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녀석의 권속들도 분노하며 거들었다.
“이런 괘씸한 인간 처녀!”
“왕의 뿔을 부러뜨리다니!”
“왕의 뿔을 상하게 한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다! 각오해라!”
나는 태연히 대꾸했다.
“왕의 뿔만은 아니지.”
“뭐?”
멍청한 되물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온 그때였다.
툭, 툭, 투둑!
묵직한 뭔가가 동시다발적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인간화한 유니수스들이 뒤늦게 자신들의 허전한 이마를 만지고는 깜짝 놀랐다.
“뿌, 뿔이 잘렸어!”
“내 뿔!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긴.
나는 정령왕의 하프 현을 잡아당겼다. 잘린 뿔들이 내 발치로 곱게 수거되었다.
“뒤에 있던 놈들, 이제 앞으로 나와라.”
“히익!”
“안 와? 그럼 내가 가지, 뭐.”
몰살의 무도로 그들의 사이사이를 누비며 빠르게 뿔을 잘라냈다.
물론 죽이진 않았다. 뿔은 다시 자라니까.
반백도 되지 않는 적은 수였기에 금방 끝났다. 백발 미소년들은 유니수스로 변해서 날개를 펼칠 틈도 없이 뿔을 잃었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상위 마수종의 뿔을 밭에서 옥수수 수확하듯 뽑는 당신을 보며 혀를 내두릅니다.]쿠우웅, 지축이 흔들린 것은 그때였다.
뒤를 돌아본 곳에서는 엘리니로가 인간화를 풀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집채만 한 크기의 유니수스가 긴 갈기를 휘날리며 앞발과 뒷발을 차례로 굴렀다.
콰광! 쿠궁!
앞발에 찍힌 땅에는 크레이터가 생기고 뒷발에 처맞은 아름드리 삼색 등나무 기둥은 반으로 쪼개졌다.
제법 위협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으나.
“신벌.”
이곳은 A급 던전. 즉, 엘리니로는 내가 처음에 잡은 아르디망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축하합니다! 던전의 주인, 마계 서열 1762위 ‘카사노바 유니수스 엘리니로’를 해치웠습니다.] [ 마계 영지 ‘신비로운 유니수스의 숲’이 던전 토벌자 ‘아일렛 로델라인’에게 귀속됩니다.]이로써 고부가가치 던전이 내 것이 되었다.[‘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아무리 그래도 A급 보스인데 한방컷은 너무하지 않냐고 툴툴댑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이러니까 시련의 탑 컨텐츠 소모가 빨랐던 것이라며 억울해합니다.]“와, 왕이 죽었다!”
“도망쳐……!”
태생이 짐승이라서 그런지 유니수스들 사이에 딱히 군신의 의리는 없었다.
미소년들은 날개 달린 백마로 변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애초부터 방목 사육할 생각이었으므로 잡지 않았다.
보석뿔을 모조리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엘리니로의 사체에서 두 개의 전리품을 주웠다.
어디 보자.
회전목마 오르골 형태의 아이템이 하나. 신성력 계열 스킬북이 하나.
‘기대했던 대로네.’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대충 던져 넣고 스킬북은 손에 들었다.
이것으로 이 던전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나는 유유히 게이트로 빠져나갔다.
“시간이 늦었으니 토벌 보고는 내일 재무 관리인님께 해야겠네요.”
“네. 오늘을 위해서 다 일찍이 준비해 놨었죠.”[‘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빙의자의 계획성에 박수를 칩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야근을 하다 말고 역시 당신에게는 비안카가 필요하다며 눈꼬리를 휘어 웃습니다.]아그네스가 만족스러운 음성으로 평했다.
“아, 정확히는 일석삼조예요.”
나는 인벤토리에 넣지 않은 스킬북을 살짝 들어 올려 보였다.
“네, 아주요.”
시스템이 스킬북을 감정해 주었다.[ ‘시동 명령어의 대언자’
신성 언령 계열 상급 스킬. 대상이 가진 스킬을 강제로 발동시킨다.
단, 스킬 발동에 소모되는 오러, 마나, 신성은 당신이 부담해야 한다.]그대로 설명해 주자, 아그네스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약간 원격 조종 같은 거랄까요.”
“네.”
나는 쓰게 웃었다.
“아군한테 쓸 생각은 없어요.”
“네. 리드한테.”
밤의 편백나무 숲에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바람이 불어와 무거운 공기를 쓸어내 주었을 무렵에서야,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아그네스도 눈치채고 있는 거 아녜요?”
손안에 있던 스킬북이 파사삭 부서지듯 사라졌다. 강제 발동 스킬이 내 안으로 흡수되었다.
“리드의 얼굴, 가까이서 봤으니까.”
……역시나.
아그네스로부터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다.
그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긍정의 대답이었다.✠이튿날 이른 오후, 점심을 굶은 상태로 백작성을 떠났다.
목적지는 엘펜하임 교국의 수도인 판엘이었다.
성황청을 코앞에 둔 장소였지만 따로 여관에다 숙소를 잡았다.
아직 휴가 중이었고, 마지막은 조금 떠들썩하게 보내고 싶어서 약속을 잡은 참이었다.
“제복 금지.”
체크인하고 들어간 방에서 테실리드의 옷을 골라주었다.
바지 위에 셔츠와 조끼를 받쳐 입게 하고, 백색 크라바트로 마무리했다.
나 역시 편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여관을 나서서 향한 곳은 음식점과 주점이 늘어선 번화가였다.
시차상 교국은 저녁 식사 시간이었기에 거리와 가게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와 테실리드는 그중에서 ‘최고의 만찬’이라는 간판이 걸린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먼저 온 약속 상대들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여어, 예하.”
“어서 와.”
“반가워, 헤스티오, 이페일.”
두 사람도 오늘 약속을 위해 휴가를 쓰고 나온 참이었다.
나와 테실리드가 맞은편에 앉자 이페일이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음식은 미리 주문했어. 치킨 통구이, 돼지뼈 등심구이, 아스파라거스 포카치아, 연어 키슈, 청포도 코디얼, 이렇게 시켰는데 더 필요한 거 있어?”
테실리드가 반응했다.
“코디얼? 술 아닌가?”
“주스야, 주스.”
나는 점원을 불러서 추가 주문을 넣었다.
“허니버터 고구마하고 호박파이도 주세요. 아참, 벌꿀 우유 한 잔도 이쪽에 부탁해요.”
테실리드를 가리키며 주문을 끝내자 이페일과 헤스티오가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천년 얼음성에서 한번 보자던 약속을 이제야 지키네.”
“그러게.”
헤스티오의 말에 대꾸하는 사이 음료가 먼저 나왔다.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이 연두색 코디얼을 홀짝이는 동안 테실리드는 혼자만 우유를 마셨다.
“야, 아일렛.”
“응. 왜? 헤스티오.”
“몸은 괜찮아? 저번 토벌전에서 무리해서 쓰러졌다며.”
“멀쩡해. 걱정할 것 없어.”
“하긴 병문안 가려고 보니까 이미 휴가 떠났다고 하더라. 사흘간 뭐 했냐?”
내 몸 상태가 괜찮다는 확인을 받자마자 다시 어투가 까칠해지는 게 헤스티오답다.
“도적단 털고 던전 토벌하고 부모님 뵙고 그랬지.”
“테실리드랑 같이?”
“응. 성황청에 두고 가면 누가 어떻게 괴롭힐지 모르잖아.”
“과보호네.”
“과보호야.”
귓등으로 들으며 청포도 코디얼을 마셨다.
문득 이페일이 회고하듯 과거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사실 너 처음에 봤을 때는 어디서 테실리드랑 똑같은 게 나타났다 싶었는데.”
“실례네.”
“어, 인정할게. 장난감의 저택에서 오르슈 백작을 따라가려던 게, 희생이 아니라 혼자 신성 강림으로 보스를 조지려고 했던 것일 줄이야.”
“이제라도 알아줘서 기뻐.”
“그때 보스 앞에서 말이나 좀 해주지. 아니, 물론 정체를 비밀로 하고 싶었겠지. 그러니까 말 못 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말이야. 내가 그때, 하아…….”
이페일의 말이 점점 두서없어진다. 나는 그를 향해 턱을 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까지 신경 썼던 거야? 그때 네가 나를 죽이려 한 거.”
“…….”
테이블의 공기가 일변했다.
내가 이페일을 응시하는 동안, 양옆에서 놀란 두 쌍의 시선이 내 얼굴로 날아와 꽂히는 게 느껴졌다.
이페일이 더듬더듬 되물었다.
“……알고 있었어?”
“그때 천국에서 만나자며.”
점원이 음식을 내왔다. 테이블 위에 맛있는 냄새와 모양새를 뽐내는 음식들이 가득해졌다.
하지만 그것들이 구색 좋은 소품에 불과한 양, 세 청년들은 아무도 음식에 손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고기를 잘라서 모두의 접시에 덜어주며 말했다.
“신경 안 써. 사정이 있었다는 거 아니까. 그러니까 너도 죄책감 갖지 마.”
하지만 친구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헤스티오와 테실리드가 추궁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야, 무슨 소리야, 이게?”
“이페일.”
10년 동안 혼자 죄책감에 끙끙거린 녀석이 자기변호에 능할 리가 없었다. 내가 나섰다.
“너무 뭐라 그러지 마. 그때 오르슈 백작이 걸었던 던전의 룰 기억해?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만 살려서 내보내주겠다고 했던 거.”
“와, 이페일 너 이 자식, 혼자 살려고…….”
“아니야, 헤스티오. 이페일은…….”
당시 헤스티오는 원작과 달리 살아 있던 상태.
내 주관적인 의견을 담아 이페일의 선택을 재해석해 보았다.
“너희 둘 중 한 명을 살려서 내보내려고 했을 거야.”
빙의자를 위한 특혜