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70
25 화
조나단은 인적이 없어진 거리와 하 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는 날이었다. 상공에 전투기가 날아다녔고,다리 와 터 널은 모두 폐쇄됐었다.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막혀,북쪽으 로 27마일이나 떨어진 태판지 다리에 힘들게 도착했어도 군인들은 누구도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이 도시를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걱 정했던 날이었다.
전쟁이 난다면 정말 그러할 것 같았 다.
‘그날 아침처럼 그냥 휩쓸려 버리겠 지.’
그리고 지금.
저 멀리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공간 은 행하니 비어 있다.
저길 보고 있노라면,똑같은 물음이 계속 터져 나온다.
‘썬은 알고 있었던 걸까? 말도 안 되 는 일이지만…… 말이 돼.’
1년 반쯤 전에 은행업 진출을 두고 했던,선후의 말은 현 상황과 너무나 맞아떨어졌다.
선후는 말했었다.
누구도 우리에게 신경을 쓸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조나단은 쓸쓸한 거리를 둘러보다가 핸드폰을 열었다.
연락처에서 기업 사냥꾼,제프리 케 이의 번호를 찾았다.
테러 사건이 터진 지 나흘 뒤.
미 입국 심사관이 내 여권과 얼굴을 수없이 대조하고 있었다.
심사관의 질문 공세가 이어지고 있 을 때,한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공항 경찰들이 뛰어 다녔다.
우연희에게는 공항의 흉흉할 분위기 를 진작 일러 두었다.
그럼에도 끌려가는 아랍인을 바라보 는 우연희의 시선은 살짝 주눅 들어
있었다.
내 차례가 끝나고 우연희 차례였다.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입국을 거부 당했다.
영어를 못하는 자들은 일단 걸러지 는 것이다.
그래도 우연희의 회화 실력은 입국 심사관의 압박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 로 늘어나 있었다.
우연희는 차라리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낫겠다고 할 정도였다.
공항을 빠져나온 뒤에야 우연희가 말했다
“사람들이 잘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
돼. 그날의 몬스터……말이야.”
주변을 의식한 몹시 작은 목소리였 다.
요원들은 이제 선팅이 짙은 승합차 안이라 할지라도 무장을 갖출 수 없 다.
우리는 곧장 화이트 워터의 훈련소 로 향했다.
거 기 만큼은 호황이 었다.
미 국무부 문장이 찍힌 차량들이 보 였다.
조직을 결성할 때 괜히 여기를 고른 게 아니다.
테러 사태 이후 민간 보안 산업이 폭
발적으로 성장하는데,미 국무부와 시 설 및 요원 경호 계약을 제일 먼저 체 결했던 곳이 바로 여기다.
한편 국무부 관리들 외에도 자칭 애 국자인 녀석들.
그러니까 기회주의자 녀석들이 훈련 소에 입소하고 있었다.
중죄를 저지른 전과자들이 상당하겠 지만 군 경험이 있다면,훈련소의 경 영자는 앞으로 있을 용병 수요를 예측 해서 모두를 받아 주는 것 같았다.
현재 훈련소의 경영자는 조직의 임 원 중 한 명이다. 존 클락의 후임병이 었던 자.
그가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에단.”
얼굴에서 기름기가 넘쳐흘렀다. 퇴 역 군인에서 사업가가 다 된 모습이 다.
“국무부 관리는?”
“우리 직원들과 함께 시찰 중입니다. 계약 때문에 오셨습니까? 그 건은 제 가 알아서 잘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 시고……
건방진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의 선글라스부터 벗겼다.
이런 녀석에게는 정중한 태도를 보 일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훈련소를
경영해 왔기에 사업적 측면에서 중요 한 이 시기어L 당장 교체할 수는 없지 만.
누가 진짜 주인인지 똑똑히 새겨 둘 필요가 있었다.
[ 속박의 메달을 사용 하였습니다. ]녀석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
녀석의 눈알이 홱 돌아갔다.
승합차 안 요원들은 그의 시선을 받 아 주지 않았다. 받아 준 사람은 우연
희가 유일했다.
그녀는 녀석이 스킬에 걸린 걸 알아 차렸다.
그 이유만으로도 우연희는 칼을 빼 들었다. 우연희가 찰나에 녀석의 목에 칼을 대고 내게 눈빛으로만 물어 왔 다.
무슨 일이야?,하고.
꿀꺽.
녀석의 울대뼈가 크게 움직였다.
“이름이 뭔가?”
“……대거입니다.”
“코드명 말고.”
“니콜라스리입니다.”
“그래. 니콜라스. 조직의 사업에 애 착을 갖는 건 좋은 자세다. 어디까지 나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죄……송합니다.”
아이템 효과를 거두자,녀석의 중심 이 앞으로 쏠렸다.
녀석이 허리를 숙인 채로 거친 호흡 을 몰아쉬었다. 그 뒤통수에 대고 뇌 까렸다.
“국무부와의 계약 때문에 온 게 아니 다. 우리가 맡겼던 고양이를 찾으러 왔지.”
녀석이 나간 후 우연희가 물었다.
“여기는?”
“민간보안업체 훈련소.”
“그렇게 말하면 몰라.”
“용병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제공해 주 는 곳이지. 세계 어디든.”
“이런 세계도 있구나. 그런데 여기도 네 사업체였던 거야? 그 날을 위해 서?”
테러 사태가 우연희에게 강한 인상 을 줬던 모양이다.
시작의 날을 언급하는 일이 많아졌 다.
레온이 도착할 때였다.
녀석은 전술 조끼를 입은 채 껄렁하
게 걸어왔다.
한 번은 훈련소에서 도망치려다가 붙잡힌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랬던 녀석이 이제 바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도 될 만큼 용병 냄새를 물씬 풍 겼다.
왜 이제야 자신을 찾았냐는,원망 가 득한 눈빛이었다.
근 1년 반.
녀석은 훈련소에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로 강도 높은 군사 훈련을 받아 왔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우리 조직이 테 러 사건에 개입돼 있습니까?”
녀석이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첫마디가 그거냐? 지금부터 누구도 테러 사건을 입에 올리지 말도록.” 나는 요원들뿐만 아니라 우연희에게 도 이를 주의시켰다.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위협과 대적하 고 있다. 출발.”
차가움직이기 시작했다.
“잠, 잠깐!”
«..(국,,
“어디로 가는 겁니까? 무턱대고 설 명도 없이.”
“던전.”
녀석이 뭐라 항변하려다가 우연희를
흘깃 쳐다봤다.
라스베가스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 게 틀림없었다.
우연희를 바라보는 녀석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됐다. 우연희가 빙그레 웃어 주자,녀석의 표정은 한층 더 굳어 버 렸다.
우연희가 말했다.
“부디 준비됐길 바라고 있어.”
“무슨 준비?”
“던전이라는 말을 듣고 판타지 영화 를 떠올렸을지도 몰라.”
그런 것 같았다.
“장담하는데 이건 공포 영화야. 그리 고 앞으로는 내게도 존경을 갖춰야 할 거야. 우리가 속한 세계는 그런 곳이 거든. 그렇지. 리더?”
우연희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접선 지역으로 조직의 승합차가 한 대 더 도착했다. 조수석에서 내린 요 원은 먹이었다.
벌판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사람이라 곤 우리뿐이었다.
먹은 내게 인사를 한 후 트렁크를 열
어 보였다.
소형 금고가 실려 있다. 마음먹으면 누구든 부술 수 있었겠지만 조직에는 그렇게 간이 부은 요원이 존재하지 않 는다.
소형 금고는 북미에서 떠나기 전에 세팅해 둔 그대로였다.
물론 그 안에 넣어 뒀던 아이템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우연희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던 무 기를 되찾았다.
D 등급짜리 죄인의 단검.
“이거 공격력 200방짜리였어. 어쩐 지 좋더라니.”
우연희는 그 외에도 현재 착용 중인 아이템보다 나은 것을 고르기 시작했 다.
“배낭은 뒷좌석에 실어 뒀습니다.”
믹이 그렇게 말하며 레온을 쳐다보 았다.
상품의 질을 검수하는 듯한 눈빛이 었다.
한편 레온도 믹을 알아보지 못할 리 가 없었다.
레온을 훈련소까지 이송시킨 게 믹 이었다. 훈련소까지 가는 길에 어느 정도의 훈육이 있었다고 들었다.
말이 훈육이지 레온은 믹과 요원들
에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을 것 이다.
“당신!”
레온이 믹을 향해 곧장 걸어왔다. 믹 은 찰나에 나를 쳐다보았다.
허락을 요구하는 시선이라,나는 고 개를 끄덕 여 주었다.
퍼억!
믹의 주먹이 레온의 콧잔등에 제대 로 꽂혔다.
레온은 무방비 였다.
“아직 교육이 덜 되었군. 너는 1급 레벨이고 나는 네 상관이다. 카지노 칩.”
믹이 쓰러져 버린 레온을 향해 일갈 했다.
레온은 코피를 닦으며 일어섰다.
“그러니까 설명을 해 주면 좀 좋습니 까? 그리고 내 이름은 카지노칩이 아 닙니다.”
“아니. 너는 카지노칩이야. 다시 말 해 봐. 네 이름이 뭐라고?”
어느새 요원들이 레온을 둘러싸고 있었다.
레온이 먹에게 달려들지 못하고,억 지로 인상을 펴야 했던 까닭은 바로 그때문이었다.
“……카지노칩.”
“정확히 하자면 그게 네 코드명인 것 이지. 사회에서의 기억은 잊어라. 네 출신도 이름도 직업도. 너는 그냥 카 지노칩이다.”
믹은 레온이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 지 않자, 뒷좌석에서 배낭 하나를 꺼 내 와 녀석 앞에 던졌다.
우연희와 나도 배낭을 하나씩 짊어 졌다. 던전 입구를 지킬 요원들 역시 야영 물품이 든 배낭을 챙기기 시작했 다.
이동 중에 우연희가 물었다.
“E 등급?”
“아니. 녀석을 시험해 봐야 돼.”
“견뎌 낼 수 있을까?”
“오줌이나 지리지 않으면 다행이겠 지.”
“나,그랬던가?”
나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데려가 보면 알겠지. 두고 쓸수 있는 녀석인지 아닌지.”
“다른 각성자의 퀘스트를 확인해 볼 방법은 없어? 저 사람에게 나쁜 퀘스 트가 뜬다면,우리 곁에 둘 수 없잖 아.”
“그런 낌새를 보이는 순간,저 녀석 은 죽는 거다.”
우연희는 녀석과 함께하기 싫다는
바를 돌려 말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위 던전으로 갈수록 팀원 확충은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부터라 도 더 영입해 최소한의 육성을 진행시 켜 두는 게 맞다.
녀석은 우리와 속도를 맞춰서 요원 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긴장했던 그 얼굴이 던전 입구를 직 접 목격하면서 경악으로 변했다.
오로지 녀석만이 그랬다.
요원들은 늘상 해왔던 대로 작은 진 영을 치고 통제와 주둔 그리고 수색팀 으로 나눠졌고,우연희는 입구 아래를
내 려다보고 있었다.
“들어가서는 무조건 내 지시대로 움 직여야 한다. 지시에 따르지 않는 건 네 스스로 목숨을 갉아먹는 짓이란 걸 명심해라. 지금은 와 닿지 않아도, 들 어가 보면 바로 깨닫게 될 거다.”
“저긴 뭐고,우리는 무엇과 싸우는 겁니까?
“던전 그리고 몬스터.”
당신들 미친 거 아니요?
순간 녀석은 그런 눈빛으로 나와 우 연희를 쳐다보았다.
녀석에게는 차라리 우리가 테러리스 트라는 설명이 더 받아들이기 쉬웠을
지도 모른다.
아직은 각성자로서 자각이 없는 녀 석이다.
녀석이란 던전 박스가,행운일지 저 주일지는 이제 곧 드러날 거다.
정신이 극에 치달았을 때 본연의 성 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니까. 대부분은 악 성향이 크지만.
우리는 던전에 진입했다.
[ 퀘스트 ‘데클란 퇴치’가 발생 하였습니 다.]퀘스트 목록이 뜨기 시작한 순간.
우연희가 이채 띤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견졸이야.”
우연희가 부쩍 즐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5권끝)
녀석의 상황은 처음 우연희보다 낫 다.
우연희는 녀석과 같이 체계적인 군 사 훈련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녀석은 자의든 타의든,훈 련소 생활을 1년 반이나 해 왔다. 육체,무기,전술 훈련뿐만이 아니 라 용병들의 집단생활 자체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무장될 수 있었다. 녀석은 처음의 우연희보다 더 잘해 내야 한다.
최소한.
“하나…… 있습니다.”
녀석이 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추 적자 특성은 이래서 좋다.
감각을 우리 수준까지 올리지 않더 라도 문 너머의 위협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그게 독이 되는 경 우도 더러 존재하지만.
“몬스터 입니까?”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봐라.”
“예?”
“진입해.”
상냥하게 문까지 열어 줬다.
끼이익 一
낡은 문소리가 녀석에게는 끔찍하 게 들렸는지 몸을 떨었다.
우연희와 나는 통로 끝의 어둠까지 꿰뚫어 볼 수 있지만,녀석의 가시 거리는 7미터 내외가 한계였다. 때 문에 녀석은 어둠을 응시하며 군용 단검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만 있었 다.
견졸 한 마리가 달려오기 시작했 다. 그것의 1박질 소리가 코앞까지 이르렸을 때,녀석이 본능적으로 뒷
걸음질 쳤다.
녀석에게는 견졸이 어둠 속에서 갑 자기 솟구친 것처럼 보였을 거다. 녀석은 바로 내 뒤로 도망쳐 왔다. 우연희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나 섰다.
그녀는 순간에 견졸의 가슴에 단검 을 쑤셔 넣고 돌아왔다.
“속박 터졌어.”
우연희가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는 말 이었다. 우리는 동시에 녀석을 쳐다 보았다.
녀석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녀석의 시선은 견졸의 날카로운 이 빨을 시작점으로,아래를 훌고 내려 갔다.
우연희가 남긴 상처에서 핏물이 쉴 새 없이 홀러나오는 걸 응시하던 그 때.
녀석의 호흡 소리가 더욱 거칠어졌 다.
후욱. 후욱.
“가서 끝내.”
“저게…… 저게……
“그래. 저게 몬스터지. 어린아이라 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끝내.”
“어,어떻게 말입니까.”
“뭘 어떻게? 훈련소에서는 뭘 배웠 어? 일일이 다 설명해 줘야 하나? 쥐고 있는 걸 찔러 넣어. 눈알을 후 벼 파든지,죽을 때까지 목을 쑤시 든지.”
“소,소,소리…… 소리를 내고 있 지 않습니까.”
“맞아. 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지.”
굳어 버리는 녀석을 놔두고,우연 희를 뒤쪽으로 눈짓해 불렀다.
녀석은 우리가 가시거리 밖으로 사 라져 버린 걸 인지하지 못할 만큼 충격에 빠져 있었다.
“우리 수준을 초창기보다 약간 윗
선 정도로 제한할 거다. 스킬도 쓰 지 말고. 할 수 있겠어?”
“대전 퀘스트는?”
“그건 어쩔 수 없지.”
“해 볼게.”
“위험해질 것 같은 순간에만 전면 으로 나서. 이번은 공략이 목표가 아니라,녀석의 됨됨이를 살피는 게 목표니까.”
“이미 망한 거 같지 않아? 나는 처음에 저러지 않았어.”
“인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딱 그 짝이네. 저게 당연 한 거다. 저 녀석의 감정을 빤히 읽
고 있잖아. 얼마나 겁에 질려 있는 지 알 텐데.”
“헤햇.”
“뭘 웃어. 긴장 풀지 마. 눈먼 돌 에 맞아 죽을 수 있어. 개구리.”
“생각해 봤는데,나 혼자 여기를 돌 수 있을까?”
“아직은 어림없다. 보스전의 공략 법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소릴 할 수 있는 거겠지. 이참에 제대로 봐 둬. 완전히 분노한 보스 견졸이 어 디까지 강해지는지. 나중에 다 도움 이 될 테니까.”
“분노 중첩 되기 전에 지배해 버리
면 돼. 분명 통할 거야.”
“그게 공략법이라고. 인마.”
“햇.”
“또 웃는다. 초심을 날려 먹어 버 렸군. 다음 던전에 가서 지금처럼 굴다가는.”
“오늘만이야. 오늘을 끝으로 다신 누릴 수 없는 거잖아.”
우연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 다.
“말은.”
그때.
“영어로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녀석이 소리를 쫓아왔다.
그때도 견졸은 다른 상처가 나 있 지 않았다.
나는 대답 대신 견졸을 가리켜 보 였다. 녀석의 고개가 저어졌다.
“못하겠습니다. 못하겠어요. 두 분 이 저보다 강하지 않습니까.”
“멍청한 거냐,겁이 많은 거냐.”
“예?”
“허수아비 하나 처리 못 하는데, 우리가 널 끝까지 끌고 갈 것 같 아?”
“쉬운 일이야. 널 공격 못 해. 가 서 여기에 찔러 넣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우연희가 녀석의 가슴을 쿡 찔렀 다. 녀석은 정말 칼에 찔린 것처럼 온 인상을 찌푸렸다.
우연희는 정신계다.
특성 등급이 높아져서, 랜덤으로 발발했던 감응 효과는 등급 이하의 녀석들에게 매우 높은 확률로 발동 된다.
녀석이 느끼고 있을 두려움을 공유 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우연희는 녀석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 다.
때문에 지금의 우연희는 나보다 더
냉정하다고 할 수 있었다.
“빨리 끝내(Kill quickly).”
우연희가 말했다.
이번에는 녀석의 바람대로 영어로 말이다.
녀석이 성공하긴 했다.
한번 쑤셔 넣었던 칼질이 패닉처럼 수차례 이어졌다.
녀석은 뒤집어쓰지 않아도 될 핏물 에 온 얼굴이 얼룩졌다.
헛구역질도 몇 번 있었다.
우리는 녀석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가 다시 옴직였다.
통로 끝,첫 번째 방에 열두 마리 가 들어 있었다. 녀석은 그걸 보고 할 차례였다.
그러나 녀석에게는 아무런 말이 나 오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감지되는 숫자에 이미 사로잡혀 버린 듯하다.
“정신 차려. 리더의 지시에 집중 해.”
우연희가 말하자,녀석의 고개가 느릿하게 우리 쪽으로 돌려졌다.
“열…… 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탱커,너는 딜러,마리는 힐 러다.”
“예?”
“내가 주의를 끌고 있는 사이에 공 격을 제대로 먹이란 말이다. 마리가 치료해 줄 테니까 부상은 신경 쓰지 마.”
“너만 역할에 충실한다면, 우리가 죽는 일은 없다. 이걸 명심해. 우리 는 다 같이 살고 다 같이 죽는다는 것. 자. 이제 이 문을 열면 몬스터 들이 쏟아져 나올 거다. 내 뒤에서 준비해.”
녀석이 우물쭈물했다.
“왜?”
“마, 마리가 저보다 더 강하지 않 습니까? 제가 힐러를 맡는 편이 우 리 그룹에 맞지 않습니까?”
이거 봐. 이런다니까!
우연희의 그런 눈빛과 마주쳤다.
“다치면 붕대로 감아 주려고? 그리 고 나라고 안 싸우는 게 아니야. 역 할군이 나눠져 있지만 상황이 꼭 그 렇게 되지 않아. 알게 될 거야.”
우연희가 말했다.
“제가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너는 아직 스킬이 없어서 알 수
없겠지. 마리의 스킬은 힐링에 최적 화되어 있다. 사지가 잘려 나가고 눈알이 파 먹히지 않는 이상,우리 는 부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마리에게 고마워해.”
녀석이 놀란 눈으로 우연희를 쳐다 보았다.
“이해됐겠지? 마리가 우리의 부상 을 살피는 게 더 효과적이야.”
“꼭…… 이걸 해야만 합니까? 왜 요. 우리가 왜……
“우리 그룹에 들어오고 싶다고 자 청한 게 누구였지? 빠지고 싶다면 빠져.”
“그래도 됩니까?”
녀석은 생로(牛路)를 찾은 얼굴이 되었다. 순간에 두 눈이 살아서 꿈 틀거렸다.
부끄러움이나 우리에게서 느낄 어 떤 위협보다도,이 상황에서 빠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그래도 됩니까는 뭐야. 아직 제대 로 싸워 보지도 않았잖아.”
우연희가 받아쳤다.
“허락해 주신다면 전 빠지겠습니 다. 제가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 고,그룹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다 른 쪽으로 찾아보겠다는 겁니다.”
“그 말 후회할 텐데.”
“전 정말 이런 일을 하게 될지 몰 랐습니다. 설명을 안 해 주셨지 않 습니까. 지난 1년 반 동안 누구도. 비밀은 엄수할 겁니다. 그러니……
“그 정도에서 그쳐. 너 후회할 거 야.”
그제야 녀석도 뭔가 느낀 게 있었 던 모양이다. 녀석이 나와 우연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가 말했다.
“탈퇴하고 싶다면 이번에 한해 허 락하지. 결정하기 전에 들어. 던전에 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필요한 조건
들이 있다.”
“조건이요?”
“퀘스트 완료 혹은 탈주의 인장. 진입했을 때 떴던 메시지를 허투루 봤군. 퀘스트 완료가 뭔지는 감 잡 았을 테니 그건 집어치우고.”
셔츠를 벗었다.
보유 한계인 8개의 인장이 가슴에 원형으로 꽉 채워져 있다.
“이건 문신이 아니야. 인장이라고 하는 거지. 그리고 이게 탈주의 인 장이다. 이게 있어야만 던전에서 도 망,그래. 탈주할 수 있는 거다. 시 험해 보고 싶으면 하고 와.”
녀석은 입구 방 쪽을 응시했다. 하 지만 또다시 보이는 것이라곤 어둠 뿐인지라,녀석이 용기를 내기까지 는 시간이 필요했다.
녀석이 이를 악물며 자신만의 어둠 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악! 하는 비명 소리가 출 구에서 터져 나왔다.
“도와주세요! 어디에 계십니까?”
녀석이 입구 방에서 헤매고 있었 다. 우리는 녀석의 가시거리 안으로 진입했다.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간절하게 말 했다.
“탈주의 인장은 어떻게 얻을 수 있
죠?”
“보통은 박스에서 얻지.”
“다른 방법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타 각성자의 인장이 새겨진 피부 를 떼어 내 삼키면 된다.”
우연희도 덩달아 놀란 눈을 해 보 였다.
진짜야?
우연희의 그런 눈빛에,나는 입술 만 움직여 보였다.
아니.
“그래서 결정은?”
“전…… 이 방에 남겠습니다.”
내가 결정을 번복해 버릴까 봐 걱 정하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공략을 마칠 때까지 속 편 히 기다리겠다는 거로군? 네가 빠지 면 큰 차질이 있어. 만일 우리가 죽 어 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 지?”
우연희가 내 말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야. 이 방에는 문이 세 개야. 우리가 알람 몬스터를 건 드리면 나머지 문이 열리고,너는 혼자서 몬스터와 싸워야 할 텐데. 그래도 괜찮다는 거야? 맘대로 해.”
“알람 몬스터는 또 뭐고. 이래서야
제게는 선택권이 하나도 없지 않습 니까. 저를 끌고 가고 싶으시다면 제대로 설명해 주세요. 제발,부탁드 립니다. 제발요.”
그래도 울지는 않고 있었다. 절망 에 찌들어 있을 뿐이지.
“궁금한 점은?”
우연희가 설명을 마쳤다.
“왜 이런 위협과 싸워야 하는 겁니 까. 강해져야 하는 이유 말입니다.” 우연희가 차분하게 설명하는 과정
은,중학생 꼬맹이들을 두고 IMF에 대해 설명했던 때와 비슷했다.
“그 날에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몬스터가 공격해 올 테니까. 우리는 그 날을 시작의 날이라고 불러. 그 리고 여기는 최하위 저급 던전이야. 여기조차도 공략하지 못한다면 우리 는 그 날에 무방비인 거나 마찬가지 인 거지. 이해돼?”
“다른 사전 각성자들은……
“그래서 넌 운이 좋은 편인 거야. 우리 그룹이 가장 앞서 있거든.”
“그만. 이제 결정해. 여기에 남을 테냐,같이 갈 테냐?”
“같이하겠습니다.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라도 제대로 해 보겠습니다.”
그랬던 녀석이…….
“으아아악!”
견졸들의 시체 더미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우연희가 한심하다는 듯이 뇌까렸 다.
“더 봐야겠어?”
“말했지. 저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내가 보고 싶은 건
“알겠어.”
우연희가 집게손가락 끝을 내 가슴 에 살짝 댔다.
“언제 시험해 볼 거야?”
“보스전 끝날 무렵. 그때까지 두고 보자고. 지금 판단하지 말고.”
“재는 안 될 거야.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