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45
정도마신 44화
“제게 물어볼 게 있다고요?”
“들어가서 얘기하자.”
사완악은 구휘를 데리고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구휘는 의아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나한테 이토록 진지하게 물어볼 게 무엇일까?’
사완악은 뒷짐을 진 채 자신의 방 한편에 꽂혀 있는 책들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꼬맹아, 전에 다친 곳은 괜찮냐?”
“네?”
“설린 문주를 지키려다 가종후에게 내상을 입었던 거 말이다.”
“아!”
구휘는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래 봬도 강골입니다. 사실…… 현종 스님이 잘 치료해 주셔서 다행이었지요. 처음에는 정말 눈앞이 깜깜해지고 내장이 녹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그것 때문에 그 사람들을 못 믿는 건 아닙니다.”
사완악은 여전히 서책들에 시선을 둔 채 작게 끄덕였다.
“그래. 가종후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 해도 너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겠지. 현종의 정순하고 심후한 내공이 아니었다면 꽤 오래 고생했을지도 몰라.”
“맞아요. 그래서 이번에 현종 스님을 뵈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고요.”
사완악이 말했다.
“내가 정유문에 오기 전에 네 분의 사부님이 계셨다고 말했었던가?”
“아, 그랬었죠. 어떤 분들인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았지만.”
“네 분 중 한 분은 정말 박학다식하고 심계가 깊으신 분이었다. 그분은 내게 무공과 더불어 학문, 그리고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알려 주셨지. 나는 꽤 열심히 그분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언제나 칭찬보다는 꾸중을 듣기 일쑤였지.”
구휘가 입을 벌리고 놀라며 말했다.
“믿기지 않는데요. 사 공자님 같이 뛰어난 분이 꾸중만 들었다고요?”
사완악은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 성향이 그분과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나는 신중하기보다 모험적이었고, 인내하는 것도 싫어했다. 무엇보다 그분은 언제나 내게 자만심이 지나치다고 화를 내셨지.”
“어…… 듣고 보니 그건 좀 납득이 되는데요?”
구휘가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사완악이 서서히 몸을 돌려 구휘를 응시하며 말했다.
“맞아. 내 자만이었다. 진안심공의 능력을 과신했지. 그렇게 쉬운 상대일 리가 없는데 말이야.”
“진안심공이요? 쉬운 상대가 아니라니, 누가요?”
이때 사완악이 말했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아주 그럴듯했지.”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고육지책은 그 유명한 삼국시대의 적벽대전에서 나왔던 계략이었다.
오나라의 책사 주유는 자신의 심복인 황개를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곤장을 때렸고, 그 사실은 첩자를 통해 조조의 귀에 들어갔다. 그리고 황개는 복수심에 불타 조조에게 항복의 문서를 보내고 조조는 이를 받아들이는데, 사실은 이것이 모두 계략이었던 것이다.
황개는 기름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조조군의 진영으로 가서 배에 불을 붙여 조조군의 해군에 타격을 주고, 그 틈에 연합군은 공격에 나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한마디로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적을 속이는 계책.
하지만 떠돌이 거지 소년이었던 구휘는 그런 단어를 처음 들어 본다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사완악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완악은 서서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너의 그 작전이 나의 마지막 의심을 지웠었다는 뜻이다.”
구휘는 점점 알 수 없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 공자님,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사완악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짙게 떠올랐다.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예?”
“증좌 따위를 네게 보일 생각은 없다. 그저 내 확신이면 충분하니까.”
“……사 공자님?”
그때였다.
돌연 사완악의 전신에서 숨이 막힐 듯한 살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구휘를 향해 일장을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평범한 장법이 아니라 파신마장의 첫 번째 초식인 마룡일효였고, 그 안에 담긴 내력은 스치기만 해도 구휘의 몸을 태워 버릴 듯 강렬했다.
구휘의 눈이 경악과 공포로 커다랗게 뜨였다.
사완악의 장법은 벼락과 같아 도저히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이제 눈 한 번 깜빡하면 구휘는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구휘의 손바닥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뒤집히더니 두 손을 쭉 뻗어 사완악의 일장을 맞받아치는 것이었다.
파아앙! 쾅!
내공이 격돌하는 폭음과 함께 구휘의 신형은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처소의 문을 뚫고 마당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그러나 그 순간 사완악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구휘는 마당에 떨어지자마자 다시 튕겨 올라오듯 경신술을 발휘해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완악의 장법을 정면으로 받아 낼 때부터 계획적이었던 움직임이 분명했다.
대관절 구휘가 어떻게 사완악의 파신마장을 받아 내고, 다시 저렇게 상승의 경신술을 펼쳐 내는 것일까?
“하지만 술래잡기라면 자신 있지.”
사완악은 여유롭게 중얼거리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다음 걸음에서 사완악은 빛살처럼 빠르게 나아갔다.
구휘와 사완악의 신형은 두 마리의 새처럼 정유문의 담을 넘어 바람을 가르며 추격전을 펼쳤다.
놀랍게도 구휘는 정말 그 본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경신술이 대단했다.
사령문의 자객 무공을 익힌 무영의 경신술과 비교해도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뛰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구휘는 정유문 뒤쪽에 있는 동산의 오솔길에서 신법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계속 도망만 갈 생각인가?”
어느새 그의 오 장 앞에 백의장삼의 사완악이 뒷짐을 지고 여유로운 미소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꼬맹이인 줄 알았더니 쥐새끼였구나.”
구휘는 말없이 사완악을 응시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만약 설린을 비롯한 정유문의 사람들이 지금의 구휘를 보았다면 크게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구휘의 음성은 똑같았지만, 그 눈빛과 말투, 표정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순수하고 귀여웠던 소년이 아니라, 마치 고요한 수면처럼 차분하고 성숙한 느낌이 전체적으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사완악은 싱긋 웃더니 말했다.
“어떻게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
사완악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며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림의 공적이 된 사대악인을 모아 은거지를 마련해 주고, 한 아이를 주어 그들의 무공을 전수받게 하고, 강호제일의 악인을 만들어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
“또한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삼백 년 전 강호의 악마라 불렸던 사령문의 영겁사령존의 혼이 봉인된 영겁사령환을 사대악인 중 한 사람에게 주어 그 아이가 복용하게 만들었지. 즉, 그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이 강호를 집어삼킬 만한 존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사완악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구휘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을 이어 갔다.
“참으로 평범한 계획은 아니지.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그 계획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온 무림의 존경을 받는 자. 수많은 병자를 치료했으며, 강호역사서를 집필하고, 점괘술과 예언으로 몇 번의 겁난을 막아 낸 강호 제일기인, 천기자라는 것이지.”
천기자라는 이름을 내뱉었을 때, 사완악의 전신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가닥가닥 흘러나왔고, 소년 구휘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사완악은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천기자가 과거의 영겁사령존을 뛰어넘는 대악인을 만들려고 하다니 말이야.”
사완악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계획했으니 그는 틀림없이 그 결과물을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을 거란 거지. 바로 나, 사완악을 말이야.”
구휘는 침묵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었군요.”
사완악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나도 궁금해지더군. 도대체 천기자 그놈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계획을 한 것일까? 강호 제일기인이라는 놈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 것인가? 꼬맹이, 너도 알겠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그 순간이었다.
사완악의 신형이 유령처럼 사라지고, 동시에 구휘가 다급하게 몸을 뒤로 날렸다.
파파파팟!
뒤로 몸을 빼는 구휘와 그를 따라가는 사완악은 허공에서 순식간에 이십여 합의 초식을 주고받았다.
정유문에 오기 전까지 일개 떠돌이 소년이었다던 구휘의 권법은 매우 절묘하여 사완악의 공격을 몇 차례나 막아 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내력 차이는 확연했다. 구휘 역시 그 나이 대에 맞지 않는 내공을 지니고 있었지만, 영겁사령존의 기운에 사대악인의 내공까지 흡수한 사완악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사완악은 기습적으로 파신마장의 일 초식을 전개했고, 구휘는 몸을 좌측으로 꺾으며 오른손으로 그 장법을 막아 냈지만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그 순간 사완악의 다른 손이 매처럼 날아와 구휘의 목을 낚아챘다.
“컥……!”
사완악은 구휘의 얼굴을 무심하게 응시하며 말했다.
“내가 정유문에 오게 유도한 것도 하나의 계획이었겠지. 객잔에서 재담꾼들이 정유문의 이야기를 한 것도, 그곳의 문주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사완악이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본 구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흑사방의 그 망나니 놈이 품에 지니고 있던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독특한 향이 나는 주머니일 뿐이지.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향을 맡는 순간, 내 탈정미혼공이 미친 듯이 날뛰더군. 이게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사완악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나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길 원했던 것일까?”
사완악이 마지막 말을 내뱉을 때, 그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며 구휘의 목을 움켜쥔 손이 더욱 조여 들어갔다.
“크륵……!”
구휘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은 순간, 사완악은 구휘를 땅에 거칠게 내리꽂았다.
구휘의 입에서 컥컥대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토해졌다.
사완악은 그런 구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론 네가 쥐새끼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네놈은 일 년 전부터 정유문에 있었고, 아무리 천기자가 대단한 놈이라도 내가 정유문으로 갈 것을 확신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심지어 꼬맹이 너는 진안심공으로도 어떤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없었지. 관일성 호법도, 황임 총관도 마찬가지야. 나는 정유문에는 천기자 놈의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다.”
“…….”
사완악은 쓰러진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구휘를 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내뱉었다.
“사부님이 그렇게 자만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면 한심한 일이라니까. 이 모든 것을 계획한 천기자라는 놈이 평범할 리는 없잖아. 강호에서 천기자를 기인이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도, 누구도 그의 진짜 얼굴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니까. 가령…….”
사완악은 말을 멈추고 손을 뻗어 구휘의 혈도 몇 군데를 짚었다.
점혈 수법을 발휘해 구휘의 내공의 흐름을 막아 버린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구휘의 이목구비가 흐물거리더니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