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0
43화 일상 (2)
회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미의 앞에 검은 차량 한 대가 정차한다.
이윽고 익숙한 인물 한 명이 빼꼼 머리를 내밀며 말하길.
“타.”
“…….”
정말 짧고 간결한 말이었다.
게다가 은근히 명령조다.
“언제까지 서 있을 거지? 오늘 출발하는 거 아니었나?”
다시 한 번 차량의 주인이기도 한 석두가 세미에게 탑승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세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알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뒷좌석에 짐을 안착시킨 뒤 운전석 옆자리에 탑승한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요즘은 벌금이라 하더군.”
“…….”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전부 다 지적하는 석두의 모습이 참으로 얄밉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기에 꾹 화를 참고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른다.
안전벨트까지 착용한 것을 확인한 뒤 석두가 능숙하게 운전대를 돌리며 차를 몰아가기 시작한다.
“고아원의 위치가 어디쯤 되지?”
“말로 설명해 주면 기억하시나요?”
“천만에. 난 너와 다르게 그다지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거든. 말로 설명하지 말고 내비게이션에 알아서 찍어줬으면 좋겠군.”
“알았어요.”
살포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비게이션 쪽으로 손을 뻗는다.
도중에 안전벨트가 살짝 걸림돌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세미는 어려움 없이 천천히 고아원의 이름을 입력하기 시작한다.
“한주 고아원이라… 좋은 이름이군.”
“고아원 명칭 유래라도 알고 계시나요?”
“아니, 몰라.”
“모르시면서 어떻게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나요?”
“딱 들어봤을 때 느끼는 감으로 알 수 있지.”
“하아…….”
차마 석두의 성별이 남자이기에 ‘여자의 감’이라는 용어까진 사용하지 못했다.
여하튼 어찌 저찌 목적지가 내비게이션에 새겨지자, 익숙한 여성의 음성이 석두에게 갈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기 시작한다.
-10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의 안내와는 다른 지시사항을 내포한 세미의 말이 이어진다.
“좌회전하지 마시고 그대로 직진하세요.”
“직진?”
“네. 죄회전하면 빙빙 돌아서 가게 되요.”
“그렇군.”
세미의 말대로 좌회전이 아닌 직진을 택하는 석두.
도중에 뭔가 떠오른 듯이 그녀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고아원 가는 길에 백화점이 있나?”
“예, 대형 마트 하나 있어요. 뭐 살 거라도 있나요?”
“네가 내걸었던 조건을 이행해야지. 기억력도 좋은 네가 설마 그 사실을 금세 잊은 건가?”
“…….”
장난식으로 이야기한 거지만, 아무래도 석두는 진심으로 세미의 농담을 받아들인 모양인가 보다.
“알고 있어요. 설마 당신이 선물을 사줄 거란 생각은 안 해서 놀랐을 뿐이에요.”
“이래 봬도 애들은 좋아하거든.”
“애들도 당신을 좋아하나요?”
“좋아하게끔 노력해야지.”
“하아.”
나날이 한숨만 늘어난다.
석두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세간을 뒤흔들고 있는 바로 그 ‘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와 함께 고아원에 가도 괜찮은 걸까?
세미는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석두는 상당히 영악한 사람이다.
물론 아직까지 자신의 부하들에게 딱히 위해를 가하거나 그런 행동을 한 적은 없다.
오히려 루틴이라는 사람과 충돌할 일이 생길 경우는 개인적인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전선을 이탈하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설마 고아원 아이들에게 뭔가 상처가 될 만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세미로서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낯선 사람을 고아원에 데려가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
심지어 그게 남자라니.
‘이건 마치…….’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자신의 부모 격이라 할 수 있는 고아원 원장에게 소개시켜 주는 듯한 그런 모양새가 아닌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세미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손으로 감추기 시작한다.
“뭔가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
그녀의 이상 징후를 놓치지 않고 곧장 질문을 던지는 석두.
그러나 세미는 퉁명스럽게 그의 말을 맞받아칠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상관의 입장에서 꽤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군.”
“그러니까 저한테 그냥 신경 끄셔도 된다니까요.”
“하하…….”
설마 마법에 걸린 날이라도 되는 걸까.
평소에도 퉁명스럽던 세미였지만, 오늘따라 한층 더 신경질적인 면모를 보인다.
‘굳이 화를 살 필요는 없겠지.’
비록 그녀의 상관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부하를 아끼는 착한 상사(?)인지라 더 이상 세미에게 말을 걸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다.
* * *
어두컴컴한 사무실 내부.
바깥은 화창한 햇빛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일부러 실내를 어둡게 한 루틴은 마치 어둠을 만끽하고 싶다는 듯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천장을 응시한다.
“분명… 그 망할 드래곤의 능력이었어.”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다.
드래곤의 보물을 아는 자.
그리고 그 보물을 되찾으려 하는 자.
루틴은 혹시나 레이나 본인이 ‘괴도’라고 스스로 칭하며 도둑맞은 자신의 보물들을 되찾으려는 게 아닐까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레이나는 깊은 숙면기에 빠져들었다.
숙면기에 들어간 드래곤이 어찌 직접 나설 수 있는 것일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괴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인 루틴이었으나.
마주친 건 레이나가 아닌 바로 그녀에게서 드래곤의 심장을 이식받은 괴도, 김석두였다.
루틴은 9클래스에 근접하고 있는 마법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그와 호각으로 맞설 수 있는 상대라고 한다면.
그 또한 드래곤의 능력을 이어받은 9클래스 마법사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 아무리 마법을 수련해 봤자 9클래스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데 9클래스인 자신과 대등하게 실력을 겨뤘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레이나로부터 힘을 받았겠지. 나처럼…….”
루틴이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석두와 마찬가지로 죽을 뻔한 위기에서 레이나에게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드래곤의 심장을 이식받은 대신 그녀의 도난당한 드래곤의 보물을 되찾아야 한다는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레이나로부터 처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듣게 되었다.
물론 그 경고가 전혀 무섭지 않다든가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드래곤의 보물이 도난당했는지 전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서 평생 레이나의 말도 안 되는 추상적인 의뢰만으로 보물들을 되찾아내야 한다는 게 루틴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숨을 구해준 건 좋으나.
새롭게 얻은 인생이 그리 썩 좋은 기회는 아니었다.
게다가.
인간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이능력까지 지니게 되었다.
루틴으로선 이 힘을 단지 드래곤의 보물을 되찾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마음속으로 몰래 혁명을 꿈꾸던 루틴에게 때마침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레이나의 보물을 빼앗은 자.
그와 직접 마주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이 그에게 새로운 운명을 부여해 줬다.
“당신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루틴 혼자만이 있을 줄 알았던 사무실의 한 가운데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아난다.
형체를 포함해 그 무엇도 루틴의 대화 상대가 누군지에 대한 단서조차 되지 못했다.
어둠속에 가려진 존재.
그가 바로 루틴을 뒤에서 조종하는 인물임과 동시에, 모든 사건의 원흉이기도 하다.
“괴도 수색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지?”
음성조차 변조된 목소리가 루틴의 현재 성과에 대해 묻는다.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루틴이 어두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선글라스를 살짝 위로 추켜올리며 대답한다.
“아직 멀었습니다.”
“멀었다?”
“네. 예상외로 상당히 잘 숨는 녀석이더군요. 정체를 알아내는 데에 골머리 좀 썩힐 거 같습니다.”
“…그렇군.”
괴도에 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루틴의 보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큰 분노를 내비치지 않는다.
마치.
괴도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는 듯한 그런 반응이었다.
그저 형식상으로 질문한 것처럼 느껴진다.
“괴도보다도 오히려 드래곤을 견제해야 옳지 않습니까?”
“레이나에 대해 묻는 건가.”
“예. 괴도는 어차피 크게 신경 쓸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드래곤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드래곤이 자네의 목숨을 노리고 있기 때문인가?”
“…….”
정곡을 찔렀다.
루틴은 사실 괴도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드래곤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가 가장 시급했다.
만약 레이나가 자신과 마주치는 순간.
그 여자는 어떻게 해서든 루틴을 죽이려 들 것이다.
비록 드래곤의 심장을 이식받았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결국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레이나와 마주치면 제아무리 루틴이라 하더라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그저 눈앞에 있는 또 다른 괴도… 드래곤의 보물을 훔친 괴도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최대한 자력으로 자신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을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보다 더 세상 바깥으로 박차고 나가 자신의 마음대로 세계를 주무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언제까지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고 다녀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레이나의 본체가 숙면기에 들었을 때 녀석을 치는 것이…….”
“어리석은 판단이로군.”
어둠의 존재가 단호하게 루틴의 말을 끊어버린다.
“제아무리 드래곤의 정신체라 하더라도 그 여자는 분명 너보다 강하다. 그런데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거지?”
“당신과 제가 힘을 합친다면…….”
“물론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쌍방 간의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게야. 난 적어도 내가 피해 보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설령 그게 너를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
“너는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내 말을 거역할 경우엔……”
어둠의 존재의 눈빛에 강한 이채가 어린다.
“레이나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발생하게 되더라도 나는 전혀 상관치 않겠다.”
“그, 그건…….”
“그게 싫다면 그저 얌전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더 이상 토를 다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
그 말을 끝으로 어둠의 존재가 모습을 감춘다.
분명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레이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해준 것도 다 그의 덕이다.
이제 와서 그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면…….
어느 순간, 레이나가 그를 찾아와 말 그대로 그를 통째로 잡아먹을 수도 있다.
복수심이라는 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전매특허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가벼워 보이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레이나일지도 모르지만, 그녀 또한 복수는 철저하게 하는 여자다.
이도저도 못하게 된 루틴으로서는 그저 이를 잘근 깨문 채 죄 없는 책상만을 내려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