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19
22 화
개안을 발동시키고 나자 윤곽들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거대한 계단의 한 층을 차지하 고 있었다.
올드 원의 신전이 온통 하얀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면 여기는 칠흑색으로 정반대였다.
저항할 수 없는 하나의 권능이 물들
어 있는 공간.
올드 원의 신전에서 느꼈던 피부의 간지러움은 전신을 무겁게 눌러 오는 압력으로 변해 있었다.
둠 카소는 아래 계단, 그러니까 가장 낮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 었다.
무릎 위에 얹어 둔 팔 사이. 거기로 수그리고 있는 뒤통수와 목덜미로 이 어지는 굵직한 선만이,내려다봤을 때 당장 보이는 광경이 었다.
시선을 위로 가져가자 이번에는 나 를 내 려다보고 있는 얼굴이 나타났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얼굴은 털로 가려져 있었는데 눈이 위치해 있을 부분에서는 한기(寒氣) 로 똘똘 뭉친 안광 또한 감춰져 있었 다.
둠 마운이었다. 그때 동시에 보이는 건 둠 마운의 발목에 채워진 사슬들이 었고,그것은 둠 마운의 상체를 타고 올라가 점점 털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실제로 녀석이 앉는 것으로 자세를 바꾸는 순간에 사슬끼리 부딪치는 소 리가 울렸다.
눈을 가리고 있던 털들까지도 흔들 거렸다.
그때 보였다.
녀석의 두 눈은 나를 향한 적대감과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더 위의 계단.
둠 인섹툼 또한 황금빛 끈에 양발이 휘감겨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서 둠 마운뿐만 아니라 둠 인섹 툼의 시선도 내게 미쳐 있는 것이었 다.
하지만 둠 인섹툼 위로는 더 보이지 않았다.
한 층계마다 드높은 언덕 같은 크기 로 구분이 뚜렷했다.
그러나 최상부 세 번째 계단.
둠 엔테과스토가 있어야 있어야 하 는 단(壇)이 시작되는 부분부터는 장 막에 가려져 있는 것이었다.
어둠의 장막.
그 너머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래의 계단을 내려다보는 시선들뿐 이었다.
숨을 막히게 하는 섬뜩한 느낌들은 전부 거기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때 큼지막한 발 하나가 어둠의 장 막을 뚫고 나왔다.
그 발을 둘러싸고 있는 각반(脚經)은 내가 만든 뼈 반지와 비슷했다.
무언가의 뼈가 얽혀서 만들어진 것
이었다.
무릎받이에는 용의 해골이 결착되어 있었는데,그것의 넓적다리까지 시야 로 들어오는 순간에 장내 전체에 울림 이 일었다.
둠 엔테과스토는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올드 원의 신전에 남아 있던 갈비뼈 크기로 둠 엔테과스토의 크기를 추정 했던 것은 쓸모가 없었다.
둠 인섹툼을 깔아뭉개기에 충분한 크기의 발이 녀석의 옆을 디디면서였 다.
그때 둠 인섹툼이 보인 겁에 질린 표
정을 잊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둠 마운도 거대한 발이 떨어진 위로 고개를 들었다.
아래 계단,둠 카소가 위치해 있는 거기에서도 놀란 호흡을 삼키는 소리 가들렸다.
“기,기다려 주십……
둠 인섹툼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러나 뒷말은 채 들리지 않았다. 둠 엔테과스토의 거대한 발이 더 아래에 있는 계단을 향해 내려가면서 일으킨 울림에 묻힌 것이었다.
오른발이 어둠의 장막을 뚫고 나와 이번엔 둠 마운이 위치한 계단을 밟았 다.
그렇게 둠 엔테과스토가 한 계단씩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위 군주들에게 둠 엔테과 스토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 음이었다.
둠 카소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 었던 것을 떠올린 무렵.
나 역시 다른 군주들처럼 몸이 떨리 기 시작했다.
빌어먹게도.
놈의 발이 내 앞까지 내려왔던 때는
등골이 쭈뼛 서고 숨통이 막혔다. 하지만 시스템은 긴장된 마음과는 상관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둠 엔테과스토가 양 무릎받이로 부 착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에이션트 드래곤들의 해골이 었다.
정면을 바라보면 그것 두 개만 보였 다.
한때 타고 다녔던 해골 용의 대가리
와는 다르다.
동일한 것이라곤 크기뿐.
두 해골의 눈구멍에 머금어져 있는 힘들에 비하자면 ‘죽지 않은 자들도 경배하는 해골 용’이 품었던 기운은 새끼 용 수준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어느덧 둠 엔테과스토의 거체는 카 소의 아래 계단부터 인섹툼의 위 계단 까지 전체에 걸쳐 높게 서 있었다. 카소의 앞에는 발이.
내 앞에는 무릎이.
마운의 앞에는 복부가.
인섹툼의 앞에는 가슴이.
그리고 투구로 가려진 얼굴은 어둠
장막 바로 밑에서 아래 군주들을 내려 다보는 중이었다.
쿵! 쿵- !
놈이 멈춰 섰는데도 울려 대는 그 소 리는 놈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늑골이 뜯겨 나간 대로 내장 기관들 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심장,허파, 그리고 갈래갈래 뻗어 있 는 그 많은 혈관들은 핏빛 권능의 기 운으로 보호되어 있는 상태.
그런데 전반적으로 검은 색채를 품 고 있는 갑옷 틈새 곳곳으로도 둠 엔 테과스토의 부상치를 확인할 수 있었 다.
피부가 없이 뻘건 근육들만 보였다. 또 어떤 부분은 근육조차 남겨진 게 없어 골격을 드러내고 있기까지 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검은 투구의 눈구멍 속이 었다.
놈의 권능 색채가 핏빛이었기 때문 에,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권능의 기운 들이 정말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들이 놈 안으로 갈무리되지 않 고 주변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스르르一
놈이 큼지막하게 자세를 기울이며 팔을 움직 인 때는 바로 그때 였다.
날 움켜쥐려는 놈의 손아귀가 쇄도 해 오던 순간,곤두선 감각들이 피해 야 한다는 경고음을 울려 댔다. 하지 만 피하는 게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 었다.
피한 뒤가 문제인 것이지.
여긴 순종을 강요받는 공간이 다.
어쨌든 둠 엔테과스토라고 내 생사 까지 재단할 순 없을 것이다.
인섹툼의 비명이 위층 계단에서 울 려 퍼지던 시점에 곧 다가올 고통을 대비해 이를 악물었다.
둠 엔테과스토는 회의의 개회사로 지금을 준비해 두었다.
놈은 인섹툼과 내게 징벌을 내리려 한다.
둠 엔테과스토의 손아귀가 날 감싸 기 직전인데도,이번 역시 쉽지 않겠 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공포스러운 압력이 전신을 눌러 오 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바로였다.
젠장. 젠장.
젠자아아아앙!
[ 경고: 둠 엔테과스토의 권역 밖으로 이 탈 하십시오. ]어느 정도나 견뎠는지는 알 수 없었 다.
시간을 따질 수 없었다.
양 안구가 터져 버린 것은 틀림없었 다.
눈알에서 뭔가가 툭 끊겨 버리는 걸 느끼는 시점에서 시각을 상실해 버렸 으니까.
[전투 불능 상태에 돌입하였습니다.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던 소리도,다 른 쪽에서 울려오던 인섹툼의 비명 소 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권능 저항력이 부족합니다.] [둠 엔테과스토의 고유 권능 r 에 의해 서 특성 역경자가 차단 되었습니다. ] [ 둠 엔테과스토의 고유 권능 r 에 의해 서 특성 열정자가 차단 되었습니다. ] [둠 엔테과스토의 고유 권능 r 에 의해 서 특성 괴력자가 차단 되었습니다. ]메시지는 노이즈가 있는 흑백 브라 운관처럼,아무렇게나 뒤틀려 대고 있
었다.
몸에선 고통을 선사해 오는 통각 외 에는 일체,모든 감각들이 끊겨 버렸 다.
역류한 핏물들은 기도를 막았다.
그때 나도 모르게 삼켜 버린 핏물. 거기에 깨진 이빨들이 한 줌 가득했었 는지 식도를 긁어 내려가는 느낌까지 도들었다.
정말이지 남은 건 통각뿐이었다. 나 를 쥐어짜다 못해 압살하기 직전의 절 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놈은 나를 죽이려 들고 있다.
정신까지도 다 흔들리는데,뉴런 하
나하나가 전기적 신호로 뻘건 빛들을 번뜩이는 것 같았다.
둠 데지르와 서로의 목을 끊어 버리 던 순간에 봤었던 그 현상.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 속에선 누군 가의 비명 소리가들렸다.
아아아악-!
울부짖고 고통에 헐떡거리는 바로 내 목소리.
공이가 뇌관을 쳐서 화약을 폭발시 키듯,그 소리가 머릿속에서 터져 버 렸다.
차라리 죽여라. 난 살아나니까! 네 놈의 물건 덕분에에에一
뭔가에 부딪혔다가 높게 튕겨 올라 갔다.
다시 내리꽂히는 느낌이 뒷골을 울 렸다.
나를 압살하려던 힘은 갑자기 사라 졌으나 타는 듯한 고통이 온몸에 작렬 했다.
말로 전신이 불에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안구,입과 귓속,복부,팔다
리 끝 어디에서나 그런 고통들이 나를 갉아먹어 온다.
그때 메시지가 흔들리며 난입했다. 눈이 깜박여지던 순간에는 바로 선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 레벨 구간이 변동 되었습니다. 변동: 엔더 (Lv.600) — 오버로드 (Lv. 680) ] [ 모든 스킬의 등급과 모든 특성의 숙련 레벨이 다음 단계로 상승 합니다. ] [ 모든 부상이 회복 됩니다. ] [ 타고난 자가 발동 하였습니다. ] [ 모든 특성들의 숙련도가 변동 되었습니 다. 변동: — (Lv. Max) ] [열정자가발동하였습니다.] [ 특성 열정자 1단계 (Lv.Max) 효과로 부상 재생 속도가 최대폭으로 상승 하였 습니다.]부상이 회복되던 찰나에 보였던 상 황은 참으로 처참했다.
복부는 터져서 쥐어짜진 장기들을 흘러내리고 있었고,사지는 근육과 지 방들을 흘려 내는 동시에 핏물까지도 다 빠져나가서 썩어 비틀어진 나뭇가
지 꼴이었다.
터진 피부 사이로는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눈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쓸어 내리며 미간을꿈틀거렸다.
고통은 증발했다.
그러나 세상 전부를 뒤흔들어 놓았 던 내 비명 소리가,여전히 머릿속에 서 웅웅거리는 게 놈에게 굴복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고통에 장사가 없는 건 맞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산도(産道)를 넘었던 나다.
날 무너트리려면 더 이상을 보여 주
어야 할 것이다,놈!
어디까지나 그 이상이 존재한다면!
한 호흡에 조금씩 흑흑.
머릿속이 잠잠해지는 걸 느끼며 시 선을 위로 가져갔다.
엿 같은 둠 엔테과스토의 신형이 다 시 시야에 차 들어왔다.
나를 압살하려 했던 주먹은 펴져 있 었다.
그러나 인섹툼을 쥐고 있는 반대편 주먹에는 아직도 힘이 가해지고 있었 다.
시선을 더 올리자, 놈이 어둠의 장막 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놈이 나를 내려 보던 때에는 검은 투구 안으로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분노가 꿈틀거리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놈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 지만 남은 분노는 인섹틈을 쥐고 있는 주먹에 집중되어 있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진액이 흘러나 온다.
인섹툼이 쥐어짜져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는 날 분명히 주시하면서였 다.
가공할 핏빛 오라가 놈의 주먹에서 피어올랐다.
직감이 뇌리를 때려 왔다.
……설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핏덩이가 놈 의 손아귀에서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었다.
그러고는 콰직 !
[ 둠 인섹툼이 사망 하였습니다. ]핏덩이는 바로 내 앞에서 터져 버렸 다.
정말로 죽인 거냐?
[ 둠 루네아가 둠 카소의 지위를 계승 하 였습니다.] [ 당신의 전지전능한 주인,둠 카오스는 둠 루네아에게 전령의 역할을 추가로 부 여 했습니다. ] [ 둠 루네아가 당신에게 인사를 보냄니 다.] [잘 부탁드려요〜 (。〉„〈。)/]둠 엔테과스토는 인섹툼을 짓이겼을 때 보였던 분노의 눈길 그대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놈의 시선이 뒤통수로 부딪쳐 오는 시간이 참 길게도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를 노려보는 것만으로는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둠 인섹툼을 죽이고 내게 처절한 고 통을 선사했다 한들,역경자가 발동된 이후부터는 과거가 된 일이니까.
개회사는 끝났다.
그럼에도 놈이 또다시 겁박하려 든 다면 그때는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 었다.
놈의 권역 안에서 역경자가 발동하 지 않았던 것은 어쩔 수 없던 일.
그러나 역경자가 발동된 지금,놈과 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를 확 인해 볼 수도 있는 기회라 판단됐다.
이제 불사(不死)의 영역에는놈이 아 니라 내가 속해 있지 않은가.
나중을 위해서라도 기회가 만들어진 다면 놈의 전력을 시험해 봐야 한다. 그때 또 메시지가 난입했다.
[ 미리 말씀드리는데 오해하시면 안 돼 요. 저 루-네아는 그저 둠 카오스께서 하 시는 말씀을 전하는 것뿐이니까요. 아셨 죠? 아시겠냐구요. ]그러나 정작 아래 계단이나 위 계단 에는 카소와 마운만 있었다.
인섹툼이 어떤 처벌을 당했는지 고 스란히 목격한 둘은 본인에게도 화가 미칠까,숨을 죽이고 있는 채였다.
[ 아셨다면 어서 무릎도 꿇으세요. 어쨌 거나 잘못은 인섹툼이 저질렀어도 이득은 전부 님이 봤잖아요. 둠 엔테과스토 님의 너그러운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우리 주 인께서도 마음을 돌리시기 전에~ 빨리 어 서옷!]이 새끼가 진짜…….
둠 엔테과스토의 지원에 힘입어 계 속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는 그것.
루네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보아하니 둠 카오스도 이쯤에 서 상황을 정리하려는 것 같았다. 무 릎부터 꿇었다.
아이템의 소유권이 인정된다면야 까 짓것 백번이라도 꿇지 못할 이유가 없 다.
둠 엔테과스토와의 간극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멀어지고 있으나 내가 먼저 놈을 도발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 자리임을 상기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뒤 둠 엔테과스토가 계단을 밟 고 올라가기 시작하면서,놈의 격앙된 심장 소리도 더 세차게 울리기 시작했 다.
둠 엔테과스토가 내려오면서 일으켰 던 진동과 위압감은 올라갈 때에는 배
가되어 있었다.
놈을 감싸고 있던 검은 갑옷과 고룡 (古龍)의 뼈들이 부착된 장식들이 어 둠의 장막 너머로 사라졌던 무렵.
쉐에엑 一
루네아가 회의장 안으로 빨려 들어 오듯이 나타났다.
[ 오오. 자비로우신 둠 엔테과스토 님 ! 저 루-네아 까지도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 르겠어요. -ir-rr 둠 맨은 오늘 이 순간을 잊 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본인 입으로는 인도관 루마르 등을
‘일족에서 도망친 옛것’이라고 지칭하 며 자신들은 그것들처럼 경박하지 않 다고 했었다.
하지만 겁을 먹고 했던 거짓말에 불 과한 것이었다.
‘둠 카오스의 전령’이라는 견장을 차 자마자 본색을 드러 낸다.
연희도 첫인상만으로는 이것들을 구 분하지 못했다.
다 똑같이 생긴 것답게,사람 속을 긁어 대는 경박함까지도 동일한 족속 들인 것이다.
[ 자자. 그럼 한 계단 씩 을라갈게요〜!(乂必 ft) 必)乂 둠 카소 님. 제자리 좀,부 탁 드릴게요.]
메시지뿐만 아니라 고것의 얼굴에서 도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
마운은 사슬 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카소가 아직도 공포에 떠는 동공을 보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카소의 크기에 비하면 루네아는 그 냥 일점(一點)의 빛을 띠는 반딧불이 보다도 못했다.
카소의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그 광
경을 보면서,나는 카소가 역정을 내 며 그것을 내리쳐 버리길 기대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운이 있었던 자리로 올라서고 나 자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뼈 반지 를 가지고 왔더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 았을 터.
둠 엔테과스토를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를 확인하고 있던 시선을 빠르게 거둬들였다. 그렇게 고 개를 숙이고 조용히 기다리고만 있었 다.
한편으론 내부의 껍질 안에서 크게 확장된 영역들이 도드라지게 느껴지
고 있긴 하나,거기에 궁극(窮極)의 감각을 집중하기에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날 주시하고 있는 시선들.
특히 아직도 분개에 차 있는 둠 엔테 과스토의 시선은 장막을 뚫고 내게 미 쳐 있었다.
본회의가 시작되려는 조짐이 나타난 때는 잠시 후였다.
[ 일단 전장들을 보시고 시작할게요. 아 시죠? 우리들의 주인께선 전지전능하시다 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주인님께 영원히 변치 않는 저 루一네아의 충성을 맹세하는바입니다욧〜 유:。있 ]
시작의 장만으로 충분했음에도,이 것의 메시지를 또 봐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다.
약조를 어겼던 당시에 제거해 놨어 야 했는데,이런 젠장 맞을 일이…….
장막 너머에서 둠 카오스의 의념이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메시지가 사라 지면서 였다.
사진처럼 정지된 이미지도,둠 카오 스의 의사가 집약된 결정체도 아니 었 다.
그것들은 영상으로 펼쳐졌다.
수십 군데의 전황이 한꺼번에 짝아 악一!
#1 一 그린우드 대륙 중부,서쪽 (소 용돌이 대지)
성기사 라세랑은 두 눈을 부릅떴다. 뱀파이어 군단과 격전을 벌인 지 삼 일째가 되는 늦은 밤.
피가 뭉쳐져서 만들어진 덩어리가 스스로 움직이며 전장을 빠르게 가로 지르고 있었다.
대지에는 양 진영이 흘려 댄 피가 한 없이 뿌려지고 피 웅덩이가 곳곳에 파 여 있었지만,움직이고 있는 그것과는 뚜렷이 구분되었다.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옛 뱀파이어 군단이 준동했 다는 게 알려졌을 때. 그러니까 뱀파 이어들이 확산되고 있는 구(舊) 칼도 란의 도시로 병사를 일으킬 준비가 끝 났던 당시.
신전에서 성 카시안의 기록물 중,뱀 파이어 군단에 대한 것들을 보내온 적 이 있었다.
거기에는 스스로 음직이는 핏물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핏물!
그것은 진조(貢祖),뱀파이어 로드의 출현을 의미한다.
성기사 라세랑은 죽을 각오를 다지 며 핏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허옇고 멀건 얼굴을 가진 뱀 파이어들이 엉겨 붙는 것을 제외하고 라도,그것을 따라잡기 엔 핏물이 움직 이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핏물은 대규모 지원 병력이 합류한 본 진영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결코 쫓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라세랑은 뱀파이어 하 나의 목을 날려 버린 연후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본진으로 합류해야 한다.’
그런데 당장 눈에 들어온 광경들은 후퇴를 명령했다간 몇이나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때 라세랑은 한 여성 뱀파이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비록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으나,사 교 파티에서나 볼 수 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뱀파이어 였다.
뱀파이어 로드의 핏물을 쫓기는커 녕.
라세랑은 그녀가 히죽 웃으며 날아 든 것조차 막을 수 없었다.
“내 미모에 넋이 나가면 곤란해,자 기야.”
그것은 의식이 끊기기 전에 라세랑 이 들었던 마지막 음성이었다.
#2 – 그린우드 대륙 중부,동쪽 (바 리엔 제국령)
아폴론,윌리엄 스펜서는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 진척 상황이 데보라 벨 루치 쪽의 전선에 비하면 상당히 뒤처 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구(舊)론시우스파 마탑들을 파괴하며 얻은 전리품 자체만으로도 상당한데,제국 수도에 가장 근접한 연합 세력 또한 데보라 벨루치가 지휘 하고 있는 군단이었다.
깃발을 먼저 꽂는 자가 주인이다.
그 땅을 어느 체제로 다스리든 협회 에서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데보라 벨루치가 제국에서 첫 진입 한 공략 지 역들을 장악하자마자 그 땅 의 성인 남성들을 모조리 병력으로 차 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윌리엄은 솔직히 뒤늦은 후회로 자 책까지 일었었다.
데보라의 서 열은 6위.
그리고 자신의 서열은 7위. 그 간극 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데보라가 차츰 그 거리를 벌리고 있는 정황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이계산(産) 고등급 아이템들에 더불 어 제국 수도까지 점거해 버린다면?
“확인했습니다.”
헤라,데보라 벨루치 쪽의 군단이 어 떤 계약으로 합의를 봤는지에 대해서 였다.
“헤라가 연합 그룹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길을 뚫어 주 고 그 땅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나눠
줄 테니……
거 기까지만 들어도 충분했다.
“수도 드라고린인들의 소유권을 주 장했군?”
“맞습니다.”
데보라 벨루치가 속한 군단은 수도 점거가 목적이 아니었다.
수도를 폐허로 만들고,거기의 아이 템들과 금을 강탈하며, 노예병들을 거 둬들이는 데 있다.
그걸 통칭해 부르는 단어가 있다. 약탈.
“늦으면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룹장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소집해라. 지금 당장.”
“옛!”
#3 – 그린우드 대륙 중부,동쪽 (바 리엔 제국령)
다다닥. 다다닥.
목표를 향해서 몇 발씩 끊어 쏘는 소 리가 요란했다.
용병 지미는 화약 냄새에 잠겨 있었 다.
그가 속한 그룹이 다른 그룹들과 합 류한 때는 엊그제였다.
그룹의 지휘부들 간에 눈앞의 요새
를 점령하기 위해선 각개격파(各個擊 破)가 아닌 합동 작전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있는 이백여 개의 그룹이 한뜻으로 뭉칠 수밖에 없 게도,바리엔 제국은 포클리엔 공국과 는 화력부터가 달랐다.
바리엔 제국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집약된 마탑들을 방어선으로 사용하 고,하늘을 나는 짐승들을 전술 헬기 처 럼 운용할 줄 아는 나라였다.
때문에 이번 전투에 한해서였지만 이백여 개의 그룹이 한 개 군단으로 지휘 체계를 합의.
그래서 한 군단으로 통일된 용병들 의 수만 3천이 넘어갔다.
지미도 그중의 한 명으로서 최전선 에서 넘어오는 탈영병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한차례 포화를 퍼부은 이후,전방이 잠잠해졌던 때였다.
지미는 차라리 밤인 게 다행이라 생 각했다.
비록 조명탄을 비롯해 전향한 적군 의 마법사들이 가진 능력으로 일대가 밝아져 있다고는 해도.
처참할 광경이 낮에 비하면 상당수 가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뿌려진 피 때문일까. 지독하 게 습했다.
지미를 비롯해 용병들은 잠잠해진 틈을 타서 참호 바닥에 나무 조각들을 뿌려 댔다.
갑자기 군단이 결정된 것이라서,참 호에서 생활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 던 것이다.
지미는 휴식을 취할 자리를 대충 깔 고 앉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최전선에서 도 망쳐 나오는 적군의 탈주병들이 아니 었다.
지미와 용병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늘
을 확인하게 만드는 진짜 문제는 마법 의 구체들에 있었다.
그것들은 각성자들이 공략 중인 최 전선,제국 요새들에서 날아온다.
그러고는 터질 때마다 굉장한 화력 으로 폭발한다.
인류 진영에서도 곧 박격포를 들여 올 거라는 말이 돌고 있지만,당장 눈 앞에서 설치되고 있지 않은 이상 위안 삼을 일은 아니 었다.
지미는 감겨 오는 눈을 비비적거리 며 옆 용병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 않 아?”
“데클란이 목격됐다는 거 못 들었 어?”
“아니,이게 어딜 봐서 소규모 작전 이냐는 거지.”
용병은 픽 웃었다.
“헤라 팀이 대박을 터트렸다니. 각성 자들,혈안이 되었겠지.”
“데보라 벨루치.”
“그래. 그 여자.”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지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용병이 문득 인 뒤쪽의 소란을 가리켜 보이면 서였다.
지미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작은 규모의 한 팀이 합류하고 있었 다.
동양인들이었다.
지미는 각성자 같이 눈알을 붉게 물 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간을 찡그리며 시야를 집 중한 이후,작은 팀 하나의 등장에 왜 소란이 일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 다.
합류하고 있는 자들은 일본인도 중 국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오딘의 나라 에서 온 자들이었다.
그중 리더는 2억 달러나 되는 거액을 옛 인연의 유가족에게 쾌척한 자였다.
“칼리 버다.”
지미는 의식해서 소리를 죽였다.
“하다못해 칼리버도 나타나는군. 드 디어 우리 쪽 전선도 정리되겠어.”
칼리버는 등장과 함께 한국어로 뭐 라 외치고 있었다.
번역 어플상 한국어 번역은 드라고 린어보다 오히려 신통치가 않아서,칼 리버를 상대하고 있는 자 역시 쩔쩔매 고 있었다.
한편 지미는 인터넷상에서 만들어진 칼리버의 이미지를 믿지 않았다.
칼리버의 아들이 희화화시키고 칼리 버 본인 또한 옛 의리를 지키는 따뜻
한 마음씨를 보였지만,칼리버는 어디 까지나 서열 6위의 각성자다.
각성자들의 세계는 아무나 그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니다.
그때도 칼리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Ah jik gga ji han gook mal mo r — myun uh jji ja gooo— yu gi dae jang, noo goo yu. leader, leader, leader mal lee yu.”
지미는 행여나 눈이 마주칠까,참호 속으로 자세를 낮추며 중얼거렸다.
“박격포가 오긴 왔네.”
당연히 그 말도 최대한 죽여서였다. 쾅!
정말로 칼리버는 박격포에서 쏘아진 포탄처럼 최전선을 향해 치솟아 올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