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56
58화 테스팅 작업
이번 언루트의 화보 촬영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그들의 음악 세계를 조금이나마 사진으로 보이게 하는 것, 또 하나는 인물들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쉬는 날 에브리아를 불러낸 건 좋은 결과를 뽑아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에브리아 역시 이틀 정도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기만 하니 좀 불안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난 그녀에게 개인 작업에 협조해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고 그녀가 이를 허락해 주었다. 난 소속사에 부탁하여 해외 촬영 때 에브리아가 입을 옷을 준비했다.
“촬영할 때 여기 렌즈를 봐줘.”
내가 패션 화보를 찍거나 보조하면서 느꼈던 건 피사체가 되는 모델이나 연예인의 시선 처리가 정면보다는 다른 곳을 향해 있다는 거였다. 아직 우리나라에 정면을 바라보는 게 익숙지 않은 건지, 아니면 피사체가 두른 옷에 시선이 가게 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좋아, 무슨 생각하는 거야? 표정이 다채로운데?”
내가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시선이 정면을 향해 있지 않으면 모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지금 그 포즈를 취할 때 곁에 다섯 명의 남자가 네 곁에 있을 거야. 좀 더 눈빛을 살려줘. ‘내가 여기에 있다’란 강한 의지를 보여줘. 하하, 그건 너무 무섭다.”
확실히 전문 모델이라 그런지 연예인과 찍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자아를 자랑하듯 드러내는 분위기가 없어 많은 시도를 할 수가 있다. 에브리아도 오랜만의 촬영이라 그런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촬영은 끝났어. 한번 보자.”
특별하게 좋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진이 나온 건 아니었다. 결과물을 보니 문제점이 좀 보였다. 에브리아도 그걸 아는지 드러난 자신의 손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맞아, 피부 톤하고 옷하고 잘 안 어울리네. 나중에 드러나는 피부에 메이크업 좀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이제 개인 컷 연습해 보자. 이게 포즈 시안인데·· 와 이 포즈는 균형 잡기 힘들겠다.”
에브리아는 밝은 웃음을 짓더니 문제없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마치 옆에 사람이 있는 듯 기댄 포즈를 취해줬다. 판토마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차혁이가 거기에 있다고 치면 포즈 좀 바꿔야겠다. 에브리아 지금 컨셉은 왕자의 배우자 같은 느낌이야. 너를 통해서 언루트 애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브리아는 날 위해 포즈를 바꿔가며 의견을 물어왔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난 나름대로 좋아 보이는 컷을 정리할 수 있었다. 모델을 직접 디렉팅하며 내가 원하는 느낌을 만들어나가는 게 만족스러웠다.
“시안은 한 쌍이 아름다운 커플이 서로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고 되어 있어. 음·· 그 표정이면 될 것 같다. 네가 뒤에서 살짝 안으면 어떨까?”
연습 촬영이 끝나고 에브리아가 내 옆에 달라붙어 사진사의 시선으로 볼 때 자기의 문제가 뭐냐고 물었다. 난 그 말을 하는 에브리아를 찬찬히 살펴봤다. 모델로서는 키가 작다고는 하지만 비율이 좋다. 문제는··
“얼굴이 너무 순수해 보인다고나 할까? 모델이면 여러 가지 이미지를 담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 응? 내가 해보라고? 나도 아직 배우는 상황인데 뭘 어떻게.”
우리는 마주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에브리아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 한탄했다. 보통 자기 나라에서 모델은 13살이나 14살부터 시작해 16~18살에 최고의 모델 전성기를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는 작은 키 탓에 큰 무대는 서보지도 못하고 돈도 못 번 채로 이렇게 모델 생활이 내림세로 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한국행을 큰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데?”
그 말에 에브리아는 자신감 있는, 자유로운 사진이라고 말을 했다. 범위가 너무 방대해서 뭘 찍어할지 모르겠다가 문득 저번에 갔던 전시회에서 본 사진이 생각이 났다. 아, 이건 좀 아닌가. 에브리아가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난 생각난 김에 입을 열었다.
“내가 봤던 사진 중에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이 있었어. 노출에 대한 부끄러움 없이 정면을 쳐다보는데 많은 게 느껴지더라고 당당함이나 열정 같은 느낌. 그런 식으로 널 사진에 담아볼래?”
화를 내거나 당황할 줄 알았던 에브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내게 그런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아니야, 시선은 여기를 봐야지. 자유로워지고 싶다며. 이건 별거 아니라는 느낌으로 여길 봐줘. 자신감 있는 태도로. 좋다.”
결국, 난 드레스를 입은 채 가슴을 드러낸 에브리아의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 조금 흥분된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에브리아는 당당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누드 사진이라기보다는 모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느껴졌다.
[등급을 초과한 사진이 찍혀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많은 촬영 끝에 드디어 괜찮은 사진들이 나왔다. 이미 찍는 순간 그걸 느낄 수 있어서 나도 의아했다. 난 에브리아에게 커다란 수건을 가져다준 뒤 결과물을 확인시켜 줬다. 그녀도 만족한 듯 웃으며 그렇게 하나의 작업은 막을 내렸다. 나 역시 뭔가의 껍질은 벗은 기분이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늘 늦어서 집에 가면 그냥 자야 해.”
그녀는 집밥이 먹고 싶었노라고 얘기를 하며 내 옆에 붙었다. 하숙생 생활 며칠 만에 집밥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우리는 늦은 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
사진작가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한 대한사진작가협회의 말은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 그리 흥미 있는 기사도 아닐뿐더러 사진작가라는 명칭 문제 때문에 네티즌들이 흥분하는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의 발언으로 이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증이 없으면 작가가 아니고, 증만 있으면 작가 되는 게 아니라며 사진작가라는 명칭은 대중이 판단할 문제지 자격증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신문호 씨는 대한사진작가협회에서 주최한 공모전 중 수상작 일부는 지나친 보정으로 점철된 사진이라며 심사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심지어 신문호 씨는 같은 나잇대면 자기 밑에 있는 어시스턴트들나 유명 SNS 사진작가들이 훨씬 좋은 사진을 찍는다고 말했다]
유명 상업 작가분 중 한 명이 협회에 반하는 인터뷰를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이에 동의하며 ‘사진작가’의 명칭 문제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이 협회장은 사진가들을 분류하는 기준과 경계가 없는 것처럼 이의제기를 하는데 사진작가들은 사진작품을 통해서 사회를 교육하고 이끌며 비전을 제시할 책임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협회의 공모전에 비판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출품해 수상해본 경험이 없어서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옛말에 서울 가본 사람은 안 가본 사람과 말싸움을 하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하라고 말했다.또한, 자기의 사진을 고집하는 집착보다는 수상을 해서 사진작가의 명칭을 인정받게 되면 사진의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고 사진가로서 자부심도 생길 거라며 신문호 씨를 비판했다]
“대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네.”
난 출근길에 하품을 하며 갑자기 불거진 사진작가의 논란에 대한 글을 읽었다. 어차피 명칭보다는 실력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난 이 논란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다. 지금의 난 실력을 쌓는데도 벅차다.
난 언루트의 음악 세계를 조금이나마 사진으로 보이게 하는 것에 대해 정만종 선생님께 물었다.
“음악이라··. 음악을 사진에 넣고 싶다는 생각은 오만일 수 있다. 그냥 그런 느낌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다면 성공이지.”
“오늘 촬영 따라가 보면 안 될까요?”
오늘 정만종 선생님은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포스터를 찍기 위해 나가실 예정이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여셨다.
“괜찮긴 하다만 네가 원하는 건 얻기 힘들 것 같구나.”
“아이고, 괜찮습니다. 꼭 따라가고 싶어요.”
정만종 선생님은 서울시와 몇 개의 작업을 함께 하고 있었다. 영효 선배와 진행하는 이 대표적이다. 그 외 시립 미술관 관련 일도 돕고 계시고, 시립교향악단 포스터 작업도 협력의 일환으로 알고 있다.
“승우야, 네가 생각하기에 사진 한 컷으로 음악을 담을 수 있는 악기는 뭐라고 생각하니?”
난 여러 악기를 생각하다가 문득 옛날 영화에서 광기에 찬 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피아노 아닐까요?”
“난 연주회 사진을 찍으면서 음악이 들린다고 생각한 사진엔 모두 지휘자가 있었어. 지휘자가 든 막대기는 음악의 모든 걸 담고 있지. 그래서 난 항상 지휘자의 컷을 따로 딴단다.”
우리는 리허설 무대의 뒤편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정만종 선생님은 조명 관계자를 불러 촬영에 필요한 세팅을 주문했다.
“네가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 건 도움이 될 만한 촬영 장면이 없기 때문이야. 오늘 작업은 현장감을 담지도 음악을 담지도 않는단다. 음악을 조금이나마 담고 싶다면 음악이 울려 퍼지는 현장에서 한 컷을 따야 하지. 그런 순간은 찰나에 지나가기 때문에 거의 동물적인 감각이 필요하단다.”
선생님은 연주를 들으며 리드미컬하게 교향악단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약간의 실마리라도 얻기 위해 따라온 나로서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느낌을 사진에 담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
김민기는 길승우 작가에게 온 메일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생각에 이건 시안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현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저, 길승우 작가님이 컨셉 시안을 보내왔는데 그게 좀 골 때립니다.”
“어떤데?”
“손으로 그려가지고 보냈어요.”
“일단 보자.”
장현호는 길승우가 보낸 시안을 꼼꼼히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몇 개는 어떤 사진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었지만 몇 개는 그렇지 못했다. 아마도 사진사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바뀔 것 같았다.
“다시 보내 달라고 할까요?”
“왜?”
“아니, 자료가 너무 불충해 보여서요. 비슷한 컨셉의 사진을 보냈으면 더 쉽게 촬영 세팅을 마칠 수 있을 텐데.”
장현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네가 말하는 건 뭔데? 남의 사진 오려 붙여서 시안이라고 말하는 거? 그게 무슨 시안이냐 카피지. 이놈의 나라는 달라진 게 없어. 남의 나라 잡지나 영상 따서 시안이라는 이름 박고 그걸로 광고주 설득시켜서 그대로 촬영하거나 찍기를 원하지.”
김민기는 장현호의 말에 뒤로 한발 뒤로 물러났다. 장현호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여기뿐이야. 왜 그걸 도둑질이라고 생각을 못하는지 몰라. 하긴 여기 근무 환경이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핑계나 대고 말이야. 잔소리 말고 이 작가 원하는 대로 세팅 계획서 짜가지고 가지고 와.”
장현호는 원래 찍기로 했던 사진작가가 보내준 시안을 봤다. 예상대로 일본과 미국의 광고 자료 중에서 몇 개를 짜깁기해 만든 시안이었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정말 남 보기 부끄러워서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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