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171
172. 세계의 끝(1)
이튿날 저녁.
나는 2층 광장의 벤치에 앉아 있 었다.
광장 근처를 오가던 영웅들이 이상 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며 지나쳤지 만, 상관하지 않았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옆에 있던 이셀이 초조한 듯 날개를 파닥거렸다.
손에 무지개빛 돌이 쥐어져 있고, 이마에는 ‘성공 기원!’이라 쓰여진 하얀 띠를 두르고 있었다.
[실패하면 안 돼,안 돼,안 돼…….]이셀은 양 눈을 꾹 감았다.
왜 네가 난리인지 원. 나는 위를 올 려보았다. 하늘에는 어두컴컴한 그 림자가 구름처럼 맴도는 중이었다.
‘4 성부터는……;
실패 확률이 있지.
가능성은 낮다. 높게 쳐줘도 1% 미만.
하지만 확률은 엄연히 존재했다. “걱정 마라. 무조건 성공해.” [하지만.]
“어설픈 놈이나 걸리는 거야.” 영웅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실
패할 수 없거든.
[픽 미 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암케나의 접속 메시지가 떠올랐다. 매번 정확한 시간을 지켜 접속하고
있다.
마음에 든단 말이지.
[로딩이 끝났습니다.]
[TOUCH !(선택)]
<뉴 월드 레이드! 일곱 번째 시즌을 대비하라!〉
[놓치면 스투핏! 재미는 그뤠잇! 보상은 더블 그뤠잇!]
[여러분,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모든 마스터들의 축제, < World Raid Festa!〉의 오픈이 임박했습니다!]
[특히 이번 페스타에는 마스터라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엄청난 보 상이 있다는 사실! 알려달라구요? S 등급 각인을 위한 무지개빛 강림석.
그리고 5성…… 홈흠,여기까지만 하 겠습니다. 곧 2차 공지가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거기서 확인하세요!]
<7차 페스타 기념 패키지 판매 안내〉 <잦은 서버 오류에 대한 2차 보상>
'벌써 7시즌이 왔나.’
뭐, 열리려면 한참 남았다.
지금은 그보다 급한 게 있다. 공지
사항 내용은 나중에 신경 써도 될 것이다.
암케나는 공지사항을 스킵하고는 메인 화면에 들어왔다.
[마스터,승급을 기다리는 영웅이 있습니다!] [승급 가능 영웅 一 '한(★★★)'. '제나(★★★)’,'벨키스트(★★★)']화면 하단에 녹색 알림창이 떠올 랐다.
암케나는 곧장 히어로 박스에 들 어갔다. 보유 영웅 목록이 좌르르 나열됐다.
이셀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스터,승급을 시작합니다!] [대상 영웅 一 '한(★★★)’] [영웅을 4성으로 승급합니다. 승급은 낮은 확률로 실패할 수 있으며, 실패할 시 영웅은 '오염' 상태에 빠 집니다. 시도하시겠습니까?] [Yes / No] [Tips/4성 승급부터는 실패 확률이 존재합니다. 승급에 실패한 영웅은 오염되며, 이 상태의 영웅들은 이성을 잃고 폭주합니다.]
암케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실패한다는 경고 메시지에 주춤한 것 같았다.
그렇겠지. 오염에 걸린 영웅은 못 쓴다. 버리는 수밖에.
나는 망설이고 있는 암케나를 보며 강하게 생각했다.
'해라.'
[1 파티의 리더,'한(★★★)'이 승 급을 요청합니다.]그리고.
[Yes(선택) / No]덜컹.
합성소의 문이 열렸다.
그 안쪽에 승급소가 설치되어 있
었다. 나는 이셀이 떨리는 손으로 건네는 승급석을 받아든 다음,자리 에서 일어났다. 이셀은 나를 보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화이팅! 지면 안 돼!]"고마워 죽겠네."
나는 픽 웃고는 합성소로 향했다. 원래 이곳에는 제나와 벨키스트도
있어야 하겠지만.
'하나밖에 못 만들었어.’
약 50%의 확률을 10번 이상 실패 했다.
만들어진 승급석은 고작 하나. 어쩌겠냐. 다시 모아야지.
다른 1파티의 멤버들은 지금 요일 던전에서 구르는 중이었다.
끝나고 소감이나 전해줘야겠다. 나는 승급소의 제단에 무지개빛
돌을 올려놓았다.
제단에서 거미줄과 같은 마력의
실이 솟구치더니 돌을 휘감았고, 동 시에 제단 아래의 마법진이 보라색 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시작된다.'
우우웅.
'.?,
나는 벨트를 내려다보았다.
칼집 속의 비프로스트가 진동하고
있었다.
의문을 품기도 전,마법진으로부 터 튀어나온 섬광이 나를 휘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0000차원 – 타오니어]아니나 다를까,나는 이상한 공간에 내던져져 있었다.
먼저 위를 올려보았다. 연한 보랏
빛의 하늘. 거대한 유리 조각들이 느리게 회 전하며 떠다니고 있다. 그 너머의 광경은 어둠에 덮여 있었다.
’에휴.'
나는 한숨을 쉬고는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정돈되어
있는 대로 앞,으리으리한 규모의 궁전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궁전 의 옆으로는 하늘 끝까지 뻗은 탑이 세워져 있다.
'여긴 또 어디냐.’
근처에는 이름 모를 꽃이 한가득
핀 정원과 돌담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 空#A 眞@]치직. 치지직.
노이즈음과 함께,허공에 글자가 새겨졌다.
[플로어0 [任無 %#!형 – ?!#?] [목목!목목; — on !@]장난하나.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맨 위에 있는
플로어0.
’0층……?'
물론, 픽 미 업에 0층 같은 건 존 재하지 않는다.
이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끝까지 가보면 알 수 있겠지.
나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나아갔다. 길은 궁전의 대문 과 연결되어 있었다.
'여긴 어디지._
평범한 장소가 아니란 것은 딱 보면 안다.
날씨는 냉동고에 들어온 것마냥 서늘했고, 주위의 풍경은 색깔이 옅
었다.
마치 채도를 줄인 것처럼.
대문의 거의 앞까지 왔을 즈음,문
위에 걸려 있는 큼지막한 현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현 판의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라그나사르스 궁전]
[황금의 주인을 위한 권좌]
프리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국의 황제가 머무는 장소인가. 나는 황금과 백은으로 장식되어
있는 대문을 밀었다.
끼익. 낡은 쇳소리와 함께 문이 벌
어지기 시작했다.
쾅!
안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닫혔다.
살짝 밀었지만,꿈쩍도 하지 않는다. 잠긴 것 같았다.
끝 모를 정도로 광대한 공간.
양옆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
둥이 있고,붉은 카펫이 중앙으로 이어져 있다.
[황금의 어전(御前)]
친절하게 알려주는군.
황제가 머무는 곳이라 이거지. 나도 면상 한번 보고 싶었다. 나는 카펫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몇 초나 걸었을까.
”키 익!n
[고블린 Lv.?] X ???
좌측 기둥 너머,초록색 피부의 난쟁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특유의 울음소리.
저층에서 질릴 정도로 상대했었던 고블린들이었다.
'왜 여깄지?'
몬스터들인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곳을 지나쳤다.
[오우거 Lv.?] X ??? [리자드맨 Lv.?] X ??? [수인 전사 Lv.?] X ??? [교단군 병사 Lv.?] X ??? [교단군 기사 Lv.?] X ??? [수룡의 성체 Lv.?] X ???카펫의 좌우.
내가 그동안 상대했었고,앞으로 상 대해야 할 몬스터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숫자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 았다.
수십 종류의 각기 다른 몬스터들. 인간,소형종,대형종,수인,조인,
어인.
박람회에 온 것마냥,무수한 종의 몬스터들이 도열해 있었다.
"크룽! 크르르룽!"
끼이 이익!"
놈들의 울음소리에 귀가 아플 지
경이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걸음을 옮 겼다. 의미를 모르겠다. 이들은 인간 의 적일 텐데. 왜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면……;
나는 중얼거렸다.
'무서워하고 있군.’
다양한 몬스터와 싸우며 얻은 노 하우였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이들은 두려 워하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데.
나는 카펫을 지그시 밟으며 나아갔다.
그렇게 몇 분이나 걸었을까.
붉은 카펫의 끝에 놓여 있는 옥좌가 눈에 띄었다.
황금으로 장식된 옥좌는 비어 있 었지만,그 앞의 커다란 테이블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맨 상석에 앉은 남자를 살폈다.
황금빛 털 외투를 걸친 채,은색 관을 쓰고 있다.
태양을 뿌린 듯한 눈부신 금발에 금안. 조각으로 깎았다고 해도 믿을 만한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안 보
이는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창백한 입술을 움직였다.
"다들 모였나."
"아시니스 가문이 오지 않았습니다." 청년의 좌측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화려하게 덧대진 붉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할기온의 가주]
[리카르도 폰 할기라프 Lv.???]
'응?'
저 녀석은…….
나는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놈의
정체를 떠올렸다.
'그놈!'
20층의 보스인 흑룡.
분명, 놈이 인간일 때의 모습이었다. 실제 마주친 것은 1분도 되지 않
았지만,그 모습은 뇌리에 똑똑히 남아 있었다.
나는 테이블을 빠르게 훑었다.
[할기온의 가주]
[슈텐베르크의 가주]
[란티아의 가주]
아시니스는 왜 안 왔지. 분명 불
렸을 텐데.”
청년의 말에 남색 로브를 입은 여 인이 눈을 수그렸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함께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것을 위한 만찬이건만." "명을 내리신다면, 억지로라도…… "됐다. 전장에서의 죽음이 그들의
긍지라면,존중하도록 하자."
청년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황금빛 눈이 테이블을 한 차례
훑었다.
세 명의 가주와, 그 너머에 앉아 있는 인물들에게로.
"대륙의 수호자들이여."
청년이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다. 그대들의
노고는 잊지 않아. 한때,우린 각 종 족의 명운을 걸고 피를 뿌리기도 했 었지. 하지만 이번은,이번만큼은…… 하나가 될 수 있었어. 감사를 표한다."
청년이 고개를 숙였다.
"켁케케! 반짝반짝한 인간! 같이
싸워서 즐거웠다!"
[마학의 구도자] [쿠루샤흐 Lv.???]
"미안하다! 내 걸작품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달라졌을지도 모르지!"
"아냐. 그대의 발명품은 정말로 무 서웠어."
"후후,인정해주다니 고맙다." 리자드맨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저 녀석은…….
'30 층.'
거대 골렘을 조종하던 그놈이다. "내 살다 살다 물에서 싸울 줄은
몰랐군. 그래도 유쾌한 경험이었소. 오랜 삶에 자극이 되더군."
"수룡의 일족께도 감사를 표합니다.” "허허,어차피 가는 것을."
청발의 노인이 허허롭게 웃었다.
[수신통]
[크타아트 Lv.???]
'뭐지?'
[수왕]
[키아드니 Lv.???]
호랑이의 귀가 달린 중년 사내가 얼룩무늬 꼬리를 흔들었다.
사내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실컷 싸웠지. 즐거웠다!"
"감사합니다."
청년의 눈길이 이번에는 테이블 구석을 살폈다.
품이 넓은 로브와 은빛 갑옷을 입 은 무리들이 서 있다. 은빛 바탕에 날개가 붙은 십자 문양. 몇 번이나 봤다. 여신 교단의 문양이었다.
[맹목의 성녀]
[리아느 Lv.???]
[교단군 제 3사령관]
[철혈의 발렌티온 Lv.???]
[교단군 정예 성기사]
[은빛 섬광의 베르사체 Lv.???]'…하.'
"교단도 수고했소. 비록 여신의 도 움은 얻지 못했으나,그대들의 신앙 심 덕에 우리는 끝까지 긍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소."
"별말씀을.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백색 로브를 입은 소녀가 눈을 감은 채 웃었다.
"교단군도,성기사단도 고맙소. 잊지 않으리다."
기사들이 청년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자! 이것이 최후의 만찬입니다. 그동안 우리 타오니어는,서로 다른 종족과 이념으로 갈라져 무수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하 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우리는 졌습니다. 이제 우 리의 고향은 불탈 것이고,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혹은,타오니어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청년이 황금빛 잔을 들어 올렸다.
나는 빙글 웃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내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과거로군.'
픽 미 업이 만들어지기 이전. 타오니어가 멸망하기 직전의 풍경
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두가 만족 스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단 한 명.
눈물을 억누르며,분을 이기지 못해 입술을 깨물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제2 황위 계승권자]
[프리아시스 알 라그나 L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