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65
10화
눈이 감긴 어둠뿐인 시야 속에서는 그 메시지가 유일했다.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격리된 심해 끝자락’에 진입되어 있습 니다.]
귓속이 먹먹했다. 그 다음에야 숨을 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어떤 물질이 내 전신을 뒤덮어 나를 가두고 있었다. 근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만으 로는 부족했다.
가능한 스킬들을 연쇄적으로 터트렸 을 때부터 균열이 생겼다.
한쪽 눈이나마 게슴츠레 뜰 수 있었 고 그 사이의 조그마한 틈을 비집고 공기가 들어왔다.
비로소 몸을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 다.
투두둑.
내 몸에서 부서져 나온 것들은 석회 질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에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를 품고 있었으며,외부 에 노출되어 있던 부분마다는 이끼들 로 그득했다.
마루카 일족의 짠 내가 났다.
[ 라이프 베슬로 삼을 대상이 선택 되지 않았습니다. 선택하여 주십시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나는 정체불명의 물질에 굳어져 오 랫동안 세워져 있었던 것 같다.
돔 형식의 구조물 안이었다.
마루카 일족의 짠 내 외에도 오래된 퀴퀴한 공기로 채워져 있었다.
내게서 떨어져 나온 덩어리들을 제 외하고 나면 석판 하나밖에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석판은 마루카 일족의 문자가 빼곡 했는데,직접적인 해독은 불가능하고 시스템이 보내오는 정보 창으로만 대 락적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쓸모를 다한 봉인석판 (장치)극도로 위험한 ‘마루카 일족의 방해자’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내용: ……이 괴물의 영면을 훼방 놓지 마라. 절대로. ]
석판에도 달라붙어 있는 이끼가 그 간의 세월을 증명하고 있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일 까?
당장 귀환석을 꺼내 봤지만 본래 설 정되어 있던지역,내도시 ‘무단 점거 시 사망’은 이동할 수 없는 지역이라 는 메시지만 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2막이 끝 나 버린 세월이란 거였다.
그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만 까닭 은 설마 시작의 장 전체가 끝나 버린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었다.
외부로 통하는 통로들 쪽에서였다.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서 난입해 왔 다.
빌어먹을 압삽한 새끼들. 날 이런 구 석에 처박아 놔?
[ 열정자가 발동 했습니다. (1 단계) ] 분노가 실렸다.갈고리로 조갯살을 끄집어내듯 주먹 을 쑤셔 넣어 척추가 있는 것이라면 그대로 뽑아내 던져 버렸다.
척추가 없는 원형질의 경우에는 1차 분열조차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조각조
각 찢어 버렸다.
오래된 공기는 비릿한 피 냄새와 악 취의 진액 냄새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것들을 상대로 계속 그러고 있었는데,문득 녀석이 보였다.
녀석이었다.
남작 오르까.
하지만 정보 창에서 녀석의 직위는 전과 달랐다.
[ 파수꾼 오르까 (종족)마루카 일족의 비밀을 지키고 있습니다. ]
녀석은 볼 때부터 이미 경악스러운 표정이 짙었다.
히엑!
나와 눈이 마주친 다음부터는 그런 희한한 소리와 함께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목숨을 애걸하는 호소 짙은 눈빛이 어김없이 있었으나,졸개들은 녀석과 달리 본능에만 이끌려 끈덕지게 달라 붙었다.
습격이 대충 및었을 때 진흙땅은 졸 개들의 사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살아 있는 것은 하나,오르까뿐. 내가 일부러 녀석을 살려 둔 덕분이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느낌 은 있을 것이다. 턱주가리 촉수를 한 움큼 움켜쥐어 녀석의 얼굴을 끌어당 기며 말했다.
“앞장서.”
마루카 일족은 이렇지 않았다.
칠마제 군단 중에서는 제일 강력한 종족이라 손꼽히는 것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털북숭이 크시포스들과의 차 이점이 희미해져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로 하나하나 토해 내 는 경험치가 현저하게 줄어든 데 있었 다.
나를 지키고 있던 녀석들만 그런 것 이 아니라 일족 전체가 그렇게 되고 만 것이라면,왕성한 번식력 외에는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종족이 되어 버 린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오르까 녀석부터 가 약화된 상태니까.
몇 번을 죽어도 똑같은 힘으로 태어 나는 것들인지라,이런 퇴행(退行)은 처음 보는 현상이다.
대체 얼마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사이에 마루카 일족 전 체에 격변이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해 졌다.
젠장.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발로 등을 밀어 찼다.
퍽!
진흙에 코를 박은 채로 몸을 떠는 녀 석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출구!”
“chi…… da……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면서 잘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알량한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거겠지.
그 순간 나를 흘깃 올려 보다가 돌려 버린 두 눈에서는 어찐지 눈물 같은 게 맺혀 있었다.
나를 가두고 있던 구조물의 설계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러니까 처음에 눈을 떴던 곳이 중 앙이었고 거길 중심으로 바큇살 모양 을 띠며 구역 하나씩이 내뻗어져 있었 다.
그게 다였다. 애초부터 출구 따위는 없는 설계.
한 벽에 부딪친 끝에서 녀석이 고개 를 저었다.
그런 녀석을 세게 밀친 후 벽을 가격 했다.
“출구가 없다면 만들면 되지.”
광! 쾅!
“To! To! Torrrr-”
차마 내 몸에 손을 대지는 못하지만 보내오는 경고의 눈빛만큼은 완강했 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무너지게도 녀 석은 그렇게 기겁하고 나오는 것이었 다.
깊숙이 파여 버린 벽의 한쪽에서 물 줄기 가 흘러 나오고 있던 때 였다.
바닷물이다. ‘격리된 심해의 끝자락’ 이란 메시지 정보와 일치했다.
녀석은 몹시 분주해졌다. 구멍을 메 꾸기 바쁜 녀석의 등 뒤에 대고 뇌까 렸다.
“파수꾼은 개뿔. 네 녀석도 나와 함 께 갇혀 있던 게 아니냐.”
따지고 보면 녀석은 징벌을 받고 있 는 것에 가까웠다. 이 한정된 공간 안 에서 멍한 시간을 보내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Um gorrr—da Torrrr—”
녀석은 나와 자신이 메꾼 구멍을 번 갈아 쳐다보며 목울대를 진동시켰다.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지금도 간 신히 참고 있는 중이 니까.”
악녀 이악(그惡)으로 도래한 연희.
내 사유 재산을 독차지하여 그것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조나 단.
과도한 욕심에 내전을 일으키고 만 이태한.
한 번씩 그것들이 나타나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것들이 환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기가 힘들었다.
이번에는 바깥에 적응하지 못해 연 쇄 살인마가 된 성일이었다.
죽은 민간인 여자의 유방을 발로 짓 밟고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콧등을 긁으며 씩 웃는 그 미소는 이
따위 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듯했다.
오랜 세월 동안 전 인류를 위해 전쟁 을 치러 왔으니,모든 인류는 자신에 게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항변과 함께였다.
하지만 성일이 죽인 것은 그를 거부 한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로 경찰과 군인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그보다 저급한 각성자들도 있어서 협회 상징은 어김없이 피로 물 들어 있었다.
그때 성일의 목을 날려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죽도록 머리를 쥐어짜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여선 안된다.
녀석은 성일이 아니라 오르까니까. 그래서 두 팔만 날려 버렸다.
주먹 파괴자 특성을 자유자재로 쓰 는 그 두 팔을!
[ 데비의 칼을 시전 하였습니다. ]스삿-!
성일의 두 팔이 피를 뿌리며 아스팔 트 바닥으로 떨어 졌다.
그래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 다.
팔 따위 잃어도 인장이나,다른 힐러
들을 겁박해서 다시 재생시킬 수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내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채로 끝 나버린 시작의 장.
그 여파는 팔악팔선 치하의 말세와 는 다른 방향으로 최악을 향해 갔다.
성일이 협회 상징 대신 흉악한 조나 단 투자 금융 그룹의 상징을 달고서 흐흐흐 웃어 대고 있을 때.
두통이 심한 머리를 한 번 더 짓누른 후 눈알에 힘을 줬다.
성일의 웃음은 오르까 녀석의 신음 소리로 바뀌어 졌다.
“to.to.tonr_”
성일이 쓰러져 있던 아스팔트 바닥 은 여전한 진흙으로 돌아왔다.
나는 비틀거 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 다.
바닥에 깔린 진흙의 높이가 앉은 자 세의 허리까지 올라와 있는지라,하체 전체는 진흙의 차가운 기운으로 둘러 싸였다.
그 차가움에 집중했다.
부정 환각을 완전히 떨쳐 내기 위해 서.
환각도 수차례 겪다 보니 학습되는 게 있었다.
“후우.”
나는 이번에도 오르까 녀석을 죽이 지 않은 것에 만족했다.
양 팔은 잘렸지만 다시 재생될 것이 다.
녀석은 원망 가득한 얼굴로 내 앞, 진액이 다 빨린 원형질 몬스터를 바라 보며 말했다.
먹지 마,제발. 그런 뜻이었던 것 같 다.
“누군 먹고 싶어서 먹는 건 줄 알 아?”
나도 역겨워 죽겠다.
생존에 필요한 열량을 채우기 위해 서라지만,일족의 사체에서 진액이나
핏물을 빨아먹는 건 언제고 역겨운 짓 이다.
그래서 항상 배가 고프고 신경은 잠 을 못 잔 것 이상으로 날카로웠다.
어쨌든 오늘도 시스템에선 기별이 없었다.
경험치를 줬던 것이나,여러 정보를 띄워 준 것을 보면 시스템의 힘이 어 떻게든 미치고 있는 건 맞았다.
그러면 왜 게이트를 열어 주지 않는 것일까.
시스템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제약 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해 볼 건 다 해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이 방법으로도 되지 않으면 벽을 부 수고 나갈 수밖에 없다.
얼마나 깊은 바다 끝인지는 몰라도.
“야. 오르까.”
녀석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움찔 거렸다.
“여기를 던전 같이 꾸며 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처럼 만들어 보라 고.”
“네 녀석도 귀족이니 사생아를 만들 수 있을 거 아니냐.”
“사생아. 낳아. 많이.”
주변에 깔린 몬스터 사체들을 가리 켰다.
웃기지도 않은 손짓 발짓을 해 가면 서.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당장 죽여 버 린다.”
“이걸 확! 눈만 낌벅거리지 마라. 무 슨 말인지 대충 알아먹잖아. Chida.”
녀석은 제 몸의 재생이 끝난 후에야 사생아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 실수는 그것들이 지성체가 아닌 까닭에 원시적인 본능만 품고 태어나 는 존재라는 걸 잠깐 잊은 데에 있었 다.
터지는 기포에서 그것이 태어날 때 마다 내게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오르까 녀석을 경험치 자 판기로 만들기 에는 그 수치가 너무 미 약한지라,레벨 하나 올리는 데 얼마 나 많은 세월이 더 들지 모르는 일이 었다.
*라이프 베슬이 활성화 되지 않은 상태 입니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메시지는 일 단 무시하고 은신 효과가 깃든 반지를 꺼냈다.
그 후부터였다. 녀석의 사생아가 점 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 면서 천장에는 촉수가 달리고 벽과 진 흙 바닥 속에는 부식성 액체를 뿜어 대는 생체 함정이 만들어졌다.
짧은 시간 안에 던전 하나가 완성됐 다.
면적이 좁아서 가능한 일이라는 걸 감안해도,이것들의 번식력과 활동력 은 역시나 왕성하다는 것이다.
[ 은신 해제 까지: 1시간 1분 30초 ] [ 은신 해제 까지: 1시간 1분29초 ]시간이 줄어들었다.
정말로 벽을 뚫고 나가 봐야 하나 심 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무렵.
흡!
나와 함께 오르까도 반응했다.
건너편 통로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 빛은 위엄을 되찾은 둣,제 사생아 못
지않은 살의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열이었 다.
한 개 공격대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다.
상태 창을 꿰뚫어 보지 않아도 그들 이 골드 구간을 넘어서지 못한 각성자 라는 것을 보자마자 알았다. 아이템 상태가 미약하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내가 몬스터로 보 였기 때문일까?
[ 상대가 당신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는 녀석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들어도 긴장한 마음이 잔뜩 실 린, 떨리는 목소리였다.
“시작의…… 장…… 끝났나?”
“자넨 뭐지? 어떻게 먼저 들어와 있 는 거냐?”
나이 지긋한 백인 남자의 검이 내 얼 굴 앞에서 멈춰 섰다.
“묻고 있잖아. 시작의 장!”
“……끝났을 리가.”
백인 남자의 얼굴 위로 씁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몇 막 몇 장?
“2막 5장. 자네 차례야. 어떻게 여기 에 있는 거냐? 얼마나 있었던 것인가. 대답해!”
2막 5장!
2막 5장?
그 의문이 머릿속에서 응웅거 렸다.
본래 2막 5장이란 건 없었다.
각 막의 3장이 최종장으로 끝.
진행 방식이 달라진 것이었다.
내가 봉인됐던 세월과 무관할 것이 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때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오르까가 탄생시킨 몬스터들이 진입 자들의 살 냄새를 맡고 쏟아졌기 때문
이다.
남자는 입구방부터 그렇게 많은 몬 스터들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애초부 터 탐색만 하러 왔던 것인지 판단이 빨랐다.
“철수!”
하지만 여기는 입구방이면서 곧 보 스방과 한데 묶인 영역이기도 했다.
어긋나 버린 시작의 장 법칙처럼 여 기 던전의 법칙도,이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쉬아아악-
천장의 촉수들이 비수처럼 꽂아 내 려오면서 퇴로를 막았다.
한 명도 빠져나가게 둘 수 없다는 오 르까의 강렬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퇴로가 막힌 후에는,지면에 서 올라온 촉수들이 각성자들의 발목 을 휘감았다.
나는 촉수에 저항하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 대상을 완벽하게 간파하였습니다. (스 킬,개안) ] [ 이름:숀브라운 레벨:225 (골드) 길드: 없음군단: 없음 공격대: 숀 ]
길드에도 군단에도 어디에도 소속된 곳이 없었다. 지금 무대를 판별한 정 보가 없다.
그들을 내버려 두고 입구를 막은 촉 수를 잘라 출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 다.
닫혔던 출구가 열렸다.
밖은 황무지였다. 감각을 끝까지 올 려도 다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속에는 도시 는커녕 야영지 하나 없었다. 몇 군데 서 잡혀 오는 기척들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언데드 중에서도 구울의 것으 로 추정됐다.
그게 기괴하다.
언데드들은 죽은 자들의 대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은 색채 잃은 젓빛의 세상으로,황량하지만 그 래도 여기는 그 세상과는 확연한 차이 가있는 곳이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나는 찌푸려진 눈살과 함께 던전 입 구로 등을 돌렸다.
[ 등급: E구역: 금단의 영역 (마루카 일족) ]
푸르스름한 막에 걸쳐져 있는 창을 뚫고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사이에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각성자들이 촉수에 휘감겨 허공에서 바둥대고 있었다.
오르까의 사생아들은 그들의 살점을 어떻게든 한입 베어 물고 싶어 날뛰고 있었다.
각성자들은 촉수의 구속에서 풀려나 려고 애를 쓰고 있다만 그들은 조금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전사자 없이 모두가 살아 있는 이유 가,바로 그 촉수 때문인 것을.
오르까 녀석이 제 사생아들의 본능
으로부터 본인들을 구해 주고 있다는 것을.
그때 입구방에 들어왔던 오르까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체념한 듯 보였다.
맞다. 일단 녀석의 사생아들을 다시 죽여 놓고 볼 일이다.
잠시 후.
오르까의 사생아들을 중앙으로 유인 해서 처리하고 돌아왔다.
던전 속의 모든 촉수들은 오르까 녀 석의 의지대로 움직여서,광란의 춤을 추며 꿈틀거려 대고 있었다.
그때도 오르까는 각성자들을 놓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얌전히 다뤄 줄 마음 또한 없는 것인지 증발된 방어막을 뚫고 그 들에게 가하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었 다.
툭. 툭.
이를 악문 신음 소리와 함께 갈비뼈 가 끊기는 소리들이 일었다.
그제야 내가 돌아온 걸 깨달은 걸까. 오르까의 뒷모습이 움찔거 렸다. 각성자들을 쥐어짜고 있던 촉수들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거 기까지.”
짝!
오르까의 뒤통수를 때리자 녀석의 고개가 앞으로 꺾 였다.
녀석은 보기와는 달리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녀석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 럼 태연하게 대답했다.
“To? Torrr-?”
말은 통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바 라는지 아는 재주를 가졌다.
아니면 나와 동거하던 동안 한국말 을 익힌 걸까?
“죽이지도 풀지도 말라고. 인마.”
어쨌든 각성자들을 바닥에 떨구려던 촉수들이 다시 팽팽해졌다.
각성자들의 리더인 남자에게 다가가 자,촉수는 대화하기 쉽도록 높은 허 공에 옭아매어 있던 놈을 내 얼굴 앞 까지 이동시켰다.
이름은 숀. 각성 나이는 육십대 초반 쯤.
소속 길드도 군단도 없는 것들은 뻔 한 것들이다.
범죄자거나 그에 준하는 짓거리를 자행하고 다니는 떠돌이들.
이태한의 준수한 운영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있어 온 것들이다.
“당신…… 사,사람 맞소?”
말이 좋게 나올 수가 없었다.
“질문은 내가 하고 넌 대답하기만 한 다. 너희 같은 것들과 수다 떨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것.”
거꾸로 매달린 놈의 머리를 툭툭 치 며 마저 말했다.
“거기에 쑤셔 넣어 둬야할 거야.”
난데없이 나타났기에 처음엔 몬스터 인 줄 알았다. 그러다 몇 마디 나누고 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 다.
그런데 처음의 생각이 맞았던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숀은 몬스터인지 사람인지 모를 것 을 앞에 두고 겁에 질렸다.
마루카 일족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 도 엄연히 칠마제 군단 중의 하나였고 이족 보행의 지성체들이다.
즉 마루카 일족의 귀족들이 여전히 공포스러운 존재임에는 변함이 없었 다.
턱주가리 촉수를 지닌 몬스터는 마 루카 일족의 귀족이 틀림 없다.
그러면 그것을 종처럼 부리고 있는 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몬스터인가. 사람인가.
마루카 일족의 귀족들이 가진 인간 에 대한 혐오와 살의는 칠마제 군단을 통틀어 제일 짙어서,숀은 자신의 앞 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직접 보고 도 믿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를 종처럼 부릴 수 있는 자가 한 명 있긴 하지만,그 여자라면 여기 서 이러고 있을 리가 없었다.
숀은 진흙과 몬스터들의 진액으로 뒤덮여 있는 그자를 향해 물었다.
“당신…… 사,사람 맞소?”
“질문은 내가 하고 넌 대답하기만 한 다. 너희 같은 것들과 수다 떨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것,거기에 쑤셔 넣어
둬야 할거야.”
숀은 정체불명의 손가락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쿡쿡 찔러올 때.
찌릿한 뭔가가 시작점에서부터 그대 로 반대편 관자놀이까지 관통하는 느 낌을 받았다. 그의 입에서 짧은 비명 이 터졌다.
“이번 무대의 지도층에 대해서 말해 봐.”
그 여자처럼 몬스터를 종처럼 다루 는 자. 개안의 간파가 통하지 않는 자.
바로 그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 선은 멸시로 가득했다.
숀은 이를 악물었다.
사내가 말했다.
“협회에 반하고,하지 말라는 짓만 저지르고 다니는 것들은 꼭 이렇지. 말로 해선 듣질 않아. 아서라. 네놈 말 고도 남은 입들이 많으니.”
빠지직!
그자의 손에서 위험천만한 불꽃이 튀겼기 때문이 아니 었다.
숀은 뭔가 큰 오해가 있음을 깨달았 다.
사내의 두 눈에서 살의가 짙어지고 마루카 귀족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순간.
숀이 황급히 외쳤다.
“빌어먹을,난 아니요! 난 부랑자가 아니란 말이오!”
“많이! 상황이 많이 바뀌었소. 대체 얼마나 갇혀 있었던 거요?”
“2막 2장.”
순간적으로 숀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때 그를 동여매고 있던 촉수가 완전히 느슨해진 것과 동시에 그는 진흙 위로 처박혔다.
숀은 얼굴에 달라붙은 진흙을 쓸어 내리며 눈을 부릅떴다.
그때 비로소 사람 같아 보이는,사내 의 흔들리는 눈빛이 보였다.
그래도 숀은 안심할 수 없었다.
사내의 어깨너머에서 자신의 죽음을 그리도 바라고 있는 시선이 있었기 때 문이었다.
공포스런 마루카 귀족이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고 있는 시선 말이다.
숀은 사내가 마루카 귀족에게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설마 한국어인가? 아, 아니겠지. 아 니어야만해.’
마루카 귀족이 기가 죽은 채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그 말이 자리를 비 키라는 지시 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사내와 마루카 귀족의 관계
는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을 만큼 불가사의한 것이 었다.
2막 2장부터 갇혀 있었다는 말만큼 이나.
“부랑자가 아니란 말이지?”
“그렇소. 우리가 어딜 봐서 그런 것 들…… 나도 부랑자라면 이부터 갈린 단말이오.”
“미안하게 됐군. 사실일 경우엔.” 숀이 볼 때는 말만 그랬다.
사내의 신경질적인 표정은 무척 위 험해 보였다.
“말해 봐. 어떻게 바뀌었다는 거지?” “2막 2장 때부터……
숀은 기억을 더듬어 갔다.
“당신이 여기 갇혔었다던 시기부터 조짐이 있었소. 시스템이 우리를 험하 게 다루기 시작했던 게 그쯤이니까.”
생각할수록 치가 떨리는 기억들이었 다.
2장은 그렇다 쳐도,3장에서는 게이 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칠마제 군단과 전쟁을 치르면서도 시스템의 강제 퀘 스트를 수행해야 했다.
한 손에는 무기를,한 손에는 수집 퀘스트 아이 템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시스템에서만 강제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길드 지도층에서도 퀘스트에 혈안을 띄었던 탓에 많은 사람들이 갈 려 나갔다.
4장은 또 어땠는가.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왜 그렇게 해 야 하는지 도 모른 채 .
난해한 던전들로 처박혔다.
또 대지의 생명 에너지를 각 도시들 로 집약시켜 날려 버리는?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퀘스 트들을 이행하는 도중에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었다.
돌이켜 보면 사내가 갇혔다던 2막 2 장의 어느 한 시점까지는…….
시작의 장 전체를 통틀어,다시는 오 지 않을 평화로운 세월이었다.
“그 오랜 세월을 갇혀 있는 게 얼마 나 고통스러운 일일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은 솔직히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요. 그러니 당신도 우리가 겪어 왔던 걸 이해하기 힘들 거요. 당신은 어쩌면 여기에 갇혀 있 던 게 다행일 수도 있소. 당신같이 강 한 자들이…… 제일 먼저 죽어 갔으 니.”
숀은 사내의 어두워진 얼굴을 보며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입장을 바꾼다면 지나간 일들에 대
해서 흥미를 보여야 할 일 아니던가. 사내가 갇혀 있던 긴 시간들에 대해 자신 또한 흥미가 깊은 것처럼 말이 다.
그런데 사내는 그 일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듯한 표정이 었다.
숀은 저런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제 는 정말로 가물가물해진 기억 속.
고해성사를 할 때나 있던 얼굴이다.
“길드가 없다고 해서 날 부랑자로 본 거,맞소? 이제 그것만으론 날 부랑자 라고 할 수 없소.”
사내가 한층 더 어두워진 얼굴로 고 개를 끄덕였다.
“왜지?”
“지금은 많은 자들이 길드에 속해 있 지 않소. 눈에 띄지 않기에 바쁘지.”
“그건 또 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기 때문 이오. 적어도 나 같은 사람들에겐 그 랬소. 그 여자에게서 도망치고 또 도 망쳐서 여기까지 온 거요. 그러다 이 런 꼴이되었지만.”
숀의 어투에서 뭔가를 눈치챈 사내 는 눈을 부라렸다.
“확실히 해. 여자야. 길드야?”
“2막 2장에서도 유명했던 여잔데,당 신도 알 거요.”
사내가 멈칫했다.
“……마리?”
숀은 그 이름을 다시 듣는 것만으로 도 몸서리쳐졌다.
“맞소.”
“어디서 찾을 수 있지? 마리! 마리 말이다.”
거리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크시포스 군단의 몬스터가 분명한 작은 생명체를 품에 안고,한 손으로 는 그 복실복실한 털을 쓰다듬으면서
였다.
그렇게 몬스터를 애완동물처럼 다루 는데 누구도 그녀를 저지하거나 힐난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녀는 절대 말을 붙여서 도 쳐다봐서도 안 되는 여자였다.
그녀가 길드 본관으로 사라지고 나 서야,그녀의 등장과 함께 시간이 정 지되었던 것 같은 거리가 비로소 움직 이기 시작했다.
본관 안.
길드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길드장 도 그녀의 앞에선 거리의 일반 각성자 들과 다르지 않았다.
위엄 서려 있던 표정은 일순간 사라 지고,극도의 긴장 때문에 눈 밑 근육 만 꿈틀거렸다.
여자가 말했다.
“어디서 배워 먹은 버릇이야? 네가 직접 와야지.”
“죄…… 죄송합니다. 업무가 너무 많 아서……
“바쁜 건 좋아. 그럼 성과가 눈에 보 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때.
작은 생명체를 쓰다듬던 여자의 손 이 불쑥 사내의 목으로 치켜 올라갔 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길드장은 여자에 게 목이 움켜쥐어져 컥컥대고 있었다. “어찜 이 아이만도 못해?”
“크어업……
“이 아이나 날 보면서 느끼는 게 없 어? 이런 우리도 열심이잖니.”
길드장의 대답이 나오기엔 여자가 목을 죄는 힘이 강력했다.
“네 수하들,선술집에서 보이더라?” “지…… 지금……
“주환아. 이보세요. 성주환 씨. 이번 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더 잘할 수 있 잖아요. 아니면 정말 그렇게 만들어 주길 바라나요? 날 어디까지 나쁘게
만들 참이에요.”
길드장에게 그건 죽는 것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여자는 공포에 질려 있는 길드장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길드장뿐일까.
무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 워하고 있지만 여자가 실로 두려운 ᄌd—.
선후가 봉인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였다.
[ 봉인된 마루카 일족의 방해자에 대하여 (탐험자 보상) ]여자.
아니 우연희는 그 창을 다시 열어 보 며 간절히 바랐다.
‘깨어난 거니? 제발. 깨어나야 돼. 선 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