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219
220. 금화 한 닢⑵
용병왕이라 불린 젊은 청년과 험상 궂은 인상의 사내.
두 명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숲의 안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도 몸을 낮춘 채 그들을 따라갔다. “그만두는 편이 나은 거 같수만. 더
들어갔다 놈들의 이목이라도 끌면 어
쩔 셈이유? 몇 마리는 문제없겠소만, 이 숲의 모든 몬스터가 몰려들면 골 치가 아파지지 않나.”
“그 평화를 가져온다는 알만 보고 나갈 거야. 여기선 안 보이잖냐.”
“어휴,알이 어쨌건 저쨌건 뭔 상관 인지 모르겠네.”
“먼저 돌아가도 상관없다만?”
“내가 어찌 형님을 두고 돌아가겠소?
형수님한테 무슨 구박을 받으려고.” “그럼 잠자코 따라오기나 하셔.”
두 명은 숲의 울창한 가지와 덤불을
헤치며 앞으로 움직였다.
청년의 말대로,여기선 숲 가운데에
우뚝 선 알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나무들이 천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5분 정도 걷다 보면,휑 하니 뚫린 공터가 보인다. 그곳에서 저들은 알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륙에 평화를 불러오는 물건이랬나.’ 제국과 교단은 알에 대해 그렇게 공
표했다.
글쎄,평화라는 단어가 싸그리 다 뒈지는 것을 의미한다면 맞는 말이겠지.
“기척은 많은데,몬스터가 덤벼들지 않아.”
청년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에게 쫀 거 아니오?”
“쫄기는. 그보다 형님이라 부르지
말랬지. 사장님이라고 부르랬잖아.” “그 이상한 호칭은 통 익숙해지질
않는구먼.”
“언제까지 구세대적 호칭에 붙잡혀 있을 거냐. 이쪽도 변화가 필요해.”
“알았수,사장님.”
사장이라.
나는 피식 웃었다.
평범한 용병 나부랭이는 아닌 모양
이다.
‘요슈 형님.’
사내가 청년을 그렇게 불렀었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어감이었다. 나는 그들을 몇 분간 쫓으며,잊혀진
기억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냈다. 결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요슈.
처음으로 갔던 탐험 던전의 한 도시 에서 내가 정보를 샀던 꼬맹이다.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어쩌고 하면 서 금화를 구걸했었지.
자꾸 귀찮게 하길래 한 닢을 주고 돌려보냈다.
‘어이가 없군.’
그때 이후로 대기실의 시간은 반년도
흐르지 않았지만,타오니어 안쪽은 다른 듯했다.
내 허리에나 닿을 듯했던 꼬마는 몰 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따로 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도와줬던 꼬 맹이가 거물이 되어 나타났다?’
그것도 도움이 필요한 이때에,보란 듯이 등장했다.
소수점 이하의 확률.
우연에 우연이 몇 번이나 겹치지 않
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순한 우연은……;
아니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에 한없이 가깝다고 해도 이 세 계는 결국 게임이었다.
‘시스템의 보정이 들어갔다 이거군.’
원래 있었어야 할 지원군이 사라졌다.
따라서 영웅의 임무 수행을 도울 NPC 무리를 새로 채워 넣었다는 뜻 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보스 스테이지 전의 탐색 임무에 등장시킨 것이고.
‘벗어날 수 없구나.’
황자와 떨거지들이 뒤엎으려 아무리
발악해도 룰은 변하지 않는다. 공략할 수 없는 임무는 성립 불가.
어떤 어려운 임무라도 공략은 존재한다. 놈들은 잠깐 상황을 꼬이게 했을 뿐,
이 세계는 여전했다.
“저게…… 알.”
숲 외곽의 공터.
청년이 멀리 우뚝 솟은 알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방에 널린 몬스터들은 청년과 사 내를 습격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공격할 수 없는 것이겠지. “생긴 거 한번 끔찍하구만.”
사내가 토해내듯 말했다.
크기만 수십 미터. 알의 투명한 겉 껍질에서는 회백색 육질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껍질 중간에는 실핏줄이 사 방으로 퍼진 빨간색 눈알이 흔들리고 있었다.
알을 한동안 응시하던 청년이 눈썹을 찌푸렸다.
“제대로 알아봐야겠어.”
“알아봐서 뭐할 생각이유?”
“제국과 교단은 숨기는 게 너무 많아. 황녀를 갑작스레 수배한 것도 그렇고, 이번 건도 그렇지. 우리 같은 평민들 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잖아.”
“만약 높은 분들이 구라를 친 거라 면?”
“그때는……
청년은 머뭇거리다 입을 닫았다. 뒤이어 고개를 털었다.
“일단 돌아가자.”
청년이 등을 돌렸다.
점차 그 뒷모습이 멀어져갔다.
두 명이 점으로 바뀌어 사라진 다음
에야 나는 풀숲에서 몸을 일으켰다. 임무의 클리어창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정찰은 충분히 다한 것
같은데.
‘아니.’
클리어창이 뜨지 않는 걸 보니,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거겠지.
나는 어깨에 내려앉은 나뭇잎을 쓸 어내린 뒤 멤버들의 집합 장소로 향 했다.
“이렇게 되면,일점 돌파밖에 답이 없겠어.”
“일점 돌파?”
“비공정 선단을 송곳 진형으로 만든 뒤, 몬스터의 대군을 뚫고 지나가는 거야. 전면전이 안 되잖아. 알까지 최 대한 빨리 가서 일을 끝마치는 거지.”
“그건 좀…… 희생이 있을 거 같은 데요.”
“병력의 반절 이상이 사라지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제나와 카티오가 임무 공략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몬스터들을 무시하고,알까지 돌파 한 뒤 목표 수행. 내가 계획하고 있던 전략 중 하나였다.
나는 묵묵히 단검날을 갈고 있는 베 닉과 하품을 하는 도중인 키샤샤를 지나쳤다.
프리아시스는 아름드리나무의 밑동 에 걸터앉아 있었다.
가지런한 은빛 눈썹을 좁힌 채,한
눈에 봐도 우울해 보이는 표정을 짓 고 있다.
“아,한…… 왔구나.”
나를 발견한 프리아가 살짝 웃었다.
그러더니 억지로 목소리의 톤을 높 였다.
“나한테 무슨 용무인 게냐? 어차피 난 그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 느니 라.”
“해줄 만한 게 없진 않지.”
“내겐 싸울 만한 실력이 없다. 검 연 습은 꾸준히 해왔다만, 너와 비교하면 달 앞의 반딧불이야.”
그거야 당연하다.
스킬과 각인의 보정을 받는 영웅들의 성장 속도는 NPC와 비할 수 없으니.
프리아도 수년간 검술 연습을 해왔 지만,기껏해야 몬스터 한두 마리가 한계였다.
“내 모자란 검이라도 빌릴 셈이냐? 아니면…… 어깨가 쑤시느냐? 내게 안마라도 받아볼 테냐?”
프리아는 장난스러운,그러나 씁쓸 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필요 없다고 대답하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예전이 이랬다가 유르넷에게 구박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사람 마음을 너무 몰라도 모른다고
했던가.
“이리 오거라.”
프리아가 손으로 자기 옆을 두드렸다.
말없이 앉자 프리아는 내 어깨를 두 드리기 시작했다.
“이 어깨에 타오니어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제대로 풀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이야.”
별로 느낌이 오지 않는다.
깃털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예전 기억이 나는구나.”
프리아가 속삭이둣 말했다.
“황자 전하의 어깨도 이렇게 두드려 드리곤 했었지. 내 안마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하셨는데. 지금 그분은 무얼 하 고 계실지 모르겠구나.”
“살아 있기야 하겠지.”
“그럼 다행이니라. 황궁에 들어간 지도 십 년 가까이 지났어. 얼굴이라도 한번 뵈었으면 좋으련만.”
황자의 얼굴이야 곧 볼 수 있겠지.
네가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겠지만.
“잘 들어,프리아.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후후,안마만은 자신 있다. 다섯 명 모두에게 해주라는 것이냐?”
프리아는 날개뼈 부근을 콩콩 두드 려갔다.
“…용병왕이라고 들어본 적 있 냐?”
“으음,용병왕이라. 기억이 날 것 같 기도 하다. 아! 술집의 음유시인에게 들었지. 동료들과 함께 전 대륙의 던 전을 제패했다더구나. 그런데,그게 무슨 일인가?”
“너는 곧장 이 길을 떠나서,용병왕 이란 놈을 포섭해와.”
프리아의 손이 멈췄다.
나는 말을 이었다.
“놈은 용병계에 상당한 지분이 있는
것 같다. 이쪽으로 꼬신다면,이번 전 투에서 지원군을 노려볼 수 있겠지. 보다시피,우리는 여길 나갈 수 없어. 임무에 묶여 있거든. 네가 아니면 불 가능한 일이야.”
“안 되겠냐?”
나는 앉은 채로 프리아를 돌아보았 다.
프리아는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내게…… 그자를 데려오라는 것인 가?”
“그래.”
“듣기론 수많은 거부들이 그자와 계 약하겠다고 했지만,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거물이 폐황녀에 불과한 나와 이야기를 해 주겠는가? 안 될 것이다. 내게는 돈도 명예도 없 어. 나는 고작,힘없는…… 꼭!”
프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나는…… 또 도망치려 했구나.”
“힘들면 안 해도 돼. 다른 방법을 찾 아볼 테니까.”
“아니다. 내가 가 보겠다.”
“그 녀석은 여기 근처에 있을 거야.”
“당장 찾겠느니라!”
프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깥으로 이어진 길로 발걸
음을 옮겼다.
곧장 용병왕을 찾아보려는 듯했다. ‘너무 무모하잖냐.’
나는 입을 열었다.
“프리아.”
“……?”
“그놈에게,한 이스라트가 금화 한 닢의 빚을 받으러 왔다고 해.”
“금화 한 닢?”
“말하면 알 거야. 나머지는 네 몫이 다. 기대할게.”
등을 돌리고 있던 프리아가 잠깐 움
찔 거렸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힘내라.”
프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앞으로 나아갔다.
그와 동시에,빛이 몸을 휘감았다.
[스테이지 클리어!] [‘제나(★★★★)’,’키샤샤(★★★★)’,레벨 업!] [보상 – 300,000G,숲의 정수(중급) X 3, 널판지 (A) X 13] [MVP – ‘한(★★★★)’]
스테이지 클리어의 메시지가 떴다. 뒤를 돌아보니,멤버들이 차례대로
대기실로 복귀하고 있었다.
‘곧이군.’
50층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대기
실로 돌아가서 할 일을 정리하기 시 작했다.
빛의 입자가 몸을 뒤덮어갔다.
“……?”
귀환을 준비하던 도중,갑자기 눈앞에
낯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복구중…….] [서버에 오류가 생겨 접속이 끊겼습 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치직.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잎이,그 자리 에서 멈춰섰다.
숲의 풍경이 차디찬 잿빛으로 변했다. 이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한 번 겪은 적 있었다.
10층. 텔이 직접적으로 임무에 개입
했었을 때.
‘누군가 있다._
나는 뒤를 돌아보려 했다.
「그대로 있거라.」
정체불명의 목소리.
성별도,어조도 특정할 수 없다. 「저 아이의 안마를 받아본 지
도…… 오래되었구나.」
“……뭐냐.”
「장기판의 말로 마주치기 전,잠깐의 인사일 뿐이다.」
인사라고?
「서로 기구한 운명이구나.」
눈앞에 붉은 붕대가 살짝 스쳐 갔다.
「한 이스라트,우리는 너의 자격을
시험하고자 한다. 네가 정녕 탑을 정 복하고 싶다면,뫼비우스의 감춰진 진 실을 알고 싶다면,닥쳐오는 부조리를 뛰어넘어 보거라.」
“…….”
「네가 만약 실패한다면…… 이런 망가진 세계는,내가 부숴버리겠다.」
치직.
풍경이 제 색깔을 되찾았다.
[복구 완료!] [서버에 재접속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나는 즉각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낙엽이 쌓여 있을 따름이
었다.
‘선전 포고라도 하러 왔나.’
황자가 간섭력을 쓸 수 있다는 말은
정답인 것 같다.
잠시나마 텔의 행동을 흉내 냈으니. 부숴버린다.
그것이 페르세네가 말했던 해방인가. 폼을 잔뜩 잡았던 거 같은데,어쨌건
상관없다.
‘황자가 50층에 나온다는 거군.’ 레벨 차이가 나는 만큼 황자가 직접
전투에 나서지는 않겠지만,멀리서라
도 귀찮게 굴기는 할 것이다.
내가 놈이었다면 이런 힌트는 절대
안 줬을 텐데.
빛이 몸을 뒤덮었고,다시 눈을 떴 을 때 나는 차원의 틈에 돌아와 있었다.
나는 앞을 살펴보았다.
방 가운데의 거울이 희미하게 반짝
이고 있었다.
[탑을 등반,세상을 구원하라!] [메인 던전 : 현 등반 층수 – 47]탑을 등반,세상을 구원하라. 마스터였던 시절에도,영웅이 된 지
금에도 수천 번이나 봤던 문구다. 아주 질려버릴 정도로.
“오빠,뭐해요?”
“아무것도.”
바깥에서 제나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
나는 머리를 젓고는 광장으로 따라 나갔다.
할 일은 많다.
50층이 코 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