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92
5 화
작년 뉴욕 공항은 탄저균 때문에 난 리였던 반면에,올해 인천 공항의 난 리는 사스 때문이었다.
오늘 입국한 승객들 중에 사스 추정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공항 전체 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검역 질문서 작성하고 체온 검사까 지 통과한 후에야 입국 절차가 끝났
다.
그 즉시 오사카로 날아가는 비행기 티켓 두 장을 현장에서 예매했다.
조슈아하고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저택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미하 엘 등과 운집해 있었고,기억의 궁전 에 들어있는 F급 던전의 위치와 동일 했다.
일본 쪽의 칠선,팔선 자매 그룹도 오사카 인근의 F급 던전에서 멈춘 채 미동조차 없었다.
탐색 지도 창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들은 둘 중에 하나였다.
던전에 들어가 있든지,수면이나 입
원 같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든지.
어쨌든 유인 지역을 현재 칠선,팔선 자매가 공략 중인 F급 던전 안으로 정 했다.
바로 두 시간 후가 출발 시간이었다.
“이럴 수 없어. 이래선 안 되는 거 야.”
줄곧 조용했지만,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우연희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분 통을 터트렸다.
눈물을 그렁거리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애꿎은 바닥만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가 던전에 홀린 피만 해 도 수백 리터는 될 거야. 특히 선후
느 ”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싸움 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채 쑥덕 였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래 왔는데. 그런데 위협이 되는 존재라니. 마음대 로 규정하는 건 그렇다 쳐. 하지만 나 한테까지 이런 나쁜 퀘스트를 띄우면 안 되는 거야. 선후는 시스템에게 인 격을 부여하지 말라 했지만,이건 악 (惡)일 수밖에 없어. 우리를 이간질하 고 있어.”
“어쩌면 시스템이 두 개일 수도 있다
는 생각이 든다.”
“두 개?”
“지금은 심증뿐이야. 두고 보자고. 지금은 이 장난질부터 끝장내 줘야겠 지. 괜히 감정 쏟지 마. 그럴 필요도 없어. 괜찮아.”
“못 막아 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선후는 강하잖아. 하지만 이번 상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내가 걱정인 건……
아니,내가 걱정인 것이야말로 바로 그거 였다.
이런 장난질에 휘말릴 줄 알았다면 우연희에게도 일정 공적치를 배분해
뒀을 것이다.
비록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우연희 또한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살인(殺人). 사람을 죽이다.
지금의 우연희가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언젠간 너를 노리는 퀘스트도 뜰 수 있으니 잘들어.”
우연희는 그런 순간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끔찍하다는 얼굴이 었다.
“이 세계는 의외로 단순하지. 내 목 숨을 노리는 시점에서 사람과 몬스터 의 구별은 없는 거다. 알량한 선의를 베풀다가는 뒷목이 물어뜯기지. 틀렸
군. 사람이 더하다. 적어도 몬스터는 웃는 가면을 쓰면서 접근하지는 않으 니까.”
“그 마음가짐이 진짜였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 있든 상처받지 마.” 그녀만큼은 애송이들과 나와의 격차 를잘 알고 있었다.
나를 노릴 각성자들의 죽음을 이미 기정사실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그들을 죽이며 상처받 을 거라 생각하는데,큰 오산이다. 상처는 정작 우연희가 받고 말 거다.
“보고 싶지 않으면 여기 남아도 돼.” 하지만 우연희는 말이 끝나기도 전
에 이미 고개를 젓고 있었다.
봉우리가 터질락 말락 하는,벚꽃 나 무들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무들 사이 너머로 남자들이 보였 다. 우리가 요원들로 하여금 던전 입 구를 지키게 했듯이 스즈키 자매 또한 그랬다.
다만 남자들의 행색은 용병들과 차 이가 있었다.
평상복 차림에 권총을 허리춤에 끼 워 넣은 그들은 누가 보아도 일본의
폭력단이었다.
야쿠자라고 하는 것들이 다.
스즈키 자매가 들어간 던전은,북미 의 부동산 법인이 일본 현지에 세운 역외 법인으로 하여금 매입해 둔 부지 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들은 엄연히 사유지를 침입한 것이다.
우연희와 내가 걸어 나오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두 녀석이 급히 뛰어왔다.
“너희들 큰일 났데이. 올라오믄 안 되는 기다.”
강한 오사카 사투리였다. 위협적으
로 눈알을 부라리며 우리를 막아섰다.
그리고 우리를 산 아래로 되돌려 보 낼 생각이 없는지,둘의 손길이 허리 춤의 총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연희와는 말을 섞을 필요가 없었 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것을 시작으 로,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우연희 선에서 쉽게 정리된 다.
뒤에서 퍽 소리가 짧게 두 번 났다.
전방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녀석들은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그들이 습격이 발생했고 총을 꺼내 들어야 한다고 인지했을 때는,땅에
쓰러져 정신을 잃어 가던 때였다.
모두 아흡 녀석이었다.
쏜살같이 달려온 우연희의 양 어깨 에도 두 녀석이 하나씩 둘러메져 있었 다.
“어떻게 할거야?”
그녀가 물었다.
차단막을 뜯어내고 거기에 가려져 있던 던전 입구를 가리켰다.
우연희는 쓰레기 버리듯 두 녀석을 던전 입구 안으로 던졌다.
나머지 아흡 녀석도 던전 안으로 넣 어 버린 다음, 우리 또한 던전에 진입 했다.
F 급던전.
그라프 일족의 영역이었다.
우연희가 제일 끔찍이 여기는 몬스 터 일족이 바로 그것들이라,그녀의 눈살이 바로 찌푸려졌다.
우연희는 그런 눈으로 비탈 아래를 가리켰다. 비탈 통로는 점점 좁아져 마치 문처 럼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 점이 있는데,그 너머로 정확히 12명 의 각성자들의 매복하고 있었다.
의아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알고 본인들을 특정해 다가오고 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걸
음을 옮겼다.
그러다 우연희가 한 지점을 가리키 고는 손을 쥐락펴락 했다.
함정이 있다는 수신호였다.
그녀가 눈으로만 물었다.
알고 있지?
나도 대답했다.
저급한 함정 스킬로 c등급의 개안을 속여 넘길 순 없는 것이다.
스킬을 사용할 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엔화 동전 하나 를 꺼내 힘을 실어 던졌다.
마법 함정이 설치된 지면에 꽂히자 마자.
콰앙!!
함정이 발동하며 폭음이 터져 나왔 다. 천장에도 하나 더.
빙결 계열의 것이 분명한 기운이 쏟 아져 내려왔으나,발동 지역에 존재하 는 사람이 없자 금방 증발해 버 린다.
전방 너머로 얼굴 하나가 나왔다. 그 러나 가시거리가 차마 못 미치는 어둠 을 뒤지고 있는 얼굴이었다.
쉐아악-
속도를 높인 그대로 녀석의 목을 움 켜 쥐었다.
“컥!”
녀석을 쥔 채 통로가 확장된 구역으 로 첫발을 내 딛 었다.
하나같이 엉망인 몰골이었다. 깨끗 한 구석이라곤 씻어 낸 지 얼마 안 된 얼굴들뿐으로,벽 뒤에 숨어 있던 녀 석들이 많았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개중에 날아온 석궁 화살 하나는 목 잡힌 녀석을 방패로 쓸 것도 없이,허 공에서 낚아챘다.
그것은 쏜 녀석의 허벅다리로 되돌 려 주었다.
날깃만 중간에 꺾일 뿐 화살촉은 녀 석의 허벅다리를 관통해,너머의 지면 깊숙이 사라졌다.
“악!”
비명 소리가 한 박자 늦었다.
소리 큰 마법 함정에 비명 소리까지 더해졌으나 근방에서 그라프의 움직 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초반 부분은 그럭저럭 클리어해 둔 모양. 제법 던전 경험이 있던 녀석들 이었고 녀석들의 몸에 핏물이 완전히 굳지 않은 걸로 보건대 바로 직전까지
도 그라프 일족과 싸우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곧 날아든 화살 하나도 주인에게 돌 려준 후,들고 있던 녀석은 지면에 내 동댕이쳤다.
녀석이 강타한 지면을 중심으로 홁 더미가 치솟아 올랐다.
흙먼지 또한 뿌옇게 일어났으나 피 아가 구분되지 않는 건 오로지 녀석들 뿐이다.
멀대 같이 키가 큰 녀석의 가슴에 주 먹을 찔러 넣자 녀석의 허리가 앞으로 포개졌던 것도 잠깐,튕겨져 날아갔 다.
수염이 덥수룩한 녀석은 턱이 까여 천장과 충돌한 후에 낙하했다.
추풍낙엽 (秋 M 落葉)이었다.
그건 내 스타일이었고 우연희는 하 나씩 질끈 밟으며,빠르게 다음 대상 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여자와 눈이 부딪쳤다. 그것이 신 호가 되어 내게 몸을 던져 왔다.
양손에 단검 하나씩을 쥔,그녀는 제 법 빨랐다. 핏물로 엉킨 검은 흑발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지만 눈빛만큼은 낯익었다.
민첩에 근력을 적당히 갖춰서 허공 을 날다시피 공격해오는 여자.
틀림없었다. 칠선(七善)!
독니 두 개를 내 가슴에 찔러 넣으려 는 듯 비스듬히 떨어진다.
훽-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우연희가 솟 구쳐 나왔다.
우연희는 칠선의 머리를 뒤로 잡아 당기는 것만으로 바닥에 매다 꽂았다.
쾅!
칠선의 손에 들려 있던 단검 두 개는 주인이 우연희로 바뀌어,하나는 칠선 의 목을 겨누고 다른 하나는 뒤에서 달려드는 녀석의 어깨에 적중되었다.
단검에 적중했지만 철거 망치에 강
타당한 듯 튕겨 날아가 버린다.
눈 깜짝 할 사이였다. 서 있는 녀석 은 셋밖에 남지 않았다.
한 녀석의 화염구가 나를 향해 날아 온 것도,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불똥 으로 산화할 때 나는 녀석의 뒤에 있 었다.
겁에 질린 얼굴이 천천히 돌려졌다.
그대로 밀어 차 버리자 녀석은 잘도 매복해 있던 벽까지 날아가 흙더미에 파묻혔다.
쉑-
전방에서 날아온 우연희의 단검이 한 녀석을 더 날려 보냈다.
남은건 딱한녀석이었다.
후방 바위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 는여자.
그 여자가 칠선의 쌍둥이 동생인 팔 선(A仙)이다 본 시대에서는 제일의 힐러라고 정평이 나 있었으나,아직은 애송이.
“우짤래! 죽일 거믄 콱 죽이라카이! 그어라. 그어뿌라!”
등 뒤로 칠선이 발악하는 소리가 쩌 렁 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반응한 건 나와 우연희가 아니다. 팔선이 발발 떠는 정도만 더 커졌다.
팔선이 숨어 있는 바위를 밀어 차 버 리자 팔선도 함께 앞으로 처박혔다. 그래도 나름 E급 각성자라는 걸 증 명하는 것처럼,팔선은 어떻게든 땅을 짚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나선후 씨…… 되시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영락 없이 보스 몬스터를 처다보는 눈빛이 었다.
“넌 스즈키 치하루고.”
“치하루! 치하루! 치하루에 손 하나 댔다간 다 죽여 버 린다카이이익 !” 그나마 말이 통하는 건 저 성질 사나 운 암코양이보다,얌전한 팔선 쪽으로
보였다.
“조용히 시켜 줘.”
우연희가 한 손으로 칠선의 입을 틀 어 막았다.
칠선은 그걸 뿌리칠 능력이 안 됐다. 하지만 어찌나 거칠게 발악하는지 읍! 읍! 하는 소리만 커 졌다.
“리리카. 가만히 있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 계속 피가 나잖아.”
우연희는 부탁하는 어투였다. 일본 어는 아니고,한국어지만.
칠선과 팔선은 우리가 본인들의 이 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나 위협 으로 느껴졌던 것 같았다.
칠선의 저항은 계속됐다.
“언니를 내버려 두세요!”
팔선이 내게서 불길한 낌새를 읽었 는지 크게 외쳤다.
그러나 늦었다.
빠각!
이미 칠선의 얼굴을 걷어찬 뒤였다. 근력을 적당히 조절해서 즉사하지는 않았으나 한쪽 얼굴이 완전히 함몰되 었다.
우연희는 거기서 시선을 돌리며 고 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칠선 옆 바위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제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팔선뿐 이었다.
우연희가 깔고 앉아 있던 칠선에게 서 일어나자,그 자리에 팔선이 뛰어 들었다.
팔선이 울음 범벅된 눈으로 나를 노 려보았다.
“왜……
“내가너희들을습격 것 같지?천만 에. 퀘스트를 포기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스즈키 치하루. 그런 눈으로 쳐다보기엔 일러. 아무도 죽지 않았 다. 아직은.”
“그,그거 때문이라면 우리는 던전을
공략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어요.”
“그건 이제 알게 되겠지.”
나는 우연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 였다.
후우-
우연희는 긴 숨을 내쉬었다.
“뭐,뭘 하려는 거예요? 하지 마 세……!”
순간 팔선의 몸이 랏뻣■하게 굳었다. 그러던 것도 잠시 제 언니를 감싸고 있던 팔이 냉정하게 떨어져 나왔다.
팔선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괴로 운 둣,살짝 길었던 고민의 시간이 있 었다.
“이 일본인 자매,계획하고 있었어. 던전 공략 후에 널……
던전 공략은 개뿔. 여기 녀석들의 실 력으로 보건대 그라프 일족은 절대 무 리다.
그런데도 던전 공략 후를 계획 하고 있었더라…….
주력 아이템을 지금 얻은 건가?
그것 말고는 이것들의 성장세를 설 명할 방법이 없다.
한 발로 칠선을 돌렸다. 그러고 뒤진 칠선의 몸 안에서 아이템 하나를 발견 했다.
[ 헤르메스의 만능 발찌 (아이템) ]신의 이름이 박힌 장신구는 방어막 이 다 소진되어 있었다.
“역시 이것 때문이었군.”
[ 헤르메스의 만능 발찌 (아이템)효과: 민첩의 등급을 한 등급 상승시켜 줍니다.
물리 피해 흡수력 : 0/6500 마법 피해 흡수력 : 4000/4000 등급: A
지속 시간: 1시간 재사용 시간: 1일 ]
이런 물건이 본 시대의 내게 있었다 면 내 운명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 다. 그렇게 발버둥 쳐도 S급까지 올린 능력 치는 감각 하나였으니 까.
발찌를 발목에 두르고 있을 때,팔선 도 귀걸이를 떼어 내고 있었다.
그것 또한 신의 이름이 붙어 있다.
[관음(觀音)의 표상 (아이템)효과: 회복 계열의 스킬과 특성을 한 등 급 상승시켜 줍니다. 회복 계열 스킬들의 재사용 시간을 30% 줄여 줍니다.
물리 피해 흡수력 : 〇/7〇〇〇
마법 피해 흡수력 : 3000/3000
등급: 시
이건 지속 시간이나 재사용 시간 없 이 영구적으로 적용된다.
한 개가 아닌,모든 치유 스킬과 특 성에 적용되기 때문에 힐러들에게는 초(超) 최상급 아이템일 수밖에 없는 것.
두 자매는 마스터 박스를 띄운 적이 있었다.
던전 포인트를 모아서는 절대 불가 능한 일이니 A급 생활 퀘스트를 수행 했다는 것인데…….
튜토리얼이라 정의된 영유아기를 스 킴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게 그런 퀘 스트가 예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 었다.
이는 명백한 시스템의 편애지 않은 가.
“이 아이템들을 얻은 경위를 추적할 수 있어?”
“거기까지는 아직.”
“알았다. 그건 네가 차고 있어.”
팔선,스즈키 치하루.
정신 지배에서 풀려난 그녀는 망연 자실 했다.
정신 지배 상태에서도 시각이나 청
각 등 모든 게 공유되는 이상,본인들 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소중한 아이템을 우리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치하루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 시 제 언니 리리카에게 달려갔다.
소매로 리리카의 얼굴에서 흘러내리 는 피를 닦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흐느끼는 다른 소리가 옆에서 도나왔다.
우연희였다.
그녀는 눈물을 홀릴 뿐만 아니라,정 말로 마음 아픈 얼굴로 변해 두 자매
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연희에게 다가 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정신 차려. 감응일 뿐이야.”
“아는데,뜻대로 안 돼. 가슴이 너무 쓰려……
우연희의 표정은 영락없이 치하루의 표정과 닮아 있었다.
우연희는 차마 못 보겠는지 내 가슴 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 자매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었던 모양이 다. 보통의 자매라면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났을 터인데,지금껏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두 자매였다.
“돌려줘.”
치하루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내뱉은 소리였다.
빠각!
자매를 포함한 모든 애송이들의 다 리를 분질 러 놓고 있었다.
그 비명 소리를 듣고 깨어난 몇몇 야 쿠자들은,포승줄에 묶여서 욕만 내뱉 다가 어느 순간부턴 애걸하고 있었다.
“야쿠자들. 지금부터 한 마디라도 내 뱉는 녀석은 즉결 처형이다.”
그러자 조용해졌다.
다행히 우연희는 꽤 진정된 상태였 다. 정신 지배의 부작용이 최고조로 이르렀을 때는,마찬가지로 리리카의 다리를 박살 냈을 때였다. 그때는 우 연희조차 나를 말리고 나섰다.
물론 그때의 우연희는 우연희 본인 보다 치하루에 가까웠을 때 였다.
정신 잃은 것들은 그나마 조용한 반 면,나머지 녀석들에게선 신음 소리가 끊임 없이 홀러나왔다.
시선을 돌렸다.
스즈키 자매의 그룹원들은 인종이 다양했다.
자매를 포함해 동양인은 단 넷뿐인 데,그중에 우리나라 이름을 가진 녀 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퀘스트상 기번째,이름은 김효섭. 퀘 스트 등급은 물론 F등급이며 녀석의 특이 사항이라고는 국적이 우리나라 인 것밖에 없었다.
녀석은 거기에 호소했다.
“한! 한국인입니다. 저도 한국인입니 다!”
한국어 발음이 정확했다.
한쪽 다리는 이미 화살이 뚫고 지나
가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나머지 다리를 짓밟자 녀석의 허리가 튕겨졌 다.
근육이 터지며 나온 핏물은 고사하 고,녀석의 다리뼈는 모래 알갱이처럼 바스라졌다.
그렇게 녀석의 비명 소리가 보태지 자 다음 차례의 녀석 둘이 동시에 도 망치려는 것이었다. 이미 엉망이 된 몸이나 사력을 다해서.
그때.
쉑-
우연희의 손에서 벗어난 단검이 그 것들의 허벅지를 꿰뚫고 지나갔다.
“다음부터는 심장을 노리겠어.”
우연희가 영어로 뇌까렸다.
말투는 냉정하고 온 얼굴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우연희의 저 힘 들어간 얼굴 이야말로,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상태 라는 것의 반증이었다.
우리나라 녀석이 호소하듯 말했다.
“으…… 으윽. 전 쪽바리 녀석들에게 잡혀 온 게 전부입니 다.”
“자세히 말해 봐.”
“그러니까 반년 전에…… 으윽. 야마 구치구미 연합에게 납치됐습니다. 그 때 저 여자를 처음 봤습니다.”
녀석의 눈길이 리리카에게 향했다. 나는 야쿠자에게서 떼어 낸 배지를 녀 석 앞으로 튕겼다.
“예. 맞습니다. 야마구치구미 회장 직계인,극진회입니다.”
“넌 재일 교포인가?”
“인천 사람입니다. 으…… 저 여자 동생이 힐을 씁니다…… 아파요. 아파 뒈질 것 같습니다. 제발요. 제발 부탁 드립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스즈키 리리카가 폭력단 두목이다?”
“여기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아니,저 쪽바리 새끼들이 제일 잘 알
겁니다.”
“생살부를 작성 중이지. 한 점의 거 짓말도 없어야 할 거다. 여기까지 오 게 된 이야기,자세히 풀어 봐.”
녀석은 평범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이 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반년 전쯤,우리나라 조직 폭 력배에게 납치되었고 눈을 떠 보니 일 본의 폭력단들에게 인계되어 있었다 는 것이다.
던전 경험은 지금이 두 번째.
“간사이에 있던 던전에서는……크 윽. 던전에서는 15명이었습니다. 공략 은 성공했지만,그 중 8명이 죽고 한
달 전에 지금의 인원이 충원되었습니 다.”
용케도 일본의 던전을 공략할 때 이 것들과 겹치지 않았었다.
“암살 퀘스트는 왜 포기하지 않았 지?”
“저 여자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렇군. 이름.”
“예?”
“네놈 이름말이다.”
“신준섭 입 니다. 으아아악!”
녀석의 반대쪽 다리마저 짓밟았다.
“김,김! 김효섭입니다!”
늦었다.
몸을 일으키는 등 뒤로 살려 달라 애 걸하는 소리가 부딪쳤다.
그러나 내 시선과 마주쳤을 때,녀석 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녀석에게 이동했다.
대부분 거짓말을 쏟아 냈다.
그래도 칠선(匕善),스즈키 리리카에 대한 이야기 만큼은 동일했다.
우연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 길로 리리카를 쳐다보았다.
외모로는 일반 여대생과 다를 바 없 는 그녀가,일본의 최대 폭력단 중 한 곳의 두목이라니.
그런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내 납득이 갔는지 우연희 의 만면에 쓸쓸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 갔다.
나는 리리카를 깨웠다. 계집은 핏물 부터 옆으로 토해 내며,그나마 뜰 수 있는 한쪽 눈으로만 눈알을 부라렸다.
“모두가 너를 야쿠자 보스라고 하는 군.”
“내가 두목하면 안 된다카드나? 네 놈은 더한 것도 해 왔을낀데? 개자 식.”
순간 리 리카가 몸을 움찔했다.
치하루가 피 웅덩이 속에서 미동도 없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리리카의 시선은 천천히 옮겨져,바 위에 앉아 리리카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연희 쪽으로 향했다.
“치하루우우우! 니들 천벌을 받고 말 끼다!”
리리카는 본인이 알몸인 것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악당은 우리였고,그녀들 은 선량한 피해자였다.
한편 리리카나 스즈키의 몸에는 문 신 하나 없었다. 폭력단 일가에서 태 어난 것보다는,주체적으로 폭력단을 장악했다는 쪽이 훨씬 가능성 높았다.
그런데 그건 평범한 마음가짐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트리거,즉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방아쇠가 존재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퀘스트라고 의심한다.
“이봐,6대 회장.”
비로소 리리카의 시선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만 날뛰어. 소리만 지른다고 해결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 목숨만 줄 어들 뿐이지. 더불어 네 동생의 목숨 까지.”
“치 하루……
“그러게 그딴 퀘스트 따윈 진즉 포기 했으면 이 지경까지 안 왔잖아.”
“니가……
“그래. 내가 모두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명시되었지. 하지만 그건 너 희들 쪽이잖아. 폭력단 여 회장이라 니. 쯧. 너희 자매가 폭력단과 연관되 어 있지 않았다면 이번 일,그럭저럭 마무리 지었을 거다. 하지만 알다시피 피차 끝장을 봐야만 할 것 같군.”
스윽.
반지가 관제의 언월도로 자라나 한 손에 잡혔다.
서슬 퍼런 커다란 날은 금방이라도 떨어져,그녀의 목을 잘라 낼 위치에 있었다.
정확히 리리카의 목에서 멈췄다. 리 리카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뜨며 말했다. “야마구치구미는 퀘스트였다카이. 내는 죽여도 치하루만은 살려 주. 치 하루는 아무 잘못 없데이.”
역시 맞았다. 시스템의 편애는 상당 했다.
“야마구치구미가 성가시믄 그것도 니꺼 해 무그라. 그럼 됐제? 내 발찌 도 치하루 귀걸이도 다 해 쳐 무겄는 데,우리 목숨까지 가져갈 생각이가?” 리 리카는 절박했다.
“너희 자매 목숨 소중한 거 알면,남
목숨도 소중한 거 알았어야지. 고통은 없게 끝내 주마.”
“안돼…….!”
살려 두기엔 화근을 남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 퀘스트 ‘암살(2)’를 완료 하였습니다. ] [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실버 박스’를 획 득 하였습니 다. ]차라리 아무런 메시지를 띄우지 않 았다면.
그랬다면 감정이 동요되는 일은 없 었을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한 사람의 목숨 값으로 고작 실 버 박스를 논하고 있다.
언월도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우연희는 언월도가 계집의 목숨을 거뒀던 시점에서 고개를 돌려 버린 것 같았다.
야쿠자들의 충성심은 그리 깊지 않 았던 모양이다.
총 회장의 숨통이 끊기는 소리를 들 었어도,누구 하나 원성을 부르짖는 이가 없다.
난리가 난 건 정신을 잃지 않은 각성 자들 쪽이었다.
다리를 분질러 놓는 것으로 모자라 마침내 살육이 시작됐다고 느꼈던 것 이다.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려 달라 는 비명 소리가 났다.
내 언월도의 종착점은 두 번째 계집 이었다.
그때 우연희가 다가왔다.
“선후야.”
“아무 말 마. 시스템이 퀘스트를 띄 웠을 때 이 꼴 날 수밖에 없었던 거 다.”
“아니. 그게 아니야. 상처받지 않기 로 했잖아.”
젠장,우연희에게만큼은 숨길 수 없 었다.
우연희의 그 말이 방아쇠 였다.
꾹 늘러 왔던 뭔가가 터져 버리고야 말았다.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언월도로 땅을 찍으며 무게를 지탱 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빌어먹을.
평화의 시대에 찌들어 버렸나? 나를 죽이 려는 자들에게 마음을 쓰다니.
자매간의 애절함 따위는 더 지독한 원한으로 변해 나를 겨냥할 수 있었 다. 폭력단까지 쓰면서 우리 가족과 친지들을 흔들어 놓았겠지.
하지만 왜냐.
왜 자꾸 서로를 바라보던 두 자매의 시선이 생각나는 거냐.
언월도를 지팡이 삼아 몸을 기댔다.
정신을 가다듬자 생각이 정리됐다.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밀려오는 슬픔 의 정체는 죄책감이 아니었다. 한 점
의 후회도 없었다.
그래,시스템이 두 개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 때문이 었다.
우연희에게 시스템에 인격을 부여하 지 말라고 누누이 말해 왔건만 나야말 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선한 시스템과 악한 시스템이 따로 존재하며,우리가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든 악(惡)은 악한 시스템에서 비롯된다는…….
엿 같은 생각.
정당방위를 살인으로 만들고,가해 자를 피해자로 돌려 버린다.
그게 날 약하게 만든다.
벌써 잊었나?
팔악팔선은 그렇게 태어난 거였다. 시스템에 인격을 부여해서. 아집에 사 로잡혀서!
선후야. 선후야. 야! 나선후!
시스템에 인격을 부여하지 마라.
그 순간부터 넌 망가지기 시작하는 거다.
시스템이 두 개든 하나든,그게 뭔 대수냐.
아직은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 그 저 하나의 가정일 뿐!
네가 해야 할 것만 생각해라.
지금은 죽일 놈은 죽이고 살릴 놈은
살리는 거다.
스르르.
언월도를 반지로 되돌렸다.
어쨌든 일악에 더불어 칠선과 팔선 또한 역사 속에서 지워졌다.
시스템이 자초한 일이었으며,팔악 팔선 중 세 녀석의 몫까지 내가 짊어 져야 하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
지금대로라면 언젠가는 나 혼자서
도.
“칠마제를……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과 다 른 각성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그룹의 실질적인 화력이자 리더 였던 두 자매가 허망히 죽어 버린 이 후,각성자 열 명은 그나마도 없던 전 의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
실수라도 나를 쳐다보는 이가 없었
바닥에 쓰러진 채로 제 고통스런 상 처가 가라앉길 기다릴 뿐이었다.
부상자들의 수발 및 궂은일을 담당 할 녀석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녀석?
녀석은 국적 때문에라도 우리 곁에 둘 수 없다.
그래서 선택된 녀석은 멀대,호주 출 신 녀석이었다.
우연희의 스킬 육체 치료는 잠재력 최하급의 치유 스킬이지만 템발이 보 태져 B급까지 도달한 상태 였다.
여러 번의 스킬 적용 후,멀대는 절
뚝이며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까지 회 복됐다.
녀석이 그 몸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는 눈치대로 행동했다.
양손을 앞으로 포개며 허리를 깊숙 이 숙인 채로 멈췄다. 일본인 리더의 그룹 속에 있으면서 배운 게 있다는 것이다.
이름은 루카스,나이는 31세.
사회에서는 배관공이었으며 진입하 면서 봤던 함정 두 개는 녀석의 작품 이다.
“특성은 추적자를 띄웠습니다.”
녀석이 답했다.
“네가 모집 책이었나?”
“아닙니다. 사토 히로시라는 일본인 인데,잘 볼수 없습니다.”
사토 히로시도 퀘스트 상에 존재한 다.
지금 녀석은 지구 반대편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조만간 알아서 들어올 것이다.
사토 히로시 외에도 나를 쫓아오는 걸로 확신되는 움직임이,지난 반나절 동안 열여섯 개에서 스무 개까지 늘어 났다.
돈 있는 자들은 한가한 일등석을 타 고 급히 오고 있으며,부족한 자들은
이코노미석 일정표에 맞춰 각 나라의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기존 그룹에 애착이 크겠지?”
“아닙니다.”
“그걸 탓할 생각은 없다. 생사고락을 함께해 왔으니 당연하겠지.”
녀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스즈키 리리카의 그룹은 이 제 존재하지 않지. 그리고 너희 그룹 이 나를 도모하려 했었다는 사실이 밝 혀졌다. 아무 말도 마라. 내가 하명하 기 전까진.”
녀석의 입술이 바로 닫혔다.
“돌아다니면서 한 명도 빠짐없이 전
해. 퀘스트 포기하라고.”
녀석들의 인장과 아이템을 외관으로 만 확인한 채 내버려 뒀던 건 지금을 위해서였다.
녀석들을 한 곳에 눕혀 놓았다.
데비의 칼이 그것들의 몸을 아슬아 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셔즈 형태의 아이템들을 그 즉시 파 괴시키며,다시 하반신들을 훑고 지나 갔다.
녀석들로선 데비의 칼이 사신의 낫 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은 데비의 칼이 행여나 몸에
닿을세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 다.
일자로 굳어 버린 채 눈알만굴린다.
데비의 칼이 사라진 찰나,우연희와 나는 녀석들의 몸을 뒤졌다.
생각이란 걸 조금만 할 수 있었다면, 지금에라도 퀘스트를 포기했을 것이 다.
10명 중 퀘스트를 포기하지 않은 녀 석이 한 녀석 나왔다.
녀석의 전술 바지에서 위치 탐색기 가 잡혔다. 우연희는 원망과 동정이 섞인 복잡한 시선으로 녀석을 쳐다보 았다.
그제서야.
내 주먹 안에 있던 위치 탐색기가 사 라지며,주먹 안이 비어졌다.
“포,포기했습니다.”
녀석이 자백했지만 살생부에 붉은 줄이 그어진 뒤였다.
“넌 내 그룹에 속할 자격이 없다. 클 리어 지역 바깥으로 추방하도록.”
“제…… 제발.”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깨닫지 못 한 모양이군. 지금뿐이다.”
반지에서부터 언월도가 자라난 후에 야,녀석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루카스가 부상자들을 돌면서 적어 온 프로필 파일을 바쳤다. 상태 창에 서 보이는 것은 기본 사항이고,녀석 들이 살아온 이력들을 빠짐없이 적게 했다.
거짓이 담겨 있을 경우에는 바깥에 서 또 걸러지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다섯 시간 후.
내가 몸을 일으키자 작게나마 존재 했던 신음 소리마저 및었다.
우연희는 말없이 뒤를 따라왔다.
그녀도 녀석들이 그룹에서 이탈하는
걸 개의치 않았다.
도망쳐 봤자 거대한 절지동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 외에,다른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 이탈할 수 있 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은 녀석은 루 카스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는 던전 입구를 기준으로 애송 이 녀석의 가시거리가 미치지 않는 곳 에서 멈췄다.
첫 번째로 진입할 예정자는 중국 이 름을 가진 녀석이었다.
왕첸. 퀘스트 넘 버 91.
지도 창 위로 녀석을 가리키는 점이 이쪽과 포개졌다.
오사카 던전에 들어온 지 10시간 째 였다.
녀석의 지도 창에서 내 위치는 10시 간째 변동이 없었을 터,녀석은 던전 경험이 없든지 혹은 탈주의 인장을 가 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의 망설임 끝에 던전 에 진입하고야 만 것이겠지.
녀석이 던전 입구에 걸쳐 있던 푸른 막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우두커니 서 버린다.
확실했다.
던전이 초행인 녀석이다.
“왜 퀘스트를 포기하지 않았지?”
녀석의 깜짝 놀라며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집중했다. 비로소 녀석의 가시 거리 안까지 들어가 줬을 뿐더러,녀 석에겐 너무 갑자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녀석이 황급히 바깥으로 도망치려 하는데 그게 될 리가 없었다.
도리어 따끔한 충격만 받고 뒤로 자 빠졌다. 우연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 었다.
녀석이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중국 어였고 몹시 다급했다.
“영어는 못하는 모양이군.”
그 말과 함께 녀석의 상의를 찢었다.
인장이 하나 있으나 F급의 근력 상 승 인장에 불과했다. 그 순간 인장이 구리빛 기운을 일으키며 녀석의 눈빛 도 호전적으로 변했다.
녀석은 그렇게 내 손아귀에서 벗어 날 뿐만 아니라,내게 한 방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껏 녀석이라 칭했지만 배불뚝이 중년인이다. 턱살도 제법 껴서 녀석이 힘을 쓸 때마다 그 쪽이 꿈틀거 렸다.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넌 개미 지옥에 들어온 거다.”
딱 죽지 않을 정도의 근력으로만 녀 석의 얼굴에 한 방 먹였다.
퍼억!
녀석이 쓰러지며 보잘 것 없는 식칼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일등석 왕복 티켓이 여권에 어김없 이 끼워져 있었다.
인민폐 외에도 엔화와 달러가 지갑 에 가득한데,조나단 투자 금융 그룹 의 은행에서 발행한 ‘로알 플래티넘 카드’까지 들어 있었다.
그 말인 즉,녀석의 재력은 돈이 그 냥 많은 수준이 아니 라는 소리 였다.
조나단 그룹에서 주최하는 플래티넘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는 뜻이었으며,곧 녀석의 사회적 신 분을 가르쳐 주고 있는 바였다.
회장님. 대부님 소리를 들었던 녀석 이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움직였다?
어지간히도 성격이 급한 녀석인 모 양.
어쨌든 조나단이 진행했던 중소 은 행 합병 건이 대략 마무리된 건 올해 초였다.
한 번씩은 들어 봤을 것이다.
은행은 군대보다 무서운 무기라는 말.
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투기성 사모펀드들이 가장 먼저 노
리는 것이 은행인 이유가 거기에 있 다.
은행을 지배하는 자가 그 나라의 경 제 주권을 지배한다.
1990년대부터 2이0년도까지의 북미 은행 업 계는 춘추 전국 시 대 였다.
그것들이 일명 빅4로 불리는 대형 은 행들에 합병되는 게 기존의 역사였다.
AP머건,더시티 그룹,BOG,헨리월 리엄
하지만 조나단이 인수 합병 시켜 만 든 대형 은행이 그들의 질서에 끼어들 며 빅5가 되었다. 대격변이 일어났다.
올해 초부터 새로운 대형 은행의 탄
생에 세계 금융계가 들썩이고 있는 이 유는,조나단 투자 금융 그룹의 휘하 에 편입됐기 때문이 었다.
자산 운용 업계만 놓고 보자면 질리 언 투자 금융이 1위로 올라섰지만,세 계 모든 그룹의 총 자산 순위를 포함 한 가장 부유한 조직의 넘버 원은 조 나단 투자 금융 그룹이 차지한 것이 다.
내가 시스템의 장난질을 받아 주고 있는 이 시각.
조나단은 김청수와 함께 모기지론 상품들을 쏟아 내고 있을 것이다.
턱!
가볍게 던지자,녀석의 신용카드는 토굴 벽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스즈키 자매의 그룹원 동양인 넷 중 하나는 대만 사람으로 중국어와 영어, 두 언어가 가능한 자였다. 그가 통역 을 맡았다.
“부동산 개발 그룹, 글로리 그룹의 회장이라고 합니다.”
놀란 표정으로 보건대,통역도 글로 리 그룹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글로리 그룹이라.
생각보다 거물이지만 카르얀 가문 같이 질서에 편입된 세력은 아니다.
“그의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있을 거
라고도 합니다. 지금 놓아 준다면 없 던 일로 하겠답니다.”
통역은 거기까지 전달한 후 내 눈치 를 살폈다.
“말해 봐.”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만들어 주 겠답니다.”
어차피 이정도 사회적 신분을 가진 녀석을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녀석이 신음을 토하며 시끄럽게 외쳤다.
“다,다시…… 앉으랍니다.”
더 계산할 가치가 없는 녀석이다. 나 는 루카스에게 손을 저어 보였다.
루카스가 녀석을 질질 끌고 사라졌 다.
내가 진정 기다리고 있는 자들은 이 런 녀석들이 아니다.
모든 팔악팔선이 사전 각성자는 아 닐 테지만,팔악팔선 16인 중 지금까 지 얼굴을 맞댄 녀석들은 일악,이선, 사선,칠선,팔선.
그렇게 다섯 명에 불과했다.
퀘스트 넘 버 6에 기 대를 걸어 본다.
우연희,스즈키 자매,미하엘,조슈아 에 이은 강자로 책정된 녀석이니까.
“아니어라. 사람을 어찌 죽이겠습니 까. 참말로 아니아라. 믿어 주시오. 나 가 잘못한 것은 호기심에 환장한 것밖 에 없는 것인디……
목포에서부터 날 쫓아온 녀석이었 다. 퀘스트 넘버 90번대.
녀석은 발발 떨었다.
건설 현장을 돌며 하루 빌어먹고 사 는 신세라 주장하는 녀석이,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 었다.
이년도에 친구들과 동남아로 황제 관광 한 번 다녀왔다고 항변하던 걸
끝으로.
녀석 또한 진입자 무리 속으로 처박 아 두었다.
다음이 고대하던 퀘스트 넘버 6 차례 였다.
개미지옥을 파고 기다린 지 이틀이 지나가던 날이었다.
녀석의 출발지는 LA였고,지금은 지 하철을 타고 있는지 교외를 우회해서 오는 속도가 빨랐다. 녀석을 기다렸 다.
지금까지의 진입자 대부분은 던전 입구에서 망설였었다.
던전 초출인 녀석들뿐이었던지라,
환상을 머금은 얼굴로 들어왔다가 갑 자기 펼쳐진 어둠에 놀라기 일쑤였다.
그러나 녀석은 달랐다.
녀석을 가리키는 점이 던전 입구에 서 움직이질 않는다.
던전 입구의 푸른 막에 매료되지 않 는 자들은 없다.
일단은 발을 담가 보는 게 일반적인 행동이다. 그러니 녀석처럼 입구 바깥 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는 것은 딱 한 경우였다.
던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던 녀석이 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용케 살아남았
나는 녀석의 뜻대로 해 주었다.
[ 인장(탈주)가 제거 되었습니다. ]모처럼만에 햇볕을 받으며 나왔을 때.
너무나 익숙한 것이 눈앞에서 일렁 거렸다.
나를 노리고 날아오는 단검 하나. 거기에 품어져 있는 건…….
뇌력 (雷方)!
아직은 조잡한 벼락 줄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