에 돌입했다.
모르겠지만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더 짜증나.’
나는 이광을 이해할 것 같은 나 자신이 더 싫어졌기에 더 이상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는 다시 수련에 돌입했다.
‘제길….’
하다보니 질린다.
난 이미 이 수련으로 더 이상 얻을 게 없는데 이광을 더 굴복시키려고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광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건 더할나위 없는 짜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당초 어떤 마음으로 10만 번을 수련했던 거였지?
퓨퓨퓽
어느덧 나와 이광의 도전횟수는 7만 회에 도달해 있었다. 이광은 이미 신기록을 갱신한 상태였고 아직도 할 만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체력과 기력이 많이 줄었다는 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이광이 아까처럼 기광을 일으켜서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는 폭도 크게 줄어든 게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10만 번은 순수한 인간의 체력이 열 번 이상 다 소모되어도 해낸다는 보장이 없는 미친 짓. 전략을 조금 잘 세웠다 하여 쉽사리 성공시킬 리가 있겠는가?
이 짓거리도 곧 끝날 것이다.
나는 이광이 굴욕을 느끼고 쓰러지는 얼굴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퓨퓨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