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
그는 집요하게 그녀를 눈에 담을 뿐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일렛은 별수 없지 하는 표정으로 그의 손에 직접 이삭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같이 불꽃 속에 뿌렸다.
화르르륵!
역대 최대 규모의 성화가 치솟았다.
거대한 푸른 불꽃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높은 구두 탓에 눈높이가 조금 올라간 그녀가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잘 해결됐다. 그치?”
“…….”
오직 그만 들을 수 있는 속삭임. 그때 그의 손을 감싸던 온기가 떨어지려는 것이 느껴졌다.
탁.
“…….”
충동이었다.
멀어지려는 손을 붙잡아 제 손아귀에 가뒀다.
조금 놀란 듯 커진 페리도트 빛 눈에 대고 그가 물었다.
“왜…… 이런 모습이야……?”
중저음의 미성이 떨리는 이유를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경황없는 테실리드를 대신해서 아일렛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붙들린 손의 모양새를 자연스럽게 바꾸어, 남들 보기에 그가 그녀를 에스코트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왜? 예쁘지 않나?”
“…….”
그는 공연히 혀가 굳는 것을 느꼈다. 수초가 흐른 뒤에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제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무슨 생각인지, 설마 정체를 드러낼 생각인지, 그런 걸 물으려 했다.
교단은 분명 의무와 책임으로 그녀를 짓누르고 구속할 것이다. 직접 겪어본 테실리드는 확신했다.
“괜찮아. 나만 믿어.”
그녀는 손을 부드럽게 빼내고 돌아섰다.
맥추절 의식을 위해 모인 수백 명의 교인들 앞에서도 그녀의 등과 어깨는 위축된 기색조차 없었다.
“클로비스 경.”
제단 아래 시립한 상대는 그녀의 요구를 바로 알아들었다.
“소개드립니다. 신성 강림의 주인공이신 아일렛 로델라인 님이십니다.”
“……!”
설마하던 의혹이 확증되었다.
숨이 멎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익히 짐작했던 이들조차 전율에 몸을 떨었다.
“이, 이분이 바로……!”
“10년을 기다렸습니다!”
“서, 성녀님!”
흥분과 감격이 공기를 뜨겁게 휩쓸었다.
그때 제단 뒤편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있던 추기경들 중 두 사람이 일어났다.
약속이라도 한 듯한 타이밍이었으나 두 중년 남성이 서로를 보는 눈빛은 곱지 않았다.
먼저 나선 사람은 클로비스와 닮은 건장한 추기경이었다.
베잘리우스 아르젠트. 교황이 와병 중인 지금 친검사성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였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약자가 되어본 적 없는 권력자 특유의 오만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대상은 제 아들이었다.
“클로비스 경, 임무 완수를 치하하는 바네. 그런데 언제 찾은 것인가? 추기경 의회는 소식을 들은 바가 전혀 없는데.”
“닷새 전, 신성력 시험에 입회했을 때입니다.”
“닷새? 보고를 올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지?”
“그건…….”
“제가 그렇게 해달라 부탁드렸습니다.”
노회한 눈이 아일렛을 향했다.
“성녀께서요?”
“네.”
“……추기경 의회와의 대면을 미루신 데는 뜻이 있으셨을 테지요. 하나, 교황 성하만큼은 미리 뵙는 편이 좋았을 텐데요.”
“클로비스 경이 참 추기경 예하를 많이 닮으신 듯합니다.”
“…….”
그런 수작질은 당신 아들이 이미 했음을 감추지 않았다.
베잘리우스의 견고한 표정에 금이 갔다.
한 방 먹은 검사성 장관의 모습은 고스란히 복음성 장관의 기쁨이 되었다.
베잘리우스 아르젠트의 대척점에 서 있던 데칼 레바니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학자적인 인상의 중년 남성은 외알 안경을 고쳐 올리며 흡족히 웃었다.
“인사부터 드립니다, 예하. 데칼 레바니체 추기경입니다. 삼가 질문드립니다만, 닷새 전에 감지되었던 8계위 신성력이 예하의 것이었습니까?”
“네. 송구하군요. 오늘 양쪽 분들께 인사드리고 싶어 클로비스 경에게 금구를 부탁드렸습니다.”
데칼은 베잘리우스와 달리 부드러운 태도와 언행으로 접근했다.
이는 정답이었는지 성녀의 음성도 한결 우호적이었다.
이런 극명한 결과에 복음성 측 인사들은 반색하는 반면 검사성 측 인사들은 경계심을 높였다.
이어진 아일렛의 말은 두 집단의 신경전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예하라는 존칭은 과분합니다. 아직 서품을 받지 못한 것을요.”
순간 데칼의 눈이 번뜩였다.
“허허, 안 될 일이군요. 마침 여긴 의식의 장소이기도 하니 제가 바로 서품식을 집전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가까이 와보시겠습니까, 성녀님?”
“말도 안 되는 소리.”
베잘리우스가 낮게 호통 쳤다.
“복음성 장관이 어찌 여기서 나서려 하는가. 성녀에게 세례성사와 서품식을 내리기 합당한 사람은 교황 성하요.”
“거참, 딱딱한 말씀을 하십니다. 성사와 의식을 집전하는 권리는 추기경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만.”
“권한이 같다 하여 그 권위까지 같을 리가.”
“구태의연한 예우 방식이군요. 성녀님만 승낙하시면 될 문제입니다.”
성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 영광을 서로 차지하고자 혈안이었다. 자신들의 위엄과 권위를 올려칠 좋은 수단이었으므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모두의 신경이 아일렛에게 집중되었다.
오래 산 두 권력자보다 젊은 성녀 한 사람의 말이 더욱 무게를 가졌다.
심지어 이어진 내용은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성녀의 권한을 이용해 기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 친위 겸 각종 임무를 수행할 조직으로요.”
“예에?!”
베잘리우스와 데칼이 짠 듯이 동시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일렛의 말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일단 결성 인원은 둘. 저와 여기 계신 테실리드 경으로 하겠어요.”
“그게 무슨!”
“테실리드 경에게 새 소속이 필요한 참이니 딱이죠. 저도 좋고, 테실리드 경도 좋고, 성황청도 행정 처리가 필요 없어져서 좋고.”
“아니, 성녀님. 잠깐만…….”
“휘하에 기사단을 두는 것은 성녀의 권리이니 문제없으리라 봅니다. 아, 물론 의무도 다할 생각입니다. 던전 토벌을 하죠. S급 이상으로.”
“두, 둘이서 S급을요?”
“혼자서도 합니다만? 문제라도?”
“…….”
가장 빠르게 정신을 수습한 건 데칼이었다.
“친위 기사단을 휘하에 두는 것까지는 성녀님의 권한이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녀님이셔도 독단적으로 자신을 포함하여 한 기사단의 행보를 결정하실 순 없으십니다. 그건 통치와 관리의 영역이니까요.”
“그렇죠. 그건 추기경 의회에서 하는 것이죠. 성녀는 정식 직책도 아니라 대단한 권한도 없고요.”
의전만 높을 뿐 주교에 불과하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아일렛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데칼이 반색했다.
“말씀이 통하시는군요. 그럼 성녀님께서도 한 명의 교인으로서 순명…….”
그러나 그는 아일렛을 우습게 봤다.
“그래서 직책 서임까지 받아서 고위직을 하나 얻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데칼과 베잘리우스는 물론, 대부분의 교인들이 입을 떡 벌렸다.
이런 숨김없는 권력에 대한 욕구라니. 이제까지 이런 성녀는 없었다.
주교 서품을 받은 이가 바랄 직책은 통상적으로 하나다. 베잘리우스가 노회한 눈으로 아일렛을 꿰뚫듯 보았다.
“추기경이 되고 싶으시다는 뜻입니까?”
“아니죠. 그건 너무 흔하죠.”
그녀의 존재는 통상적이지 않았으므로, 요구 또한 달랐다.
“신성 강림을 쓸 수 있는 성녀, 혹은 성자에게 주어지는 직책이 따로 있잖아요?”
“……!”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았냐는 시선이다. 아일렛은 이만하면 됐겠지 하며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하, 하오나, 성녀님……!”
또 어디서 불만이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아일렛의 표정이 탈색되었다.
“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조금 전의 미소는 그녀의 마지막 인내심을 쥐어짠 것이었다.
“성녀, 말씀을 삼가…….”
“누가 할 소리.”
싸늘한 무표정과 짜증스러운 음성에 주변의 공기가 일변했다.
“헙.”
“흡.”
기감 좋은 이들이 숨을 들이켰다. 대거리를 하려던 베잘리우스조차도 식은땀을 흘려보냈다.
“…….”
당황한 눈에 비친 성녀는 감정 없는 얼굴로 교인들을 슥 훑어볼 뿐이었다.
위협 없는 침묵.
그러나 이 순간 베잘리우스는 손끝을 타고 긴장감과 초조함이 시리게 퍼져 들어옴을 느꼈다.
성녀가, 뭔가를 하려 한다.
그때 성녀의 고운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그리고 분노를 뱉어냈다.
“신성 강림.”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
벚꽃색 같았던 머리카락이 순수한 은발로, 페리도트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태양 같은 황금빛으로 색을 갈아입었다.
그녀의 두 다리는 지상의 피조물들과 같은 선에 서기를 거부했다.
초월의 영역에 들어서자 그녀가 가진 신성력의 경지가 한 단계 상승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9계위 신성력이 성황청 전역을 짓눌렀다.
“컥…….”
“끄으윽…….”
실로 성스러운 재앙이었다.
성녀는 높아진 눈높이에서 인간들을 굽어보았다. 자비를 기대할 수 없는 무정한 시선이었다.
“경고합니다. 파벌 싸움에 나를 이용할 생각하지 마세요.”
“…….”
그제야 베잘리우스와 데칼은 저들이 주제를 망각하고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상대는 보통의 성녀가 아니다. 무려 신이 직접 선택한 지상의 대리자다.
그런 이를 구미에 맞춰 길들이고 이용하려 들었다니, 이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베잘리우스와 데칼은 당장 자신들에게 신벌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녀는 그들의 생각보다는 너그러웠다.
“언제까지 당신들과 입씨름을 해드려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규율에 나와 있는 요구를 했을 뿐입니다. 제가 받아 마땅한 권리와 권한. 그걸 인정하는 게 그리 힘드신지?”
“…….”
“말씀해 보세요, 검사성과 복음성의 수장이신 두 분.”
“…….”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두 추기경이 빳빳하게 굳은 혀를 간신히 움직였다.
“성녀의 말씀이 옳습니다.”
“뜻대로 하시지요, 성녀님.”
그제야 성녀가 미소를 조금 되찾았다. 살며시 곡선을 그리는 입꼬리는 이 아찔한 와중에도 매혹적이었다.
그것이 신의 총애로 내려진 권능의 일부임을 모두가 알았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두려웠다.
허공에서 성녀가 말했다.
“바로 서품과 서임부터 진행하죠. 자, 누가 제 머리에 손대는 영광을 가져가시겠어요? 선착순으로 정하겠습니다.”
“…….”
“없나요?”
있을 리가 없었다.
누가 감히 저 높이까지 올라가 성체에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영혼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럼 서품도, 서임도 저 스스로 내리는 것으로.”
성녀가 제 머리에 오른손을 얹는 시늉을 했다.
그것은 경건한 세례라기보다는, 스스로 보이지 않는 왕관을 들어 쓰는 듯한 손짓이었다.
물론 아무도 그녀의 제례를 지적하지 않았다.
손을 내린 성녀는 제단 아래 있는 금발의 성기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제 저를 뭐라 불러주시겠어요, 클로비스 경?”
“…….”
클로비스가 심호흡했다.
성녀의 부탁은 소개였다. 앞서 했지만, 성녀가 진정 그를 쓰고자 하는 순간은 지금일 것이다.
클로비스가 예를 갖췄다.
“신성경(神性卿) 예하를 뵙습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